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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졸혼 제6권 93 김장혁
2023년 05월 23일 09시 53분  조회:1265  추천:0  작성자: 김장혁

 

대하소설

 
          졸혼

                   
                     제6권

                  김장혁

 

        93. 야간도주

 

온통 새하얀 세상이다. 새하얀 모자가 희미하게 피뜩피뜩 뜨인다. 

"정신차린 거 같아."

"글쎄요.눈을 살며시 떴잖아?"

     진절머리나는 허연 마스크들이 들여다본다. 

     환성소리 귀청을 간지른다.

"끝내 살아났군요."

"건데 이상해. 왜 유리쪼각으로 배를 찔렀을가?"

"글쎄,말 못할 무슨 사연 있겠지."

"글두 뱃 속의 애한테 무슨 죄 있어? 애 불쌍해."

하얀 모자들이 주고 받는 소리.

(이게 어딘가?)

나영은 안간힘을 다해 천근무게나 되는 눈까풀을 살며시 떴다.

"나영아, 아이구, 끝내 살아났구나."

(귀에 익은 목소린데.)

나영은 물끄러미 소리 임자를 막연하게 바라보았다.

"날 알아볼만 해? 지영이야."

"지영이?"

"그래,지영이야."

나영은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다 썼다.그러나 옴달싹하기도 힘들었다.

"가만 누워 있어라.아직 건강이 회복되잖아 안돼."

지영은 나영을 안아 돌려눕혀 주었다.

나영은 간호사복을 입은 지영을 보고 꿈만 같아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래도 친구가 제일이야.)

지영은 녀간호사들이 병실에서 나가자 나직이 물었다.

"왜 이렇게 바보짓을 했니?"

그제야 나영은 꿈에서 깨여나는 것 같았다.

(내 어떻게 돼 여기 왔지?)

"여긴 어디야?"

나영의 물음에 지영은 제꺽 대답했다.

"병원 구급실이야. 넌 보름 동안이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여기서 구급치료받았다."

나영은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 나직이 말했다.

"왜 날 구했어? 난 이 세상에서 살기 싫어. 훌 죽어버리면 다 끊난 건데. 뱃 속 이 애를 어쩌니?”

“왜 자살해? 뱃 속 애가 무슨 죄 있다고 그랬니?"

그제야 나영은 지나간 일이 천천히 떠올랐다.

"왜 날 구했어? 죽게 놔두지 못하고. 난 색마 애를 가지고 싶지 않단 말이야. 으흐흑, 흑흑흑."

나영은 이불을 들쓰고 흐느껴 울었다.

녀간호사가 황급히 들어와 제지했다. 

"환자를 이렇게 흥분하게 하면 안돼요.쉬게 놔두세요."

지영도 환자 병간호하다가 왔기에 인차 가 봐야 했다.

"내 또 올게."

나영은 들었는지 마는지 울면서 응대도 하지 않았다.

지영은 보름동안이나 경찰들이 구급실을 떠나지 않는 것을 보고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나영이 공개수배범이라고 저래? 건강이 회복되면 잡아갈 거 같은데.)

그녀는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도 나영이 근심스러웠다.

이튿날 지영은 간호사복차림으로 또 구급실 복도에 나타났다.

녀간호사들이 구급실에서 침대를 밀고 나오는 것이 보였다.

지영은 황급히 달려가 물었다.

"나영을 어디로 옮기는가요?"

"건강이 회복됐기에 일반 중환자실에 옮겨가요."

"네.감사해요."

지영은 침대에 누워 눈을 딱 감고 있는 나영의 곁에 다가가 이불을 여며주었다.

경찰들은 침대에 딱 붙어 따라갔다.

나영은 자기를 그림자처럼 딱 붙어 다니는 두리모자들이 보기 싫어 아예 눈을 딱 감아버렸다. 

경찰들은 나영이 공개수배도주범이기에 3교대로 구급실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지켰다.

일반중환자실은 더 위층에 있었다. 녀간호사들은 침대를 밀고 엘레베이터에 들어갔다.

지영은 바로 이 층의 일반중환자들을 간병하기에 나영을 찾아와 보기 더욱 편리해졌다.

그는 간병하다가도 틈만 있으면 종종 나영한테 와서 이것저것 돌봐주고 한담도 하면서 동무해주었다.

어느 날,지영이 나영을 보러 갔는데 한 륙십대 초반의 사내가 찾아 왔다.한창 경찰들과 자기 신분을 말하고 무슨 관계라는 것을 밝히고 있었다.

지영은 그 남자가 누군지 잘 몰랐다. 그런데 피뜩 들으니 그 남자는 "나영의 한 고향 친척오빠"라고 하는 것 같았다.

나영은 과일꾸럭을 들고 병실에 들어선 그 남자를 보자 첫눈에 신문사 로기자 종호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종호는 연길냉면이 맛있다고 자주 나영이 일하는 음식점을 찾던 단골손님이였다. 한 고향 조선족들인지라 종호와 나영은 고향친구랄가,오랍누이처럼이랄가, 좌우간 한국 땅에서 저도 몰래 친숙해진 관계로 되였다.

종호가 식당에 나타날 때마다 나영은 종호 냉면그릇에 소고기 몇점이라도 더 얹어 드리군 했다.종호는 감사한 마음으로  숱한 지인들을 데리고 나영이 음식점에  냉면을 먹으러  오군 하였다.음식점은 한때 호황을 이루었다. 하여 허보스마저 단골 종호를 무척 반겼다.

종호는 일이 바빠 보름만에야 연길냉면을 먹자고 나영의 음식점에 찾아갔다가 허부스한테서 나영의 사연을 듣고  병문안을 하러 왔던 것이다.

"나영이, 어떻소? 건강이 좀 회복됐소?"

나영은 간신히 일어나 앉았다.

"리기자,일 바쁘겠는데요. 찾아줘 감사해요."

종호는 바나나 껍질까지 벗겨 나영한테 내밀면서 말했다.

"웬 말이오? 구급실에 있단 말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르오. 우린 아무리 살기 어려워도 꿋꿋이 살아야 하오. 이후엔 무슨 바쁜 일 있으면 알리오. 이럴 때 옆에 사람이 있어야지."

나영은 바나나를 받아 한 입 먹고나서 인사했다.

"감사해요. 일이 바쁘겠는데 찾아왔군요."

종호는 아직도 피기 없는 얼굴을 보더니 외투 안호주머니를 들추더니 두툼한 돈뭉치를 꺼내 나영의 앞에 내밀었다.

몽땅 5만원권이 아니겠는가.

"적은 대로 치료비에 보태 쓰오."

나영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니, 이러지 마세요. 지영이 다 선대해줘서 치료비 걱정 안해도 돼요."

지영은 나영이 돈이 거덜난 걸 알고 돈뭉치를 받아 나영의 앞에 놓으며 말했다.

"리기자님 성인데 받아둬라. 이후에 은혜를 갚으면 돼."

기실 나영은 전번에 뱃 속의 애를 절개수술해 떼버리려고 하다가 이 병원 산부인과 한 사기군의사한테 떼웠던 것이다.하여 모텔 방세도 제때에 내지 못해 쩔쩔 매다가 호주머니에서 동전마저 싹 다 들춰 마지막날 방세를 겨우 냈던 것이다.김보스는 나영한테서 방세로 동전을 한 웅큼 받아쥐고 나영의 난처한 처지를 대개 짐감하였던 것이다.하여 김보스는 나영의 행동거지를 주시하게 되였다. 김보스는 나영이 자살려고 하는 것을 인차 발견하고 경찰과 구급대에 제때에 신고했던 것이다.

나영은 남의 신세를 지기 싫어했다. 그러나 손에 동전 한푼 없는 형편에서 별 수 없었다.

"감사해요. 제가 출원하면 꼭 갚겠습니다."

종호는 손사래를 치더니 사람좋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 절대 갚을 필요없소. 한 고향 오빠 병문안 온게오."

"그래서 되겠습니까?"

"아니, 이국 타향에서 우린 한 고향 형제자매 아니고 뭐요? 어려운 일 있으면 서로 도와야지."

지영은 머리를 끄덕였다.

   "맞아요.리기자님, 참 촣은 분이예요."

   나영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리기자님, 저는 도와줄 필요없는 나쁜 녀자인데요."

종호는 이상야릇한 눈길로 나영을 바라보았다. 나영을 재확인하려는 상 싶었다.

나영은 미상불 아무 때건 밝혀질 자기 신상을 종호한테 밝히고 싶었다.마음씨 착한 종호한테 거짓짓거리를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저는 죄 짓고 쫓겨다니는 신센데요."

지영은 나영을 흘겨보며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그만해라.무슨 말을 다 해?"

"괜찮아. 리기자님은 오빠처럼 믿는 분이야."

지영이 앞질러 나영의 입을 틀어막았다.

"얘, 아직 정신상태 회복 안됐어요.아무 말이나 해 미안해요."

그제야 나영은 제정신이 들었는지 말꼬리를 슬쩍 바꿔 휘둘렀다.

"저는 남편한테 죄를 짓고 한국에 도망쳐 나온 나쁜 녀자입니다."

그제야 종호는 알았다는듯이 허리를 펴더니 한숨을 후 내쉬였다.

"피차 마찬가진데요. 지금 부부불화로 깨진 가정이 어디 한둘이오? 나도 안해와 리혼하고 하국에 나왔소."

이때 녀간호사가 들어와 말렸다.

"환자와 너무 오래 면회하지 마세요. 환자는 충족히 쉬셔야 해요."

"알았습니다."

종호는 우쭐 일어나 나영한테 얼굴을 돌리더니 부드럽게 말했다.

"후에 또 찾아올게.무슨 필요한 일 있으면 알리오. 하루속히 건강이 회복되기를 바라오."

나영은 이국 타향에서 오빠처럼 따뜻한 손길을 보낸 종호 마음 속으로 고마웠다. 그녀는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순간 뜨거운 눈물을 줄 끊어진 구슬처럼 주르르 흘렸다. 

"리기자님, 고맙습니다."

종호는 복도에 나와 문 어귀를 지키는 경찰을 둘러보고 무척 이상해났다. 그는 따라나온 지영한테 나영의 사연을 더 물으려다가 그만 두었다.

(더 알 필요없어.그저 한 고향 녀동생을 돕는 거야.)

지영은 자기 간병실에 돌아가면서 나영이 부탁한 말을 되새기며 속궁리를 베아링처럼 굴렸다.

(어떻게 나영을 경찰들 손에서 빼낼가?)

별로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아 골치 아팠다.  

겨울 해는 토끼 꼬리처럼 짧았다.

해가 서산에 꼴깍 지자 어둠의 장막이 주원실 복도에도 서서히 내리였다. 다만 희미한 네온등이 어두운 그림자와 아귀다툼하며 흑백격돌을 일으킬뿐이다.

경찰들은 복도에 간호사복을 입고 마스크를 꼭 낀 녀자가 다가오는 것을 피뜩 보았다. 가까이 다가온 걸 보니 나영의 지인- 지영이 아니겠는가.

경찰들은 이젠 지영과도 낯익어 아무 말도 묻지 않고 나영의 병실에 들여보내고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나영이 땅바닥에 내려서서 걷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경찰들의 경각성은 눈뜨이게 느슨해졌다. 

한참 후 간호사복을 입고 마스크를 꼭 눌러 낀 한 녀성이 병실에서 나왔다. 

경찰들은 장의자에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그녀를 피뜩 쳐다보았다. 

그 녀성은 경찰들한테 머리를 한번 까땍 끄덕여보이고는 사뿐사뿐 엘레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한 경찰은 금방 들어간 녀자라고 여겼는지 인차 머리를 숙이더니 계속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한 경찰은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아님,그래도 혹시나 했는지, 병실 문을 열고 들여다보았다.

침대에 환자복을 입은 녀성이 이불을 들쓰고 누워 쿨쿨 자고 있었다.

경찰은 문을 쿵 닫고 장의자에 들어앉아 시름놓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알아보니, 저 녀자 큰 죄도 지지 않았더구만"

"그러게. 회사 돈을 한화로 한 천만 뜯어냈는 모양이더라."

"건데 중국에선 인터폴에 공개수배범으로 올렸잖아."

"아마, 돈 뜯어낸 거보다 적색수배범 정호란 범죄자와 함께 도망치며 숱한 검은 돈을 탕진하며 싸다닌 거 문제 된 거 같아."

"아무렴, 까짓거 천만원 때문에 저게 뭐야?"

그 때 녀자는 엘레베이터 안에 들어가자 1층 단추를 꼭 눌러놓고 한숨을 후- 길게 내쉬였다.

그녀는 1층 대청 봉사대를 핼끔 곁눈질하고는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두 손을 맞잡고 문 밖으로 유유히 빠져나갔다.

그녀는 병원 문 앞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쏜살같이 떠나갔다.

금방 택시에 앉아 도망친 그녀가 바로 공개수배도주범 나영이였다.

지영은 온하루 궁리 끝에 나영한테 미리 준비한 간호사복을 입혀 자기로 가장시켜 병실에서 도망치게 하려고 첫 방안을 세웠다.

지영은 나영 대신 병실에 나영의 환자복을 입고 누워 있었다.

공포의 반시간 쯤 흘러지나갔다. 

(나영이, 이젠 멀리 도망 갔겠지.경찰들도 교대시간이 됐어. 이 틈에 도망쳐야지.)

그때 녀간호사가 들어왔다.

"환자분, 퇴근 전 순회검사하러 왔는데요."

녀간호사가 침대에 다가섰을 때였다.

지영이 벌떡 일어나며 녀간호사의 목을 틀어쥐고 미리 준비한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

강렬한 마취제 묻은 손수건으로 녀간호사를 쓸어뜨렸다. 

지영은 환자복을 벗어 간호사한테 대충 입혀놓고 이불 안에 묻어놓았다. 지영은 녀간호사복을 주섬주섬 갈아입었다.

그녀는 간호사복을 입고 마그크를 꼭 눌러끼고 병실에서 나갔다.

경찰들은 장의자에 앉은 채 간호사복을 입은 지영을 피뜩 쳐다보며 머리를 끄덕이고는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지영이 엘레베이터로 다가갔을 때였다.

엘레베이터에서 경찰 둘이 불쑥 나왔다.아마 교대하러 온 경찰들인 거 같았다.

지영은 엘레베이터를 타고 일층으로 총총히 내려갔다. 그녀는 병원 바깥에 나가자 택시를 잡아 타고 나영과 만나기로 한 홍대입구 부근으로 바람결처럼 도망쳤다.  

한편 교대한 경찰들은 병실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침대에 이불 덮고 쓰러져 있는 환자복 입은 녀자는 나영이 아니라 녀간호사라는 것을 발견한 순간이였다.ㅋㅋㅋ

이건 지영이 꾸민 나여의 야간도주 첫 방안이였다.
       “그 방안 안돼."
      나영이 다짜고짜로 반대했다.

"내 살겠다고 널 련루시킬순 없어. 나중에 모든 진상내막이 밝혀지는 날엔 넌 공개수배도주범을 협조한 죄는 둘재고, 간호사를 상해한 상해죄를 지게 돼. 그 방안은 안돼."

궁리 끝에 지영과 나영은 야간도주 두번째 방안을 세웠다.

지영은 수면제를 몇 알 복용하고 나영의 환자복을 입고 이불 들쓰고 모로 누워 굳잠에 빠져버렸다. 

나영은 지영의 간호사복을 갈아입었다. 그녀는 마스크까지 꼭 눌러끼고 주사기쟁반을 들고 병실에서 나가 경찰들의 눈을 속여넘기고 유유히 병원을 빠져나갔던 것이다. ㅋㅋㅋ

교대한 경찰들이 병실에 들어와 나영을 아무리 불러도 모로 누운 “환자”는 아무 대답조차 없었다. 경찰이 다다가 이불을 훌 들고 “나영”을 돌려눕혔다.

“이게 뭐야? 나영이 아니야.”

경찰들은 깜짝 놀랐다.

“나영이 도망갔어?”

“여보세요!”

“깨나세요!”

“일어나세요!”

경찰들이 아무리 흔들어도 지영은 눈을 깨나지 못하고 쿨쿨 자는 것이였다.

“간병원에게 마취약을 먹여놓고 옷을 갈아입고 도망친 거 같아.”

“빨리 추격해야지.”

이윽고 병원 앞에서 경찰차 한대가 경적을 요란하게 울리며 쏜살같이 달려갔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된 경찰들은 나영을 놓치고 병실에 재차 나타났다.

지영은 몇시간 후에야 간신히 깨여났다. 

경찰들이 자초지종을 캐물었다.

지영은 뒤더수기를 긁적거렸다.

“내 어떻게 돼 여기 누워 있었지?”  

그녀의 세귀눈길이 나영의 침대머리 차탁위에 댕그라니 마주 놓여 있는 음료병 두개에 가 멈춰섰다. 

“아, 맞지. 나영이 주는 음료 마셨는데. 필림이 끊어졌나?”

ㅋㅋㅋ 

아저씨, 한국 경찰아저씨들이여,

집 잃고 외양간 고칠 수 있을가?

나영은 이제 또 어떻게 가시덤불 길을 헤쳐나가면서 살아나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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