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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사상연구회,『채만식문학의 재인식』, 소명출판, 1999
2009년 05월 16일 21시 29분  조회:2157  추천:0  작성자: 방룡남

하정일, 「채민식 문학과 사회주의」

 따라서 이념을 하나의 정의로 규정하는 것은 자칫 단순화의 우를 범하는 일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필자는 논의의 편의상 일단 이념이 '세계에 대한 상상적 관계의 표상'(루이 알뛰세, 김동수 역, 『아미엥에서의 주장』, 솔, 1991. 107~10면-저자 각주)이라는 알뛰세의 정의를 받아들이고자 한다. 이념을 이렇게 규정하는 것은 세 가지 정도의 유용성을 갖는다. 첫째는 이 정의가 이념이 세계에 대해 인간이 맺고 있는 '관계'와 중요한 관련을 갖는다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념은 세계의 단순한 반영이 아니다. 거기에는 세계에 대한 관계가 각인되어 있어서 관계의 방식에 따라 다종다양한 이념들이 산출된다. 이를테면 부르좌의 이념과 노동자계급의 이념이 다른 것은 양자가 세계에 대해 맺고 있는 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이 관계 개념이 없다면 두 계급이 서로 다른 이념을 선택할 객관적 근거가 희박해질 수밖에 없다. 둘째는 알뛰세의 정의가 이념의 '상상적' 성격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때 '상상적'이란 말은 이념이 현실과 다른 환상인 동시에 현실에 대한 암시이기도 하다는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말하자면 이념은 환상을 통해 현실의 어떤 본질-곧 세계에 대해 맺고 있는 관계의 본질-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셋째는 이념은 결국 상상적인 것이라는 알뛰세의 정의가 문학과 이념의 친연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좀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문학은 상상적 허구라는 점에서 이념과 통한다. 문학적 현실 반영이 기계적 반영과 다른 이유 중의 하나도 문학이 이념을 매개로 현실을 재구성해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알뛰세의 정의는 문학적 현실 반영의 특수성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준다.(80-81)

 인간의 모든 정신 활동에서 이념비판은 가능하다. 인간의 정신적 산물들이 이데올로기를 넘어 진리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은 그래서이다. 하지만 문학에서 이념 비판의 가능성이 보다 극대화되는 것도 사실인데, 그것은 "이데올로기를 이용하면서 거부"하는 문학 특유의 속성에서 기인한다. 이렇게 문학과 이념의 이중적 관계를 설정하고 보면, 문학에서 이념이 행하는 미학적 역할이 무엇인지가 좀더 선명해진다. 문학은 맨몸으로 현실과 만나지 않는다. 문학과 현실의 만남은 언제나 이념을 매개로 한다. 요컨대 문학은 현실을 사진처럼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이념이란 프리즘을 통해 현실을 새로이 재구성한다. 그러나 문학은 동시에 이념에 대한 성찰과 비판을 병행한다. 그럼으로써 이념의 자기 모순을 폭로하고 이념 특유의 허위의식을 넘어서게 된다. 문학이 현실의 재구성이면서도 현실의 진실한 재현일 수 있는 것은 바로 문학에 고유한 이념 비판적 능력 덕분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학은 자기 성찰적 이념의 형식인 것이다.(83)

 문학이 자기 성찰적 이념의 형식이란 사실은 이념의 미학적 역할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는데 있어서 매우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념의 이중성으로 인해 완전무결한 이념이란 존재 할 수 없으므로, 이념을 매개로 한 현실의 예술적 재구성이 현실의 진실한 재현으로 이어지려면 이념에 대한 성찰은 필수불가결한 과정이 된다. 그런데 이때의 두 과정-현실의 재구성과 이념 비판-은 별개의 과정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꼬리를 물고있는 일종의 원환적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념을 매개로 한 현실의 재구성 자체가 현실의 예술적 재현의 한 과정이며, 그 재구성은 이념 비판을 통해 또 다시 재구성된다. 그리고 이 새로운 재구성도 재현의 또 다른 한 과정이니, 이념에 바탕한 현실의 재구성과 이념 비판을 통한 현실 재현은 작품 속에서 사실상 하나로 통합되어 있는 것이다. 이때 두 과정을 통합시켜 주는 구심점이 바로 자기 성찰적 이념이다. 다시 말해 작품에 개입하는 이념이 본래부터 자기 성찰적 이념이기 때문에 이념을 매개를 한 현실의 재구성이 곧 이념 비판일 수 있는 것이다. 날 이념의 직접적 침투가 항상 문학의 파탄으로 귀결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83-84)

 그러면 성찰된 이념이 문학에 개입하는 구체적 방식은 무엇일까. 중요한 것으로 두 가지 정도를 거론할 수 있겠다. 하나는 선택 원리이다. 이념은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 중요한 것과 부차적인 것을 구별하고 선택하는 준거로 적용한다. 이러한 구별과 선택을 통해 작품 내부의 위계가 잡히며 그럼으로써 서사적 통일성이 성취된다. 루카치가 '전망'이라고 부른 것이 이에 해당한다. 다른 하나는 판단 원리이다. 말하자면 인물과 사건에 대한 태도 표명인데, 이때 태도 표명이란 작품 내부의 세계에 대해 일정한 태도-비판적이냐 긍정적이냐 등등의-를 취한다. 이 태도에서 독자는 작가가 작품 내부의 세계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즉 작품의 이념을 유추할 수 있다.(배제 또한 선택과 판단의 한 방법이다.그런 점에서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것 역시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다. 재현의 부재(不在)가 재현이 되는 것은 그래서이다.-저자 각주)가령 노동자의 파업이라는 동일한 사건에 대해 작가 혹은 작품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느냐에 따라 작품의 이념은 사회주의가 될 수도 있고 자본주의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84)

 그런데 여기서 유의해야 할 사항은 선택 원리로건 판단 원리로건 이념의 작품 개입은 인지적·논리적 형태만 취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인지적·논리적 형태를 취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보다 일반적인 형태는 월리엄즈가 '정서의 구조'라고 부른 것과 비슷한 모습을 띤다. 명시적이고 정형적인 이념 체계와 달리 문학은 세계에 대해 '정서적으로' 대응한다. 이때 정서란 윌리엄즈의 설명을 빌리면 '느껴진 사고', 다시 말해 사고와 감정의 통일체인데, 윌리엄즈는 이러한 정서가 "상호 관련적이면서도 긴장 관계에 있는 특정한 내적 연관을 지닌 하나의 세트"로 '구조화'된 것이 바로 문학이라고 규정한다.(에이먼드 윌리엄즈, 이일환 역, 『이념과 문학』, 문학과지성사, 1982. 166면-저자 각주) 문학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이념은 작품 속에서 정서로 용해되면서 비로소 미적인 것이 된다. 그러므로 이념의 미학적 역할을 규명할 때 이념이 '정서의 구조'와 맺고 있는 관련상에 먼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대체로 이념의 미학적 수준은 이념 자체의 내용적 질보다 이념과 '정서의 구조'의 융합 정도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84-85)

 윤직원에게 식민지 자본주의라는 현실은 '태평천하'인 반면 사회주의는 "세상 망쳐놀 부랑당패"이다. 이 선명한 대비를 통해 독자들은 진실은 반대임을 느끼게 되는데, 왜냐하면 식민지 자본주의가 얼마나 착취적이고 억압적인 체제인지는 누구보다도 독자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식민지 자본주의=태평천하라는 윤직원의 인식은 자기 풍자를 통해 사회주의의 정당성을 역설적으로 증명해주  기능을 하는 것이다.(95)

 사회주의 문제가 결말부에서야 등장하는 점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윤종학을 맨끝에야 등장시킨 것은 사회주의 문제를 작품의 마지막 부분으로 돌리기 위해서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작가의 전략은 이념의 역할을 간접화하기 위해서인데, 그 미학적 효과는 참으로 적절하다. 독자들은 작품의 마지막에 가서야 식민지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작가의 숨겨진 준거가 사회주의임을 깨닫게 된다. 다시 말해 독자들이 마지막에야 비로소 사회주의가 식민지 자본주의에 대한 선택과 판단의 원리로서 매개적으로 기능했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이념의 직접적 작품 개입이 최대한 억제되면서 이념에 내재하는 허위의식이 현실을 왜곡할 위험성을 최소화시켜 준다. 따지고 보면, 독자들은 사회주의와 상관없이 윤직원의 부정적 형태를 지켜봐 왔다. 결말부에서 사회주의가 윤직원을 풍자하는 숨은 준거로 작용했음을 알게 되지만, 그것이 그 이전까지의 서사 구조를 훼손하거나 하는 바는 전혀 없다. 다만 사회주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계기가 되고, 나아가 작품이 식민지 자본주의와 어떤 방식으로 '상상저거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좀더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단서를 제공할 따름이다. 요컨대 『태평천하』의 결말부는 사회주의의 절대화를 피하면서 식민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관계를 되새겨 보도록 하는 효과를 창출하고 있는 셈이다.(95-96)

 『태평천하』는 거대한 풍자의 그물망을 이루게 되는데, 이 거대한 풍자의 그물망이야말로 『태평천하』 특유의 '정서의 구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풍자의 그물망은 식민지 자본주의라는 거시 '구조'에 대한 '구조적'인 정서적 태도 표명, 즉 식민지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 거부감을 극대화하는 미적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태평천하』의 풍자가 갖는 진정한 의미가 여기에 있다. 식민지 자본주의는 다양한 요소들이 체계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사회적 구조이다. 이러한 거시적 구조에 대한 대응이 단편적이거나 산발적일 경우 그것이 창출하는 예술적 호소력은 아무래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면에 『태평천하』는 풍자의 그물망을 통해 식민지 자본주의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을 '구조화'한다. 『태평천하』의 식민지 자본주의 비판이 강력한 공감을 자아낼 수 있는 것은 이로부터 기인한다.(97-98)

 미학적 조종중심의 부재는 제재들에 대한 선택과 판단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선택과 판단이 없는 한 부분들의 유기적 통일은 기대하기 어려워지기...(100-101)

 본고가 이념문제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이념이 전형적인 근대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다라서 근대문학은 좋든 싫든 이념과 일정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으며, 특히 한국 근대문학의 경우 이념과 문학의 관계에 대한 해명은 한국문학의 근대성의 한 본질적 국면에 대한 이해와 맞닿아 있다.(101)

 

양문규, 「1930년대 후반 채만식 소설의 리얼리즘 문제」

 『태평천하』(1938)는...구한말에 요호부민층으로 출발하여 한일합방 이후에는 지주와 고리대금업자로서 사업자본을 축적한 윤직원과 그에 기생하는 윤씨 일가족을 비롯한 여러 인물들의 삶을 통하여 식민지 자본가계급의 퇴폐성과 그들의 필연적 파멸을 그리고 있다. 특히 윤직원 같은 상업 고리대 자본가들이 왜 친일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사실을 객관적 현실 위에서 반영했다는 점에서 그 리얼리즘적 성격을 뚜렷이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104)

 1930년대 후반 채만식 소설의 온전한 리얼리즘적 성취는 거의 유일하게 『태평천하』 정도에서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이는 30년대 후반 소설중 이 작품에서 거의 유일하게 작가의 역사적 전망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즉 이 작품에서만큼은 적어도 작가가 중일전쟁을 전후로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통해, 사회주의권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반파시즘 인민전선 및 일본의 군사적 모험에 다른 제국주의의 위기 가능성 등에 대한 나름대로의 역사적 전망을 품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적 전망을 바탕으로 했을 때, 식민지 자본주의 체제에 기대고 있는 윤직원 같은 식민지 부르좌의 반역사성을 현실의 본질에 비추어 풍자할 수 있었다.(121)


한수영, 「비판적 리얼리즘의 성과와 1930년대 후반 채만식의 소설미학」

 역사 이해의 프리즘에서는 이민족의 침략과 억압, 그리고 그것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제도로서의 제국주의로부터 벗어나는 일과, 일체의 봉건적인 구습으로부터 탈피하는 과제가 30년대 후반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라면, 소설사 전개의 이해를 위한 프리즘은 역사의 그것을 포함하는 동시에 훨씬 좁고 구체적으로 변용된다. 이를테면 소설사에서 30년대 후반이 가장 문제되는 것은 '장편소설'의 성격과 발전에 관한 논의일 것이다. 동시에 이것은 리얼리즘의 진정한 모색과도 맞물린다. 30년대 문학사에 놓은 과제가 크게 '진정한 리얼리즘의 모색'이라면 소설사에서는 '장편소설'의 문제로 구체화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근대문학이 시작되고 나서부터 장편소설에 대한 가장 진지하고 본격적인 탐구가 이루어졌던 시기가 이 무렵이었고, 동시에 문예학과 미학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을 모색했던 때가 30년대 후반이라고 할 수 있다.(125)

 어떤 소설이 하나의 생산양식을 부정하고 그 생산양식의 극복을 모색하고자 할 때, 그 소설이 부정하고자하는 그 생산양식의 극복의 필연성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보여 줄 수 있는가, 혹은 부정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내적 동의(內的 同意: 그람시의 표현을 빌어)의 견고함은 대체 어디서 미롯되고 있는가를 그려낼 수 있어야 한다.(126)

 

최현식, 「문학가의 이상과 생활인의 비애」

 그는(채만식-인용자 주) 근대 이전의 지식인의 사회적 운명은 '타고난 신분'에 의해 결정된다...이는 조선시대를 상기해보면 금방 알 수 있듯이, 전근대 사회에서는 계급에 따라 권력과 지식의 소유 여부와 그 정도가 결정된다. 이처럼 계급과 권력과 지식이 일치하는 사회에서 지식인은 전인적(全人的) '교양'의 습득과 우민(愚民)의 교화라는 임무에 충실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자본이 곧 권력인 시대, 그리고 자본의 논리가 지식의 생산과 분배를 결정하는 시대인 근대는,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지식의 천대(賤待)의 시대"이다.(189)

 일정비율의 산업예비군의 지속적 창출이 자본주의를 지탱해 가는 힘이라는 정치경제학의 논리...이 논리의 핵심은 자본주의에서 일정한 실업률의 창출이 노동에 대한 자본의 효율적 지배를 관철하기 위한 교묘한 전략이라는데 있다.(190)

 이 논리를 수긍할 수 있다면, 채만식의 '문화예비군'의 논리는 식민지 자본이 수행하는 그런 경제논리 이상의 어떤 것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고 볼 수 있다....일제는 '식민지 자본'의 요청에  충실하기 위해 특히 각급 학교(공교육)의 제도화를 통한 '식민지 근대적 인간형의 형성' 에 주력하였다. 철저히 체제 순응적인 기능인의 양성("면서기를 공급하고 순사를 공급하고 간이 농업학교 출신의 농사 개량기수를 공급하였다",「레디메이드 인생」, 『채만식 전집』7권, 53면-저자 주)은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일제는 이를 통해 식민지 수탈의 효율성을 제고함은 물론 잠재적 저항세력의 성장과 출현을 저지하는 이중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190-191)

 인텔리의 몰락은 그들이 생산의 직접적인 담당자가 아닌 일종의 기생적 존재라는 점과, 그럼에도 '광명의 보지자(保持者) 인류문화의 건설자'라는 소시민적 허위의식을 폐기처분하지 못하는 '부동하는 무리'라는 점에서 필연적이다.(193)

 콜린 윌슨에 의하면, '아웃사이더'는 자신이 속한 세계가 무가치한 세계임을 알면서도 거기서 어떤 목적과 방향을 찾는, 그리하여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진리(혹은 삶의 진실)는 이야기되어야 한다'는 것을 끝내 옹호하는 자이다.(콜린 윌슨, 이성규 역, 『아웃사이더』, 범우사, 1994, 18~19면-저자 각주) 여기서의 '진리'는 '확실성'과 그리 다른 것이 아니다. 사실 채만식은 늘 자신이 목적하는 '진리'가 현실에서 좀처럼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알면서도 그는 그 냉혹한 현실과 자신의 삶에 메스를 들이댐으로써 누구보다 강렬하게 새로운 인생을 건축하기를 꿈꾸었다.(195)

 ...파시즘은 반외세와 반봉건이란 착종된 과제의 완수를 통해 '완미한 근대'의 성취는 물론 자본주의적 물질문명의 극복을 꿈꾸었던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역사의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는 야만적 사태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그 앞에서 리얼리스트건 모더니스트건 할 것 없이 당대의 무인들은 진리 기준으로서의 역사적 합법칙성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그 까닭에 미래에 대한 어떠한 전망과 기획도 불가능하다는 불확실성의 늪으로 빠져들어 갔다.(196-197)

 이 같은 역사적 방향성의 상실이 1930년대 후반 우리 문단에 주체의 위기와 더불어 소설의 존립 근거인 '생활', 곧 '현실성'의 실종을 불러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197)

 잘 알다시피, 당대의 문인들은 파시즘에 포위된 현실을 지성(합리적 이성)으로 파악 불가능한 '사실의 세기'로 규정하면서도, 아이러니칼하게도 그것의 승인을 통한 '새로운 문화정신의 발견'을 그런 현실의 돌파구로 상정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들 대다수는 일제가 대동아공영이란 미명하에 제시한 '신체제' 논리를 '새로운 문화정신'으로 추수하고야 마는 경정적인 오판을 저지르게 된다. '신체제'논리는 무엇보다 '근대의 초극', 즉 동야적 휴머니즘과 생산의 국유화-공정한 분배에 바탕한 전체주의의 극복을 목표로 했다. 내선(內鮮)이 하나가 되어 몰락한 서구를 대신하여 자본주의 물질문명을 극복할 수 있다는 매력적인 논리, 당시에 생산된 여러 작품과 평론들을 참조해 보건대, 이것이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그 본질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만드는 '사이비 확실성'으로 작동했음은 거의 분명해 보인다.(198)

 당시의 자료에 의하면, 이들의 논쟁은 이미 프로문학 운동이 불가능해진 1937년말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오랜 시간을 두고 벌어진 이 논쟁의 중심에는 당대 현실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 하는 창작방법의 문제가 늘 자리잡고 있었다. 그 방법으로 프로문학 진영이 작가란 모름지기 선명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프롤레타리아 예술의 정당한 발전을 위해 투쟁해야 된다는 문예운동의 논리를 주로 내세운 데 반해, 채만식은 생활현실의 밀착적 취재와 그 표현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다.(201)

 주지하다시피, 이 논쟁은 "카프작가가 아니면서도 카프의 예술적 강령에 추종하려는 경향을 가진 작가", 다시 말해 "카프의 수반자(동반자-인용자 주)로 인정되던 작가들을 어떻게 계도하고 획득할 것인가 하는 카프내부의 관심으로부터 촉발되었다. 이 논쟁은 처음에는 카프진영 내부의 논쟁에 불과했다. 하지만 유진오, 이효석 등과 함께 '동반자 작가'로 인정받고 있던 채만식이 그의 작품들을 두고 프롤레타리아 작품과는 거리가 먼 '부르조아 작품'이니 '민족주의 문학'이니 하고 혹평했던 함일돈, 이갑기(필명: 현인) 등의 프로 비평가들에게 반론을 제기하면서 급격히 확전된다. 이들에 대한 채만식의 반론은 그 나름의 올바른 프로문학의 위상을 바탕으로 당시 카프의 문학 행위 전반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작(自作)에 대한 단순한 옹호를 훨씬 넘어선다. 그는 이 논쟁들을 통해 작품의 성공과 실패, 의미와 가치의 유무 등을 계급성의 여부로만 판단하는 카프의 공식주의와 도식주의에 항(抗)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당시 정세에서 카프가 과연 올바른 계급문학 운동조직일 수 있겠는가 하는 카프 정체서엥 대한 회의까지도 적극적으로 표명한다.(201-202)

 프로작가의 기교의 미숙성을 문제삼고 있는 주관적 조건에 대한 비판은 익히 보아온 장면이다. 그러나 '계급적 예술진영'의 불충분한 형성이 계급문학의 성립을 가로막았다는 객관적 정세에 대한 비판은 그의 프로문예운동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은 물론 작가적 세계관과 관련하여 충분히 주목할 가치가 있다. 채만식은 이 글을 비롯한 여러 글에서 이 당시 현실을 프로문예운동이 제대로 수행될 수 없는 상황으로 파악하고 있다. 실제로 이 당시 조선은 급속히 군국주의화한 일제의 정책에 따라 대륙침략의 병참기지로 전락해갔으며, 사상운동에서도 심각한 제약을 받고 있었다. 따라서 "일정한 계급적 기도 하에서 구체적으로 진전시킨 조직적 작품행동"을 진전시키려던 카프의 문예운동 역시 상당부분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채만식이 이러한 현실을 염두에 두기는 했겠지만, 그러나 그의 카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다음과 같은 소극적인 현실관에서 기인한 면이 크다고 생각된다. (프로문학 작품은) "그러할 때가 와야만 그러하게 되는 것이지 아무리 급하다 하더라도 역사를 앞당겨 쓰지는 못하는 것"이라는 언급에서 보듯이, 그는 사회 역사적 조건이 충분히 숙성된 연후에야 프로문학 작품의 성립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 발언은 분명 현실을 도외시한 채 이미 완성해놓은 낭만적 관념에 봉사하는 카프의 '반(反)리얼리즘'적 태도를 공박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점은 카프가 근로대중과의 유기적 관계맺음이라는 운동목표에 현저히 미달하고 있다는 비판하는 이 글의 후반부나, 사회주의 리얼리즘 수용 논쟁을 조선의 현실을 무시한 채 "해외에서 논의되는 문예이론을 생겨나는 대로 집어다가 조선문단에 인식하려"(「문예비평론」,『조선일보』, 1934. 2. 15~16; Ⅱ, 52면)는 무모한 시도로 강하게 비판하는 대목에서도 잘 드러난다.(205-206)

 임화는 「세태소설론」(1938. 4)에서 세태소설의 대표적 예로 박태원의 『천변풍경』, 채만식의 『탁류』 등을 거론하면서, 그것들이 "묘사를 전부 세부묘사에 국핞고, 소설을 '시츄에이션'의 집하불로 짜개버리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한다. 이것은 세태소설의 묘사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함을 목적으로 하는 진정한 묘사의 기술"(리얼리즘의 세부묘사의 진실성)과는 거리가 먼 자연주의적 묘사 방법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음을 비판한 것이다. 임화는 그 한계의 주요한 원인으로 작가정신의 분열을 든다. 그에 의하면, 이른바 '말하려는 것과 그리려는 것'의 분열로 명제화되었던 그 분열은 시대적 이상(理想)과 현실의 극단적인 부조화를 통해 그 둘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나아가 그 관계를 역전시키려는 노력을 마다한 채, "묘사되는 현실의 양(量)의 풍다(豊多)함에 가치"를 두는 안이한 작가정신에서 비롯한 것이기도 했다.(207)

 ...임화는 '작자의 적극적인 의지'가 만들어내는 낙관적 전망의 부재보다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함", 즉 '전체성' 통찰의 결여를 세태소설의 근본적인 취약점으로 보고 있기...(208)

 말의 바른 의미에서, 1930년대 문학사에서 채만식은 염상섭과 더불어 임화가 말한 바 '현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데 가장 특출난 재능을 발휘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가 주장한 바 현실의 실감에 바탕한 '생활표현'의 문학은 말 그대로의 '주어진 현실'의 관찰과 묘사에서 그리 멀리 나아가지 못한 한계 역시 노정하고 있다. 채만식 문학 전반에는 현실의 전체적 연관이나 그것의 변화를 추동하는 어떤 역동적인 힘보다는 이미 '주어진 현실'의 부정성이 압도적으로 포착되고 있다. 필자는 이런 현상이 무엇보다 채만식의 현실에 대한 패배주의적 시각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계에 대한 니힐리즘적 태도는 물론이거니와 카프에 대한 부정의 논리에서 보듯이, 그는 현실의 '객관적 정세', 혹은 '사실'로서의 현실논리에 지나치게 압도되어 있었다. 세계가 어떤 합법칙성보다는 힘의 논리에 의해 지배된다는 현실감각은 현실의 폭력성에 대한 두려움과 아울러 그 현실에 대한 불신을 끊임없이 증폭시키게 마련이다. 그로부터 현실(세계)은 근본적으로 변화 불가능하며 무의미하다는 니힐리즘적 사유가 생겨나고 심화된다. 이러한 사정은 당연히 그가 세계의 부정성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보다는 세계를 부정적으로 보는 태도의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물론 그 부정적 시선은 그의 말마따나 "부정면을 통하여 기실 긍정면을 주장하기 위해서의 부정면"(「자작안내」Ⅰ, 520면-저자 주)에 대한 관심이랄 수도 있겠다. 반복되는 지적이지만, 실제로 그는 이 주장에 합당하게 많은 작품에서 당시 현실의 부정적 세태를 절묘한 비꼬기(푸자, 아이러니)의 언어로 해부해낸 바 있다. 그리고 그렇게 예각화된 부정적 현실은 그것의 개선이 절실할 수밖에 없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비꼬기가 만성적 환멸의 상태에서 행해지고, 그래서 부정면이 지나치게 전경화(前景化)되어버린 나머지 그 안에 담긴 어떤 '발전적인 활력', 이를테면 식민지 현실과 타락한 근대의 극의지 같은 '미래의 기획'마저도 상당히 잠식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부정적 대상(현실)에 대한 개선의 당위성을 호소하고 독려하는 비꼬기의 궁극적인 목적이 흐릿해짐은 물론이고, 그 현실에 대한 분노 역시 상당부분 비생산적인 감정의 소비로 물러설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것은 그가 소망했던 진정한 리얼리즘에서 점차 미끄러지는 작품현실과 등가관계를 이루는 사태이기도 했다.(208-209)

 그는(채만식-인용자 주) 여기서 '인간성의 무시와 현실에 맹목인 것'을 비판하고 있다. ...요컨대 선배작가들은 프로문학을 "이데올로기를 강제 주입했고", "인간성을 전연 무시하였고", "현실을 극단으로 왜곡시켜 가지고, 거세된 문학인 선전비라"를 제작했다고 비난했지만, 그들 역시 이를테면 현실과 동떨어진 관념적 역사소설, 여전히 문명개화에 대한 낭만적 환상을 선전하는 농촌계몽소설 등과 같은 내용(이데올로기)만 거꾸로 선 프로문학의 생산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211)

 루카치는 모더니즘 예술이 인간존재의 변증법적인 총체성을 추구하는 대신 파편화된 근대사회에서 인간들이 경험하는 불안과 공포를 병적으로 과장함으로써 현실을 왜곡함은 물론 퇴폐주의의 수렁에 빠지게 된다고 본다. 그러나 고도의 미학적 자의식에 바탕한 모더니즘 역시 리얼리즘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을 끊임없이 훼손하고 사물화시키는 근대사회의 폭압성에 저항하려는 미적 형식임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이다.(213)

 '유일성'의 관점은 대개 그것을 기준 삼아 자기 삶을 향상시키고 정당화하려는 목적에서 취해진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때때로 현실을 보는 시각의 다양성을 거절하게 만들며, 그것의 대상이 된 가치들을 이데올로기화시킨다는 점에서 상당히 맹목적인 것이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그 가치들의 실현이 자꾸 유예되거나 그것들 자체가 부정되는 상황이 닥칠 경우, 주체가 정신적 공황(恐慌)의 상태로 빠져들 가능성이 훨씬 커지게 된다는 점이다.(214)

 문학이 곧 생활인 것이 작가적 삶의 본질이라...(216)

  자기 보존이나 실현을 위한 출구가 모두 막혀버린 상황에서 주체가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 하나가 삶의 무의미성이 강요하는 니힐리즘과 환멸의 영원한 노예가 되는 것이라면, 도 다른 하나는 그 '신념'을 대신할 어떤 '모조품'을 들어 앉힘으로써 '행복의 약속' 혹은 '확실성'의 의지를 다시 가다듬는 것이다.(217)

 모조품은 본질이야 어쨌든 겉보기에 진품과 엇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질적 수준을 확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에야 그 효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모조품을 대속물(代贖物)로 삼는 주체의 변신을 제대로 설득하고 합리화할 수 없다. 이 당시 '신체제론'은, 내용의 진실성 여부와 상관없이 그 논리만 놓고 보자면, '사회주의'(진품)가 제시한 것 이상의 완벽한 세계상을 보여주고 있어 '모조품'으로서의 더할 나위 없는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채만식의 다음 글은 그것을 잘 보여준다.

 이 새로운 시대의 창조 즉 세계 신질서 건설을 누구보다도 먼저 시초(始初)를 낸 것이 일본제국이니 저 소화(昭和)유신이 바로 그것이다. 명치(明治)유신이 낡은 봉건주의의 자유주의적이요 개인주의적인 자본주의에의 지양이었다고 하면, 오늘의 소화유신은 이미 발전의 극에 도달한 자본주의를 다시 '신질서'에로 지양함일 것이다.
 ......가령 파시스트 이태리의 조합주의랄지 나찌스 독일의 전체주의랄지 소비에트 노서아의 국가사회주의랄지처럼(무슨 주의 운운의 명칭상 규정이 생길지는 모르나-인용자), 그러나 제국의 그것은 상게한 제 외국의 그것과 우선 파계가 다를뿐만 아니라 아직껏은 '신체제'란 이름 밑에서 실질적으로 운동만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참이다.
아무튼 그리하여 우리는 방금 자유주의 등의 낡은 시대를 벗어나 그 낡은 시대와 확연히 구별이 지어지는 한 새로운 싣o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 뚜렷한 사실인데, 한편으로 이미 문학이라고 하는 것이 그가 서식하는 시대적 사회적 현실을 떠나서는 감히 존재할 수 없는 생리인 이상 그는 반드시 이 새로운 시대에 순응을 하게 되지 않아서는 안될 것이다.
                -「시대를 배경하는 문학」(『매일신보』, 1941. 1. 5, 10, 13~15;;Ⅱ, 235면)

 이 글은 당시 '신체제'를 옹호하기 위해 제출된 일본 쪽이나 우리 쪽의 여러 글들, 그리고 앞서 씌어진 그 자신의 「문학과 신체제-우선 신체제 공부를」(『삼천리』, 1941. 8)과  그 내용이 대동소이하다는 점에서 국책선전을 위해 강요된 글이란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신체제론이 자본주의 극복에 대한 그의 신념을 포괄하고도 남을 만큼 논리 정연한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나쳐서는 안 된다. 이것은 곧 그의 신체제 수용이 어느 정도는 자발적인 선택이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당시 신체제론의 핵심적인 모토는 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동시적 지양, 곧 '근대(서구)'의 초극, ② 동아시아 통일을 통한 '근대'를 대치할 새로운 문명(동아문명)의 건설이었다. 그리고 신체제론의 주창자들은 그것을 뒷받침할 사상적 길잡이로 공동사회(Gemeinschaft)를 인륜관계를 핵심으로 하  동양적 휴머니즘을 내세웠다. 이런 내용은 동양변방의 피식민지 민족의 일원으로서 근대(서양) 따라잡기와 그것의 극복이라는 모순적 과제와 싸워왔던 당시 지식인들에게 충분한 호소력과 설득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신체제론의 미학적 번역물인) 친일문학의 본질에 대해 가장 정교한 이해를 보여주고 있는 한 연구자의 견해를 빌리자면,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우선, 대동아공영권의 건설을 명분으로 한 신체제론은 친일 지식인들에게 일본과 동일한 위치, 즉 '성양의 타자'로서의 자기동일성을 확립할 기회를 제공했다. 이에 따른 심리적 기대치는 근대의 초극은 물론이고 '일본의 타자'로서의 피식민지적 위치 역시 초극할 수 있으리란 것이었다. 그 다음 이유로 신체제론이 논리상으로나마 그것의 진보성을 확실하게 제시한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즉 신체제론은 서구의 계몽 대상에 지나지 않았던 전근대적인 '동양적인 것'을 그것에 바탕한 새로운 세계사의 전개라는 또 다른 시간성의 모습으로 지양해냄으로써 일거에 미래 역사적 방향성과 현대성을 획득했던 것이다.(218-220)

 신체제론은 동양문화의 서양 문화에 대한 변증법적인 지양을 통해 새로운 문명의 건설이 가능하다는 점을 무엇보다 강조한다. 그러나 거기서 동서양의 문화(사상)는 서로 '교통'하는 대신 그저 공간적으로 병렬된 '잡거(雜居)'의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이것은 신체제론이 새로운 문화의 건설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라는 실천가능성에 대한 물음은 전혀 없이 이상적 관념만을 편의적으로 조합한 허구적이고도 자의적인 체계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본질적 한계 때문에 신체제론은 역사가 증명하듯이 새로운 문명건설의 논리보다는 단지 서양문화를 배척하고 공격하는 배제의 논리로 기능했을 따름이다. (221)

 하지만 '지성'의 포기는 다음과 같은 딜레마를 불러들이는데, 이것이야말로 신체제에 맹목이었던 친일 지식인들이 도달할 수밖에 없었던 최후의 한계였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바로 식민지 주체의 한계와 관련된 것인데, 그들은 식민지의 백성인 까닭에 결코 '근대의 초극'의 주체가 될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의 진정한 과제는 '근대의 초극'이 아니라, 특히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전제조건으로 하는 '근대의 획득'에 있었다 하겠다. 이에 대한 자각이 없는 상태에서 '근대의 초극'을 논하면 논할수록 그들은 오히려 "피식민지 민족이라는 바로 그(미달된-인용자) '근대'에 발목을 잡"히게 될 뿐이었다. 그럴 때 그들의 "'근대의 초극' 논의는 오히려 한국과 일본, 또는 세계사 사이에 놓인 진정한 근대의 문제를 회피하는 방향"으로 계속 엇나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이 인용들은 이경훈, 「『근대의 초극』론-친일문학의 한 시각」,『한국문학의 연구5-다시 읽는 역사문학』(한국문학연구회 편), 평민사, 1995, 313면에서 가져온 것임-저자 각주)(22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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