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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먼곳의 작은절 -행자스님의 수행일지

먼곳의 작은 절-행자오능의 이야기-실상반야
2016년 01월 26일 14시 05분  조회:1824  추천:1  작성자: 行者金文日
  오늘도 새벽 예불을 드리고  아침공양전에 경직된 근육도 풀겸 사찰 주변을 걸으면서 몸을 풀었다. 주지스님께서 우리가 여럿이 뭉쳐다니는걸 좋아하지 않으셔서 비록 다 합쳐서 몇명 안되는 우리지만 그래도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아침 운동을 한다.
나는 새벽예불을 마치면 한결같이 사찰뒤편에 있는 산길을 따라 산위로 등산한다. 절 뒤편에 있는 산은 높지가 않아서 우리 절에서 출발하면 반시간 정도면 도착할수 있다. 그러나 인근의 마을들에서 산길을 따라 등산하려면 두세시간은 쉬이 걸린다.
오늘 따라 자오록하게 안개가 낀 산길은 유난히 미끄러웠다. 어제 밤 내린 한줄금의 비 때문인듯 했다. 어제 밤새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쳐서 나는 큰비가 내리는줄 알았는데 잠간 소나기가 내리고 그쳤었다. 천둥이 크게 친다고 해서 큰 비가 내리는것은 아닌듯 싶다.
올라가는 사이 몇번인가 넘어질번 했다. 이 산길은 우리 몇몇이 계속 다녀서 낸 산길이나 다름없어서 길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워낙 다니는 사람들이 적어서다. 예전에는 나무군들이 많아서 길이 꽤 넓었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나무를 하는 사람도 없고 또 이 촌구석으로 뭐 볼일도 없는지라 다니는 사람이 영 없다. 그래서 사찰 주변에서는 작은 동물들을 심심찮게 보군한다. 새벽이면 항상 일찍 일어나는 새들의 삐쬬롱 삐쬬롱 우는 울음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산정상에 올라가는데 여느때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길이 미끄러워서다. 산위에는 큰 바위가 있다. 그 바위 옆에는 작은 나무가 몇그루 자라고 있었다. 여느때 같으면 산위에 올라가 그 바위위에 서면 멀리 인근의 마을에서 아침공양을 준비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수가 있었지만 오늘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안개때문이다.
안개가 깊이 끼면 우리는 멀리 볼수가 없다. 가까운 곳만이라도 보인다면 그렇게 가겠지만 때로는 바로 눈앞의 길도 보이지 않을때가 있다. 보이지 않으면 우리는 두려움을 느낀다. 어두운 밤이면 두려워지는것과 같은 도리다. 대부분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작은것만을 바라보고 멀리 볼줄 모른다. 아니 멀리 보고자 해도 보이지가 않는다. 욕심과 번뇌 망상이 안개처럼 눈앞을 가득 가렸기 때문이다. 
아침공양을 알리는 종소리가 은은히 들려온다. 산길이 미끄러워 늦게 올라온탓에 내려가는 시간이 늦을듯 했다. 급히 내려오다나니 그만 미끄러져 넘어졌다. 옷을 더렵혀서 오늘은 꾸중을 들을듯 했다. 아침내 즐겁던 기분이 사라졌다. 옷이 더러워지면 씻으면 되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 되겠지만 넘어져서 옷이 더러워진 작은 일때문에 기분이 잡쳐버렸다.
사람이란 그런가 본다. 방금까지도 즐거웠다가 또 잠간새에 짜증나기도 하고 슬퍼지기도 한다. 그런것이 번뇌망상일 것이다.
반야지혜는 모든곳에 있다고 하셨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모든곳에 반야 지혜는 있다. 내가 미끄러져 넘어지는 그 곳에도 어떤 깨달음이 있을듯 했다. 마음속에 일어나는 아리숭한 그 감감을 쫒기 위해 다시 한번 쿵 하고 넘어져봤다. 승복이 더욱 더럽혀졌지만 오히려 그 아리숭하게 보이던 깨달음도 사라지고 없어졌다. 그냥 넘어지면서 다친 엉덩이만 얼얼할 뿐이다. 깨달음은 억지로 얻는것이 아니라는 실증이기도 했다. 그러나 억지로 얻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을 얻고자 하는 노력마저 포기하면 안된다. 반야지혜중 실상반야(實相般若)라는것이 있는데 대승불교에서는 그것을 명심견성(明心見性)의 본질이라고 한다.
보일락 말락한 그 깨달음의 실체를 찾고자 절로 내려오는 내내 뒤로 넘어져도 보고 옆으로 뉘여도 보고 앞으로 쓰러져도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고 승복만 버린꼴이 되였다.
중국 한자의 문자로 볼때 깨달음(悟道)이란 길을 찾았다는 뜻이 된다. 그 길은 형이상학적인 어떤 본질이고 우주만유의 본원이며 모든 사물의 근원이 되는 그 공성(空性)이다. 이걸 가르켜서 불교에서는 실상반야(實相般若)라고 한다. 말그대로 실상(實相)은 진실한 모습이다. 우리 중생은 사물의 진실된 실상을 보지못하고 그 표면만 본다고 부처님께서는 가르치셨다. 대부분 사람들의 수박 겉핥기식의 인생을 말씀하신것이다. 실상반야는 반야지혜의 일부이다. 보통 범인(凡人)의 총명은 의식의 부분이고 우리의 지식 범위내에 국한되여있으며 우리 현재 가지고 있는 경험과 감각으로 상상할수 있는 범위를 가르킨다. 영어로는 그것을 패러다임(paradigm)이라고도 한다.
진정한 깨달음 즉 그 우주본연(本緣)의 반야지혜는 우리의 보통 지식이나 지혜, 의식을 가지고 생각하거나, 토론하고, 연구하기가 어렵다. 부처님은 항상 불가사의(不可思議)라는 말씀을 쓰셨다. 중생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도무지 언어로서 그것을 설명해서는 안될것에 대하여 그러한 표현을 쓰신것이다.  불가사의는 불능사의(不能思議)가 아니다. 생각하고 깨닫기 어려울뿐이지 불가능한것은 아니란 말이된다. 불가(不可)란 글을 중국한자로 보면 가린다, 막는다. 볼수 없도록 한다,는 등등의 뜻을 포함하고 있다. 즉 보통의 지식이나 의식형태로 추측하거나 생각함으로 얻을수 있는것이 아니라는 뜻이된다. 실상반야의 지혜를 우리의 생각만으로 얻을수 있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망상의식(妄想意識)의 범주에 속하는 것일뿐이다. 불가사의란 말은 우리더러 수지하고 체험함으로서 몸과 마음으로 구하고 증명하는 경계(境界)이다. 그것은 생각으로 얻을수 있는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옛날에 도를 묻는 젊은이에게 하늘의 달을 가르켜보여 주었더니 그 젊은이가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쳐다보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본질적인 지혜를 얻지 못하고 그 겉모습만 쫒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옛날의 선종 스님들은 갖은 방법을 다해서 제자들이 깨달음을 얻도록 도왔다고 한다. 화장실까지 따라와서 도를 묻는 제자에게 똥막대기를 쑥 내민 스님이 있었는가 하면  바람에 나붓기는 기발을 가르켜서 깨달음을 준 스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수지하고 인증하는 과정에서  얻는것이지 가만히 앉아서 생각만 해서 얻어지는것은 아니다.
중국의 도교에서 깨달음의 그 경지를 도(道)라고 표현했는데 그 도는 어디에나 어떤 시간에서나 모든 곳에 있다. 그것을 어떤 문자로 표현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부처님께서 옛날 꽃 한송이를 드시니 마하가섭존자가 빙그레 웃는걸 보고 진정 깨달음을 얻었음을 기뻐하셨다고 했는데  그런 깨달음에는 선후가 있고 깊이가 있는듯 싶다.
깨달음의 그 도를 도라고 표현하면 뭔지 알아듣지 못하고 부처(佛)님이라고 표현하면 사람들은 또 절에 있는 장엄한 불상을 떠올린다. 그것은 금강경에서 말한 형상에 빠져버리는 오류를 범하는것이 되여버린다. 그래서 선종에서는 깨달음의 그 실체를 가르켜서 이제는 도라고 하지도 부처님이라고 하지도 않고 바로 저거다. 바로 이거다 라고 가르친다. 그냥 대명사일 뿐이니까.
<화엄경>에서는 그것을 도라고 해도 되고, 천지(天地)라고 해도 되고 , 하느님 이라고 해도 되고 , 신이라고 해도 되고 주라고 해도 되고 부처님이라고 해도 되고 진여(眞如)라고 해도 되고 열반(涅槃)이라고 해도 된다고 했다. 그렇게 백여개가 넘는 숱한 이름을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기호이고 명사일뿐이고 실상반야의 지혜를 나타내는 인간의 한계된 표현의 방식일 뿐이다.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쫒고 찾아왔지만 진정 그러한 생명의 본연의 지혜를 찾은 사람은 많지 못하다. 실상반야는 수지(受持)하고 인증하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가장 근본적인 반야지혜이기 때문이다.  
아침 공양 시간은 이미 놓쳐버렸다. 이미 늦은 바하고는 천천히 내려온다고 이번에는 조심스레 내려왔지만 또 한번 미끌어 넘어졌다. 올라갈때는 이토록 미끈줄 몰랐는데 내려가려니 더 힘들었다. 올라가긴 쉬워도 내려가기 어렵다는 말이 그래서 생겼나본다. 그때문에 많은 사람들도 인생길에서의 올리막보다도 내리막에서 더 많이 쓰러지는가 본다.
 승복이 가득 더렵혀진데다 온몸 가득 흙이 묻었다. 더렵혀진 승복은 씻으면 되고 흙이 묻은 몸도 씻으면 된다. 겉모습은 물로 씯으면 깨끗해지지만 내면에 가득 쌓인 더러움은 어떻게 씻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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