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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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재그사랑
2008년 01월 30일 10시 36분  조회:2852  추천:42  작성자: 최균선

                              지그재그 사랑        

 

최 균 선

       

 생활은 화강암을 가루로 만들수도 있고

화강암가루를  다시 덩이로 만들수도 있다.

 

그림움의 저 너머에

 

박군의 안해 정애는 이번 설에는 온다던 남편이 어째서 못온다는 편지한장 없고 몇달째 돈도 부쳐오지 않자 더럭 겁이났다. 네번이나 편지를 띄웠건만 한강에 돌던진격이였던것이. 사랑에는 열도가 시금석이다. 그렇게도 열정적이던 남편이 아무 소식도 없을 때엔 무슨 변고가 생긴게라고 정희는 남모를 속을 태우며 몇백번 이고 눈물을 깨물었다.

안해들은 남편의 체온계이고 애정의 풍운조화에 기상관측기로서 남편이 어디서 무슨 짓을 하는지 어떤 징표와 직감으로도 사태를 파악하는 능수들이다. 정애는 아무 래도 남편이 맛에 미친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처럼 자기에게 충성하던 남편 의심한다는건 자신에게도 부끄러운 일이였지만 꿈속에는 이런저런 녀자들이 나타 그냥 예감이 어지럽혀지군 했던것이 노상 마음에 걸려있었다.

       이밤도 정애는 딸애를 재워놓고 밖에 우두커니 서서 별빛이 흐릿한 서쪽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불을 환히 려객기가 요란스럽게 밤하늘을 찢으며 서쪽으로 날아간다, (호ㅡ저 비행기엔 누구들이 앉아갈가?만나러가는 사람들일가?타향천리 떠나가는 사람들일가?)

몇해전까지만해도 비행기는 한다는 어른들이나 경리만 타는줄 알았는데 지금은 돈만 내면 아무나 싣고간다. 남편은 돈이 없어 침대차에도 못가고 경편렬차에 앉아 갔다는 생각이 불쑥 나면서 가슴이 알알했다. (, 난 이제 어째야 하나?그는 지금 어디에 있을가?그의 부드럽고 정찬 눈길을 다시 볼수 있을가?)정희는 다섯번째로 쓴 편지를 천천히 찢어 날려보냈다. 밤바람에 나비처럼 날려가는 하얀 종이쪼각들을 바라보며 하늘을 우러러 피터지게 불러보고도 싶건만 하늘은 너무나 광막하였다.

도시는 불야성을 이루고있건만 정애의 마음은 하냥 어둡기만 하였다. 남편이 그동안 돈도 잘 부쳐 생활이 그리 쪼들리지 않게 딸애를 키우면서 안온한 나날을 보냈지만 님없는 밥은 밥도 반, 돌도 반이라더니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은 잃은지 오래다. 요새는 더구나 싱숭생숭해서 뜬눈으로 눈물젖은 밤을 밝히기가 일쑤다.

    떠나기 전날, 남편은 소리없이 흐느끼는 자기를 온밤 달래였다. 그리고 나중엔 자기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래오래 한숨을 태웠다. 마지막 정사도 너무 슴슴하게 끝나버렸다. 그때는 그저 리별이 아쉬워 소리없이 울었지만 지금은 쓰고 떫고 매운 맛이 흙속에 비물이 스며들듯이 가슴이 한없이 쓰리다. 

그는 이렇게 될바하곤 차라리 자기나 한국에 나갔을걸, 하고 후회도 해본다. 하긴 한국에 나간 젊은 녀자들치고 짝을 뭇지 않은 녀자가 없고 돈을 잘 벌려면 딴짓을 해야 한다지만 적어도 자기만은 남편에게 충성할것 같았다. 지금은 역어빠진 남자들도 집에 두고간 녀편네들이 왜지밭에서 헤맬가봐 돈도 잘 부쳐주지 않는단다. 이것도 저것도 믿을수 없는 세월, 자기만은 가정파탄의 고배를 마시고싶지 않았다.

    딸애를 유치원에 보내고 집에 돌아와 우체함에 편지가 있으면 첫련애편지를 받았을때처럼 가슴이 울렁거렸고 오래 편지가 없으면 대번에 마음이 암담해졌다. 설사 온 하늘에 열개의 해가 빛을 뿌린다해도 그의 눈에 빛을 담아주지 못할것이다. 남편이 멀리 나가있는 자기 또래친구들이 거개 정부를 찾아 고독을 달래고 술을 마시고 흥청망청 놀아대지만 정희에게는 남편이 곧 태양같은 존재이다.

    정애는 궁리궁리하다가 끝내 딸을 친정어머니에게 맡겨두고 박정한 남편을 찾아나섰다. 역시 경편렬차에 앉아가며 지루하기 그지없는 시간을 남편생각으로 한가득 채웠지만 마음은 그냥 구멍이 숭숭 뚫려있었다. 드디여 하늘끝같은 산두에 도착한 즉시 정애는 공공전화에 매달렸다.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의심이 가슴을 꽉 메웠다. 아침에 차에서 내렸건만 물어물어《리나광고회사》를 찾았 을때는 어느새 점심무렵이였다.

    그녀가 떨리는 가슴을 부여안고 바장바장 건물로 다가서는 찰나에 낯익은 남자가 아주 우아하고 풍류스러운 젊은 녀자와 킬킬거리며 문을 나서고있었다. 뛸데없는 남편이였다. 죽지않고 살아있다는 그것만으로도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정애는 와락 달려나가 남편을 부를가 하다가 녀자의 직감이 발목 잡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자기가 이렇게 찾아나설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을것이 분명했다.

    남편은 얼굴을 한번 돌리지 않고 녀자와  쏙닥거렸다. 전선주뒤에 숨다보니 멋진 모자채양밑으로 예쁘게 생긴 옆모습만 보였는데 금발머리에 모델들처럼 한들거리며 걷는 맵시는 영화배우를 련상시켰다. 

가슴에서 불길이 치솟는듯싶더니 눈앞이 부옇게 흐리면서 하늘이 핑그르르 돌아갔다. 사람들이 많은 큰길에 쓰러질가봐 두눈을 꼭 감고 한동안 숨을 몰아쉬였다. 점심을 먹을 생각도 물마실 생각도 없이 건물앞 길건너에서 넋을 잃고 앉아있었다.   그녀는 비장한 감각을 오리오리 찢어서 씹고있었다. 마침내 자기가 인생비극의 한막을 지척에 두고 아무소리도 못내고 그저 기다리고만 있는것에 화났다. 이제 비극의 막이 열릴것을 생각만해도 두려워서 숨이 칵 막힌다. 그 이상을 더 보고싶지 않았지만 자기는 어째서 망부석처럼 굳어져서 그들이 점심을 먹고 다시 건물안으로 들어가는것을 그저 지켜보아야만 하는지 스스로도 알수 없었다.

그녀는 후회도 없지 않았다. 이 두해동안 딸애에게 모든 정력을 쏟으며 가슴속 에덴동산에서 봄노래만 불렀던 자신이 너무 등한했다는 생각이 머리를 쳤다. 그렇게 믿고 기다리던 남편이 여기서 딴 살림을 차리고 멋나게 살고있다는것을 본 그는 딸애라도 데리고와서 아빠를 부르며 매달리게나했을걸 하는 못된 생각도 해보았지만 굿이 끝난뒤 쌍장구치는격이라 그저 쓴웃음을 씹어삼켰다.

모든것이 뒤죽박죽이 되여지는 격변기에 안해가 남편을 곁에 꼭 잡아둔다는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자기 남자가 굴레벗은 말처럼 아무 암말과나 흘레를 하는 것을 보고도 너그럽게 보아줄 녀자는 세상에 없을것이다. 그러나 사나이들은 안해 들이 자기들의 소행을 리해하여 줄것을 강요하고있지 않는가?(, 사랑이여, 온 세상에 넘쳐나라!)가령 온 중국의 남편들이 박군처럼 다 이런 노래를 부른다면 이 세상은 과연 어떤 모양일가?

저녁무렵 그들이 다시 나오자 정애는 결과를 생각할새 없이 택시를 잡아타고 뒤쫓았다. 자가용은 별장같은 건물앞에 멈춰섰다. 둘이는 껴안을듯 하며 건물안으로 들어갔다. 몇시나 되였는지 마침내 도시에 향락의 밤이 군림하고 휘장으로 가리워졌던 창문이 어둑시그레해졌다. 그는 사태의 진전을 너무나 잘 읽을수 있었다. 사랑하던 남편이 첫사랑이고 부녀애고 다 남천방이 되여있었다.

고급침대에서 다른 녀자와 육욕의 향연을 벌리고있는것이 방불히 보이는것 같아서 온몸이 닭살이 되는것 같았다. 그녀는 야색이 짙어가는 이역만리 낯설은 담장가에서 집잃은 어린애처럼 어쩔줄 모르고 서럽게 서럽게 울었다.

정애는 허수룩한 려관방에서 장밤을 울고나서 새벽에 별장의 문지기에게 편지 한통을 맡기고 역전으로 나왔다. 기차는 산산히 쪼각나고만 그녀의 희망과 기대를 남긴채 서서히 떠났다. 남들이야 어떻게 보든 정애는 련결바곤에서 차창을 마주하고 길잃은 어린애처럼 소리내여 울었다.

그녀는 남편을 원망해야 할지, 녀자를 불여우라고 욕해야 할지 알수 없었다. 다만 정성담아 함께 부르던 사랑의 이중창도 언젠가는 이렇게 곡조가 흐트러질수 있다는것과 자신은 운명의 희롱을 받고 있다는것만 명백하였다. 집에 돌아온 정희는 부모들에게 아무 내색도 내지 않고 다시 로무시장에 나섰다…

 

                                     애정3중주

 

설고 설은 광동성산두시, 박군의 인생길에 대전환을 가져다 사연많은 고장이다. 두해전, 박군은 실업의 절망속에서 모대기다 못해 무작정 위해시에 갔다. 거기서 일이 여의치않아 갈팡질팡하다기 상해쪽이나 가면 어떨가해서 남행렬차에 올랐다. 경편차칸인지라 오가잡탕의 차객들로 악마구리끓듯 했다. 잔뜩 풀이 죽은 그는 차창에 얼굴을 구겨박고 끝없이 흘러가는 중원대지에 시큰둥하게 상념의 이랑들을 지어갔다.

그런데 맞은켠에 앉은 번대머리 남방치가 구제비소리같은 방언을 섞어가며 자꾸 말을 걸어왔다, 처음에는 귀찮아서 알은체하지 않다가 보기보다는 먹물깨나 들고 열력도 많은 친구같아서 동서남북 천하대사를 담론하기 시작했다. 타향에서는 초면이라도 몇마디 주고받고 나면 지기가 되는 경우가 많다.

박군은 그가 오지랍넓게 좋은 일자리를 알선해 주겠다고 수선을 떠는바람에 꿈에도 생각지 않던 여기로 오게 된것이였다. 아무데서나 려비를 보충하는것도 랑패 없다싶어서 따라왔더니 교외의 편벽한곳에 있는 세멘트공장이였다. 공소과에 있다는 초면친구가 곁에서 좋은 말을 많이도 했건만 인사를 책임진자가 삐딱하게 나오면서 먼저 세멘트포대를 메여나르는 일이나 해보라는것이였다. 막부득이한 경우엔 지랄외 하려고 작심한 그였고 담방 어디서 품팔이할 자리도 없는지라 한두달 해보려고 행장을 풀고말았다.

매일 땡볕아래 고역에 시달리고나면 녹초가 되지만 저녁을 대충 에때우고 행인도 많지 않은 큰길에 나앉아 오가는 각일각 드리우는 남방의 어둠을 바라보며 소일했다. 그날은 운명적인 날이였다. 젊은 남자가 귀엽게 생긴 녀자애를 데리고 걷고있었다. 불현듯 딸애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가슴이 짜릿해 났다. 딸년은 제에미보다 자기를 따랐다. 떠나던 , 목에 매달린 딸애가《아빠, 가지마, 아빠, 으응!》하고 떼질써서 진땀을 빼던일이 어제같았다.

실업, 생계의 갈림길, 개도 안먹는 돈은 살뜰했던 부부사이에 가슴찢어지는 리별을 당겨오고야 말았다. 잔뜩 배부른 렬차는 단김을 토하며 어서 가자고 소리소리 지른다. 인생의 플래트홈, 떠나는 남편과 바래는 안해, 착잡하게 얽히는 서로의 눈길과 눈길, 가슴을 저미는 기적소리가 고막을 아프게 찢는다. 그날 눈물이 글썽해 있던 안해와 딸애의 모습이 눈에 선해서 무시로 구곡간장에 한이 서리였다.   

       박군은 저도 모르게 재깔거리며 까치걸음치는 녀자애의 뒤를 어정어정 따라갔다. 그애의 모습에서 마치 딸애를 보는듯 싶었는지 모른다. 큰길을 꺾어드는 곳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호기심에 끌려 사람들 틈새로 들여다보니 길옆 세멘트기둥에 앞머리가 박산난 승용차가 구겨박혔는데 핸들우에 인사불성이 젊은 녀자가 엎드려있었다.

       모여든 사람들은 수십명이나 되였지만 볼거리나 생긴듯이 고아대기만할뿐 아무도 방도를 댈념이 없었다. 박군은 여기가 연길이 아니라는것도 깜박 잊고 소리질렀다.

       《사람이 지경 되였는데 구할생각은 없이 왜들 좋아서 야단이요, 도와주어야지!

       박군이 분노해서 침방울을 튕기며 소리쳤지만 누구하나 응기 없었다. 오히려 싱거운놈이 흥치를 깨느냐는듯이 불쾌한 기색들이였다. 박군은 목석같은 년놈들을 속으로 욕질해대며 혼자서 안깐힘을 써서 녀자를 택시에 싣고 병원으로 달렸다.

녀자가 구급실로 들어가는것을 박군이 할일을 다했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데 의사가 불러세우더니 서명하고 보증금 5천원을 내란다. 자기는 보호자가 아니고 구해줬을뿐이라고 구구히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그러구보면 아까 구경군들이 강건너 불구경하듯한 까닭을 알수 있는것 같았다. 긁어 부스럼이라더니 이거야말로 생부스럼이 아닌가! 인류생명의 공정사, 백의천사들도 지금은 돈이 앞서지 않으면 환자에게 저승사자가 다가와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박군도 그냥 모르쇠를 댔지만 에라, 불원이면 다른 병원으로 가든지 마음대로 하라는 배짱이였다.

박군으로서는 생면부지의 녀자이지만 어느 정도 상했는지 모르는 사람을 그저 둘수는 없어서 끝내 서명했다. 뢰봉정신이나 박애주의 같은것을 생각하고 그리한것이 아니다. 인성의 지배에 따랐을뿐이다. 박군은 숙사에 달려와 손에 남아있던 돈에다 석달로임을 합하고 공소과의 친구에게서 꾸고해서 병원으로 줄달음쳤다. 사람이 워낙 직심인데다 후더운 박군은 의사들이 자기를 녀자의 보호인으로 치부하건말건 구급이 끝나서도 차마 못떠나고 침대머리에 앉아 하얗게 밤을 샜다.

       녀자는 이튿날 늦은 아침 기적같이 혼미상태에서 깨여났다.

       《아, 선생님이 어제…절 …》

       박군은 마치 무슨 나쁜 일이라도 하다가 들킨 아이처럼 그저 얼굴을 붉히며 알릴듯말듯 미소만 지어보였다.

       《고마워요. 이제 제가 나으면 곱절로 보답할게요.

       《아니,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시간을 지체했더면…집에 련락이나 하게 전화번호를 알려주시오.

       《예, 여기요, 받는 사람에게 그저 리나가 차사고로 병원에 누워있다고만 말하세요. 그럼 수고하세요.

박군이 전화를 해서 10분도 못미처 처녀가 달려왔다.

《그럼 조리하시오. 있다가 짬이 있으면 다시 와보지요.

기실 와본다는것은 말치례이고 목숨같은 보증금을 받으려는게 본의였다. 박군이 이틀후 병원에 와보니 몇몇 처녀애들에게 둘러싸여있던 녀자는 기다렸다는듯이 두툼한 봉투를 꺼내며 밝게 웃어보였다.

《오셨나요?고마워라. 당신은 생명의 은인이예요. 이걸 받으세요. 35천인데 3만원은 보상금이예요. 이번은 그저 작은 성의니까 섭섭해마세요. 출원하면…어서 받아요. ?

박군이 어안이벙벙해 서있으니까 녀자는 말에 동을 달아가며 재촉하였다.

《생명은 돈으로 바꿀수 없지요. 하지만 전말이얘요…》

《아가씨, 돈을 받자고 사람구한게 아니니까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됩니다. 받으면 적덕이 못되는거지요.

박군은 이렇게 잘라 말하고는 제돈만 꺼내고 봉투를 슬며시 베개가에 놓았다.

《너무 적다고 그러나요? 이제 출원하면 드릴께요. 네?!》

녀자가 어떻게 사정해도 박군은 부러지게 거절했다.

《그럼 좋아요. 돈은 기어이 받지 않으시겠다니 잠시 이쯤해 두자요. 대신 제가 출원하면 한끼 대접하지요. 이거야 거절하지 않겠지요. 동리나라고 해요.

처녀의 눈빛이 하도 간절해서 박군은 얼핏 그녀 손을 쥐였다놓고 병실을 나왔다. 처녀의 따가운 시선이 뒤덜미를 따랐다.

한달, 두달, 박군은 여느때처럼 땀에 젖은 돈을 버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리나인지하는 녀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박군이 거의 잊고 있던 어느 , 여느때처럼 땀벌창이 되여 자동차에 세메트포대를 싣고있는데 호화승용차 한대가 미끄러지듯 달려오더니 멋쟁이 녀인이 하나 내리는것이였다. 동리나였다.

《선생님, 늦게 찾아뵈여 죄송해요. 출원한지 얼마되지 않구요. 밀린 일을 처리하다보니 이제야 찾아뵈여요. 점심에 우리 식사하면서 얘기 해요. 네?》

녀자는 버릇인지 말끝마다 정끌리는《네》를 붙여왔다. 군말없이 따라나선 박군은 리나가 사주는대로 게걸이감식했다. 배속에 변이 날것같았지만 어쩌다 생긴 진수성찬이라 한껏 먹었다.

《말로는 은혜를 갚을수 없어요. 조선족남자들은 마음이 뜨겁고 선량하고 의협심도 강해서 어려운 처지에 빠진 사람을 도와 나선다는 말은 많이 들었어요. 그러나 이렇게 오빠같이 좋은 분을 만날줄은 몰랐어요. 그야말로 행운이라고 생각 해요. 아니면  제인생에 주어진 운명적인 기연이겠지요.

《글쎄요.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햐겠다는 생각은 사람이면 응당 가져야 하는 최저의 도덕이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지만도 어디 사람마다 그런가요. 우리에게는 자기와 상관없는 일에 삐치지 말라는 전통관념이 있지요. 죽는사람을  보고도 그냥 구경하지요. 그런데 오빠는 낯모를 저를…》

《렬근성은 어느 민족에게나 있거든요. 아무튼 오늘 저녁한끼 대접 받아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여 여기에 오시게 되였죠?그리고 그런 일을…조선족들이 위해나 청도, 상해나 광주에 많이 찾아들던데 어쩜 여기 산두까지왔죠?혹시 어려운 처지에…말해보세요. 우린 친구하자고 말했잖아요.

《말하자면 길지요. 우리 거긴 말이 아닙니다. 공장이란 공장은 황페해지고 기업은 남에게 먹히우고…사람들은 뿔뿔히 외국에 로무나가고내가 다니던 통용기계공장도…말하자면 실업대군에 신입생이 된겁니다.

《들을라니 조선족들은 여느 소수민족들보다 문화층차가 높고 또 그만큼 연변은 번창하고있다던데요…》

《소문과는 달라요, 소문은 발을 달아주고 화장까지 시키기가 일쑤입니다. 기실 빈껍데기죠. 한창 거품경제에 열이 올라있어 오색령롱할뿐입니다.

《아, 그랬군요. , 조선족들은 한국문이 금방 열리여 나가면 돈을 벌어들 온다던데요. 한국 안나갔죠?》

《잘 벌어온 사람들도 많겠지만 그게 어떤 돈일줄 누가 알겠습니까?기시와 모욕속에서 건져낸 돈이지요. 녀자들이야 말할것 없구요.…이쯤 알아두세요,

《동포들이 찾아간 고국이니까 대해줄거 아냐요, 우리네 사람들이 가는 미국이나 카나다 같은 기타 나라들은 어디까지나 이방이니까 사람대접을 아니할수 있지만두요.

《마찬가지로 우리도 한국에서 이방인입니다. 거지동포가 왔다고 여기는지 대하고있어요. 국내에서도 제만 올똘하면 먹고 살도리는 있겠는데 잘난 돈때문에 인격을 짓밟혀요?내안해도 실업당했는데 위장결혼 해가지고 나가겠다는걸 막아버렸지요. 위장결혼이란게 어디 있어요? 그런걸 미친짓이라고 욕하는 사람이지요. 녀편네를 한국에 내보내고 그렇게 축축하게 번돈을 자랑인듯이 쓰는건 남자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요?

《오. 박선생님은 원래 그런 분이군요. 돈을 버는데 인격이나 량심이나 인의가 걸림돌이랍니다. 경험해봐서 조금 알아요.

《그ㅡ래요? 나는 차라리 세멘트포대를 메여나르지 한국인들에게 천대받고는 참아내지 못하는 성미지요. 쓸데없이 긴말해서 미안합니다.공장에서 무얼 했는가구요?왕금년에 이밥먹던 얘기지만 고등기술학교를 졸업하고 설계과에 분배받았더 랬습니다. 몇년은 잘나가는가 싶었는데…》

《어ㅡ쩜…저는 첫눈에 벌써 박선생이 그저 떠돌이가 아니란걸 감촉했어요. 이걸 잠간 받아보실래요?전 여기에 괜찮게 나가는 광고공사를 몇개 차리고있어요. 만약 당신이 원하신다면 우리 공사에 와서 도와주세요. 제가 간절하게 초빙하는바예요.

얼결에 명함장을 받아보니《동리나광고회사기획부장 박민》이란 금박입힌 글자가 안겨왔다. 박군이 마술사라도 보듯이 데꾼해 있노라니 리나는 미소가 담긴 빛나는 눈길로  해석하고 있었고  그런 눈빛만큼 기대심리가 절절하기도 했다.

 

지그재그사랑

 

서른네살을 먹은 박군은 그렇게 기연으로 운명의 전절점에 서게 된것이다. 박군은 우연하게 차례진 기회를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성심으로 일했고 리다를 위해 열심히 뛰였다. 그의 기발한 창조성과 재능은 리다를 감탄시켰고 그만큼 중용 해주어서 로임도 탐탁했다.

박군은 가난에 쪼들리는 안해에게 달마다 적지 않은 돈을 부칠수 있었다. 녀편 네의 가냘픈 등을 쳐먹으면서도 남자노라고 으르렁대는 그런 남자부스레기들을 우습 알고있던 그가 실업당하고나서 집에 붙박혀 무위도식하고 있을때에는 정말 안해를 면목이 없었다.

수천명 로동자들이 있는 공장에서 장미꽃이라던 처녀가 많은 열련자들을 마다하고 자기에게 시집온것은 자기의 직심과 후더운 가슴때문이였을것이다. 아니면 곁에서들 남자로서 괜찮게 생겼다고 춰주는 얼굴과 늘씬한 체격때문이였을것이다. 남자가 실속없이 그저 허우대만 덜썩 커서 무얼 한단말인가, 그래서 더구나 자신의 무위무능이 부끄러웠던것이다.

박군은 공장에서 소문난 애처가였다. 사람 하나만 믿는다는 안해를 실망시켜서는 안될일이였다. 이제 하늘에서 떨어진듯 대운이 터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의 체신을 세울수 있게된것이 무엇보다 가슴 뿌듯했다. 자기의 살이 찢기고 뼈가 휘여도 가족 들을 가난에 허덕이게 할수는 없다고 뼈물던 그였다.

그는 이젠 딸애의 장래를 위해서 무언가 할수 있게되였다는 자부심을 안고 사랑도 그리움도 일속에 묻어버렸다. 하지만 그는 이런 우연성이 가져온 행운의 일면 보고 그것이 나중에 자신의 특이한 운명으로 되여 안해에게 불행을 안겨줄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 , 박군이 밤늦도록 새항목설계에 몰두하는데 언녕 퇴근한줄로 여겼던 리나가 바람처럼 새여들어왔다.

《너무 무리하게 하지 말아요. 식사도 제때에 하지 않고 혹사하다가 병나면 어떡해요? , 여기 밤참 가져왔어요.

박군은 사흘굶은 사람처럼 가져온 밥과 채를 게눈감추듯 싹쓸이 해버렸다. 박군 어찌나 음식을 맛나게 먹어대는지 리나는 자기도 함께 먹고싶은 생각이 나서 까르르 웃어버렸다. 리나는 남자가 걸탐스레 먹는것이 재미있었겠지만 사실 박군은 한푼이라도 절약하려고 끼니를 건너뛸때가 푸술했다.

《동경리, 돌아가시죠. 아직 한시간쯤 더해야 하니까요.

《경리라고 부르지 말아요. 오빠, 자기 직원이 침식을 잊고 일하는데 제가 어찌 편히 잘수 있겠어요. 오늘은 제가 동무해 드리지요. 혹시 쓸모 있겠는지 아나요?》

리나는 박군에게 정찬 눈길을 보내며 맞은켠 걸상에 앉아서 마치 숙제가 밀려 쩔쩔 매는 어린 아들을 대견스레 지켜보는 어머니같은 그런 눈길로 박군을 어루 쓸었다. 리나는 박군을 바라볼수록 모든 녀자들의 마음을 끌어당길 생긴 얼굴처럼 남다른 기품을 가진 남자를 자기앞에 앉혀준 소설같은 기이한 인연에 감사했다.

리상가다운 넓고 반듯한 이마, 사색에 잠겨있는듯한 눈과 굳센 의지가 맺힌 입이며가 머리를 쓰고 성격이 강쇠같은 사나이라는것을 말해주고있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잠꼬대하듯 중얼거렸다. (, 이남자구나!그래 맞다!바로 남자다…)

리나는 조선족사나이가 진심으로 내준 사례금을 기어코 거절 벌써 덕성에  매료되였던것이다. 몇달 드팀없는 그의 인격은 그녀를 사로잡았고 마침내 사업에서는 성공했지만 사랑에는 불행한 서른한살 로처녀를 사랑의 도가니에 빠지게 했다.

리나는 자식까지 있는 유부남을 사랑하게 자신이 놀라웠고 도덕과 량심적으로 주저되기도 했지만 박군에 대한 사랑이 날이 갈수록 몸을 활활 태우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돈많은 녀자는 안전계수가 높은 남자를 얻기가 힘들다는것을 경험으로 알고있는 리나는 자기의 재산과 돈을 아무 남자에게나 맡길수 없다는 생각이 굳혀 질수록 아무리 몹쓸짓이라도 더없이 믿음직한 이민족남자를 기어이 빼앗아내야겠다는 생각이 굴뚝처럼 일어섰다.

어느새 한해가 지나가고 음력설이 돌아왔다. 박군이 집을 떠난지도 어언 두해가 되여왔다. 박군은 이번 음력설에는 백사불구하고 집에 다녀와야겠다고 윽별 렀다. 안해가 보고싶기도 했거니와 더구나 딸애가 보고싶어서 환장할지경이였다.

이런 심리를 언녕 알고있는 리나였지만 간청하듯 말했다.

《오빠 마음을 알만해요. 그러나 저도 기실은 너무너무 외로운 녀자이얘요. 저와 함께 여기서 설을 쇠자요. 네?대신 연길언니한테는 제가 돈을 넉넉하게 부쳐 보내 겠어요. 그게 돕는게 아냐요?》

박군은 리나의 감정을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한순간 흐트러질가봐 늘상 자기를 다잡아오느라 애썼다. 한창 용을 나이에 금욕한다는건 랑만적이 못된다. 그렇다고 거리에 흔해 빠진 시궁창같은 녀자들과 딩굴고싶지 않았다. 완전히, 그리고 처음부터 도덕적색채를 잃은 성교는 동물의 흘레보다 야비한짓이라고 생각하는 그였다. 그런 정인군자이던 박군이 지금 애욕의 피리소리에 넋을 빼앗기고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금방 뽑아낸 무우같이 싱싱하고 이들이들한 처녀가 정어린 눈길로 무엇을 바라고 있을 때는 량심을 정염에 구겨박고 마음껏 발설하고 싶었졌다. 자기를 어린애처럼 믿고 따르는 안해에게 미안한 일이였지만 불붙는 웅성을 이겨낼 힘도 없었다.

그런데 리나가 이번에도 함께 춘절을 쇠자고 간청해온다. 그녀의 집에서 설을 함께 쇤다는건 부부처럼 살아야 한다는것을 암시하는것 같아서 지레 가슴이 뛰였다. 박군은 눈이 빠지게 기다릴 안해와 딸을 생각하면서도, 리나의 사랑을 거절해버릴수 없는 자신이 황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떡심좋게 자기를 변호해보기도 했다.

집떠나 오래동안 객지에서 떠도는 나그네치고 누가 동정을 지킨다더냐, 아무도 향락을 막아낼수 없으리라. 성개방이 날로 로골화되고 도시의 가로등밑에서도 빛으로 하여 구속감을 느끼지 않고 성유희가 벌어지고 야색이 몽롱한 곳이면 어데라없이 섹스병이 만연되고있지 않는가, 성은 이미 하나의 눅거리상품으로 팔리고있지 않는가,

그러나 더러운 교역이 아니라 서로가 좋아서 정으로 얽힌다면 그것은 인생의 감미로운 향수가 되는것이다. 그랬다. 리나의 감정은 그런 저층차의 감정유희에 그칠것이 아니였다. 리나가 수요하는것은 그저 웅성이 아니라 령혼과 령혼, 육체와 육체가 하나로 녹아버리는 진정한 사랑이다.

박군은 인생의 갈림길에서 고민했다. 리나의 진정어린 사랑을 구김없는 사랑으로 보답해야 한다면 안해에게 짓는 죄값은 무엇으로 결산해야 하는가? 안해를 버릴수는 없다. 리나의 진정을 기편할수도 없고 더구나 자기 자신을 속일수 없었다. 

하다면 나는 어째야 하는가? 박군은 이렇게 오리무중에 헤매다가 심령의 “마지노방선”이 그만 무너져버리여 리나에게 응낙하고 말았다. 집에 못가는 사연은 차차 편지로 알리려고 작심했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당신 정말 나의 수호신이야!

리나가 와락 달려들어 달착지근한 키스벼락을 퍼부으며 어리광을 부렸다. 박군의 두볼에 젊은 녀자의 따뜻하고 탄성이 있는 입술에서 전해오는 감동의 파장이 오래 오래 머믈러있었다. 리나는 아무말 없이 박군의 손을 잡아끌었다. 박군더러 핸들을 잡게하고 자기는  어린애처럼 눈을 감으며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였다.

리나의 침실을 보고 박군은 웬간히 놀랐다. 그는 딸애가 깊이 잠든후에야 단숨을 죽여가며 운우지정을 나누던 허수룩한 나무침대가 생각나서 안해가 더없이 측은 해졌다. 한숨을 쉬는 박군을 야릇한 눈길로 지켜보던 리다가 다가와 살며시 안겨 들었다.

《집생각을 했지요?안해가 아름답다더니 정말 못잊는 모양이네요. 여봐요! 지금 한말뚝에 매여있는 그런 당나귀같은 젊은 남자가 몇이나 있다고 그래요. 정잊지 못하겠으면 하루밤 풋사랑이라도 주세요. 그것으로 저같이 복없는 로처녀는…》

《리나, 나를 리해해주오. 정말 후회하지 않겠소?보다싶이 나에겐 남성 한가지 밖에 없는데 리나는 얼마든지 좋은 남자를 얻어서 아기자기하게…》

《입다물어요. 마음을 그리도 몰라주나요?녀자는 한번 멋진 남자를 사랑하게 되면 설사 잘못 사랑했다해도 후회하지 않아요. 당신도 나를 알고나면 후회하지는 않을거예요.

하긴 리나가 박군에게 그저 미모의 녀자만은 아니였다. 녀자나이 서른고개를 넘으면 한철 지난 꽃을 련상하게 되건만 리나는 아직도  생생한 한송이 장미였다. 한창 성숙의 고봉기에 이른지라 몸매는 풍만해졌지만 살결은 맑디 맑았고 소녀들처럼 보드러웠다. 얼굴은 더없이 이쁘지만 요염하지 않고 아무나 범접할수 없음을 나타내는 우아한 기품마저 갖추고있었다.

눈은 꿈꾸는 처녀의 그것대로 어찌나 그윽하고 신비로운지 도저히 항거할수 없는 어떤 힘을 과시하고 있었다. 조금 야비한 말로 날나리허리에 호마궁둥이, 누구보나 웅성이 꿈틀거리게 하는 붕싯한 젖가슴은 무척 탄력이 있어보이고 도도록한 입술에 웃음이 남실 거릴때는 희한하게 매력적이다.

요즘 류행어로 섹시하다고 할지, 거기가 도가니속같이 남자를 몇번이고 녹초를 만들어버릴수도 있겠다는 비린 느낌이 안겨왔다. 박군은 저도 모르게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오래동안 잠자고 있던 화산이 불을 토해내려고 연기부터 뿜어올리듯 박군은 벌써 속으로부터 화염이 끓어번졌다. 리나의 속눈섭도 파르르 떨리는가싶더니 파르스름한 광채가 번뜩거렸다.

자기의 체온으로 녹여주어야 달아 오르기시작하는 안해의 백옥같은 육체가 눈결에 지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한순간이였다. 굶주린 사나이의 야성이 녀자의 입술을 향해 돌진했다. 정욕이 끓어번지는 마당엔 중간단계란 있을수 없다. 돌진이 아니면 아예 퇴각해버리는것이다. 박군은 덩치 리나를 건뜩 안아 침대에 던졌다. 리나의 몸이 솟구쳐오를 꽆사슴을 덮치는 호랑이처럼 덮쳐들어 물고늘어졌다…

리나도 탄성을 올렸다. 로처녀들에게 늦게 찾아든 사랑은 소녀들의 첫사랑과 다르다. 소녀들은 천천히 천천히 열을 올릴수도 있다. 허지만 리나의 사랑은 폭발 적이였다. 그녀는 그동안 밀렸던 정염을 한꺼번에 쏟아낼듯이 서둘렀다. 로처녀 들의 가슴에 사랑이 불타오르기는 힘들지만 일단 붙기만 하면 걷잡을수 없이  백열 화되는 법이다. 

조폭하리만큼 처녀림을 마구 찍어넘기는 남자의 기세에 리나는 겁먹은듯 몸을 비틀었다. 신음소리도 비탈려있어서 처량했지만 언제 녀자의 그런 사치스러운 표현까지 일일이 보살핀단 말인가, 정복자의 함성이 소리를 짓눌러버린다.

숨벅찬 작업이 끝나는가싶다가도 다시 깊고 아늑한 처녀림에서 허둥거리는 박군도 가관이였지만 떳다 갈앉았다 몸을 비틀어대며 기탄없이 괴성을 질러대는 리나의 욕정도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아름다운 생명속에 하나의 아름다운 생명을 깊숙히 개입시키는 남자의 매력, 그것을 너무 늦게 선물받은 자신이 애석해서일가, 녀자의 본능처럼 눈물이 새여나왔다.

질풍노도는 물러가고 항구에 고요와 평화가 깃들었지만 수림은 아직도 설레인다. 지금 세상에서 넋이 없고 량심이 없는 남자들은  자기를 위해 몸까지 바친 녀자를 마치 한물이 가버린 넥타이를 풀어 팽겨치듯 한다. 그러나 리나는 자기가 죽을때까지 사랑하기로 마음 먹은 조선족남자는 절대 그러지 않으리라고 믿고있었다.

그날 이후 박군에게는 어느 하나도 버릴수 없는 두가정이 있게되였다. 리나를 발에 걸채일마큼 흔한 정부로 대하기엔 애정이 너무 진지했고 안해 정애를 조강지 처로 생각하기엔 자기가 너무나 무책임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미 사이비 그대로 유지되여갔다. 정욕은 눈에서 나고 녀자의 허벅지사이에서 꺼져버린다지만 박군은 날이 갈수록 리나의 모든것에 깊이 깊이 빠져들어갔다. (, 남자들이란 얼마나 황당한 동물들이냐?!)

욕정을 억제한다는것은 네굽을 안고 들뛰는 들말을 멈춰세우려하는것처럼 무모 하다. 박군은 그녀의 육체에도 매료되였고 많은 재부에도 매료되였다. 자신이 비렬하게 변한것을 뼈저리게 반성해 보다가도 무엇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을수 없어 안해에게 편지하지 않은지도 반년이 되였다.  

 

값치를수 없는 사랑

 

정애의 편지는 이틑날 리나가 먼저 받았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일인지라 좀 해서는 속이 떨리지 않던 그녀도 황황해났다. 언젠가는 부딫쳐야 할 녀자였지만 그녀가 선손을 써서 미행하고 별장까지 알아두었으니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일이고 시앗싸움은 피할수 없이 앞당겨질수밖에 없기때문이였다.

리나는 편지를 박군에 주지 않고 북경민족대학에서 조선어를 전공한 녀자친구 에게 팩스로 보내여 인차 번역해 보내라고 부탁하였다. 이틀후 번역문이 리나의 손에 들어왔다. 번역이 어떻게 되였는지 알수 없지만 그리 길지 않은 편지에 사람의 가슴 을 치는 처절한 사색이 담겨있었다.   

사랑했던 연이 아버지에게.

   

이 편지를 당신의 지척에서 눈물로 쓸줄은 저도 몰랐어요.

    저는 이미 모든것을 알고 갑니다. 별장에서 미인과 딴 재미를 보느라고 저와 연이를 싹 잊고 있었군요. 저는 그러줄도 모르고 님찾아 만리길 달려왔으니 닭쫓던 개 울쳐다보듯이란 속담도 이 시각 내 꼬락서니를 표현하기엔 너무 미약해요. 지금은 당신에게 행악질 할 생각이 없어요. 저도 집에 돌아가 많은걸 생각해보고 어떻게 할것인가를 결정하려해요.

    당신의 가슴속에 고이 받들려있다는 그 소중한 행복감으로 저는 웃으며 살아왔고 그 행복은 세월이 가도 색바랠줄 모르리라는 굳은 믿음속에서 당신을 태양처럼 받들어왔어요. 그래서 그 무엇으로도 지워버릴수 없는 순정과 사랑으로 우리의 일생을 저 한끝까지 수놓아가려고 애써왔어요.

    이 세상에서 제가 마땅히 얻을수 있고 얻어야 하는 유일한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당신의 변함없는 사랑이였어요. 당신도 유일하게 하나인것이 저에 대한 사랑일것 이라고 믿고있었기에 풍운조화를 예측할길 없는 이 시대의 그 모든 유혹과 자유 분방하는 정열의 속삭임에도 눈감아버리고 있는줄 알았어요. 바람새 세찬데 고요히 서고있을 나무가 어데 있는가고 변명하지 말아요.

    연길 촌구석에서 공장과 가정의 울타리속에서 여지껏 살아온 제가 시대의식이 너무 무디였던 탓이였을가요?아니면 제가 원래 너무 아둔했다는것이 이제야 드러 났을가요?지금 이러고있는 당신도 바로 남자의 속성이 꼬드기는 모순된 만족과 그것이 준 아픔과 고통으로 하여 말못하는 슬픔과 번민에 싸여있다는것을 전 잘 알고있어요. 당신은 땅크같은 체대와는 달리 너무 순박했거든요,

    당신은 지금 도덕과 량심을 두고 괴로와하면서도 자신을 허위의 갑속에 숨기려 하고있어요. 내가 싫증났던가요?그렇다해도 당신이 그렇게 고와했던 우리 연이마저 그렇게 쉽게 잊어버릴수 있나요? 저와 딸에 대한 사랑보다 정욕이 그렇게 중하 던가요?정말 해탈할수는 없었던건가요?해탈되여 저에게로 돌아오면 도덕의 심판을 내려야 하는지 지금 저로서는 모르겠어요. 아아, 정말 가슴아픈 사연을 당신이 엮을줄은 몰랐어요. 믿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다더니 옛말 그른데 없군요.

    운명의 신은 늘 하나의 목표를 위해 온 정성을 쏟아가는 그런 사람들을 우롱하기 좋아한다더니 그런가봐요. 나같은 녀자를 노리고  있다가 당신이 나에게 가장 수요될 때 나의 모든것을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려고 지금껏 기다리고있었던가봐요. 아니면 왜 그 행복하던 나날에는 희롱질을 시작하지 않았을가요?그 녀자의 무엇이 당신을 사로잡았는지 저는 알수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아요. 확실히 그녀자는 아름답고 우아하고 기품이 도도한 귀부인이더군요.

저는 내 동생같은 그 녀자와 다투고싶지도 않아요. 딴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것도 일종의 죄악이니까요. 그러나 중이 몰래 정사를 해도 풍경이야 쳐야할거 아니예요?귀뺨을 맞고서야 저는 사랑자체에는 영원히 잊을수 없는 아픔이 있다는걸 알았어요…

    편지를 읽고난 리나는 조금 안심되였다. 박군의 안해가 마구잡이로 나올 녀자가 아니란것을 느꼈기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녀자가 얼마나 남편을 사랑하고 얼마나 잘 어울려 살았을가를 상상해보니 녀자로서 질투심이 불타는것을 참을수 없었다. 그리고 이 사랑싸움이 자신이 생각던것처럼 그리 쉽게 승패가 결판나지 않으리라는 예감도 들면서 우려심이 가슴을 꽉 채웠다. 정애라는 이 조선녀성의 외유내강한 성격과  인격력량에 은근히 기가 질리는것도 사실이였다.  

정말이지 편지에 얼마나 감동되였는지 리나는 자신도 모르게 정애라는 이 현숙한 조선녀인을 동정할번했다. 그녀는 자책감을 숨길수 없어서 며칠간은 핑게를 대고 박군과 한이불에 들지 않았다. 인정에 굶주리며 자라나서 인정사정을 잘 헤아릴줄 아는 리나는 벙어리 랭가슴 앓았다. 그러나 끝내 그런 나약한 마음을 정리해버렸다. 사랑은 끝까지 리기적이 아니던가?지금은 사랑마당도 전쟁판인것이여늘…

    리나는 아닌보살하고 박군에게 편지를 보였다. 박군은 깜짝 놀라더니 얼굴이 붉어졌다 검어졌다 하다기 나중에 하얗게 질려서 금방 염병을 앓고난 사람같이 되였다. 속담에 매듭지은자가 그 매듭을 풀어야 한다지만 박군은 자기손으로 맺은 이 감정의 옥매듭을 풀길 없었다. 박군의 잘못인가? 리나의 잘못인가? 안해는 더구나 아무 잘못이 없다. 무엇으로도 갚을수 없는 감정의 빚을 스스로 걸머진것이다.

너무나 고생이 많았던 안해다. 하루아침에 무직업자가 된 안해는 박군보다 더 빨리 운명의 도전에 응해나섰다. 야시장에서 고구마도 구어팔고 옥수수도 구워팔다가 철남야시장에 나앉아 양고기뀀도 구워팔았다. 호사다마라더니 수입이 꽤 짭짤할때에 그만 판이 깨지고 말았다. 밤거리의 삽살개같은 놈팽이들이 안해의 미모에 반해 밤마다 몰려들어서는 술을 처마시고는 돈도 내지 않고 갖잖게 희롱질까지 하려들었다. 해가 비치면 먼지도 반짝인다던가?

박군은 사발과 녀자는 내돌리면 깨지기마련이라며 아예 안해를 집에 눌러앉혔다. 그러나 워낙 일손을 놓지 못하는 성미인 안해는 이렇게 손을 털고 나앉을수 없다며 모자를 푹 눌러쓰고 로무시장에 나가섰다. 청소면 청소, 회칠이면 회칠, 닥치는대로 일하여 푼돈을 벌었다. 그런 조강지처를 배반한 자기다. 애처가가 애정가로 되여버렸 으니 이런 인생풍자극이 또 있는가,

그런 박군을 리나는 말없이 지켜 보았다.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있던 박군의 눈에서 줄끊어진 구슬처럼 굵다란 눈물이 주르륵  흘러 편지를 적시고있었다. 리나는 못본체 하며 될수록 담담한 목소리로 꼬집었다.

    《뭐라고 썼기에 눈물까지 흘리며 그래요?옷고름을 풀어준 안해가 다르긴 다르군요.그래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나요?…》

    며칠후, 리나는 박군에게는 광주로 고찰을 간다고 하고는 몰래 북방담판을 떠났다. 비행기는 육체를 싣고 만리고공을 날고있었지만 리나의 마음은 천길나락으로 떨어지고있었다. 연길에 도착했지만 선걸음으로 찾아갈 용기도 없고 얼핏 방도가 나지지 않아 호텔에서 이틀밤이나 꼬박 새웠다. 그랬다. 그녀도 박군을 잃은후의 자기 인생을 더 생각할수 없었지만 남편을 빼앗긴 한 녀인의 심정을 전혀 아랑 곳하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리나는 드디어 흐트러진 마음을 단단히 묶어가지고 철남 어디에  있다는 정희 네집을 찾아나섰다. 생각보다 쉽게 찾았고 실망도 그만큼 컸다. 밤새 내린 비에 길은 엉망이였고 구서구석 쓰레기더미에서 파리가 왱댕거렸다. 생각보다 집은 쉽게 찾았지만 기분은 엉망이였다. 리다가 정희네 단층집문을 떼고들어서자 아무 사상 준비도 없었던 정희는 너무 악연해서 한식경이나 빤히 보기만했다.

놀라기는 리나도 마찬가지였다. 방은 알뜰한 녀주인의 손에 기름기돌게 가꾸어져 있었지만 눈에 띄이게 값나갈만한것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텔레비도 자그마한 낡은것이였다. 박군이 얼마나 어려운 생활을 했을가를 한눈에 읽을수 있었던것이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솟았다. 호북산골의 오빠네집이 불현듯 떠올랐고 그 어려운속에서 올케의 눈치밥을 먹으며 겨우겨우 중학을 나온 자신의 그때 처경이 생각나서 소리내여 울어버릴것 같았다.

    리나가 더구나 생각밖인것은 정애가 칼이나 방치를 찾아들고 자기를 내쫓을줄 알았는데 오히려 례의법도를 잃지 않고 정중하게 대해주는 그 참을성이였다. 모든 남성들의 눈길을 한몸에 받을만한 미모와 기품에 리나는 녀성적인 립장에서 모든걸 읽고 리해할수 있을것같았다.

일에 지치고 거칠어지긴했지만 삼십대녀인으로서는 보존하기 어려운 수련꽃같이 하얀 살결밑으로 파란 피줄이 신비하게 보이고 두볼은 아직도 윤기가 흐른다. 그린듯 맵시 있는 코, 산양의 어진 눈을 방불케하는 크고 까만 눈, 길게 자란 속눈섭, 손대지 않은채 곱게 휘여들고있는 눈섭…박군이 못잊어할만도 한 미녀였다.

이윽해서 정신을 차린 정애가 류창한 한어로 말을 건네였다.

《참 먼데서 왔군요. 앉아요. 루추하지만…연이야, 아빠가 일하는 회사의 경리아지미야, 얼른 인사해야지,

정애가 언제 남편을 빼앗으냐는듯 그렇듯 대범하고 례절바르게 나오자 제쪽에서 오히려 무안을 탄 리나는 몸둘바를 몰라 녀자애를 살며시 끌어안았다. 누가 시키 기라도 한것처럼 계집애도 가슴에 착 안겨들었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모성애가 가슴을 후벼댔다. 자기를 안은 녀자가 바로 아빠를 빼앗아가려고 왔다는것도 모르는 그 순결무후한 동심에서 리나의 마음은 여지없이 흔들렸고 자기와 나이가 엇비슷한 이 조선족녀인을 조금 두렵게 생각하는 자신이 불만스러웠지만 어쩔수 없었다.

두 녀자는 마침내 조용한 다방을 찾아 마주앉아 사랑빼앗기 담판을 시작했다. 방금까지도 깍듯이 례의를 차리던 정희가 자못 날이 선 얼굴을 해가지고 말문을 열었다.

《동리나라고 했지요?이름도 얼굴처럼 아주 아름답군요. 동리나,  아가씨, 당신 은 이렇게 미인이고 돈도 많은 녀강자인데 어데 가서 그럴듯한 남자를 찾지 못해서 하필이면 이 불행한 녀자의 남편을 가지려해요. 참 알수 없군요. 우리 연이 아버진 남보다 특별 한데가 없는 남자인데 그의 무엇에 반했나요?》

《당신은 그렇게 오래동안 결혼생활을 하고서도 남편의 남다른 매력을 보아내지 못했단말이예요?참 애석하군요.그렇길래…제가 만리길을 달려온건 바로 그 문제를 협상하기 위해서얘요. 언니, 저를 요정이라 욕해도 좋고 박군씨를 배신자라고 욕해도 좋지만 감정문제란 그렇게 그저 함께 살면 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잖아요?

《아가씨가 말하는 감정문제가 어떤것인지를 잘 모르겠지만 내가 알건대는 남녀간의 감정이란 록음테프처럼 아무때나 지우고 새로 올리는 그런것이 아니라는 것만은 알고있어요. 그리고 감정은 샘물처럼 절로 솟아나야지 쓰고싶을 때 짜내여 쓰는 치약같은것은 더구나 아니지요?물론 내 남편이 아가씨의 감정을 꽉 쥐여짰는지 아니면 아가씨가 남자의 감정을 짜냈는지 알수 없지만 아무튼 지금 당신들 둘의 감정은 금방 돋아난 여린 싹에 불과하고 저와 연이아빠의 감정은 비바람을 이겨낸 사랑나무로 깊이 뿌리내린거예요.

《그건 사실일수 있어요. 그러나 조선족이나 한족이나 일부종사라는 전통적인 관념은 상품경제시대에 와서는 너무 무력해요. 렴치없지만 남편을 이젠 놓아주세요. 그이를 위해서는 그게 더 명지하고  더 좋으니까요. 정말 사랑한다면 대방의 행복을 막아나서지 말아야 하지요. 안그래요? 물론 10년을 살아온 정이 깊다는걸 저도 잘 알아요. 제쓰던 몽당비자루도 정작 버리자면 아까운법인데 사랑하던 사람이야 더 이를데있겠어요. 고통스럽기 그지없다는것도 녀지로서 짐작하고있어요.

《아가씨가 말한것처럼 모든것이 상품화되여진 지금 사랑도 팔고산다는걸 이 촌구석에서 사는 저도 잘 알고있어요. 그러나 남이 이미 가지고있는것을 헐값으로 사려한다면 안되지요. 지금은 제3자 가 오히려 코대를 세우는 세월이지만 리나 아가씨야 이렇게 무지막지 하게 나와서 되겠나요?

《언니의 마음을 알만하기에 오늘 40만원을 가져왔어요. 이 돈이면 새롭게 시작할수 있을거예요. 연이는 아빠가 그렇게 고와하니까 제가 기르죠. 저도 친딸처럼 사랑해줄거예요…》

잠자코 듣고있던 정희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더니 갑자기 얼굴이 홀쪽해지면서 입가에 어떤 결심을 내린듯 집요한 선이 그려지고 있었고 눈섭은 단 한가지 생각에 몰두하는듯 알릴가말가한 이마의 잔주름을 더 깊게 파올리며 활처럼 구부러져갔다. 분을 삭이느라고 가슴츠레해진 눈에서는 종시 참아내지 못하는 슬픔과 실망, 증오의 암담한 빛이 흐르고있었다.

마침내 정애가 탁상을 꽝 치며 발딱 일어섰다.

《동리나아가씨, 똑똑이 들어두세요. 지금 많은 처녀들이 관내에 가서 돈에 넋과 육신을 팔며 조선족녀인들의 얼굴에 똥칠을 하고 돌아다니지만 이 정애는 아무리 돈이 욕심나도 남편까지 팔아먹지는 않아요. 아무리 가난해도 정애는 가난이 들줄 모른다는 말이예요. 이 돈을 거두지 못해요?내가 정말 리혼장에 도장을 찍어주게 되더라도 일전한푼 바라지 않을거예요. 사람을 잘못 보았어요.

리나가 다른 의미가 아니라고 해석하려했지만 정애는 홱 뿌리치고 뛰쳐나갔다. 그의 입에는 분명 울음이 물려있었고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그러나 모든것에 대결하려는 자신의 의지에 사로 잡혀있는 녀자에게 무서운 힘이 있었다.

리나는 허탈감에 넋이 빠진듯 한식경이나 미동도 없이 넋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있었다. 복무원아가씨가 와서 어디 아픈가고 물어서야 정신이 펄쩍 들었다.

40만원의 거액앞에서 한점 흔들림이 없이 표연히 돌아서던 정애의 뒤모습에 비하면 자신이 너무나 리기적인 녀자로, 보잘것없는 왜소한 녀자로 느껴졌다. 돈이면 귀신도 울리는 세월에 돈앞에서 웃지 않은 녀자도 있단말인가?그러나 그런 녀인을 오늘 제눈으로 본 리나는 세상을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애와 같은 녀인들의 사랑은 돈으로 값매길수 없는것이다. 리나는 박군이 때때로 깊은 한숨을 쉬던 까닭을 잘 알것같았다.

 

녀자의 마음

 

정희는 나흘이 넘도록 그가 다시 찾아오지 않자 그냥 돌아간줄로 알고 너무 혹독했다싶었고 밥한끼 먹여보내지 않은 자신이 저으기  후회되였다. 사실 남편이 리나를 구해주었다해도 은정을 모르는 녀자같으면 오늘의 남편이 있을수 없고 자기는 궁지에 빠져 무슨짓을 했을지 모른다. 너무 막막해서 뒤골목의 루추한 려관방에서 아무 남자앞에서나 치마를 벗는 녀자가 어디 한둘인 세상인가?정희의 마음은 사랑의 침략자가 물러갔다는 안도감대신 먹장구름이 드리운 하늘이였다. 그런데 닷새되던 날 어떤 처녀애가 불쑥 찾아들었다.

    《누굴? 나를 찾는단 말이요?》

《아, 끝내 찾아냈네. 전 시빈관에 복무원이예요. 제가 맡은 호실에 들어있는 남방에서 왔다는 젊은 한족녀자가 앓아누웠는데 며칠째 일어나지 못해요. 알아보니 연길에 친척도 없고 잘 아는 사람도 없대요. 그저 (쩡아이, 쩡아이,) 하면서  헛소리 하길래 자꾸 캐여물었더니 아주머니를 좀 안다더군요》

정애의 마음은 무어라 말할수 없었다. 자기 생활에서 소설이 엮어지고 있는듯 했다. 그녀는 심한 갈등을 소태처럼 씹으면서도 마침내 시빈관으로 줄달음쳤다. 리나의 얼굴은 말이 아니였다. 잡담제하고 리나를 업어내려 병원으로 호송했다. 의사는 재생장애성빈혈증이여서 수혈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했다. 그리고 밤낮 간호 해야 된다고 한다. 돌아오지 않는 남편때문에 가슴속에 불티가 펄펄 날리는데 담장 밖에서 날아들어온 보따리까지 안았으니 설상가상이랄가, 이 앓는데 뺨까지 얻어 맞는격이랄가, 

원쑤같은 리나였지만 정희는 녀자의 마음이 시키는대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간호했다. 병이 거의 호전되던 어느 날.  혼자 소풍하러 나갔던 리나가 그만 촉한에 걸렸다. 남방처녀가 바람새 세찬 북방의 봄날씨에 적응되지 못한 탓이란다. 여기 사람같으면 점적주사나 맞으면 되겠지만 귀부인인 리나에게는 치명적인 일격이였다.

일주일새에 두번이나 수혈은 했으나 두번이나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겼다. 정애는 꼬박 사흘을 뜬눈으로 리나를 지켜섰다. 밥을 먹여주고 대소변을 받아냈다. 하면서도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았다.

정애는 리나의 병이 돌아서자 안마까지 해주었다. 근육성위축이 올가능성이 있다면서 의사가 특별히 분부한것도 있지만 무의무탁한 타향에 와서 병마에 시달리는 리나가 미운중에도 불쌍해졌던것이다.…날씨가 따스해지자 리나도 퇴원하였다. 부득부득 돌아가겠다는 리나를 억지로 집에 데려다 몸조리를 시켰다.

리나는 호북의 농촌에서 나서 자랐다. 량부모는 어릴때 산홍수에 밀려가고 두 오누이만 살아남았단다. 자기 보다 아홉살우인 오빠의 손에서 자라서 어렵사리 고중을 마쳤지만 대학시험에 락방하고말았다. 그러자 올케가 입하나 줄일타산으로 고개넘어 로총각에게 시집보내려고 설쳐댔다. 리나가 죽어도 안가겠다니 올케가 아침저녁으로 성화를 바쳤다. 암펌같은 올케의 등살에 배기지 못하여 집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손에는 단돈 일원도 없었다.

벌어서 꼭 갚을테니 뀌여달라고 올케에게 손을 내밀었다가 욕만 즉살나게 먹었다. 울면서 빈손으로 집을 나서서 고개를 넘는데 마음이 고운 오빠가 녀편네 몰래 마을 에서 200원을 얻어다가 손에 쥐여주었다. 그때로부터 리나는 돈을 한보따리 벌기전에는 고향에 발길을 돌리지 않는다고 입술을 옥물었다.

리다의 파란만장한 인생길은 호북의 모든 큰 도시에 이어졌고 나중에는 상해, 광주, 남경 등지로 뻗어갔다. 그사이 겪은 인간고인들 얼마였으며 흘린 눈물인들 얼마였으랴, 더구나 마음고생은 이루다 말할수 없었단다. 개천에서 룡마난다더니 리나는 원래 처녀꼴이 잡히기 시작해서 남자들의 성화에 몸서리쳤다. 그처럼 인물이 동탕했던것이다. 그러나 그는 정이 헤픈 품팔이자매들과는 완전히 다른 인생자세로 험악한 세상에 도전하고 나섰다. 그의 가슴속에는 오직 돈보따리를 안고가서 올케 에게서 받은 온갖 설음을 청산하려는 옥생각뿐이였다,

리나는 고중때 영어 하나는 특장이여서 여느 자매들이 걷는 그런 험악한 길을 걷지 않게 되였다. 그는 여러 광고공사의 복장모델로 전전하는기간에 언젠가는 자기 의 광고공사를 가지고야 말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남모르게 많은것을 배워나 갔다…먹은 마음대로 얼마간 돈을 벌었다. 그는 떠난지 몇년 잘 되는 고향에 갔다. 올케는 지난일은 까맣게 잊은듯 살갑게 굴었다. 소녀시절에 맺힌 한이 쉽게야 풀릴수 있으랴만 오빠를 위해서라도 망각을 앞세워야 했다. 떠날때 올케앞에서 10만 원을 내놓으며 들으라는듯 말했다.

《이 돈은 오빠에게반 지배권이 있어요. 잘 살아요.

그렇게 떠난후 리나는 고향에 다시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그후 성공도 하고 돈도 많이 벌었지만 사랑에는 지각생이 될수밖에 없었다. 한창 꽃피고 잘 나갈때 그녀에게도 백마왕자가 있었다. 남자는 대학을 졸업한 꽤 번듯한 도회지 출신의 남자였다. 그러나 그때까지 너무 순진했던 리나는 피땀으로 번돈을 백마왕자에게 사기당했고 하마트면 정조까지 떼울번했다.

그때로부터 리나는 가슴에 열쇠를 잠그고 남자라면 그저 멀찍이 담벽밖에 세워두었다. 그러나 도처에 득실거리는 잡동사니의 돈많은 사람들과 얼간둥이 쾌락주의자들의 세계에서 자기를 지킨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리나가 스스로 성공했다고 자긍하는 다른 한가지는 용케도 지켜온 순정을 자기가 처음이자 마지 막으로 사랑할 남자에게  바친 그것이였다.

그의 회사에 박군이 첫남자였던 원인이 여기에 있었다. 돈은 쌓이고 청춘은 저믈어갔다. 인생에 회의를 느끼며 확 풀어져 버릴가 자포자기하고있을 때 거마 리처럼 붙어서 피를 빨아 먹으려는 놈팽이가 또 한놈 나타났다. 그날도 그자에게 속히워 야외에 나갔다가 겨우 빠져 제정신없이 차를 몰다보니 길가의 세멘트기둥을 들이박았던것이다…

정애는 리다의 인생담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리나가 말을 잘 해서가 아니였다. 정애는 그만큼 정에 약해있었고 녀자의 마음에 자신을 맡기고있었다. 종족이 다르고 민족이 달라도 녀자의 마음이란 거의 공통한것이 아니랴, 정애는 원한을 가슴깊이 묻어버리고 따나기전까지는 친동생처럼 돌봐주었다. 가는정 오는정은 두 심장에 아름다운 인간애의 한페지를 수놓았다.

리나는 곤히 잠든 정애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때이른 잔주름이 눈가와 귀밑에 슬며시 기여들고 있었다. 리다는 참지 못하고 정희의 얼굴에 자기 얼굴을 살며시 갖다대 였다.

넓은 인간세상에 무슨 기괴망칙한 일인들 없으랴,  인생이란 겉보기엔 엄숙한것 같지만 베일을 걷고 들여다보면 우리가 상상할수조차 없는 희비극이 다 그안에 있지 않던가? 인생은 유희이고 유희인것만큼  그대로 지그재그인것이다.

하늘에 태양은 하나다. 그러나 만물을 비춘다. 그래서 태양은 아름드리 나무의 태양도 되고 작은 산꽃의 태양도 되여지는것이며 꽃나비의 태양도 되고 소똥구리의 태양도 된다. 두 녀자에게 있어서 태양같은 존재인 박군은 어느 누구에게도 그늘을 던져주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할것이지만 사랑에는 이르지 못할 두가지가 있으니 곧 영원함과 완성인것이다.

생활도 1 1차방정식만이 아니라 22, 3차방정식이 될수 있다.우주공간에는 수많은 미지수가 있다. 그만큼 해()도 많다는것을 우리는 절감하고있다. 인생과 사랑은 동의어이다. 인생의 비밀은 사랑의 비밀이기도 하다. 인생의 수수께끼는 사랑의 수수께끼가 아닌가? 사랑에는 오직 한가지가 있지만 부본은 천만가지이며 천층만층이다. 인간은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수밖에 없다.

며칠후 리나는 작별을 고했다. 이 세상에서 권력을 나누어 가질수 없는것처럼 사랑도 나누어가질수 없는것이다. 리나는 가방을 들고 문턱을 넘으려다가 털썩 무릎 을 꿇었다.

《워더 호제제야! 당신은 제가 한평생 보답해야 할 생명의 은인이예요. 그리고 박민씨도…언니에게 머리조아려 감사드려요. 언니, 용서를 빌어요… 》

정애는 리나를 일으켜세워야 하는지 같이 울어줘야 할지 알수 없었다…리나가 떠난후 연이에게 잠자리를 펴주던 정희는 베개밑에서 커다란 돈묶을 발견했다. 정애는 더 생각할것도 없이 그 돈을 리나앞으로 부쳐보냈다.

10여일이 지나 남편이 돌아왔다. 금이 실린 사랑의 거울앞에 선 정희였지만 남편을 괴롭히지 않았다. 그러나 한없이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 남편이 보지않는 곳에서 울고 또 울었다. 그처럼 가슴이 쓰라린것은 이미 쏟아준 마음을 되돌릴수 없기때문이였다. 수은은 일단 꽉 그러쥐려하면 새여나가고 만다. 사랑은 자주적이 면서도 개연성도 고유하고있다. 그녀로서는 그런 사랑의 심오한 도리는 알수 없지만 자기가 콩팔칠팔하며 이미 굳어진 과거를 가루낸다한들 무엇이 달라지며 차례질것이 무엇인가? 정희는 그래서 담담하게 나왔는지 모른다.

남자는 잊고 녀자는 삭인다. 남편은 잊고있는지 몰라도 정애는 사랑과 배신, 분노와 복수, 고통과 번민 그 모든것을 샘솟는 눈물로 삭이였다. 순종하는 녀자는 소리없이 울고 복수를 다지는 녀자는 몰래운다. 그러나 정애는 그게 아니였다. 그러 면 도대체 무엇인가? 박군은 그것이 더 궁금했고 일종의 압박감까지 느꼈다. 

음력설이 돌아왔다. 리나가  50만원을 부쳐보냈다. 친동생이 보내는 돈처럼 생각하고 이번만은 거절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리고 편지도 따로 보내왔다.

《언니, 제가 또 죄를 졌어요. 저 임신했어요, 박군씨의 아이예요. 해산달이 박두해와요. 박군씨를 나무람하지 마세요. 사랑이란 이렇까지 리기적일가요? 저는 박군씨의 아이를 언녕 가지고 싶었어요. 전 이 아이를 곱게곱게 기르며 살작정이예요. 이제 내게 남은 행복이란 이 안타까운 사랑의 씨앗뿐이예요. 부디 제삶의 기둥인 아이를 저주하지 말아주세요. 아이의 이름을 동박민이라고 다는걸 허락해 주세요…》

정희는 짐작하고 있던 일이라 펄쩍 뛰지 않았다. 아직 움도 트지않은 씨앗을 파헤칠만큼 자신은 독하지도 못하거니와 결혼도 못한 리나자신이 아이를 기르겠 다는데 어쩔수도 없었다. 남자들은 거두어들이지도 않을 소위 사랑의 씨앗을 사대 주오대양에 제멋대로 뿌리고 다니는 시대가 아니던가?

 

2001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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