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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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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졸혼 제5권 (80) 김장혁
2023년 05월 11일 10시 57분  조회:1296  추천:0  작성자: 김장혁

 

 대하소설

     졸혼

          제5권

             김장혁

 

   90.사랑의 유령

 

천태만상의 구름 사이로 희미한 해가 얼굴을 내밀었다 파묻었다 한다. 구름 그물은 해빛을 잃은 해와 달을 건졌다 토했다 하며 세상을 변덕스럽게 만든다. 

휴가일이 되자 군철은 양아버지 병문안하러 떠났다.리나를 데리고 가지 않았다.리나는 원래 시양아버지를 곱게 보지 않았다. 양아버지도 리나를 잔소리쟁이라고 좋아하지 않았다. 괜히 리나를 데리고 갔다가는 혹 떼러 갔다가 혹 하나 더 달고 올가봐 근심되였다.

"전 가지 말고 집에서 애들과 노오."

그러자 리나는 함박꽃처럼 활짝 웃음을 지었다.

"당신 수고하세요.빠이, 빠이!"

리나는 애들을 데리고 공원으로 나가버렸다. 

보마차 바람에 번대머리 위에서 몇대 안되는 머리카락이 뒤로 흩날린다. 군철은 보마차를 몰고 다리는 길에서 양아버지와 친아버지 완전히 다른 사랑사를 회억하며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그는 마음이 비길데 없어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양아버지를 보라.사랑의 첫 츄피터 화살을 잘 못 쏘니 어디 녀자 복이 있는가? 어쩜 친아버지가 어머니를 사랑한 것도 간파하지 못하고 어머니한테 사랑의 츄피터 화살을 날린단 말인가?어머니 마음 속에는 친아버지가 있었는데. 마지못해 눈을 찔끈 감고 어머니는 양아버지와 결혼했지. 그것도 배 속에 친아버지 아들인 나를 품은 채. 글쎄 그때 당시 어머니는 누구 아들인 걸 모르긴 했지. 다 친아버지 잘못이야.어쩜 어머니를 사랑하면서도 순정 이모와 결혼한단 말인가? 아무리 벼슬이 중하다고 해도 어쩜 정치결혼을 한단 말인가? 그게 사랑 사기군 아니고 뭔가?어머니 잘못도 있어.내가 양아버지 아들이 아니란 걸 안 다음에도 어찌 양아버지를 한평생 속이고 살았는가. 글쎄 핍박에 의해 그랬다고 해도 량심이 없는 거지.양아버진 내가 자기 친아들이 아니고 친아버지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정신타격을 받고 정신병에 걸리지 않았던가.)

군철은 우멍한 눈에 눈물이 핑그르 돌았다.

(양아버지는 나를 친아들로 알고 얼마나 사랑했는가. 손자들도 자기 친손자들로 알고 키워주느라고 리나한테 갖은 수모를 당하면서 설겆이까지 하면서 고생했지.그러나 그 모든 것이 허황한 짓임을 알았을 때, 어머니 허황한 가짜사랑에 얼마나 큰 정신충격을 받았겠는가. 바꿔놓고 내가 그런 뜻밖의 비극을 당하면 어떻겠는가. 내 두 아들이 몽땅 리나가 외간 남자와 살아서 난 애들이라면 어떻게 됐겠는가? 난 살인이라도 했을 거야.하도 양아버지 마음이 착하고 어질어 그저 넘어갔지."

한편 군철은 어머니도 불쌍했다.

(양아버지와 친아버지 두 남자 사이에서 얼마나 속을 태우면서 살았겠어? 어머니도 보면 친아버지를 사랑한 것 같은데.양아버지를 그리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내심갈등 속에서 몇십년 살지 않았겠는가. 양아버지와 함께 딸까지 낳으면서. 허위로 포장된 가정에서 한 이불을 쓰고 몇십년이나 살았어.)

군철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랑은 얼마나 변덕스러워? 세상 풍운조화보다도 더 변덕스러워.눈 앞을 헤아리기 힘들어.음-)

갑자기 차창 밖에 안개가 자오록이 덮쳐왔다. 차 앞을 어디 어딘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군철은 불시에 차를 급정거했다.

(사랑도 마찬가지로 자오록한 안개 속이야. 코 앞을 분간하기 어려워.어머니가 사망한 후 양아버지는 구급실에서 면목익힌 춘희박사의 참사랑을 추구했지.춘희박사는 어쩜 그럴 수 있어?  자기 피를 수혈해 양아버지를 구해준 것만은 감사하지. 그런데 어찌 도쿄에 일본 남편 다이로교수를 두고 양아버지를 그렇게 따르게 만들어? 애태우게 만들어? 처음부터 맺고 끊어야지. 아버지가 미련을 두지 말게 썩뚝 관계를 끊어버려야지.)

그때 어데선가 춘희박사의 소명소리 들리는 상 싶었다.

"군철이, 모르는 소리. 다 저네 양아버지 탓이오. 난 처음부터 저네 아버지를 존경했을뿐 재혼할 생각은 없었소.저네 양아버진 내 구급환자여서 동정했고 인도주의 차원에서 구해줬을 뿐이오. 저네 양아버지 어머니 비정사실을 안 후 정신타격을 받았소.난 또 쓰러질가봐 저으기 근심됐던 거요. 저네 양아버지 비운의 사랑 쁠랙홀에서 헤여나오게 하려고 애썼소. 함께 등산도 하고 교제무도 추면서 위문했소.그런데 저네 양아버지 날 짝사랑할 줄을 누가 알았겠소?…"

"닥치시오!"

군철은 핸들을 탁 치며 고래고래 고함쳤다.

"당신 등산 갔다가 협곡에 빠졌을 때 뭐랬습니까?누굴 속이렵니까? 후에 양아버지한테서 다 들었습니다.양아버지를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댔습니까? 양아버지는 뭐 행복지수 높은 분이요,존경하고 사랑할만한 분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직도 누굴 속이렵니까?"

유령이 대답하는가?

아니, 분명 춘희박사 목소리가 귀전을 아프게 때린다.

(환각인가?)

"군철이,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구만.그때 우린 협곡 눈구덩이에 빠졌댔는데 아무리 기여나오려고 해도 기여나오지 못하게 됐소.그런 정형에서 저네 양아버지와 나는 생사선을 헤매게 됐소.저네 아버진 심장병환자인데 아직 그때까지만 해도 완쾌되지 못한 형편이였소. 그때 구급신호를 보내려고 등산복까지 불태워버려서 너무 추워 저네 양아버진 체온이 급격히 내려갔소. 난 그를 내 무릎에 올려놓고 끌어안아 체온을 보장했소. 구급대를 기다리며 위로의 말을 하느라고 그랬던 거요. 내 무슨 죄를 졌소? 저네 양아버지를 구해주고서도 이게 무슨 일이오? 이게 무슨 죄를 만났소?배은망덕해도 한두가지 아니오.정말.흐흐흑, 흑흑."

(지금 울고 있어? 협곡 눈구덩이에선 그렇다 치고 왜 울 아빠를 도쿄에까지 데리고 가서 함께 살 것처럼 사람을 간질렀습니까?)

"그땐 내 어떻게 일본에서 사는가 보여주려고 그랬소. 더 말해 뭘 하겠소?"

하늘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더 없었다.

자오록하던 안개가 서서히 걷히며 세상 변덕스러운 만물이 형체를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군철은 착잡한 생각에서 깨여나 보마차를 몰고 쏜살같이 달려 병원에 도착하였다.

그는 정신병과 주원실에 갔다가 자기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쇠살창으로 병실을 들여다보니 양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의사사무실에 가서 담당녀의사한테 물어보았다.

"40대 돼보이는 녀성 모녀가 환자를 모시고 바람 쏘이러 나갔어요."

"아버지 요즘 병세가 어떱니까?"

"많이 호전돼가고 있어요.정신이 말쑥할 때가 많아요. 특히 저 모녀간이 자주 찾아온 다음부터 병세가 눈에 뜨이게 호전되고 있는 것 같아요. 정신상에서 큰 위로를 받은 거 같아요."


"네,사람은 알아봅니까?""아직은 알아보는 것 같지 않은데요."

"네. 감사합니다."

군철은 인사하고 나오면서 피뜩 물음표가 떠올랐다.

(누굴가?지예가 왔는가?어머니라는 녀성은 누굴가?)

문걸은 주원실 울 안으로 나갔다. 

강남은 사철푸른 화창한 봄날과 같았다.울창한 월계화나무숲이 우거진 정원에 웬 녀성 둘이 휄체어를 밀고 천천히 걷고 있었다. 뒷모습이 별로 눈에 익었다. 

(아니,춘희박사와 마끼?!)

우멍눈에 놀라움이 번쩍 번개쳤다. 

춘희 모녀가 아버지를 휄체어에 태워가지고 산보하지 않겠는가.
        (
춘히는 내게 즉살나게 욕먹고 뭔가 깨닫고 병문안 왔을까? 아니면, 마끼를 위생소 소장으로 임명했다고 감사해 왔을까?) 

군철은 천천히 다가가 춘희박사한테 허리굽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김박사님, 어떻게 돼 여기까지 왔습니까? 감사합니다.미안합니다."

춘희는 마주 인사하였다.

"네. 리선생님은 저의 환자인데 당연히 찾아봐야죠."

군철은 마끼한테도 인사했다.

"쉬는 날에 쉬지 못하고. 고맙소."

마끼는 또 당돌한 말을 했다.

"최전무 아버님이자 저의 아빠나 다름없는데요."

춘희는 외까풀눈으로 마끼를 흘끔 곁눈질하더니 흘겨보았다.

(무슨 망년된 소릴?최전무는 애 둘이나 달린 홀애비야.)

순간, 군철은 내심의 갈등을 어쩔 수 없었다.그는 춘희 모녀 손에서 휄체어를 받아밀면서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 마끼는 뭘 념두에 두고 내 양아버지를 아버지라고 하는 걸가? 자기 어머니와 아빠 그런 사이라고 아버지라고 할가? 아니면 나를 사랑하기에 아버지랄가?춘희박사는 아버지와 관계를 회복하려는 걸가? 아니면 아빠와 그만두고 마끼를 내한테 붙여놓으려는 걸가?)

군철은 원피스를 입은 마끼 우유빛얼굴부터 하얀 종아리까지 내리 곁눈질해 쓸어보았다.

(마끼는 확실히 매력이 톡톡 쏘는 처녀애야.나이는 어려도 다이로교수를 대처한 걸 봐. 얼마나 총명하고 슬기로운가?조 초롱초롱한 새까만 쌍까풀눈을 봐. 얼마나 평양 아가씨처럼 매력적인가. 저 탄력있는 우유빛몸매는 얼마나 탐스러운가? 애어린 요 처녀애는 사과배처럼 사박사박할 거야. 한잎 똑 떼 먹으면 얼마나 시원하고 달콤할가? 애어린 처녀의 매력은 핵폭탄처럼 위력이 있어.마끼 탄력있는 몸매는 꽃잎이나 비단처럼 보들보들할 거야. 내 무슨 못된 생각이야? 진짜 촌수가 개판이구나.)

군철은 뜨거운 피가 끓어번져 그저 땅이 꺼지게 한숨만 후- 길게 내쉬였다.

(사랑은 알고도 모를 일이야. 사랑은 마술사야, 요술쟁이야. 아버지 좋아하는 녀성의 딸마저 좋아하게 요술을 피우는구나. 사랑은 구름 속의 신기루와 같은 거야. 사랑의 신기루는 구름 속에 안개 속에 잠겼다가도 구름을 헤치고 자기 모습을 나타내지. 그러다가도 한순간에 무너지고 바람결처럼 사라지지.)

그때 군철의 복잡한 내심 격돌에 화답하듯이 문걸이 고래고래 고함쳤다.

"참사랑은 바람이야. 10급 태풍이야. 구름을 몰아오고 소낙비를 몰아오고 우박을 몰아온다!오, 변덕스러운 사랑이여! 졸혼이여, 그대는 어찌나 변덕스러운지 걷잡을 수 없는 백두산 천지 풍운조화여라!졸혼은 병 주고 약 주는 간사한 뺑덕에미야!"

문걸은 정신이 나갔는지 아니면 정신병인 척하면서 속심의 말을 하는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사랑은 사기군이야.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사랑하는 척 하면서 몇십년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한 이불을 들쓰고 아들딸을 낳으면서 산다. 사랑은 허위적인 거야. 사랑은 허위적인 신사숙녀야.사랑은 흑사심이야.사랑하면서도 사랑하지 않는 척하는 사랑도적놈이야.사랑좀벌레야. 사랑하면서도 함께 살지 않는 생리별하는 성노예야.참사랑은 황금 흑사심에 죽는다.참사랑은 참 불쌍해.황금에 눈이 어두우면 사랑이고 뭐고 다 벗어던진다. 사랑은 헐값에 파는 고물단지야. 금전만능시대에 사랑은 한푼어치 값도 없어. 금전을 위해서라면 참사랑도 헌신짝처럼 차버린다… 참사랑은… 참사랑은 개팔자야. 떠돌이야…"

춘희는 문걸이 자기를 빗대고 욕하는 것 같아 바늘에 가슴을 쏙쏙 찔리는 것처럼 아팠다.

군철은 아버지가 자기 친어머니를 욕하는 것 같이 들렸다.

(지금 아버지는 정신이 말쑥해진 것 같다. 절대 정신환자의 말 같잖아.그런데 아버진 아직도 날 알아보지 못한다. 그게 마음이 아파구나.언제면 아빠 제정신을 차릴가?)

이때  병원 정원에 리나가 나타났다. 뒤에는 또 지예도  나타났다.

"시아버님!" 

뜻밖에도 문걸은 사람을 알아보는지 리나는 아니꼬운 눈길로 피뜩 쳐다보고는 외면했다.

"아버지!"

지예가 아버지를 부르며 두 팔을 벌리고 달려왔다.

"오, 지예! 내 딸 지예야!"

갑자기 문걸은 휄체어에서 일어나 지예를 와락 끌어안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

"아버지! 나를 알아보는구나! 아버지!"

지예는 아버지 품에 안겨 줄 끊어진 구슬처럼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군철은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이래서 피는 가리지 못한다고 하는구나.아빠는 양아들은 알아보지 못해도 친딸은 먼저 알아보는구나.ㅋㅋ.)

군철은 좀 서글펐지만 양아버지가 사람을 알아보기 시작해 기뻤다.

그는 춘희박사를 불러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박사님, 전번에 무례하게 굴어 미안해요. 그 사이 저의 아버지 병문안해 정신위안해줘 고맙습니다."

춘희는 군철의 대머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천만에 말씀,당연히 제가 위안해줘야죠. 미안해요. 아버지 병은 저에게도 책임이 있는데요."

군철은 우멍눈으로 춘희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당돌한데요. 김박사는 도대체 우리 아버지를 사랑하는가요? 병이 치료되면 재혼해 함께 살 예산인가요?"

춘희는 정색했다.

"아직 재혼까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그러나 리문걸선생님은 행복지수가 높고 존경하고 사랑할만한 분입니다.병세도 이제 곧 나아질 겁니다."

군철은 습관처럼 대머리 위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엄숙하게 말했다.

"또 그 말씀이군요.아버지 병세가 기적적으로 나아지기 시작하는데요. 이젠 사람을 알아보기 시작하지 않았습니까?우리 아버지를 사랑하든 말든 질질 끌지 말고 맺고 끊듯 하십시오.괜히 두번 다시 저의 아버지한테 상처를 주지 마십시오.아버진 이제 정신타격을 받으면 자살할가 봐 두렵습니다."

춘희는 머리를 끄덕였다.

"근심하지 마십시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저는 이제 일본에 건너가서 다이로교수와 리혼수속을 해야겠습니다."

군철은 머리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한가지 당돌하게 부탁드립시다. 이젠 그까짓 다이로교수 유산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괜히 자기를 해치고 남을 해치겠습니다.황차 다이로교수는 김박사님의 은사 아닙니까? 젤 간고할 때 친딸처럼 도와준 은인이 아닙니까? "

춘희는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고 듣다가 번쩍 머리를 쳐들며 말했다.

"그건 저의 일이니깐. 삐치지 말아주십시오.마끼를 잘 부탁드립니다."

군철은 춘희 두 손을 꼭 잡아주었다.

"알았습니다. 마끼를 위생소 소장으로 임명했습니다.우린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서로 도우면서 삽시다."

"당연히 그래야죠.고맙습니다."    

군철은 문걸한테 걸어가는 춘희 뒷모습을 보면서 한탄했다.

(아, 사랑이란 실체가 도대체 무엇인지,누구도 정확한 해답을 하기 어렵다.사랑은 변덕스러운 요술쟁인가 봐!사랑은 바람에 흩날리는 구름송이야. 사랑은 바람쟁이, 사랑은 사기군이야,사랑은 신기루야. 사랑은 눈물의 녀신, 사랑은 유령이야!하느님이여 대답해보시라. 도대체 사랑은 무엇입니까?)

하늘도 땅도 대답이 없다.

아, 사랑의 유령이여, 사랑의 신이여, 그대는 어느 하늘 나라에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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