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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김장혁 (26) 총도감의 꿈
2024년 03월 05일 18시 03분  조회:620  추천:0  작성자: 김장혁
 
            3. 총도감의 꿈
 
 
     원쑤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한길수와 류강철이 끼무라 국장의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다.  뜻밖에도 월향이 콤파스처럼 두 다리를 벌리고 서서 표독한 눈길로 쏘아보지 않겠는가.
     한길수는 월향한테 손삿대질하면서 이빨을 악물고 당장 잡아 먹을 상 했다.
     “이년, 팬티를 다  내 머리에 씌워?"
     월선은 눈에 쌍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더러운 두상, 날 버리고 젊은 년들과 놀아? 오늘 내 죽고 네 죽고 해보자!”
    월향은 이를 악물고 걸레대를 마구 휘둘렀다.
     
     “콘칙쇼(닥쳐)!"
     끼무라는  한길수 부처간이 고양이와 쥐처럼 싸우는 꼴을 보다 못해 꽥 고함쳤다.
     경호원들이 우르르 뛰어들어왔다.
     월향은 한길수를 손가락질하며 대성통곡쳤다.
     "끼무라 국장님, 저 놈을 박살냅소, 저놈, 오전에 광기를 부리던 저 놈을 잊었습네까?" 
     끼무라는 엉거주춤 일어서 월향을 손삿대질했다.
    "경호원, 저 년을 끌어 내가!”
    승냥이가 병아리를 채가듯 경호원들이 월향의 팔을 잡아끌고 나갔다.
    그제야 한길수가 한숨을 후- 내쉬었다.
     그가 둘러보니 100 평방미터는 실히 될 사무실은 일본 냄새가 물씬 풍겼다. 끼무라 국장이 앉은 정면에는 고약딱지 일본국기와 “무훈영구”라는 글자를 새긴 무사도 기발이 걸려있었고 사무실 양옆 벽 밑에는 사꾸라 꽃이 만발한 그림으로 단장한 병풍이 둘러서 있었다. 그 앞에 좌우로 참대의자가 죽 두 줄로 놓여 있었다.
    사무실이 조용해지자 끼무라 국장은 군도를 왼손으로 잡고 거만하게 다가와 한길수의 손을 꽉 잡으면서 아래위를 다시 유심히 살펴보았다.
   “한군, 당신의 성선은 잘 알았소이다. 한군, 우린 영원한 친구로 될 수 있네.”
   이제껏 우시장에서 누구에게 허리를 한번 굽혀보지 않은 한길수였다. 하건만 일본 사람의 세상이 되고만 우시장 땅에서 이젠 끼무라 국장한테 처음 허리를 굽혔다.
    “끼 국장님, 저는 강철통역을 통해 어르신님의 천하에 빛나는 슬기와 뛰어난 무공을 널리 알았습구마. 오늘 또 드넓은 흉금으로 오전에 있은 오해를 일소해버리고 포옹해주니 정말로 자식을 안아주는 친부모처럼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끼무라 국장은 류통역의 통역을 듣고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왼손으로는 한길수 어깨를 툭툭 다독였다. 마치 사냥군이 사냥개 대가리를 다독이듯이.
    "허허. 별말을. 녀색을 밝히는덴 자네나 나나 피차일반이지. 주색잡기엔 자넨 내 버금은 가겠어."
    끼무라는 이렇게 말하려다가 목구멍까지 나온 말을 꿀꺽 삼켜버렸다. 사냥개 앞에서 체모를 잃는 것 같았다.
    끼무라 국장이 제자리에 가서 앉아 이렇게 달리 말했다.
    "사내대장부란 드문드문 유흥을 즐길 수도 있네. 그러나 한도를 넘어선 안돼."
   "네, 네. 그렇습죠."
    한길수는 허리를 꿉썩거리며 어깨에서 금덩이 주머니를 끌러서 끼무라의 사무상 위에 올려놓았다.
    “끼 국장님, 이건 국장님을 처음 만난 인사입니다. 적은대로 받아주시고 저를 믿어주십시오.”
    끼무라는 사무 상에 부딪쳐 묵직한 소리가 나는 주머니를 내려다보면서 눈이 둥그래졌다.
    한길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황금빛이 반짝이는 금덩이들을 꺼내 사무상 우에 죽 내놓았다. 황금 쉰 냥은 족히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끼무라 국장의 표정이 대번에 바위돌처럼 굳어졌다.
    “이이에(아니),  간상(한군), 난 황금덩이보다 당신의 충성심을 요구하네. 그게 황금보다 더 귀중하네. 알았소이까?"
     류 통역이 통역해주자 한길수는 잔등에 식은땀을 쪽 흘리면서 오리무중에 빠졌다. 속으로는 황금덩이보다 더 좋은 것이 뭐가 있어서 이러나고 원망했다.
    “끼 국장님, 이 황금덩이는 저의 충성심입니다. 이 금덩이는 내 어떻게 마련한게라구 이럽둥?”
    무지한 한길수는 끼무라 국장이라고 하니 성이 끼고 이름이 무라인가고 끼 국장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융통성이 있는 류 통역이 끼무라 국장이라고 다 붙여 통역해주었기에 오해는 사지 않게 됐다.
    끼무라 국장은 안경알 너머 한길수를 쏘아보면서 총알을 내뱉듯이 한 마디 한 마디 내쏘았다.
    “난 황금보다도 한상이 대일본제국 위해 목숨 바칠 충성심을 더 요구하네.”
    류 통역이 통역해주자 한길수는 끼무라 국장의 사무 상 앞에 털썩 꿇어앉아 맹세하듯이 말했다.
    “끼 국장님, 저는 목숨을 다 바쳐 대일본젝국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저를 믿어 주십시오. 저는 끼 국장님의 한 팔이 돼 이 우시장일대를 대일본제국 끼 국장님의 새 세상으로 만들어 드리겠습구마.”
    끼무라는 안경알 밑으로 간사한 웃음을 지으면서 지껄였다.
    “요로씨이(좋아), 바로 그거네.”
    끼무라 국장은 의자에서 일어나 한길수의 앞에 뚜벅뚜벅 다가왔다. 그는 두 팔로 한길수를 끌어안아 일으키면서 자리를 권하고 그 옆에 나란히 앉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한길수는 손수건으로 번들이마에 돋아난 땀방울을 닦으면서 오전에 있은 일을 구구히 설명했다.
     끼무라 국장은 말을 질질 늘여놓는 걸 딱 질색했다.
     끼무라는 한길수의 잔등을 툭툭 다독여주면서 뇌까렸다.
     “괜찮네. 중국 속담에 ‘싸우지 않으면 사귈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우린 첫 만남이 참 우스웠지만 대일본제국에 대한 충성심이 있는 한 친근한 벗으로 될 수 있네.”
    “고맙습니다.”
    끼무라 국장이 박수를 툭툭 쳤다.
    일본 시녀들이 우르르 나오더니 푸짐한 술상을 차렸다.
    “간상이나 내나 다 술을 좋아하지 않소. 자, 한잔 들면서 이야기하기요.”
    그들이 댕그랑 술잔을 마주칠 때다.
    병풍 뒤에서 화복차림을 한 일본 기생들이 악기랑 들고 게다짝을 짝짝 끌고 사뿐사뿐 걸어 나와 곱게 인사를 드렸다.
    끼무라 국장은 한편으로 조선 사람들과 싸우면서도 항상 경찰 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일본 기생집 사꾸라관의 기생들을 데리고 놀았다. 오늘도 우시장에서 처음으로 친일 하려는 조선 사람을 접대하려고 일본 기생년들을 경찰국에까지 불러 왔던 것이다.
    일본 전통민요 “사꾸라” 곡이 은은히 울렸다. 일본 기생 년들이 돌아가면서 사꾸라 춤을 곱게 추었다.
    피리소리에 맞춰 병풍 뒤에서 게다소리가 딱딱 나고 가늘고 하얀 손들이 병풍우로 올라왔다 내려갔다 한다. 뒤이어 반 라체를 한 일본 기생 년들이 병풍 뒤에서 흘러나와 춤판을 벌렸다.
    일본 기생 년들이 추는 춤판을 한참 멍하니 쳐다보는 한길수는 선경에 들어선 것만 같아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한참 후 끼무라는 술상과 기생 년들을 물리고 사무 상에 되돌아가 의자에 앉았다.
    “만난 첫날부터 일을 좀 시켜야 하겠소. 지금 이 사무실이 너무 비좁아서 멋있게 3층집으로 지어야 하겠네. 간상이 총도감을 맡게나.  지금부터 목수를 구해 박달령의 적송을 많이 베서 실어 와야 하겠소. 장차 우리 대일본 제국에서 백두산의 적송을 실어가려면 갑산으로 가는 길도 잘 닦아야 되겠네.”
     끼무라 국장은 작은 일부터 시켜보고 능력을 보아서 한길수를 써주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 눈치를 챈 한길수는 대뜸 “제가 도맡아서 새 경찰국청사를 짓겠습니다. 목수랑 목재랑 인부랑 근심하지 마십쇼.”라고 선선히 대답했다.
     끼무라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면서 술잔을 들어 한길수에게 주었다.
    “자, 간상(한군), 간상이 경찰국 청사를 명년에 멋있게 지을 것을 미리 축하하여 한잔 듭세.”
    끼무라와 한길수는 술잔을 부딪치고 나서 죽 들이켰다.
    “간상, 우리 일본대제국을 위해 일하려면 우리 일본의 선진문명을 받아들여야 하겠네.”
    끼무라 국장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한길수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연신 “예, 예.” 하고 대답했다.
    끼무라 국장은 강철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강철은 병풍 뒤로 가더니 이발사를 데리고 왔다.
     강철은 한길수가를 보고 “끼무라 국장은 어른님을 관심하여 머리를 깎아드리라고 하였습니다.”라고 공손히 말했다.
그제야 제 정신이 든 한길수는 자기 외채머리를 만지면서 끼무라 국장의 희죽이 웃는 낯을 바라보았다.
     “부모가 준 머리털이 아까운데..."
    "고린내 나는 머리카락마저 아까워?”
    끼마라 국장의 위엄에 찬 말을 강철이가 통역해 듣고 별수 없었다. 한길수는 끼무라 국장이 지켜보는데서 둬 자 길이나 되는 머리채를 썩뚝 베 버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한칼, 한칼 발치에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보며 한길수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끼무라는 거울을 손수 들어다 한길수에게 비춰 보이면서 지껄였다.
     “보라니깐. 간상, 하이칼라 번대머리에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  허허. 얼마나 신사다운가? 이제야 진짜 우리 대일본제국의 총도감 같네그려. 흐흐흐.”
    끼무라는 손벽을 딱딱 쳤다. 시녀들이 술 두 잔을 쟁반에 들고 다가왔다.
    끼무라는 한길수와 잔을 마주치고 굽을 죽 내였다.
    한길수는 울분과 함께 그 술을 목구멍에 부어넣었다.
    끼무라는 술잔을 놓으면서 명했다.
    “한 군, 내일부터 목수와 인부를 징집해 경찰국 청사를 짓게네.”
   강철이 옆에서 일일이 번역해주자 한길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 아니, 당장 동삼이 닥쳐오는데 어떻게 집짓기를 합네까?"
   "뭐라고? 초겨울이 돼 괜찮아."
   그래도 한길수는 어정쩡해 서서 끼무라 정신 있는가 쳐다보았다. 강철이 옆에서 허벅다리를 툭툭 치며 눈짓했다.
    그제야 한길수는 마지못해 연신 번들이마를 조아리었다.
    “알았습구마. 명령대로 하겠습구마.”
    끼무라 국장은 새로 얻은 개 한 마리를 귀여워하듯 한길수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그의 손을 굳게 잡아 흔들었다.
    한길수는 어깨 축 처져 경찰국 대문 어귀에서 진작 기다리던 당나귀 차에 올라탔다.
    가을해도 뉘엿뉘엿 져가고 있었다. 하늘의 구름장들에도 불이 달린 듯이 뻘겋게 불타고 있었다.
     길수는 당나귀차에 앉아 건들건들 몸을 흔들며 시내거리를 달렸다. 이때 술집 부근에 이르자 큰길 옆에서 진작부터 기다리던 응삼 등이 마중했다.
     “일이 어떻게 되였습둥? 아니, 머리채는 어쨌습둥?”
    응삼이 긴장한 표정을 지으면서 묻자 한길수는 언짢은 기분을 감추면서 큰소리부터 쳤다.
    “끼무라 국장은 대일본제국의 사람이 되려면 머리채부터 바치라고 해서 바쳤네. 끼 국장은 네 눈깔로 그래도 이 한길수가를 알아보더구나. 날 총도감으로 임명했어.”
    “예? 아, 예. 감축드립구마.”
    응삼과 영팔, 수길은 모두  숱한 금덩이를 내밀고 고작해야  고까지 총도감인가 하는 표정이었다. 상우남면 파출소 소장도 아니고.
     한길수는 제 좋은 꿈을 꾸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총도감을 잘하면 이제 경찰서장을 시키겠는지 누가 아느냐?)
     그는 버릇처럼 득호 잔등을 구두발로 툭 찼다. 
    "어서 가자, 해 넘어가는구나.”
    “이라! 쨔!”
    득호는 당나귀 엉덩이를 채찍으로 연신 갈겼다.
    "주인님, 빨리 가겠으면 날 차지 말고 당나귀를 찹소."
   허길수는 단통 우멍눈을 부라리면서 욕했다.
    "웬 대꾸질이냐? 널 차면 어째? 당나귀를 차면 말을 알아듣니?"
    당나귀는 해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려고 차를 끌고 네 굽을 안고 달렸다. 그 뒤로 응삼과 수길, 영팔이 말을 타고 전후좌우로 옹위하고 달렸다.
    한길수는 가을바람을 한껏 들이켜니 가슴이 후련하고 뿌듯해났다. 그는 말 이발을 입술 새로 드러내면서 음흉한 낯에 별의별 엉뚱한 궁리를 다 하고 있었다.
    (흥, 이제 일본 경찰국장을 등에 업었으니 영월동이겠는가? 아니야, 온 명천일대를 독점해 버릴 테야. 병완이, 네 놈이 나한테 허리를 굽히지 않고 어디 배겨내는가 보자.)
     병완을 떠올리자 으쓱해졌던 어깨가 축 처지는 감이 들었다. 이전에 병완을 얼리고 닥쳐보았지만 후려채지 못한 것이 속에 걸리었다.
     그러나 끼무라 국장을 떠올리는 순간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끼무라 국장을 등에 업은 이상 병완 같은 시골 놈이 언감 나와 어쩐단 말인가? 은녀랑 되빼앗아와야지. 흥!)
     그는 눈을 떡 감았다.
     순간 그의 눈앞에는 이런 흐뭇한 장면이 떠올랐다. 자기가 권총과 군도를 척 차고 일본군모를 삐딱하게 눌러쓰고 가죽장화를 척 신고 병완이랑 호령한다. 은녀랑 월향이랑 옥설이랑 숱한 미녀들이 전후좌우로 자기를 옹위하면서 애교를 부린다.
    한참 후 우멍 눈을 스르르 떠보니 당나귀 차는 어느덧 운주동강이 감돌아 흐르는 치마봉 기슭을 달리고 있었다. 아래쪽에서는 개울물이 은빛달빛과 구름을 싣고 쏜살 같이 흐르고 있었다.
     길수는 술기운이 뻗치는데다가 가을바람을 맞으니 열기를 띤 얼굴이 선선해나고 배가 울렁거렸다. 이제 바야흐로 군도와 권총을 차고 경찰두목질을 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뿌듯해나고 별스레 울렁거리었다.
     “오─”
     “예?”
    득호는 주인이 무슨 분부가 있는가 하여 뒤를 돌아다보았다.
    “아니,  아무 일도 아니야. 빨리 몰게나.”
     “예. 짜! 짜!”
   당나귀는 채찍을 맞고 대가리를 양쪽으로 떨어대더니 네 굽을 안고 딸까닥 딱까닥 달리기 시작했다.
   빨리 달리는 당나귀 차의 바퀴처럼 길수의 사유도 다급해졌다. 술기운이 도도해지자 혈액순환도 생각도 빨리 굴렀다.
   순간 월향에게 오전에 개꼴망신을 당하던 일이며 그 젊고 예쁜 기생 옥설을 가지고 놀지도 못하고 끼무라가 휘두르는 군도를 피해 달아나던 일이며를 생각하니 세상이 더럽게 변했다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월향이 원망스러웠다. 이전에 자기가 10여년 다닐 때 언제 한번 자기에게 소홀히 대하였던가. 그런데 지금은 일본 끼무라 경찰국장에게 찰싹 달라붙어 자기를 개 닭 보듯 한단 말이다. 그뿐인가! 끼무라 국장을 등에 업고 나를 업신여겨도 분수가 있지. 숱한 사람들 앞에서 자기 번들 이마를 치고 더러운 속옷을 벗어 내 머리 꼭뒤에 씌우기까지 하다니?
    (참 야속해!)
   (월향이, 마흔 고개를 쳐다보는 네년이 없으면 데리고 놀 계집이 없을 것 같냐? 얼마든지 있지, 있어. 옥설이, 만금이, 뽕녀. 어허이구, 보름달 같은 그년들이면 네년보다 훨씬 낫고 실컷 놀 수 있다. 퉤!)
    해가 뜨자 달이 지듯이 옥설이랑 길수의 눈앞에 나타나자 월향은 매력을 잃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월향에게도 끼무라 국장이 나타나자 건달부자 길수가가 마음속에서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월향은 그날 오후에 끼무라 국장의 사무실에 가서 자기 기생방에 와서 옥설이랑을 끼고 애를 먹이는 한길수를 없애치워 달라고 고발하러 갔던 것이다. 그러나 끼무라 국장의 호된 꾸지람을 듣고 쫓기어 났던 것이다.
    그런줄도 모르고 한길수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당나귀 차 우에서 자기 좋은 생각을 굴리고 있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월향의 기생방에 있는 옥설이랑, 뽕녀랑, 만금이랑 예쁜 기생들을 몽땅 데리고 놀겠는가고 궁리했다.
    (아니, 이 세상의 미녀들이란 미녀는 몽땅 데리고 놀고 싶다. 아이고, 세상의 미인들아, 어째 내 애간장을 이다지도 애태우게 하느냐?)
    그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오전에 옥설과 뽕녀, 만금을 만나 술을 몇 잔 마셨지만 월향과 10년 동안 논 것보다 기분이 훨씬 좋았다. 그런데 월향을 외면하고 그 애들과 논다는 것은 암 펌의 입안에서 토끼를 빼내는 격이기도 했다. 황차 월향은 일본 경찰국 국장 사무실에도 드나드는 수기생이 아닌가?
    (어떻게 한다?)
   저 멀리 어슴푸레 마을이 다가온다. 그는 집에 있을 때에는 마을의 고운 계집애들을 데리고 놀고 고을에 가면 옥설과 만금이, 뽕녀와 놀아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전에 월향과 함께 기생집에 있던 월선이도 한때는 아주 예뻤다. 그래서 기생집출입을 밥을 먹듯이 하던 길수는 기생집만 가면 월선이 아니면 월향에게 달라붙어 술을 처먹고 녀색을 즐기었다. 월선에게 빠져버려서 그는 어떤 때에는 영월동에서 내려오면 한 보름동안 아예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하여 본댁이 철주를 싸 업고 우시장에 내려와 기생집에 와서 길수를 불러 가기도 한 적이 있었다.
    길수는 본댁이 미워서 기생집 주인에게 황금덩이를 쥐어주고 월선을 떼 내 영월동에 데려다 첩으로 들여앉혔다. 그리하여 본댁은 철주를 싸 업고 서울 쪽에 있는 본가 집으로 달아났던 것이다. 길수는 말을 타고 쫓아가 본댁에게 황금덩이를 주면서 로비라도 하라고 했다. 그러나 본댁은 눈물 한 방울 떨구지 않고 그 황금덩이를 한 냥도 받지 않고 가버리었던 것이다.
   길수가 월선을 첩으로 데려온 데는 그럴만한 속셈이 있어서였다. 수기생 월선이가 기생집에 들어앉아 있는 한 월향을 비롯한 다른 기생들과 놀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월선을 집에 데려오니 집에 있을 때에는 월선과 놀고 고을에 가서는 월선의 여동생이자 처제인 월향을 비롯한 더 젊은 개생들과 마음껏 놀 수 있어 아주 좋았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 월선도 월향도 다 늙었어. 고 옥설을 월선 대신 둘째 첩으로 들여앉히고 고을에 가서는 뽕녀와 만금을 데리고 놀았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그 암범 같은 월선이가 가만 있겠는가! 시골의 은녀를 부엌데기로 들여와도 어찌 하나 퉁 사발 눈깔에 쌍불을 켜고 달려드는 게. 에이고.)
    순간 그의 눈앞에는 마름 응삼의 색시 춘실의 고운 모습이 피뜩 떠올랐다.
    경상북도에서 난 춘실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이모네 집에서 눈치 밥을 먹으면서 자랐다. 그런데 춘실은 이모부가 죽고 이모계부가 들어오자 팔자가 바뀌어 버린 여자였다. 글쎄 이모계부가 쩡하면 달려들어 어린 그녀를 능욕하려고 들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모네 집에서 뛰쳐나와 조선 팔도를 헤매다가 우시장 거리에서 밥을 빌어먹으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한길수에게서 밥을 몇 때 얻어먹고 이 시골에 따라와 응삼의 처로 됐던 것이다. 그리하여 춘실은 주인어른이라면 응삼보다도 아버지처럼 공대했다.
    (아무리 계집이 없어도 내 어찌 굴 어귀 풀을 뜯어 먹으리오?)
    이때 그의 눈앞에는 또 새별 같은 깜장 눈에 쌍 머리채를 치렁치렁 땋아 늘인 은녀가 피뜩 떠올랐다. 점점 능금같이 익어가는 그 복성스러운 얼굴이 그의 가슴마저 찡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억대우 같은 병완이 떠올랐다. 설상가상으로 은녀를 좋아한다고 온 마을에 소문난 성칠을 떠올리자 도리머리 질이 나갔다.
   “안 된다! 안 돼! 오! 안 된단 말이다!”
   “예?”
   득호는 주인어른의 말에 당나귀고삐를 쥔 채 몸을 뒤로 돌렸다. 그 바람에 당나귀 고삐를 왼쪽으로 꽉 당기고 말았다. 당나귀가 코 구멍이 아파 왼쪽으로 대가리를 돌리면서 달려 나갔다.
   “아이쿠!”
   당나귀 차가 길수와 득호를 실은 채 낭떠러지에서 굴러 개울물에 풍떵 떨어졌던 것이다.
  “ 빨리 주인어른을 살려라!”
   응삼이랑 바삐  개울물에 우르르 쓸어달려 내려갔다. 길수는 다행히 깔려죽지는 않았다.
   대신 당나귀차  밑에서 구렁인지 뱀인지 욕지거리가 마구 쏟아져 나왔다.
   “개자식, 어떻게 차를 몰았기에 이 지경 만들어?!”
그런데 이번에는 기어 일어나는 길수의 낯에 당나귀가 걸쭉한 똥물을 찔찔 쏴놓았다.
    “에 퉤퉤! 득호, 이 자식 어디 죽어봐라!”
   길수는 차밑에서 벌벌 기여 일어났다.
   “아니, 주인어른, 죽지 않았습둥? 천만다행입구마.”
   “뭐라고? 이 자식!”
   길수는 일어나자마자 득호에게 주먹을 턱 안겼다.
    득호는 개울물에 벌렁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때 응삼 등이 내려와 당나귀 똥을 낯에 바른 번들이마를 보고 겨우 웃음을 참았다. 그들은 길수를 부축하고 개울물에 똥투성이 머리를 닦아주었다.
  “에, 퉤, 퉤!”
  수길과 영팔이 양쪽에서 길수를 부축해 둔덕으로 올라갔다.
   당나귀차는 또다시 어둠을 타 분주하게 산골 길로 달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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