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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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한 세상
2009년 08월 17일 08시 37분  조회:1970  추천:48  작성자: 한오수
살만한 세상


한오수


오래전 러시아의 『악어』라는 만화 잡지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게제된 것을 본적이 있다.

어느 여름날 옛 소련의 고르바 초프 대통령이 모스크바 시내를 걷다가 길거리 노점에서 한 아주머니가 크고 먹음직스러운 노랑 멜론을 파는걸 보고 다가 갔다.『이거 파는 겁니까?』『그냥 구경거리로 내놓은건 아니지.』장사치 아주머니의 대답이 퉁명스러웠지만 운송 사정이 좋지 못한 구소련에서는 아주 귀한 과일이라 개의치 않고 멜론을 들어보니 밑부분이 좀 상해 있었다.『왜 상한것 하나뿐이오.내가 고를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소?』고르바 초프가 항의하자 아주머니가 그를 물끄러미 바라 보다가 말했다.『당신 대통령이지?』그렇다고 대답하자 노점상 아주머니의 직설이 날아왔다.『내가 썩은 멜론 하나 놓고 파는거나 우리가 당신 한사람 놓고 선거라고 하는거나 뭐가 달라?』물론 웃자고 누가 지어낸 이야기겠지만 지도층과 하층민이 스스럼없이 불합리한 선거풍토를 비평하고 이야기 할수 있고 그를 죠크화 할수 있다는것이 우리의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 국회의원,노동부장관,초대사회부장관을 두루 거친 전진한씨는 장관 재직시절에 늘 후즐근한 단벌 양복에, 낡은 구두,허름한 넥타이를 메고 출근하는 등, 외모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노동자,농민등 서민들과 자주 만나 함께 어울려 막걸리를 마시며 이야기 하기를 좋아했다.특히 막걸리를 얼마나 좋아 했던지 장관실에 출근하거나 국무회의때 심지어는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에서도 그에게서 막걸리 냄새가 떠나가지 않을 정도였다. 하루는 국무회의가 끝나고 전진한 장관이 나가자 막걸리 냄새에 몹시 비위가 상한 이승만 대통령은 비서에게 고함을 쳤다.『전장관에게 제발 국무회의 나올때 만이라도 술 먹지 말라고 전하시요! 막걸리 냄새때문에 정신을 차릴수가 있어야지.빨리 저 창문을 열고 환기부터 시키게!』이 말을 전해 들은 전장관은 호탕하게 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장관자리도 좋지만 아침에 일어나 목이 컬컬할때 막걸리 한사발 쭈욱 들이키는 것.이게 바로 사람사는 맛인데 이런 재미도 없이 어떻게 사나. 막걸리 못 마시게 하면 난 차라리 장관을 그만 두겠네.각하께 그렇게 말씀드리게』결국 아무도 그의 소박한 즐거움을 말리지 못했고 그는 그뒤에 여전히 막걸리 냄새를 풍기며 국무회의에 나타났다고 한다.

북유럽의 아름다운 나라 핀란드는 2001,2004,2006년 세계 청렴국가 1위를 차지하며 강소국의 대명사가 된 나라이다.스웨덴과 러시아의 오랜 지배를 받아왔고 부존자원도 없는 핀란드가 청렴국가의 대명사가 된 비결은 무엇일까.

2001년 여성최초로 핀란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2006년 1월 재선에 성공한 타르야 할로넨 핀란드 대통령은 『사람이 가장 큰 자원』으로서 남,녀 평등사회, 부정부패 없는 투명한 사회가 강소국의 비결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2002년 할로넨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때 호텔직원을 깜짝 놀라게 한 일화가 있다.그가 핀란드 자기 집에서 쓰던 다리미를 직접챙겨와 손수 옷을 다리고 있었고,호텔에서 파견한 미용사도 사양하고 직접 미리 손질을 한것이 그것이다. 핀란드 대통령 관저 근처에 노점이 있는데 대통령은 이곳에서 서민들과 어울려 스스럼없이 커피를 마시고 신용카드로 계산을 한다.핀란드에서는 노점에서 대통령이 마신 커피 한잔도 기록으로 남아 돈의 흐름이 투명하여 청렴국가 1위가 될수 밖에 없는 나라이다.

이와 같이 천민계층과 지도계층이 함께 어울려 막걸리와 커피를 나누어 마시며 국정과 사회문제를 토론 할수도 있고, 지도자들은 명예와 높은 직위에만 연연해 하지 않으며, 또한 지도층의 높은 도덕성과 검소한 생활태도가 유지될때 이런 사회가 바로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아니겠는가.아랫사람의 실수나 허물도 덮어주고 관대하게 용서하고 포용해주는 그릇이 큰 지도층. 일국의 덕망있는 장관이 사회 밑바닥 천민과 함께 도로가 길모퉁이에 털석 주저 앉아 그들의 삶의 애환과 고통에 귀 기울여 주며 함께 막걸리를 나누어 마시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멋이 있고 즐겁다.

원칙을 준수하되 원칙에 메이지 않고, 권위와 품위를 유지하되 따뜻하고 부드러운 인정을 잃지 않는, 검소하고 소박한 지도층과 호연지기를 아는 이렇한 사람들이 있어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아직도 그런대로 살만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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