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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어디에 있는가?
2016년 01월 09일 11시 46분  조회:4624  추천:5  작성자: 行者金文日
  새벽에 어수선한 꿈을 꾸다말고 잠을 깼다. 아이들이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의 낑낑대는 소리에 깨였던것이다. 며칠전에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새끼를 낳았는데 한꺼번에 여섯마리를 낳았다. 그중 한마리는 태여나서 하루만에 죽었고 다른 한마리도 여간 약해서 마음이 걸렸는데 강아지의 우는 소리에 방에 가보니 어미개가 죽은 새끼를 입에 물고 방안을 왔다갔다 하면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미물인 강아지도 지 새끼의 죽음을 아는듯 했다. 선천적으로 약한데다 태여나서 젖을 빨 힘조차 없었나 본다. 전날 우유를 달여서 예전에 애들이 쓰던 우유통에 넣어 억지로라도 먹이려 했지만 역부족이였다.
  새벽에 죽었는지 죽은 강아지의 몸은 아직도 온기가 있었다. 그래서 아침에 뒤숭숭한 꿈을 꾸었나부다. 어미의 입에서 죽은 강아지를 빼내는데 싫다고 한참을 짓어댄다. 지 새끼를 앗아간다고 항의를 하나본다. 그래도 어쩔수 없는 일이라 작은 꽃삽을 들고 밖에 나왔다.
아직 날도 새지않아서 사람들이 없을줄 알았는데 벌써 새벽  청소하는 사람들이랑 운동나온 사람들이 띄염띄염 보였다.  우리 아파트 앞에는 작은 공터가 있었는데 꽃을 가꾸던 그 자리에 어느새 동네 사람들이 화전을 일구어서 채소밭을 만들었다. 벌써 몇년째인데 아무도 관섭하는 사람이 없어서 채소농사하는 사람들이 도심에서 제법 즐기고 있기도 하는 곳이다. 날이 아직 완전히 밝지 않아서 밭을 갈지 않은 옆 변두리에 구덩이를 파고 죽은 강아지를 묻었다. 얼어붙은  땅을 파서 그 새끼를 뭍는데 따라나온 어미가 다시 그 구덩이를 파면서 낑낑거린다. 새끼의 죽음을 애닳파하는듯 했다.   강아지를 묻어두고 꽃삽을 옆에 세워둔채 <반야심경>을 외워줬다. 죽은 강아지가 이 세상의 업을 그렇게 축생으로 한번 태여나는것으로 씻어버리고 좋은 곳에 왕생하기를 기원해주었다. 그렇게  돌아오는데 마음이 어쩐지 심란해났다.
  사람도 짐승도 그렇게 벌거숭이로 왔다가 가는데 삶의 의미가 어디에 있을까? 또다시 고민이 든다. 요즘은 바쁜 회사일때문에 마음의 수련을 게을리 했는데 이런것을 가리켜서 부처님께서 전도몽상이라 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가는 길이 정말 맞는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가야만 진정 깨달음을 얻고 해탈을 얻을수 있는길인지 의문이 간다. 가끔 내가 이런 고민을 할때면 옆에 있는 친지들은 그런 내가 우습다고 되려 웃는다.  그들은 일상 그 자체를 일상으로만 생각하고 궁극적인 저 깨달음에 대해서는 찾으려고도 , 찾을 필요도 느끼지 않고 있는것이다.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은 ‘늘 그런’ 삶이다. 우리는 한 밤중에 자다 깨어 불을 켜지않고 심지어는 눈을 감은 채로, 머리를 벽에 부딪치지 않고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고, 주방에 들러 물을 꺼내 마실 수도 있다. 그리고 여전히 잠기가 깨지 않은채 전등을 끄고 제자리에 누워 다시 잠이 든다. 우리는 그런 일상 생활에 그렇게 친숙하다. 심지어 우리는 혼란함조차 친숙하다. 사회가 혼란하고 나라가 혼란하고 세계가 혼란해도 우리는 당황하지 않는다. 늘 그런 일이 있다는데 친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우리의 일상이 깨어지기가 일쑤다. 일상이 깨어질 때, 우리는 당황한다. 또, 일상이 깨어지는 경우는 보통 좋지 않은 일이 대부분이다. 그런 일을 겪으면 우리는 사는 게 무상(無常)하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사는 게 무상해’란 말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듣는 말이다.
  도대체 우리들의 삶은 어느 편인가? 일상적으로? 무상하게? 무상하지만 일상적으로? 사실, 우리들의 삶은 그 어느 한 편도 아닌 것 같다. 우리는 형편에 따라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아예 그 모두를 함께 살기도 한다. 그렇게 사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이다. 그런데 그렇게 혼란스럽게 사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인데도,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그 일상적인 삶에 혼란을 느낄 때가 있다. “도대체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 거야?”  “나는 왜 이렇게 사는 거야?”  “사는 게 뭐야?”  그리고 그 혼란함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그 혼란스러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는다. 나는 나의 삶을 혼란스러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길이나 또는 삶의 혼란스러움을 그냥 혼란스럽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길은 없는지 언제나 묻고 생각한다.
  내가 알아야할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찾아야할 길은 어떤것인지? 그길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가 지금 나의 과제인듯 싶다. 지금처럼 이렇게 사업이다, 돈이다 하면서 사람을 만나고 술마시면서 춤추고 노래하며 사는것이 진정 내가 추구하는 삶인지 의문이 든다.
  옛성현의 말에 이런 말이 있다. [知不知, 上; 不知知, 病. 夫唯病病, 是以不病. 聖人不病. 以其病病, 是以不病]. 이라는 말이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알지 못함을 아는 게 최상의 지혜요, 앎을 알지 못함은 병이다. 무릇 병을 병으로 알면 병이 아니다. 성인에게 병이 없는 것은 병을 병으로 알기에 병이 아닌 것이다>라는 말이다. 스스로를 알지 못하고 스스로 갈길을 찾지못하고 이 생을 방황하고 있는 중생이 어찌 나 하나뿐이겠는가? 한숨이 나간다.
  옛날 이야기가 하나 떠오른다. 도를 구하려던 한 젊은이가 길을 가다가 한 은사에게 도를 물었다. 그 은사가 손가락을 들어 하늘의 달을 가르키는데 그 젊은이는 그 은사의 손가락만 쳐다보면서 도를 찾았다는 이야기이다. 어쩌면 나도 그 젊은이처럼 깨달음을 찾으려고 하면서도, 도를 찾으려 하면서도 하늘을 보지 못하고 손가락만 바라보고 있을지 모를 일이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성경에서도 예수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고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너희가 나를 알았으니 나의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알게 되었다. 아니 이미 뵈었다> 하고 말씀하셨다. 성경의 요한복음서에서 나오는 말이다.
지극히 내 생각일 뿐이지만 성경의 이런 말씀에 나온 ‘길’은, 老子의 말을 빌리면, ‘신비롭고 신비로운 모든 오묘함의 문 [玄之又玄, 众妙之門의 길이아니겟는가?  이 길을 가는 사람은 아마도 그 길 끝에서 천국의 좁은 문을 만나게 되고, 그 문을 지나면 ‘아버지’가 계신 천국 즉 진리와 생명의 나라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인가? 이런 질문에서 나한테 답을 줄수있는 그런 길은 없는 것일까?
  나의 이런 엉뚱한 <그리스도의 길>에 대한 사색은 종교적인 관심 여부를 떠나 신비롭고 신비로운, 내 마음의 이야기를 들을수 있도록 귀를 열어주는 복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논어에는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라는 말이 있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알면, 그것으로 스승을 삼을 수 있다." 라는 말이된다. 지난일에 후회가 있다면 그것으로 배움을 알게 되고 지난일을 통해 교훈을 삼았다면 그것으로 삶의 스승을 삶을수 있다는 뜻이 되겠다. 지금의 나한테는 잘 어울리는 말이된다.
  강아지를 묻고 돌아서는데 어미가 새끼 묻은 곳을 뱅뱅돌며 땅을 뒤진다. 애처로운 생각에 강아지를 쓰다듬어주다 안고서 아파트로 돌아왔다. 아파트 입구를 들어가다 말고 하늘을 쳐다봤다. 봄이 다가오는 하늘가가 푸름히 밝아온다.
  주역에서는 하늘의 운행이 동지날부터 음기가 약해져서 양기가 태동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한편 우리 풍습에서는 춘절부터 봄이 들었다고 한다. 그냥 내 생각일뿐이겠지만 벌써 숨결에 봄내음이 가득하다. 이런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도 가야하는 삶은 가야하는게 우리의 생일것이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 한구절이 문뜩 떠올랐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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