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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김장혁 (30) 일루의 희망
2024년 03월 22일 10시 52분  조회:607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7.일루의
 희망



    병완은 영월동에 돌아오자마자 먼저 덕팔의 집부터 들렸다. 그는 마을 사람들이 삯전이라도 좀 벌어 바쁜 목이라도 열게 하려고 일루의 희망을 품고 마을 사람들을 공지에 불러가려고 서둘렀다.
    덕팔이네 낮다란 초가삼간은 목수네 집 같지 않게 지붕 중간이 푹 꺼져 있었다. 그만큼 안주인이 시시콜콜 앓는 이 집의 푹 꺼진 살림형편을 보여 주는 상 싶었다.
    덕팔은 어찌나 살림형편이 구차하였으면 서른 살이 퍽 넘어서야 마대치기장가를 다 들었겠는가.
    어느 날 밤에 덕팔은 병완과 함께 가마 골에 가서 자기보다 열다섯 살이나 어린 과부네 집에 뛰어 들어가 딸 필순을 마대 안에 넣어 메다가 장가들었던 것이다. 후에 필순의 본가집 엄마가 알고 찾아왔을 때에는 필순이가 배가 남산만할 때였다. 그리하여 필순의 본가 집에서는 필순을 데리러 왔다가 덕팔이가 사람이 좋은데다가 기왕 쑤어놓은 죽을 밥으로 짓는 수가 없는지라 별수 없이 그만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고는 집으로 돌아 가버렸다.
    병완이 삽작문을 열고 들어서자 점순과 철규가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큰아버지!”
    “오, 그래. 엄마는 더 앓지 않았니? 에이고, 이젠 점순이도 처녀티 나는구나.”
   병완은 점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열네살인 점순은 정말 마치 시골에 방실 피어나는 물기 머금은 민들레 같았다.
   병완은 마른기침을 깇으면서 윗방으로 들어갔다.
    “아주버님 오셨소? 쿨룩쿨룩.”
   아래 방에서 머리에 흰 수건을 동인 필순이 겨우 일어나 앉으면서  인사했다.
   병완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일어나지 마오."
   그는 괴춤에서 1원 20전을 꺼내 철규의 손에 쥐어주면서 아내에게 주라고 아랫방 쪽으로 손시늉했다.
   "이건 어디서 난 돈입둥?"
   필순은 철규가 받는 엽전을 보고 반색했다.
   "한길수 영감이 미리 삯전을 줘서 가지고 왔소이다."
   필순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에이고, 그 구두쇠 어쩌다가 인심을 다 쓴다우?”
   필순은 삯전을 보자 주름진 얼굴에 웃음기를 띠였다.
     “전번에두 말했잖소? 우리 신설집 병관 형님을 찾아가서 병을 보이라는데. 어째? 치료비 모자라면 내 병관형님과 말할 테니까. 어서 가 병 보이오.”
   병완의 말에 필순은 흰 수건을 동인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떻게 인정빚까지 지고 살겠습둥? 쿨룩쿨룩, 에헴. 차라리 내가 빨리 죽고 말아야지. 헌데 죽어지지 않는단 말입구마. 쿨룩쿨룩.”
   병완은 한숨을  후 내쉬였다.
    “이제 초겨울에 집짓기 끝나면 덕팔이하구 같이 우리 형님을 찾아가 보이기오.”
   한참 후 그는 우쭐 일어났다.
    “아무튼 우리 돌아올 때까지 몸조리를 잘하오. 철규야, 밭일을 그만 두구 오후에 한 영감네 마차에 앉아 우시장에 가거라. 날씨가 싸늘하니까 꼭 아버지하구 네 이부자리를 가지고 가라.”
    “예. 그러잖아두 강냉이랑 뜯어 들여오면 아버지랑 일하는 공지루 찾아가보자 했습구마.”
   철규가 뒤더수기를 긁적이면서 씨물씨물 웃었다.
  아랫방에서 필순은 넉두리를 해댔다.
   “에이고, 그 강냉이를 집에 들여올게 얼마나 남았다구 그러냐? 한 영감한테 가져 가구나면 온 한해 농사를 지은 게 남는 게 있다구 그러우? 아예 우시장에 가서 한날에 쌀 서너근씩 버는 게 낫지.”
    병완은 기대에 찬 눈으로 점순을 바라보면서 문 밖으로 나와 짚신을 신었다. 그는 덕팔이네 앞날이 근심스러워서 땅바닥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어쩌면 마흔살을 갓 넘긴 아낙네 저렇게 못쓸 페병에 걸려 쿨룩거린단 말인가? 에이, 내  돌아오면 꼭 형님네 집에 데려다가 병을 보여야지.)
    그는 점순과 철규의 배웅을 받으면서 최동욱의 집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최동욱의 아내 박경돈은 마흔이 넘었건만 의연히 옛날 고왔던 모습이 엿보였다. 그녀는 애를 낳지 못했기에 맨 날 큰 죄나 지은 것처럼 쪼그리고 앉아 살았다. 자식이 없어서 적은 집식구들의 입을 건사하기 쉬울 것 같았지만 최동욱의 집은 살림이 피지 못했다. 그만큼 동욱은 집으로 들어오면 아내와 신경질을 썼고 술만 마시면 도깨비장물을 먹은 사람처럼 경돈을 때리곤 했다. 그리하여 몇 번이고 병완이한테 혼 난적이 있었다. 정말 경돈은 이름처럼 돼지마냥 동욱에게 매를 맞고 욕을 먹고 살았다. 그래서 경돈은 앓지 말라고 본가 집 아버지가 돼지라고 이름을 지은 것마저 탓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이 타고난 팔자라고 생각하자 모든 것을 될 대로 되라고 내버려두고 되는대로 살고 있었다.
    병완은 동욱의 아내 박경돈의 처지가 불쌍해 한숨을 푸푸 쉬면서 개울을 건너 둔덕으로 올라갔다.
    경돈이 마당에서 뭘 주섬주섬 주어 돌려놓다가 인사를 했다.
    병완은  삽작문 밖에서 경돈한테 삯전을 건네주었다.
    “이 돈 1원 20전은 이 집 나그네 엿새 일한 삯전이오. 이부자리나 저 한 영감 집에 가져다주오.”
   경돈은 병완의 믿음직한 태산 같은 뒷잔등을 바라보며  뒤에서 푸념질했다.
   “에이고, 이 놈의 집에 돈을 서 말이나 쌓아 놓은들 무엇에 쓴담?” 
   병완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개울물을 건너 창렬의 집에 터벅터벅 올라갔다.
   (집집마다 읽기 어려운 경이 있다더니 이 마을에 어느 집엔들 답답한 일이 없겠는가. 덕팔은 아내가 앓고, 동욱은 자식이 없어 대사고, 창렬은 집기둥 같은 창렬이 폐병을 앓아서 근심이 태산 같지 않은가. 쯧쯧. 세월이 더러워서, 원.)
    병완은 이번 걸음에 상호를 공지에 데리고 가려고 마음먹고 올리막을 성큼성큼 걸어올라갔다.
    상호는 집울안에서 마른 나무장작을 팡팡 패고 있었다. 그는 나무장작을 주어 땔나무무지에 쌓다가  병완을 발견하고 허리를 펴고 환성을 질렀다.
   “큰아버지, 우시장에 갔다가 언제 왔습둥?”
  병완은 삽작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문안부터 했다.
   “아버지랑 무사하냐?”
 상호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대답했다.   
  “예, 아버지는 병이 괜찮습구마. 큰아버님이 준 은덩이를 가지고 신설집에 가서 약을 져다 대접하였더니 많이 낫습구마.”
  이때 창렬과 명순이 웃으면서 바깥으로 나왔다.
  “그래, 공지에서 벌이가 되던가?”
  창렬이 묻는 말에 병완은 창렬의 어깨를 다독이며 선선히 대답했다.
  “밥벌이는 될 거 같네. 하루에 쌀 서너 근 품삯은 주더구먼. 한길수 어쩌다가 인심을 써서 제 돈으로 품삯전을 푼푼히 주더구먼.”
  병완은 마루에 걸터앉아 두리번두리번 집안을 들여다보더니 물었다.
   “어째, 은녀는 보이지 않소?”
   창렬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후 내쉬었다.
   “다시 한길수가네 집으로 들어갔소.”
   금방까지도 벙긋거리던 창렬의 얼굴에 수심의 그림자가 얼른거렸다.
  병완은 그 모양을 보고 이상한 감이 들었다.
   “그새 무슨 일이 있었는가?”
  병완의 물음에 창렬은 그저 머리만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 명순이 문설주에 기대여 옷고름으로 눈시울을 닦으면서 어깨를 들먹이는 것이 피뜩 보였다.
  “무슨 일이 있었소?”
   그러나 창렬은 병완을 믿는 터라 넉두리를 했다.
   “은녀는 부엌데기로 들어가고 가을에 감자랑 강냉이랑 다 한길수를 주고나니 새해 보릿고개를 넘길 것 같지 못하오.”
   병완은 창렬의 손을 잡고 상호를 바라보며 간곡히 말했다.
   “그럼 상호를 공지로 보내오. 삯전이라두 얼가간 벌면 살림에 보탬이 되겠는데."
   창렬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나 시원한 대답은 없었다.
   상호는 도끼를 놓고 땀을 씻으면서 아버지를 보고 간청했다.
  “나를 공지에 보내줍소. 겨울 죽벌이는 되겠는뎁쇼.”
  창렬은 마지못해 머리를 끄덕였다.
 “어서 큰아버지를 따라 갈 차비나 해라.”
  상호는 허리를 꿉썩 굽혔다.
  "예. 알았습구마."
  병완은 점심때가 된지라 엉덩이를 우쭐 들었다. 그러자 창렬이 손을 덥석 잡았다.
  “이보게. 점심이나 잡숫고 가게나.”
  “아니, 나도 집에 가서 점심 전에 이불 짐을 챙겨서 한 영감네 집에 가져가야 하네. 상호는 근심하지 마오. 내가 있으니까.”
  병완은 창렬의 생강처럼 메마른 손을 놓고 삽작문 밖으로 나왔다. 뒤에서 창렬은 병완의 등 뒤를 믿음에 찬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창렬이네 빚을 물고 은녀를 데려 내 오려는 일루의 희망을 품고 상호 등 숱한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데리고 공지로 가는 길을 떠났다.
     병완은 위망이 높아 우시장 부근에서는 병완의 말이라면 누구나 다 따랐다.  숱한  마을 사람들은 품삯을 준다는 말에 경찰국 사무 청사를 짓는 공지에 개미떼처럼 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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