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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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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2 김장혁
2023년 12월 05일 10시 26분  조회:906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2. 곰과 생사박투
 
     성칠은 추석을 쇠려고 사냥총과 요도를 차고 사냥에 나섰다. 하늘아래 첫 동리인 영월동을 벗어나 산등성이 몇 개를 타고 넘으니 무시무시한 원시림이 나졌다. 호랑이와 이리떼들의 굶주린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왔다. 무시로 들이닥칠 야수들을 경계하면서 성칠은 살금살금 원시림 속을 누비면서 헤쳐 나갔다. 그러나 점심이 되도록 꿩 꼬리도 만져보지 못했다.
      “후~”
     성칠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쉬면서 사냥총을 푸른 이끼 낀 너럭바위에 기대 세워놓고 기대앉았다.
     순간 노린내가 물씬 풍기어오면서 코를 찔렀다. 성칠은 노련하게 본능적으로 손을 사냥총에 가져갔다. 그가 사방을 두리번두리번 살펴볼 때였다.
    “에크! 저게 뭐야?”
     너럭바위 앞 낭떠러지에서 얼룩 곰 한마리가 커다란 바위 돌을 들고 앉아 있지 않겠는가.
     어미곰이 쳐든그 바위 돌 밑에서 새끼 곰 두 마리가 짐승의 뼈다귀를 아드득아드득 널고 있었다. 이 놈의 곰은 짐승을 잡아 각을 뜯어 너럭바위를 겨우 들어다 짓눌러놓았다. 어미 곰은 새끼 곰들을 데려다 바위 돌을 들고 먹이고 있었다.
     성칠은 민첩하게 바위 뒤에 숨어 사냥총을 허공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땅!
      야무진 총소리가 원시림의 고요를 깨뜨리며 메아리쳤다.
      순간 깜짝 놀란 얼룩 곰이 바위를 뚝 떨어뜨렸다. 얼룩 곰은 자기 새끼가 바위 돌에 깔려 죽은 것도 모르고 낑 하고 고함치면서 어디에 사람이 있나 껑충껑충 뛰면서 헤덤볐다. 그러나 바위 뒤에 숨은 성칠을 발견하지 못했다.
     사람이 보이지 않자 어미 곰은 다시 돌아와 금방 떨어뜨린 바위 돌을 움쩍 들었다. 그제야 새끼가 바위 돌에 깔려 죽은 것을 발견하고 얼룩 곰은 꽥 삼림이 떠가갈듯이 비감하게 소리쳤다. 그 놈은 성이 꼭뒤까지 치밀어 올라 새끼 곰의 각을 앞발로 쭉쭉 뽑아 사처에 던졌다.
     성칠은 너무 우스워 목구멍을 마구 떠미는 웃음을 겨우 참으면서 낭떠러지 아래를 살폈다. 얼룩 곰은 새끼 곰들의 각을 다 뜯어 사처에 쥐여 뿌린 후 끼깅거리면서 산중턱을 따라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래도 성칠은 얼룩 곰이 돌아올 까봐 아주 노련하게 낭떠러지아래 수림 속을 한식경이나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그는 얼룩 곰이 확실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에야 새끼 곰의 각을 주으러 조심조심 내려갔다. 그는 주위를 예리한 눈길로 살펴본 후 아무런 기척도 없자 새끼 곰의 다리며 갈비뼈며 주섬주섬 주어 주머니에 넣고 아구리를 바줄로 꽁꽁 묶었다.
       “끼깅!”
       갑자기 등 뒤에서 얼룩 곰이 울부짖음 소리가 들려왔다.
      성칠은 주머니를 활 던지고 사냥총에 손이 갔다. 몸을 홱 돌려보니 간 것 같던 얼룩 곰이 시뻘건 혀와 톱날 같은 이빨이 다 보이게 뾰족한 주둥이를 짝 벌리고 덮쳐왔다.
      성칠은 총을 쏠 새도 없어 사냥총을 쥔 채 몸을 훌 날려 얼룩 곰의 잔등을 뛰어넘어 갔다. 얼룩 곰이 둔중한 몸을 훌 돌리면서 덮쳐들 때다. 성칠은 땅을 구르면서 척 나무 가지를 하나 잡아 쥐었다. 뒤이어 발을 우로 걸더니 쉭 나무우로 올라갔다. 얼룩 곰은 닭 쫓던 개가 지붕을 쳐다보듯 나무 위를 멍해 쳐다보았다. 얼룩 곰은 원쑤를 갚으려고 악을 딱딱 쓰면서 나무를 안고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성칠은 나무 가지를 발로 구르면서 다른 나무 가지 위로 날아가 서서 사냥총에 총알을 재워 넣었다. 곰은 또 이쪽 나무에 따라와 아득바득 기여오르려고 악을 썼다. 그는 얼룩 곰이 가까이 엉금엉금 기어오르기를 기다렸다. 짝 벌린 곰의 아가리에 대고 “땅!” 총을 놓았다.
      얼룩 곰은 아가리에 명중탄을 맞고 피를 튕기면서 나무 아래로 떨어졌다. 둔중한 얼룩 곰은 아주 교활했다. 성칠이 사냥총을 안고 땅바닥에 뛰어 내렸다. 죽은 것처럼 너부러져 있던 얼룩 곰은 벌떡 일어나 성칠한테 덮쳐들어 사냥총을 덥석 틀어쥐었다. 성칠은 얼룩 곰에게 총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꽉 틀어쥐고 안간힘을 다 썼다. 헛수고였다. 얼룩 곰은 아주 쉽게 사냥총을 빼앗아 뚝 끊어버렸다. 얼룩 곰은 아주 장난이나 칠 듯이 사람처럼 앞발을 들고 직립하여 덮쳐들었다. 그 찰나에 성칠은 옆구리에 찼던 보도를 쑥 뽑아 얼룩 곰의 숨통을 콱 찔렀다. 그런데 얼룩 곰은 날쌔게 오른 앞발로 보도를 콱 쳐버렸다. 뒤이어 얼룩 곰은 성칠을 안아 쓰러 눕히고 깔고 들어앉아 장난이나 치듯이 엉덩이를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성칠은 아무리 일어나려고 악을 써도 육중한 얼룩 곰의 엉덩방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성칠은 그만 기진맥진하고 말았다.
      범에게 물려도 정신만 올똘히 차리면 살 구멍이 있다고. 성칠은 땅바닥에 떨어진 보도를 피뜩 보았다. 그는 너무 숨이 막히고 아파 상을 찡그리면서도 얼룩 곰이 엉덩이를 들 때마다 간신히 조금씩 보도 쪽으로 기어가 손에 보도를 덥석 잡아 쥐었다. 그는 보도로 엉덩방아를 찧는 곰의 사타구니 새의 불 중태를 힘껏 찔렀다. 한 번, 두 번. 연속 칼질에 얼룩 곰은 모진 비명을 지르더니 성칠의 팔을 앞발로 내리쳤다. 성칠은 머리를 옆으로 탈면서 날아드는 얼룩 곰의 앞발을 보도를 쥔 오른손을 들어 막았다. 그러나 날아드는 곰의 앞발을 피하지 못하고 팔을 썩 긁히었다. 순간 찢겨진 그의 팔에서 뻘건 피가 주르르 흘렀다. 그러나 그는 이를 악물고 참으면서 얼룩 곰이 자기 쪽에 돌아앉는 순간 불 중태에 보도를 쑥 박아 넣고 마구 휘저었다. 얼룩 곰은 피를 콸콸 쏟으면서도 성칠을 깔고 들어앉아 놓지 않았다. 성칠은 몸을 빼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육중한 얼룩 곰에게 깔리어 몸을 뺄 수 없었다.
그때 난데없는 병완이 쏜살같이 달려오면서 고함쳤다.
     “이 놈 곰놈아! 어디 죽어봐라!”
     병완은 쇠 발족 같은 무쇠주먹으로 얼룩 곰의 대가리를 연신 떵떵 쳤다. 얼룩 곰은 눈 통에서 피가 마구 튕겼다. 얼룩 곰은 드디어 입을 쩝쩝 다시더니 몸뚱이를 홱 돌려 병완한테 달려들었다. 그때 병완은 어데서 그런 힘이 났던지 날쌔게 얼룩 곰의 잔등에 돌아가 곰의 목을 끌어안고 홱 뿌리쳤다. 성칠도 그 틈을 타서 보도로 목 아래 시허연 삼각형 명줄에 콱 박아 넣었다. 얼룩 곰은 병완의 부자 앞에 쿵 쓰러졌다.
       병완은 육중한 얼룩곰에게서 눈을 떼고 성칠에게 눈을 돌렸다.
        “괜찮니?”
       “아이고, 아파 죽겠습니다.”
      성칠은 피 범벅이 된 오른 팔을 감싸 쥐고 상을 찡그리면서 발로 곰을 툭툭 건드려 보았다. 곰은 대가리가 피 못이 된 채 꿈쩍도 하지 못하였다.
      원래 병완은 무슨 감각이 갔든지 나무를 패서 다 쌓아놓자 맏아들이 근심돼 찾아 떠났던 것이다. 그는 반나절이나 찾아서야 여기서 곰에게 깔려 봉변을 당하는 성칠을 찾았던 것이다.
      “얘, 그 긁힌 팔에 오줌을 눠라.”
      “예? 피 나는데 오줌을 싸면 아리지 않습니까?”
     병완은 성칠의 팔소매를 걷어 올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줌 약은 조상들이 물려준 밀방이다. 오줌은 소염을 해. 손을 벴거나 긁을 디뎠을 때 오줌에 불구면 인차 지혈이 되고 독을 뺄 수 있다. 자, 여기에 오줌을 눠라.”
     성칠은 돌아서서 팔에 대고 오줌을 누웠다. 처음에는 좀 아린 감이 나더니 대번에 팔에서 흐르던 피가 멎고 아픈 감이 덜 났다. 참말 신기하였다.
    병완은 옷깃을 쭉 찢어 성칠의 오른팔을 꽉 싸매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너의 노할아버지 김수종과 할아버지 김승중은 모두 대대로 이씨 왕조 궁중 어의였다. 한번은 왕실의 어린 왕자가 저 서울에 있는 창덕궁 뒤 산에서 뛰놀다가 묵은 나무 긁을 딛여 발바닥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아파서 발을 싸주고 땔, 땔 굴면서 대성통곡 쳤단다. 그래서 시종들이 그 어린애를 업고 어의인 너의 증조부한테로 찾아왔단다. 그때 너의 증조부는 미리 받아둔 오줌을 담은 그릇을 꺼내 오줌이라는 말도 하지 않고 그 왕자의 발을 불궈 주었단다. 그러자 대번에 피가 멎고 한 반시간 불구니 발에서 피가 더 나지 않고 애도 아프다고 더는 울지 않았단다. 그런데 후에 왕실의 어른이 치아가 통세 나서 증조부가 그 오줌 약을 입에 물게 했다가 들통이 나서 화를 입었단다. 미리 받아놓은 오줌이 없어서 증조부는 약방 뒤 문으로 나가 오줌을 눠서 도자기그릇에 쏟아 줬는데 그만 오줌이라는 것이 들통이 나서 곤장 20대를 맞고 궁중에서 쫓겨났단다. 그러나 그 왕실의 어른은 오줌을 입에 물고 치아 병을 치료했다는 말을 하면 왕실의 위엄에 손상이 갈 까봐 까딱 말을 내지 않았단다. 후에 왕의 동생이 그만 위병과 대장염에 걸려 항상 배를 끌어안고 땔, 땔 굴렀단다. 그래서 왕궁에서는 다시 증조부를 불렀으나 증조부는 다시 궁중에 들어가지 않았단다. 그러자 황궁에서는 만약 다시 왕궁에 들어오지 않는 날엔 구족을 멸하겠다고 최후통첩을 내렸단다. 그래도 증조부가 가지 않아서 대신 할아버지가 왕궁에 들어가 그 왕제의 동생을 치료해주었단다. 그런데 후에 또 왕의 동생에게 오줌을 대접해 위병과 대장염을 치료한 것이 드러나 할아버지는 황궁에서 곤장 50대를 맞고 쫓겨나고 말았단다.
     “그런데 왜서 왕은 우리 증조부나 할아버지를 죽이지 않았습니까?”
      “그게야 더러운 오줌을 대접받았지만 병이 나았으니 죽이지 않았겠지.”
     “그럼 왕궁에서 쫓지 말 것이지.”
     “그러나 왕실의 위엄을 보이느라고 내쫓았겠지. 자 , 팔에다 한 번 더 오줌을 눠라.”
    “할아버지가 계속 왕궁에서 어의를 했으면 우리도 서울에서 계속 살았겠는데. 참, 이런 산골에서 산단 말입니다.”
    “얘, 우린 이 산골이 딱 제일이다.”
     “글쎄 골안에서 살아도 아버지도 할아버지처럼 의사를 하면서 서울에서 살았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큰아버지는 의사를 하지 않습니까? 아버지는 왜 하지 못합니까?”
     “예로부터 맏이에게 재간을 물려주는 법이다. 난 병권형님의 의사공부 뒷시중을 하느라고 명천군 상우남면 운주동에 있을 때 어려서부터 일했단다. 지금 생각해보면 소가 힘이 센들 왕이 되겠니? 그래도 할아버지 김수종 대로부터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비방 책을 물려받은 병권형님이 더 잘 살게 됐지. 병권 형님네 큰집조카 관준이나 어린 큰집손자 형내까지 대대로 그 밀 방을 이어받아갔다. 나는 힘깨나 쓰니까 씨름판에나 돌아다녀 황소나 타고 말았지. 다 팔자 소완이지. 난 네가 맏이지만 사냥하는 재간밖에 물려 준 게 없다. 둘째 창준이나 셋째 기준에게는 물려준 재간이 하나도 없다.””
     “아버지 힘을 물려받았으면 됐습니다. 허허허.”
     “그래?”
    병완은 해를 피뜩 올려다보더니  뒤 말을 이었다.
     “가을해는 짧기도 하고나. 해지기 전에 집에 들어서지 못하겠다.”
    병완은 성칠이가 오줌을 팔에 다 누자 천으로 싸매주고 나서 3백 근 되는 곰을 척 들러 메더니 앞에서 산아래로 성큼성큼 걸어 내려갔다. 성칠은 보도를 허리춤에 찬 후 왼손에 총을 주어들고 뒤따랐다. 아버지의 잔등에 척 내리 드린 곰의 반 몸뚱이와 사람 발 같은    곰의 발을 보면서 성칠은 아버지의 근력에 저도 몰래 혀를 끌끌 찼다.
     그들이 마지막 산등성이에 올라섰을 때에는 그들의 그림자가 몇 백미터 되게 길어보였다. 산들도 긴 그림자를 남기면서 영월동을 뒤덮어 놓고 있었다.
      이때 검둥이가 뛰어와 꼬리를 휘휘 저으면서 끼깅거리며 그들 부자를 반겨 맞았다. 원래 성칠은 사냥할 때면 검둥이를 데리고 다녔지만 오늘 데리고 가지 않았다. 한 것은 검둥이는 쩍 하면 조심하지 않아 꿩이랑 날아나게 하는 폐단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 곰에게 물린 성칠은 검둥이를 데리고 가지 않은 것을 여간 후회하지 않았다.
     (검둥이를 데리고 갔더라면 되돌아선 곰의 자취를 미리 알 수 있었을 걸.)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도 마지막 황혼 빛을 뿌리면서 구름까지 태우는 듯 저녁노을을 붉게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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