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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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 연안 (김희관)
2011년 03월 18일 09시 24분  조회:3954  추천:33  작성자: 김희관

풍향계


서안
   연안


-김희관
전 주문화국국장

 

금년 국경절연휴를 맞아 오랫동안 가고 싶었던 서안연안 관광코스를 부부동반으로 돌아보았다.

 

서안은 력사상 진, , , 당 등 13조대의 73명의 황제가 무덤을 남긴 5천년 중국력사의 축소판이며 성당시대의 장안이다.

 

지금은 명나라 때 쌓은 성곽을 복원해서 서안의 번화한 중심가를 구성했고 종루와 북루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은 거리는 아주 가관이다. 하지만 이렇게 력사상 유명한 도시가 <세계문화유산도시>에 급제하려고 여러번  <과거>를 보았는데 세계유네스코에서 내린 결론은 <성곽은 좋은데 성곽안에는 옛모습이 기본상 없음니 락제> 란다. 옛장안에 이렇게 고대건물이 없은 원인은 력사상 조대가 바뀔 때마다 새황제는 새궁궐을 지었고 또한 전란의 파괴도 끝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요즘 서안시는 국내외 학자와 건축설계사들을 뫼시고 <현대장안>을 구상하고 있는데 초보적인 결론은 2054년까지 성곽안을 현대화한 <당황성>으로 탈바꿈한다는 것이다. 그러자면 서안시는 성곽안의 40여만인구를 20만으로 줄이고 현대화건축을 당나라시대의 고대건축으로 대치하는 것이 상책이란다. 그러자면 건축대역사가 펼쳐지는 것은 물론이고 흙 한삽을 떠도 <진나라 벽돌에 한나라 기와가 따라 나온다>는 문물의 보고에서 얼마나 많은 고대문물을 파내야 할지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해야 서안은 현대판 <당황성>장안으로 거듭나서 세계로 나아갈수 있다.

 

서안 동북쪽에 위치한 진시황릉은 인공위성으로 요측을 거쳐 대략의 위치와 거대한 규모는 알고 있지만 지금의 기술수준으로는 도무지 파헤칠수가 없기에 백년후 후세들에게 맏겼다고 한다.

 

세계 여덟번째 기적이라고 하는 병마용 제1호 관람장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하고 말문이 막혔다. 길이 잠든 진시황을 보위하느라 병마용 6천여개가 정연히 줄지어 땅속에서 2천여년을 말없이 숨어있었다. 그 병마용들은 실제 거구의 사나이 크기에 각자의 표정은 모두 달랐다.  1974년 당지 농민들이 가물방지우물을 여기저기 파면서 병마용파편을 발견하기 시작하여 병마용들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병마용진영이 그곳에만 해도 네곳이나 되니까 앞으로 진시황릉 주변을 모두 파헤치면 병마용이 얼마나 될찌 아직은 상상하기 어렵다. 거기에다 진시황이 시작한 만리장성까지 합치면 그것은 진정 옛날부터 이어온 중국의 저력이라 할것이다.

 

서안에서 연안으로 가는 도중 꼭 들려야 하는 명소중 하나는 황하의 호구폭포이다. 몇년전 CCTV에서 어느 모험가가 오토바이로 호구폭포를 날아넘는 장면을 보았던 바로 그곳이다. 우리는 그렇게 쾅-쾅 무서운 굉음을 내면서 쏟아져 내리는 거대한 호구포로를 녹화하면서 저도 모르게 <그대는 보았느냐 저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황하수를…> 라는  당나라 시인 리백의 <장진주>시구를 목청껏 읊었다. 호구폭포는 참으로 황하의 성격을 단번에 감상할수 있는 명소였다. 인민음악가 서성해가 호구폭포가에서 <황하대합창>의 모티브를 얻었다는 전설은 천만 지당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튿날 새벽 관광뻐스편으로 몇시간 달려간 곳은 한번 꼭 가보고 싶었던 혁명의 성지 연안이였다. 섬북의 황토고원 오지에 위치한 연안은 1935 25천리 장정 끝에 3만여명의 홍군이 도착하면서부터 중국혁명의 붉은근거지가 되였다. 봉황산에 우뚝솟은 보탑은 수나라 때 지은것이여서 세월의 세례를 받아 이제는 서쪽으로 좀 기울었다. 양가령에서는 중공 제7차 당대회가 열었고 <황하대합창> <백모녀>를 처음 공연했다는  중앙대례당과 연안문예좌담회을 가졌던 중공중앙판공청 회의실 그리고 모택동, 주덕, 주은래, 류소기 등 혁명가들이 살았던 토막굴집을 둘러보면서 느낀 감상이라면 한마디로 <그들은 정말로 풍류인물들이였구나,,,>

 

우리는 관광뻐스편으로 12백키로를 달리면서 당나라 때는 양귀비가 미역을 감았고 서안사변 때는 장개석이 잡히기도 했던 청화지를 유람했다.놀라운것은 당시 장개석의 전용비행사가 조선인혁명가였다는 것이다.  중화의 시조로 읽컸는 황제령도 둘러보았다. 그동안 우리는 5천년 전통문화의 일각을 엿볼수 있었고 혁명의 성지를 답사할수 있었다,

 

어찌그뿐이랴. 서안에서 우리는 항일전쟁시기 주은래의 지시를 받고 서북장관공서 리제심주석의 고참신분으로 당을 위해 헌신한 연변 룡정 출신의  혁명가이며 중국의 피카소라고 불리는 저명한 화가 한락연의 명복을 빌었다. 연안에서는 홍군의 제1대 포병사령 무정장군과  <중국인민해방군>군가와  <연안송>의 작곡가인 정률성을 그렸고 또한 미국 녀류작가 님. 웰즈가 쓴 인물전기 <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의 억울한 령혼앞에 머리을 숙였다. 그외에도 저명한 작가 김학철을 비롯한 수많은 조선족 혁명가들이 연안과 태행산에서 청춘의 선혈로 황토고원을 물들이며 민족해방의 그날을 위해 헌신했었다. 하기에 모택동주석은 <오성붉은기에는 조선족의 선혈도 슴배여 있다>는 명언을 남기셨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여행길이 그리 낯설지 않았다.  (연변TV방송국장 역임)

<연변일보> 200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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