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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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사랑의 프로포즈 댓글:  조회:4240  추천:81  2006-11-22
사랑의 프로포즈나는 천 몇 백 년 전의 신라 때 성덕여왕을 짝사랑하는가봐. 자꾸 성덕여왕의 이름을 외운다. 성덕여왕은 참 멋진 데가 있다. 신라 때 지귀라는 별 볼일 없는 노총각, 언감생심 성덕여왕을 사랑했다. 아니 짝사랑했다. 그래서 자꾸 선덕여왕의 행차만 찾아다녔다는 지귀. 그러다가 어느 날 성덕여왕의 불국사행차에 좇아갔다가 만나지 못한 허탈감에 피로가 겹치며 자기도 모르게 절 밖에서 소르르 잠이 든다. 이것을 안 성덕여왕은 절에서 나오자 자기의 팔찌 하나를 끌러 지귀의 가슴 위에 놓아두고 간다~ 잠간, 나는 이 장면이 너무 멋있다. 선덕여왕이 멋있다. 장가 못 간 불행한 노총각 지귀에 대한 인간적 동정이고 배려를 하는 선덕여왕이 멋 있다. 지고무상한 일국의 왕이 별 볼일 없는 최하층의 인간에게 배푸는 동정과 배려임에라 그것은 더 없이 돋보인다. 이것이야 말로 보편적 인도주의의 한 보기다.내가 대학교에 다닐 때다. 우리 반에는 참 똑똑하고 꽃 같은 처녀들이 많았다. 나는 이 처녀들을 참 많이도 짝사랑했었다. 우리 반에는 나 말고도 나 같은 놈이 적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속에는 괴짜가 있었다. 별명, ‘카시모도’. 허리 구부정하고 너무 못나 빅또르 · 유고의 장편소설『빠리노따르담사원』에 나오는 벙어리이고 곱새인 종치기 이름을 따서 불렀다. 그런데 바로 이 카시모도가 우리 반에서 제일 예쁜 처녀동지인 ‘양귀비’에게 사랑의 프로포즈를 했다. 결과는 영낙없이 NO였다. 그래도 카시모도는 사랑의 미련을 못 버려 사랑의 연시를 써서 그녀에 대한 애모의 정을 토로했다. 이런 시들은 사랑의 명작으로 되어 당시 문학잡지에 발표되기도 했다. 그래도 성차지 않은지 카시모도는 그녀가 오가는 길목에 서서 ‘거저 보기만 해도 좋은’ 짝사랑을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처녀동지였다. 자기를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추물 카시모도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자기에 대한 최대의 모독이고 이 세상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카시모도에게 붙여준 별명은 ‘정신병자’였다. 그래서 카시모도는 결국 별명 하나를 더 얻게 되었다. 나는 항상 나를 못난이라고 생각한다. 용기없는 못난이라고 생각한다. 대학교 때 연애 한번 변변히 못한 나다. 겨우 한다는 짝사랑은 속으로 끙끙 앓기만 했고 끝없는 환상에만 빠졌다. 나는 늘 나는 적어도 지귀와 카시모도보다는 잘 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사실 이들보다 못난이다. 여왕이면 어떻고 양귀비면 어떻고 대담하게 사랑의 프로포즈로 나간 그들, 나보다 잘 났다. 사랑에 무슨 죄가 있으랴! 사랑은 워낙 짝사랑으로 시작되는 법이매랴. 나는 지금에야 사랑의 용기가 난다. 사랑하는 그녀가 대통령이라도 프로포즈를 할 용기가 난다. 나는 누구의 짝사랑도 받고 싶다. 이때까지 받은 적 없는 짝사랑을. 그럼 나는 그 짝사랑을 선덕여왕처럼 인간미가 넘치게 우아하게 맞이하리라. ‘양귀비’처럼 그렇게 매정하게 놀지는 않으리라!2006.11.20
70    마이카시대 댓글:  조회:4070  추천:91  2006-11-15
마이카시대우상렬요새 우리 대학가에도 심심찮게 자가용 승용차족들이 늘어나고 있다. 시내에 나가도 자가용들이 눈에 띄게 쌩쌩 내달린다. 분명 마이카(My Car)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자가용 승용차의 보편화, 자가용 승용차가 이제 다시는 권위의 상징이고 부의 상징으로 되지 못한다. ‘하야(승용차)’ 한번 타고 우쭐되던 시대는 지나갔다. 그래서 격세지감에 우리는 많이 행복해진 감이다. 그런데 행복해진 만큼 우리는 불행해졌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넓어보이던 길이 좁아진 감을 주고 쭉쭉 잘 뻗어나가던 길이 자꾸만 답답하게 막힌다. 10년을 내다보지 못한 행정당국의 한 치 보기 길 빼기에 마이카들이 기하급수로 불어나 앉은걸음을 할 수밖에 없는 답답함에 짜증만 난다. 교통지옥이라는 말이 실감날 때가 멀지 않은 것 같다. 여기에 주차할 곳도 마갑지 않아 짜증은 풀라서다.그리고 우리는 분명 마이카시대에 걸맞지 않는 졸부, 촌놈행세도 한다. 쩍 하면 뛰뛰빵빵~ 조용히 길가는 우리를 놀래우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약과다. 주택구역에 들어와서도 뛰뛰빵빵~ 뛰뛰빵빵~을 마구 울려대면서 우리의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리고 만만디 중국촌놈들이 언제 그렇게 급해들졌는지 거저 뛰뛰빵빵~으로 앞으로 밀고 나갈 판이다. 택시도 그 꼬라지니 뒤에 느긋이 앉아 있지를 못하겠다. 선진국에서는 파업할 때나 뛰뛰빵빵~ 요란스럽게 울려댄다는데 우리는 왜 이리들 뛰뛰빵빵~하는 거지. 정말 선진국에서는 난잡한 뛰뛰빵빵~을 도시소음으로 치부해 법적으로 규제하기도 한다. 어떤 선진국에서는 아예 뛰뛰빵빵~ 장치가 없는 차를 만들자고 제안하기도 한단다. 여하튼 뛰뛰빵빵~이 없이 조용조용히들 살자는 것이다.사실 이 뛰뛰빵빵~보다 더 기가 찬 문제는 배기가스문제다. 니 배기량 얼마야, 나 1.8cc, 나 2.2cc… 졸부들 배기량 올리기에 급급하다. 그래서 차 잘 나가서 좋겠지. 그런데 그 배기량에 죽어나는 것은 배기량, 배기량 하는 니까지 포함한 우리 모두다. 기온이 올라가는 이상기온이 계속되다 못해 하늘의 오존층이 뻥 뚫렸단다. 그 주범의 하나는 차 배기. 가스연료가 보급화되면서 인제는 공기가 맑아지며 때벗이를 하는가 했더니 다시 침침해지고 烟集의 분지로 다시 남는 듯 하는 연길-그 주범은 바로 차들이 뒤꽁무니에서 시꺼멓게 내뿜는 배기가스. 연길의 4~50만 인구에 너도나도 차 할 때 연길 하늘의 오존층도 뻥 뚫릴 것이고 곳곳에 시커먼 매연이 감돌 것이다. 교통당국은 바로 이 배기가스를 잡아라. 배기량에 따른 과세, 대형배기량에 중과세, 절실히 필요하고 철저히 집행할지고.사실 이 배기가스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음주운전단속. 음주운전단속의 중요성은 세 살 난 어린이도 아는 법. 그래서 당국에서도 단속에 나서는 것 같다. 그런데 어쩐지 흐지부지하고 유야뮤야한 것 같다. 선진국에서처럼 음주운전을 살인행위 맞잡이로 보거나 일단 걸리면 엄하게 처리하는 것 같지도 않다. 그리고 현대적인 음주량측정기기도 동원되는 것 같지 않다. 거저 어림짐작으로 판단하는 것 같다. 그래서 운전하는 친구들보면 음주운전개념 별로 있는 것 같지 않다. 내 옆에 자가용 끌고 다니는 잘 나가는 친구들을 보면 술은 여전히 흔장만장. 언제 니 박고 내 박을지. 그래서 정말 길을 가기가 무섭다. 나는 내가 갈 인행도를 착실히 걸어가는 데 언제 차가 뒤에 와서 들이박을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현실은 불확실하고 불안하다. 정말로 가공할시고.이젠 마이카시대니 일반승용차 정말 별 볼일 없는 존재. 그러니 졸부들 한사코 자기 주제 돌보지 않고 고급승용차 선호다. 여기에 외제 명브랜드가 날개 돋친다. 앞으로 이런 명브렌드도 별 볼일 없는 시대가 올지 모르겠다. 마이프레인(My Plane, 나의 비행기)시대가 올지 모르겠다. 마이프렌인시대는 막 날아다녀서 좋겠지만 적어도 떨어지면 박산나는 그 처절함을 감내해야 되니 역시 문제를 안고 있기는 마찬가지. 어쩌면 마이카시대보다 더 심한 문제를 안고 있는지도 모른다. 2006. 11. 15
69    월드컵 증후군 댓글:  조회:4808  추천:68  2006-06-18
월드컵 증후군요새 세계는 월드컵 열기로 들떠 있다. 이것은 오늘만의 얘기가 아니고 인간이 4년 만에 한 번씩 발작하는 ‘지랄발광’. 그 ‘지랄발광’의 증후군→축구, 고구나 김춘추 얘기를 들먹이며 중국이나 한국의 애국주의자들이 자기 나라의 國粹로서 언녕 있었다하나 아무래도 ‘양놈’들 발명한 스포츠종목 같다. 밀치고 닥치고 힘의 논리로 밀어붙이기는 아무래도 서양 사람들 체격에 적합한 스포츠종목 같다. 키 작고 힘에 부치는 우리 동양종자들 헤딩 하나 하는데도 참 보기에 안쓰럽쟈? 강압적으로 남의 집 안방까지 밀고 들어가 꽝 터뜨리기는 19세기 서방의 제국주의열강들이 도처에서 식민지반식민지를 개척하는 꼬락서니와 너무 빼닮았다. 안 그래도 어떤 사회학자들이나 정신분석학자들은 월드컵이나 올림픽을 총포가 보이지 않는 세계전쟁이라 한다. 인간은 워낙 서로 물어뜯고 죽이고 하는 악마적 본성이 있는데 현대는 대명천지라 차마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세계적인 스포츠경기를 통하여 그런 본성을 대리발산한다는 것이다. 특히 월드컵 같은 집단 대항성 시합종목이 이런 발산을 가장 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월드컵 때 각 출전국 나라별로 응원팀이 쫙 나누어져 죽기내기로 응원하는 것은 일종 집단광기에 가까운 발산이라는 것이다. 이런 발산통로가 있을 때 인간은 심신의 건강을 유지하고 세계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실로 월드컵은 큰 의미가 있는 듯하다. 그런데 문제는 서양 사람의 특성과 룰에 맞도록 짜여진 월드컵에 우리 동양사람이 놀자고 하니 항상 지고 당하기만 하기. 그래서 대리발산이고 뭐고 쌓이기만 하는 동양의 콤플렉스. 꼭 마치 우리 동양미인이 서양미인을 기준으로 하여 뽑는 세계미인선발대회에 가서 못난 새끼오리 신세가 되는 형국. 그러다가 어쩌다가 월드컵에 진출하기만 해도 기적처럼 생각하는 동양의 못난 새끼오리들. 나는 우리 중국의 월드컵 콤플렉스에 자기도 모르게 허구픈 웃음이 나온다. 월드컵 콤플렉스에 기가 죽은 중국 남자들을 볼 때 더구나 허구픈 웃음이 나온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왜 꼭 차야만 하지? 서양에 코 꿰여 놀아나는 축구를 말이다. 안 차면 그만이지. 그래서 나는 참가는커녕 아예 월드컵이고 뭐고 모르고 지내는 동양의 많은 조용한 나라들을 멋지게 본다. 그들에게서 인간의 주체성을 보기도 한다. 그 잘 난 축구, 월드컵 무언데, 픽 웃으며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대범함, 여유로움을 보기도 한다. 축구, 월드컵, 기어이 해보자면 우리 동양식으로도 한번 해보자하는 그런 배짱이 멋지다.그래서 나는 월드컵을 우습게 본다. 월드컵 중계라도 못 보면 허탈감을 느끼는 그런 축구팬들을 정말 별 볼 일 없는 사람으로 본다. 그리고 이기고 지기에 따라서 울며불며 야단법석을 피우는 그런 축구팬들을 더구나 별 볼 일 없는 존재로 본다. 거대한 한 개 나라를 축구 잘 차고 못 차고 월드컵에 진출하고 못하고, 그리고 또 16강이요, 8강이요, 4강이요 하는 따위로 강대국이요, 약소국이요 뭐요 하는 판단의 허상에 빠지기도 하는 월드컵 콤플렉스자들. 그래 미국이 축구가 엉망이라 하여 누가 미국을 약소국으로 볼 수 있으며 중국이 월드컵에 진출하지 못했다하여 누가 중국을 약소국으로 볼 수 있단 말인가? 월드컵, 나는 전반 세계적인 변태를 본다. 참,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할 일 없다고 생각한다. 할 일 없이 덩덩해 있다가 많은 사람들, 축구, 월드컵이 무언지도 잘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매스컴에서 월드컵, 월드컵 하니 덩달아 월드컵, 월드컵 하는 어중이떠중이들이 많은 세상이 우리의 대중사회고 대중문화의 현 주소다. 내일 한국이 찬다. 프랑스하고 찬다. Korean피를 나눈 종자들이 많이들 들떠 있다. 언녕 한국이 꼭 이겨야 한다는 콤플렉스에 짙게 쌓여있다. 나도 Korean종자다. 그런데 나는 내일 축구경기를 안 본다. 워낙 나는 축구에 흥취 없다. 가령 흥취 있다하더라도 나에게는 보다 재미나고 중요한 할 일이 있다. 이 때문에 나는 욕을 먹을 것이다. 니 Korean종자 맞니? 민족심도 없는 놈. 아이구, 그 잘 난 축구 가지고 거창한 민족심이니 애국심이니 하는 거 좀 거론하지 말기를! 월드컵 경기장에 國歌가 울려 퍼지니 애국심 운운하기 제격이겠지만. 나는 세상에 ‘니 중국하고 한국 차는데 어느 쪽 응원하지’하는 물음만큼 유치한 물음이 없다고 생각한다. 민족심, 애국심은 이런 흑백논리의 배타적인 천박함으로 나타나서는 안 된다. 이런 것이 심하게 발작할 때는 파쇼에 다름 아니다. 민족심, 애국심은 다른 민족사이, 다른 나라사이 평등하고 우호적이며 보듬는 관계를 전제로 하여 발산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인간세상의 正道로서 ‘友誼第一, 比赛第二’의 모주석의 교시도 떠올려 본다. 물론 오늘 이 세상에서 1등으로 달리던 사람이 2등으로 달리던 사람이 넘어졌을 때 돌아서서 부축하여 같이 라스트선으로 들어설 때 관중으로부터 기립박수는커녕 머저리 취급을 당하겠지만. 그리고 나는 정신병자 같은 생각을 굴려본다. 월드컵에 쏟아 붇는 돈으로 누가 빨리 이 세상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가하는 경기를 벌려보기를. 그러면 인간의 천사적인 면이 살아나면서 이 세상은 더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믿으면서. 월드컵, 정말 별 볼일 아니다. 사람들 제 할 일 있을 때 그렇게 발광하지 않는다. 정말 할 일 없고 사는 게 재미없으니깐 월드컵, 월드컵 하는 게다. 그럼 좋다. 월드컵을 보라. 실큰 보라. 그런데 보기 싫어하는 나를 끌어들이지 말고. 월드컵, 누구 이기든 지든 관계없이 편견 없는 平常心으로 장난삼아 볼 수 있을 때 정녕 인간의 대동세계는 온다.2006. 6. 18
68    ‘아, 살고 싶다’와 ‘아, 죽고 싶다’ 댓글:  조회:4462  추천:83  2006-06-16
‘아, 살고 싶다’와 ‘아, 죽고 싶다’이 세상에 새빨간 거짓말 세 개 있다면 처녀가 시집 안 가겠다는 것과 장사치가 돈 못 벌었다는 것, 그리고 할머니가 죽겠다는 것이다는 것이다. 늙었으면 죽는 법인데도 죽기 싫어하는 것, 인간의 생명의식의 고양이다. 남자사형수가 사형을 당할 때 자기 생명의 씨앗을 뿌리는 경우도 학계에 이미 보고된 상식이다. 우리는 누구나 이 생명의식에 공감한다. 현실세계를 부정하는 종교의 존재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생명의식이다. 인간의 생명을 신선이나 부처나 천당으로까지 연장하니 말이다. ‘好死不如懶活’, 개, 돼지처럼 어떻게 해서나 사는 것이 장땅, 오래 살다보면 신선도 되고 부처도 되고 천당에도 갈 수 있다는 착각, 이것이 우리 인간의 진면모다. 우리는 평시에 죽음을 떠올리는 화장터나 시체조차도 기피해왔다. 그리고 저주하는 말 가운데 ‘가서 썩어져라!’, ‘뒈져라!’, ‘꺼져라!’ 등 죽으라는 말에 가장 큰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 제일 죽기 싫어하는 존재로 인간을 꼽아야 할 것이다. 바로 이런 끈질긴 생명의식 때문에 인간은 먹을 것, 못 먹을 것 다 주어먹고 잡아먹고 만들어 먹으면서 오늘 이때까지 지구에서 가장 큰 군단을 형성해 오며 만물에 군림해왔다. 그런데 바로 이 생명의식의 뒤안길을 뒤져보면 인간에게는 분명 죽음의식도 도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생명의식이 인간의 드러난 의식(顯意識)의 세계라면 죽음의식은 인간의 잠재된 의식(潛意識)의 세계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평시에 ‘죽겠다’는 말을 참 많이 쓴다. 배고파 죽겠다, 배불러 죽겠다, 고와 죽겠다, 미워 죽겠다, 더워 죽겠다, 차거와 죽겠다, 바로 ‘죽겠다’는 말로 극한치를 나타낸다. 정신분석학에서는 바로 인간이 자주 쓰는 관습어, 반복하여 쓰는 말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인간의 잠재의식을 들여다본다. 인간이 바로 ‘죽겠다’는 말을 심심찮게 입에 올리는 것은 잠재의식 속에 있는 잠재되어 있던 죽음의식의 표출에 다름 아닌 것으로 본다. 생로병사, 자연의 섭리. 인간은 이 자연의 섭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늙어가다 보면 면역력이 떨어져 병들고 병들어 고생하다보면 죽고 싶은 것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지상정이다. 그리고 살아가다보면 자기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인생의 이런저런 어려움에 부딪치게 된다. 그래서 삶이 힘들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 힘듬이 겹치고 겹칠 때 살기 싫은 죽음의 욕망도 생겨날 것이다. 이로부터 우리에게 생소하지 않은 스스로 자기 생명을 끊는 자살이 이루어진다. 한국의 영화스타 이은주가 자살했을 때 당시 앙케이트 조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수시로 자살충동을 느낀다고 했는데 그것은 바로 잠재의식속의 죽음의식의 다른 한 표출에 다름 아니다.죽음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바로 숙명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인간은 그것을 초탈의 경지에서 홀가분하게 받아들인다. ‘돌아가셨다’, 죽음을 우리가 원래 왔던 고향으로 돌아간 것으로 파악한다. 죽음을 초개같이 여긴다는 ‘視死如歸’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종교에서 인간의 죽음을 위하여 마련한 신선세계, 열반세계, 천당 등도 결국 따져보면 죽음의 한 초탈경지를 마련하고 있다. 원래 없던 ‘나’라는 존재(無)가 생겨나(有)서 다시 원래 없던 ‘나’라는 존재로 돌아가(無)니 돌고 도는 자연의 순환이치에 귀의하는 天人合一의 경지가 따로 없다. 이로부터 우주자연과 더불은 생명의 영원한 존재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나’라는 존재는 無로 돌아가지만 그 대신 제2세, 제3세...의 ‘나’가 생겨나며 이 세상에 생명의 파노라마를 연출하는 것을 볼 때 죽음은 웃으며 맞이할 수 있는 생명의 한 고리가 되겠다. 인생은 생명의식과 죽음의식의 교향곡이다. ‘아, 살고 싶다’와 ‘아, 죽고 싶다’의 교향곡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때까지 ‘아, 살고 싶다’만 너무 의식하고 집착해온 것 같다. ‘아, 죽고 싶다’는 잊고 오다가 그것이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는 당황해나기도 했다. 어쩌면 드러난 의식에서 고양된 ‘아, 살고 싶다’가 ‘아, 죽고 싶다’를 잠재의식 속에 밀박아 두었다고 볼 수 있다. 정신분석학에서 보면 잠재의식 속에 억압된 인간의 욕망들을 승화시켜 표출시킬 때 인간은 건강한 심신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놓고 볼 때 우리는 인간의 죽음의식도 자연적이고 정상적인 것으로 떠올려보며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를 가다듬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나 개인은 유교나 기독교 같은 종교에서 자살을 절대적인 죄로 보는 관점과는 달리 인간이 죽음을 선택하는 한 방식이라고 할 때 절대적으로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불교에서 대성한 스님이 자기의 죽을 시기를 알고 좌선한 자세로 열반에 드는 모습은 슬픔보다는 어딘가 모르게 거룩한 면이 있다. 불교의 한 교파인 라마교에서 죽은 시체를 칼탕쳐 영혼의 승화를 돕는 儀式도 무섭다기 보다는 인간의 죽음을 승화시키는 신성함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그리고 기독교에서 인간의 죽음을 슬픔보다는 천당으로 가는 축복된 것으로 찬송가를 불러주며 보내는 모습도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죽음의식의 한 표출이다. 일부 나라들에서 불치의 병에 걸려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한 환자들에게 안락사가 허용되는 것도 인간의 죽음의식 및 죽을 권리에 대한 존중으로 볼 수 있다. 잠재의식속의 죽음의식을 드러난 의식세계로 떠올리고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고 맞이하는 자세를 갖추는 것도 인간이 인간으로 남는 아름다운 한 모습이다.2006. 6. 11
67    朝流 댓글:  조회:4435  추천:62  2006-06-11
朝流요새 무슨무슨 流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을 지칭하는 언어관습인 것 같다. 한국 바람을 일구고 있는 귀에 익은 韓流가 그 단적인 보기가 되겠다. 그래서 나는 우리 중국의 개혁개방 전에 일었던 조선 바람을 떠올려 본다. 나는 이것을 朝流라 부르기로 했다. 朝流는 뭐니뭐니 해도 영화를 필두로 꼽아야 할 줄 안다. 당시「꽃파는 처녀」를 비롯한 조선영화들이 중국으로 대거 들어왔다. 그때 조선영화는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당시 조선영화 외에 다른 사회주의나라들의 영화들도 많이 들어왔다. 월남영화「阿福」, 알바니아영화「용감한 사람」, 유고스라바아영화「와얼트가 사라르궈를 보위하다」,「다리」, 소련영화「1918년의 레닌」등이 아직도 머리에 남아있다. 당시 이런 사회주의권 외국영화들 가운데 단연 조선영화가 가장 많은 양을 차지했다. 당시 우리 ‘안쪽’에서는 이런 외국영화들에 대해 별명을 달았는데 조선영화는 ‘又哭又笑’, 월남영화는 ‘飛機大炮’, 알바니아영화는 ‘勇敢的人’, 유고스라비아영화는 ‘와얼트’하는 식이었다. 우리 중국영화에 대해서도 별명을 달았는데 그것은 ‘新聞簡報’이었다. 이렇게 놓고 볼 때 예술적으로 조선영화에 대해 가장 후한 점수를 주고 있는 셈이다. ‘又哭又笑’니 보는 사람들의 눈물샘 웃음샘을 자극하여 희노애락의 감정을 잘도 유발한다는 것이다. 예술의 본령에 가닿았다는 말이 되겠다. 이에 비해 월남영화는 거저 대고 ‘미국 놈’들과 싸우는 영화로 비행기와 대포가 주메뉴가 되는 만큼 따분하고 중국영화는 정식영화를 돌리기 전에 시사교육을 위해 뉴스형식으로 먼저 돌리는 ‘新聞簡報’만큼이나 재미없다는 식의 비양조가 은근히 깔려있다. 1970년대 초반에 겨우 10살에 턱걸이를 한 나었건만 조선영화 한편 보는 것이 최대의 소원이었다. 그때 우리 ‘안쪽’에서는「꽃파는 처녀」를 시간대로 나누어 24시간 돌렸다. 매 상영시간대마다 당시 중국말 그대로 관객이 ‘暴滿’할 정도였다. 기억컨대 나는 어머니, 아버지를 따라 새벽 2시 시간대에 상영하는「꽃파는 처녀」를 보았다. 그때「꽃파는 처녀」를 보면서 관객들이 자기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로 온 영화관이 눈물바다가 되는 것이 참 가관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올 때면 모두들 손수건을 들고 상기된 얼굴에 눈물을 닦느라고 여념이 없다. 한번은 우리 짜개바지 친구 몇이「꽃파는 처녀」를 보았다. 울면 머저리, 하고 누가 울지 않는가를 보기로 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절로 흘러내리는 눈물에 아, 니 울었다, 니 울었다 하면서 서로 놀려주기도 했다. 그때 물론 냉전의 이데올로기대립이 팽팽한 시기라 이런 사회주의권 영화들이 사상교육의 열을 올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것이 극단으로 발효된 것이 강청의 ‘八大樣板戱’ 조작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八大樣板戱’는 정말 재미가 없다. 거저 앵앵~ 하다가 만다. 일단 재미가 없으니 보기가 싫어 사상교육이 잘 될 리가 없다. 그때 학교에서 집단적으로 조직하여 보았지만 ‘樣板戱’를 볼 때면 잠에 꼴아 떨어지기 십상이다. 그런데「꽃파는 처녀」를 비롯한 조선영화는 일단 참 재미나다. 관객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마력을 갖고 있다. 당시 ‘용감한 사람’이나 ‘와얼트’로 대변되는 사회주의권 외국영화의 딱딱함과 경직성은 더 말할 것도 없고 ‘八大樣板戱’가 통판치는 중국영화도 거기서 거기다. 그런데「사과 딸 때」나「꽃피는 마을」같은 조선영화는 희극편으로서 당시 희귀한 웃음을 선사하여 그 억압적인 시대적 분위기속에서나마 웃을 수 있었다. 후에 대학교에 입학하여 안 일이지만「꽃파는 처녀」같은 조선영화는 ‘감정조직’, 이른바 ‘감정의 축적과 폭발’ 등이라는 감정요소에 모멘트를 둔 문예이론에 바탕하여 예술적으로 치밀하게 짜여졌던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사상교육을 진행하되 예술적 감명 속에 자기도 모르게 사상교육을 받는 진짜 ‘寓敎於樂’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조선영화처럼 사상내용과 예술형식이 드놀지 않고 잘 조직된 영화도 보기 드물다. 그래서 나는 나도 모르게 조선영화「보이지 않는 전선」을 보고 특무들의 파괴활동에 경각성을 높였으며「금희와 은희의 운명」을 보고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느꼈고「피바다」를 보고 왜놈들을 미워하게 되었으며「영원한 전사」를 보고 불굴의 혁명투사가 될 결심을 하였고「압연공들」을 보고 노동자들을 따라 배울 결심을 하였으며「남강마을부녀들」,「세동서」를 보고 조선여성들의 위대함을 느꼈고「무명영웅」을 보고 적후공작의 매력을 느꼈으며「당의 참된 딸」을 보고 당원이란 어떤 사람인가를 알았다. 나는 그때 영웅이 되고픈 소년의 꿈에 들떠「영원한 전사」를 연속 두 번 보았고「무명영웅」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방하기도 했다. 그리고 사춘기에 들어서서는「꽃파는 처녀」의 꽃파는 처녀-花妮를 내 짝사랑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때 마침 사촌 형님이 영화관입장권을 체크하는 일을 보는 지라 그 ‘後門’ 덕택에 나는 많은 조선영화들을 보고 또 보았던 것이다. 그때 조선의 무슨 공연단이 어디에 와서 공연하오하면 보지도 못하면서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나며 흥분되는 것은 또 어인 일인지? 당시 조선은 내 마음의 동경처였다. 언제 한번 조선에 가보는 것이 나의 소원이었다. 내가 연변대학에 입학한 이유의 하나는 바로 연변대학이 조선의 지척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연변대학에 입학하자 바람으로 두만강변으로 가서 맞은 편의 조선의 산천을 바라보는 것이 최대의 소원으로 되었다. 그래서 어느 방학간엔가는 삼합에서 온 우리 동창 집에 가서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조선의 산천을 싫도록 보았다. 그리고 그때 삼합에서 텔레비존을 통해 조선 텔레비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는 소리에 마음은 얼마나 설레였으며 정말로 보고 듣는 그 순간은 또한 얼마나 숨가쁜 흥분의 도가니속에 빠져들었던가. 그래서 삼합의 우리 동창생과 몰래 좁은 여울목의 두만강을 건너 조선땅을 밟아보기도 했다. 그때 그 짜릿했던 느낌도 오늘까지 짜릿한대로 남아있다. 나는 이때부터 20년가까이 되는 2000년 새해 벽두에야 마음에 그리던 평양에 가볼 수 있었다. 그것도 1년간이나 분에 넘치는 융성한 대접을 받으며 체류했다. 그때 각종 행사때마다 보게 되는 조선의 예술공연에 감탄을 연발했다. 특히 조선노동당창건 55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진행된 연인원수로 10만명이 동원된 10만명 집단체조는 그 스케일이나 일사불란한 움직임 및 고난도 동작, 그리고 다양한 내용과 형식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당시 조선에 와서 음악무용대학에 다니는 중국 유학생이나 교환교수들을 만나서 이야기해봐도 다른 것은 잘 모르겠지만 조선의 예술에 대해서만은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며 극찬을 보냈다. 당시 조선영화의 특징으로 또 하나 꼽으라 하면 매 영화마다 주제곡이 꼭 있는 것이다. 어떤 영화는 주제곡뿐만 아니라 여러 노래가 나온다. 당시 조선영화 한편 돌리고 나면 바로 이런 영화주제곡이나 노래들이 유행되는 것이 현재 한국노래 유행되기와 맞잡이다.「꽃파는 처녀」를 돌리고 났을 때 ‘꽃사세요...’ 노래와 ‘천송인가 만송인가...’ 노래가 곧바로 ‘走紅’했는데 내가 그때 漢族 친구들 배워주기에 바빴다. 이외에「피바다」의 ‘우리 엄마 기쁘게...’ 노래,「당의 참된 딸」의 ‘포성이 울부짖는 전선길에서...’ 노래... 당시 히트 친 노래들이 많았다. 사실 朝流는 조선족의 조선으로의 回潮로도 나타났다. 똑 마치 현재 우리가 기를 쓰며 한국에 가려 하듯이. 1957년 반우파투쟁 때 민족주의문제가 불거져 나오자 억울함을 호소할 때 없는 조선족들이 조선으로 밀입국했다. 그리고 1960년 좌우 중국의 3년 자연재해 때 먹고 살기가 어렵게 되자 조선족들이 조선으로 대거 밀입국했다. 이때 우리 큰 형님도 대학 3학년 자퇴에 조선으로 건너갔다. 이로부터 우리 조선족의 ‘이산가족’의 기막힌 사연들도 많았다. 오늘날 韓流 때문에 새로운 ‘이산가족’이 생기듯이. 그때 조선에 가서 이밥에 명태국을 먹은 사람들이 아직까지 그때의 감격을 들먹이고 있다. 1970년대에는 정상적인 수속을 밟아 조선을 왕래하게 되었다. 우리 아버지도 이때 친지방문 즉 큰 형님을 만나보러 조선에 갔다. 그때 우리 아버지가 가져온 납숟갈에 스덴리스젖가락이 얼마가 멋지든지, 그리고 나이론 양말은 터덜터덜하나마 얼마나 질기든지 주위의 漢族 친구들과 학교 반 친구들한테 자랑하던 기억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朝流의 여운은 적어도 1980년대 초까지 미쳤다. 나는 1981년에 우리 연변대학에 입학하여 와서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이 현재 愛得백화점 자리에 있던 인민영화관이었다. 조선영화「꽃파는 처녀」를 우리말로 돌린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 遼寧에서 온 몇 친구들이 우르르 같이 달려갔었다. 우리는 워낙 ‘안쪽’에서 漢語로 돌리는「꽃파는 처녀」를 보았던 것이다. 그날 우리말로 돌리는「꽃파는 처녀」를 본 감동은 아직도 가슴에 아련히 남아있다. 그때 내 입에서 자주 흥얼거리는 노래의 하나가 바로 나의 고향인 沈陽의 市歌었다. 沈陽 市歌는 워낙 조선영화「꽃피는 마을」의 주제곡 멜로디에 새로운 가사를 써넣은 것이었다. 그때 우리 沈陽 市歌는 매스컴을 타면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나는 그때 내 고향의 市歌가 조선 노래 멜로디를 띠었다는 그 한가지만으로 알게 모르게 얼마나 가슴이 뿌듯해 났는지 모른다. 朝流는 적어도 1980년대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일본바람, 즉 日流에 밀리기 전까지 인기를 얻었다.朝流, 20여 년 전 내 기억속의 아름다운 회억의 한 풍경이다. 이제 언제면 다시 그 아름다운 풍경을 다시 볼 수 있을지? 2006. 6.10
66    인생은 짧다 댓글:  조회:3842  추천:63  2006-06-11
인생은 짧다인생은 짧다. 누구나 다 공감하는 명제다. 기원 2세기 좌우 조조의「短歌行」‘對酒當歌, 人生幾何? 譬如如朝露...’는 아직까지도 우리들의 가슴을 은은히 울린다. 나는 한국 트로트 가수 김종환의「백년의 약속」의 ‘우린 백년도 살지 못하고 언젠가 헤어지지만...’하는 가사를 들을 때는 항상 코마루가 찡해 난다. 실로 짧은 인생에 대한 개탄은 문학사에 끊이지 않고 면면히 흘러내려온 영원한 주제의 하나다. 인생은 짧다는 명제로부터 다른 두 상반되는 명제를 도출해낼 수 있다. 인생은 짧기 때문에 매 시각을 아끼며 열심히 살자는 명제↔인생은 짧기 때문에 되는 대로 막 살자는 명제. 인생은 이렇게 이율배반적이다. 우리는 이때까지 인생은 짧기 때문에 매 시각을 아끼며 열심히 살자는 명제에 더 공감하며 살아왔다. 나는 이 명제를 +명제로 부르기로 한다. 이 +명제는 사회적 요구에 부합되면서 자연히 우리의 드러난 의식(顯意識)의 가치추구로 되었다. 이에 반해 인생은 짧기 때문에 되는 대로 막 살자는 명제에 대해 우리는 터부시하며 살아왔다. 나는 이 명제를 -명제로 부르기로 한다. 이 -명제는 사회적 요구에 부합되지 못하면서 자연히 우리의 잠재의식(潛意識)속으로 붙박히고 만다. 사실 인간은 +명제만으로 못 산다. 너무 이 명제에만 매어달리면 우리는 살기가 따분해나고 너무 힘들어진다. ‘好人命不長’은 이것에 대한 한 주석이 되겠다. 실제로 ‘鬪私批修’의 극좌 세월에 우리의 삶이 얼마나 삭막하게 변했던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가장 대공무사한 사람이 실제로는 가장 自私自利한 사람식의 허위적인 인간을 키웠던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정신적 결백증자들을 기웠던가. -명제는 적어도 이런 +명제가 파생시킬 수 있는 역효과를 커버하는 면에서도 무시할 수 없다. 어떤 의미에서 +명제가 획일적이고 조이는 문화라면 -명제는 일탈적이고 푸는 문화이다. 술 한 잔 하고 알딸딸하여 이 세상이 콩 알만 해보이고 내 멋대로 놀아날 때 나는 +명제로 받은 스트레스를 확 풀 수도 있다. 나는 술 한 잔 할 수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인간의 정신건강상에서도 +명제와 -명제는 같이 가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이 +명제와 -명제의 균형체이기 때문이다. 그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 다른 한 쪽을 偏廢하면 심신의 병이 생긴다. 나는 이 +명제와 -명제를 상수도와 하수도에 비기고 싶다. 상수도는 드러난 의식처럼 위에 보이는 곳에 있어 사람들 고마움을 많이 느낀다. 그러나 하수도는 잠재의식처럼 밑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 사람들 고마움을 잘 느끼지 못한다. 상수도, 맑은 물이 나오니 참 좋다. 그렇다 해서 하수도 없이 맑은 물만 흘러 보내도 문제가 된다. 적어도 물난리가 난다. 그리고 상수도의 맑은 물은 쓰기 마련이다. 그런데 쓰면 오물로 되기 십상이다. 하수도가 없을 때 오물로 된 물은 더욱 큰 문제가 된다. 하수도는 적어도 오물을 처리하는 면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와 같은 도리로 -명제는 +명제의 ‘오물’을 처리한다는 의미에서 값지다. 하수도는 하수도로서 바로 이런 ‘오물’을 안고 거침없이 흐르고 처리해야 만이 나름대로의 존재가치를 실현하며 제 구실을 한다. 그리고 이 하수도의 ‘오물’이 정화되어 다시 상수도로 흘러들 수 있는 돌고 도는 세상의 이치도 엄존함을 알아야 한다. 실로 하수도가 없는 도시를 상상할 수 없다. 하수도와 상수도의 주고받는, 그리고 돌고 도는 역동적 관계가 +명제와 -명제의 역동적 관계에 다름 아니다. 나는 +명제와 -명제를 또 공기에 비기고 싶다. 공기 없이는 못 사는 줄 누구나 다 안다. 그러면 공기란 어떤 것인가. 사실 우리는 공기 속의 산소 덕에 산다. 그렇다 해서 공기 속에 산소만 있을 때 우리는 산소중독에 걸리어 죽고 만다. 공기 속에는 이산화탄소와 같은 다른 원소도 있어야 한다. 물론 이산화탄소와 같은 다른 원소가 일정량을 초과하면 또한 사람을 질식시킨다. 보다시피 사람을 살리는 산소도 좋고 죽이는 이산화탄소도 좋고 적정량을 확보하고 얽히고설킨 유기적인 관계를 가져야 만이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공기가 된다. +명제와 -명제도 마찬가지다. 우리 삶에 +명제 혹은 -명제를 극단적으로 추구해서는 인생의 파멸을 가져온다. 그럴진대 우리 인생은 +명제와 -명제가 얽히고설킨 유기적 관계임에 다름 아니다. 물론 이제 남는 것은 +명제와 -명제를 적시적소에서 발휘하며 바렌스를 맞춰가는 삶의 지혜문제일 것이다.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사회에 해를 주지 않는 전제조건하에서 -명제는 얼마든지 통하고 발휘되어야 할 줄로 안다. 우리 사회는 이런 허용도가 점점 넓어지면서 죽 발전해온 줄로 안다. 2006. 6.11
65    발 안마의 매력 댓글:  조회:4925  추천:82  2006-06-11
발 안마의 매력근간에 연길시 어른들의 밤생활 향락문화의 패턴이 바뀐 듯하다. 일단 술놀음이 많이 잦아진듯하고 술놀음을 벌리더라도 강권하지 않고 많이 마시지 않는 경향을 나타낸다. 술 앞에 장군이 없다는 명제를 명기하고 건강을 챙기는 줄로 안다. 그리고 이전에는 1차 술판에서 술을 곤드레만드레 마시고 2차 노래방에서 지랄발광하기였는데 이 2차도 이젠 노래방이 아니라 발 안마소로 직행한다. 그럼 발 안마의 매력은 어디에?먼저, 條條道路通罗马라 우리의 오장육부가 모두 발하고 연결되어 있단다. 발에 오장육부의 혈이 있으니 발혈에 지압을 가 하면 정말로 건강을 챙길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 異類相吸, 陰陽互補라 陰氣 혹은 陽氣를 받는단다. 그래서 남자 손님은 꼭 여자 안마사가 하고 여자 손님은 꼭 남자 안마사가 하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 있다. 이성의 손이 발을 문질러주는 과정에 陰氣 혹은 陽氣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 안마사들의 陰氣 혹은 陽氣가 다 빠지면 어떻게 하지? 그 다음, 쿠린내 나는 별 볼일 없는 발을 신주단지 모시듯 조심스레 깨끗이 씻어주고 정성껏 주물러주는 데는 황제대접 받는 듯한 붕 뜨는 기분이 든단다. 또 그 다음, 가격이 합리적이어서 일반 소비수준에 맞아 떨어진단다. 노래방에 한번 갈 것을 발안마소에 네댓 번 갈 수 있는 가격이니 그럴 듯하다.나는 발안마 문화를 선호한다. 현재 우리 연길시에 노래방이 상대적으로 잠잠한 대신에 발안마소가 많이 생겨나는 것은 바람직하다. 이것이 우리 연길의 관광상품의 하나가 될 수 있다. 현재 한국 사람들이 연길에 와서 꼭 들리는 코스의 하나로 발안마소가 부상하고 있다. 나는 이 발안마도 좀 민족적 특성을 살릴 수 없을가하고 생각해본다. 발 위부분의 안마는 무슨 中式, 韓式, 日式, 泰式... 요 하는 것들이 많던데 발안마는 이런 식들이 없는지? 없다면 조선족 식으로 한번 개발이나 해보지. 발이라는 것이 너무 작은 부위라 개발하기 힘들겠지만도. 태국에 가보니 태국전통 안마라 하여 태국안마가 관광객들에게 각광을 받는 것을 보고 한 번 생각을 굴려보는 것이다. 2006. 6.11
64    신길우 교수님, 우리 연변에 한번 더 오십시오 댓글:  조회:4006  추천:48  2006-06-03
신길우 교수님, 우리 연변에 한번 더 오십시오나와 신길우 교수님와의 인연은 몇 년 전으로 소급하게 된다. 그때 신길우 교수님은 우리 연변대학교 조문학부에 교환교수 차로 오셨다. 마침 우리 문예이론팀에 소속되었다. 그래서 나와 오며가며 자주 만나다보니 인연은 깊어만 갔다. 나는 그때 신길우 교수님께서 수필창작론을 강의하러 오시니 문창과 교수쯤으로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교수님은 원래 한국어 관련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으셨고 그 방면에 조예가 깊으셨다. 그는 워낙 우선 국어학자였다. 그런 만큼 한국어에 대한 그의 애착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는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에게 더 없이 감사하고 있는 듯하다. 그가 외국손님을 데리고 가장 먼저 찾아보는 곳이 바로 세종대왕릉이다. 언젠가 중국 요녕성의 심양 조선족 대표문인들을 초청하여 가장 먼저 참배시킨 곳도 바로 이 세종대왕릉이다. 내가 작년에 한국에 교환교수로 가 있을 때다. 원주에 자꾸 놀러 오라 하기에 갔더니 나를 승용차에 태우고 직행하는 곳도 바로 세종대왕릉. 같은 핏줄을 나누고 같은 말을 쓰는 조선족으로서 세종대왕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다. 그날 날씨는 몹시 찌물켰다. 신길우 교수님께서는 연신 내리흐르는 땀을 닦으시며 나한테 사진을 찍어주기에 여념이 없었다. 젊은 국문학도로서 그 바탕인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과 같이 해야 된다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세종대왕릉 앞에서 찍은 이런 사진들을 보면서 해외교포로서 한글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그리고 세종대왕에 대한 고마움을 금할 수 없다.신길우 교수님은 아름다운 우리말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여 주옥같은 수필을 써냈다. 그것도 1년에 거의 한권의 수필집을 펴내는 다산인 줄로 알고 있다. 실로 우리말의 진수를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런 면에서 그를 지행합일이라 해야 할 지. 그는 워낙 수필가이기도 했다. 알고 보니 그의 수필이 우리 학교 외국어대학 한국어학과의 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했다. 그의 수필 강의도 워낙 명강의였다. 학생들은 그 자상하고도 명쾌한 강의에 감복하고 말았다. 그의 강의는 어느새 대외로 알려져 ‘어머니 수필회’를 비롯한 사회의 문학애호가들조차 청강하였다. 그 중 몇이는 그의 팬이 되고 말았다. 그는 조선족은 문학창작이 우리말을 지키고 민족정체성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길의 하나라며 사명감에 넘쳐 역설했다. 신길우 교수님과 나는 종종 약주를 나누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우리는 거의 문학창작에 대한 열띤 토론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아직도 나한테 인상 깊게 남은 것은 언젠가 화사한 봄날 ‘어머니 수필회’의 아줌마들이 봄놀이를 가자고 신길우 교수님과 나를 특별히 초청했다. 그때 아줌마들은 봄놀이 가는 마당에도 각기 나름대로의 수필 한필씩을 써왔다. 문학소녀 같은 순수한 정열은 말릴 수 없었다. 그녀들은 워낙 신 교수님을 가까이 모시고 가르침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소중히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그날 말이 봄놀이지 실은 봄나들이 수필창작토론회가 되고 말았다. 신길우 교수님은 우리 여기서 우리 말 문학창작의 새싹들을 키워주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주간으로 있는『남한강문학』잡지를 통해서 등단시키기도 했다. 그때 등단한 많은 문학도들이 오늘도 우리 조선족문단에서 왕성한 문학창작을 하고 있다. 특히 신길우 교수님은 산재지구인 요녕성 심양의 조선족 문학단체인 ‘요동문학’과 원주문인단체와의 자매관계를 추진하고 그들의 창작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특히 그들을 초청하여 고국의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하고 문학교류를 진행했는데 이것은 지금도 요녕성 조선족문인들 속에서 쾌재되고 있다. 교수님은 우리 민족의 숨결과 얼이 슴배인 유적지를 많이 답사하기도 했다. 한번은 용정의 윤동주 묘지에 참배 갔다가 윤동주 여동생인 윤혜원 여사의 내외분을 알게 되어 지금까지 그 인연이 끈끈히 이어진 줄로 안다. 그때 윤혜원 여사 내외분은 ‘중학생 윤동주문학상 시상식’에 참가하기 위해 연길에 잠간 머물고 있을 때다. 그런데 인연이 될라니 교수님은 마침 이 시상식의 윤동주문학상의 심사위원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인연은 더 깊어졌는데 교수님은 윤혜원 여사 내외분이 연길에 머물고 있는 집에까지 초대되어 깊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교수님 나름대로 윤동주에 대한 새로운 발견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윤동주에 대해 발표한 논문은 이때까지 윤동주에 대해 학계에서 잘못 인식된 부분들을 시정하기도 했다. 교수님, 우리 연변에 한번 더 오십시오. 언젠가 우리 학생들하고 성자산성에 답사갔을 때 교수님께서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곳이라 하며 진지한 표정을 짓고 하나라도 놓칠 새라 비디오카메라를 돌려대던 모습이 아직도 선합니다. 정년이라 하시니 좀 가벼운 마음으로 푹 쉬러 오십시오. 놀러 오십시오. 물론 교수님한테는 정년이라는 것이 없겠지요. 작년에 교수님을 만나뵜을 때, 이제 정년을 하면 무엇 무엇을 해야지 하며 하나하나 손꼽아나가는 그 야심찬 계획에 젊은 저로서도 그만 두 손 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나도 무엇 무엇을 해야지 하고 말았지요.2006. 5. 24
63    짝사랑 댓글:  조회:3755  추천:47  2006-05-21
짝사랑사춘기, 짝사랑의 환타지계절.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어 발광나는 계절. 그러면서 사랑은 신비에 쌓인 두려운 것. 그래서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이가 없는 계절. 바로 이때 우리는 짝사랑에 빠진다.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이 혼을 절반 빼앗는 나날들... 그런데 이 짝사랑은 자기주제를 몰각한 一廂情願의 기껏 부픈 기대치에 놀아나는 환타지의 사랑. 나는 사춘기 때 조선영화『꽃파는 처녀』의 꽃분이를 짝사랑했다. 아무리 보아도 싫증나지 않는 사랑 사랑 내 사랑-‘꽃파는 처녀’. 영화관 게시판에 나붙은 꽃바구니를 들고 은근히 웃고 있는 대형 포스터의 꽃분이를 보는 것이 집과 학교 사이를 들락날락하는 최대의 낙. 거저 보기만 해도 좋은 사람... 그러다가 빗물에 색이 바라진 꽃분이를 보았을 때 내 가슴은 얼마나 아려났는지. 꽃분이에 대한 짝사랑은 결국 이제 크면 꼭 꽃분이 같은 처녀한테 장가가리하고 막을 내렸다. 물론 내가 장가를 갈 때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꽃분이하고 영 다른 여자한테 가고 말았다. 그러다가 까맣게 잊어진 듯한 꽃분이에 대한 짝사랑이 언젠가 또 한번 나를 들끓게 하며 흥분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기도 했다. 내가 조선에 갔을 때다. 어느 공식적인 행사에 갔다가 바로 꽃분이-꽃분이배역을 한 홍영희를 지척에서 우연히 만났다. 새물새물 웃는 모습은 뛸 데 없는 꽃분이. 순간 나의 피는 끓어올랐다. 나의 젊음의 정열이 아직 남아 있다는 증거다. 나는 막 미칠 것만 같았다. 나는 그대를 찾아 헤맸습니다. 나의 여신이여! 나는 이렇게 부르짖고 싶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그녀와 눈길이 부딪치는 순간 나는 그만 온 몸이 굳어지며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는 입속말로 ‘당산을 사랑합니다, 당신을...’하고 되뇌었다. 얼굴은 지지벌개가지고. 못난이 같으니라구! 신라 때 지귀라는 총각이 있었다. 언감생심 선덕여왕을 짝사랑했다. 선덕여왕을 만나고 싶었다. 그런데 구중궁궐 만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선덕여왕이 절로 행차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헐레벌떡 달려간다. 그런데 어느 새 여왕은 절로 들어가고 절문은 덜컹 닫기고. 허탈감에 빠진 지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피곤기가 몰려오고 소르르 잠이 든다. 그 사이 여왕은 절에서 나와 옥팔찌 하나를 깊이 잠든 지귀의 몸 위에 놓고 간다. 잠에서 깬 지귀, 옥팔찌를 발견하고는 다시 失之交臂의 허탈감에 빠진다. 그리고는 온 몸을 활활 태우며 불의 귀신이 된다. 짝사랑의 정열, 사랑의 정열, 불 자체.나는 이미 50대를 바라보는 어른이 되었다. 다시 한번 짝사랑의 순정과 정열을 불태우고 싶다. 다시 한번 짝사랑의 순정에 말이 나오지 않는 떨림을 맛보고 싶다. 지귀처럼 사랑의 정열에 타죽고 싶다. 그런데 나에게는 이미 그런 순정과 정열이 없다. 단지 담담하게 사랑을 바라보며 음미하는 조용함만 남았다. 이것이 성숙이런가. 그래도 나는 오늘 내 정신의 자유를 만끽하며 환타지속에서나마 순수한 짝사랑의 정열을 맛보고 싶다.2006. 5. 21
62    춘향과 황진이 댓글:  조회:3888  추천:76  2006-05-21
춘향과 황진이춘향과 황진이는 우리 남자들의 久遠의 두 여인상. 춘향과 황진이, 누가한테 장가들래 하면 우리 남자들 양손에 떡 쥔 격, 정신분렬증이 일어나기 십상. 워낙 춘양은 숙녀, 황진이는 요부. 바로 낮에는 숙녀, 밤에는 요부하는 그런 숙녀와 요부임에라. 우리 남자들의 앙큼한 심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 춘향, 일부종사의 정절을 지킨다. 변학도의 路柳墻花의 수청강요를 갸날픈 여인의 몸으로 맞받아친다. 매 열매에 사랑의「十杖歌」를 불러댄다. 만고의 정열부인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 춘향은 바로 우리 남자들의 ‘窈窕淑女, 君子好逑’ 타입. 춘향은 남에게 보이기 좋은 여자. 그래서 데리고 다니기 좋은 여자.『춘향전』에서도 보면 이도령은 결국 춘향을 데리고 상경한다. 그런데 우리 남자들은 춘향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밤의 요부-황진이가 필요하다. 그래서 분명 입으로는 사랑 사랑 내 사랑 춘향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청산리 벽계수야 쉬이감을 자랑말라/일도창해하면 다시 오지 못할거늘/명월이 만건곤하니 쉬여간들 어떠하리’의 황진이를 떠올린다. 황진이는 분명 보잘 것 없는 일개 기생이다. 그러니 우리 남자들 더러운 기생, 퉤퉤 한다. 그러면서도 자꾸만 가까이하고 싶은 황진이다. 황진이는 술 잘 한다. 한잔 하면 즉흥시에 가무에 흐드러진다. 우리 뭇 사나이들 침침 질질 흘리게 하고 뿅 가게 한다. 그래서 천하의 호남아 임제도 잔 들고 권할 이 없는 서러움을 ‘잡초 우거진 곳에/홍안은 엇다 두고/백골만 남았다’고 슬프게 읊었다.황진이와 춘향은 우리 남자들의 情, 理의 상징코드. 인간은 情, 理의 존재. 情은 물같이 흐르고 싶고 理는 뚝이 되어 막고 싶고... 인간은 심신건강상 情, 理발산의 대상을 찾아 헤맨다. 情, 理가 합일된 사랑의 발산대상을 찾지 못할 때 그것은 우리 남자들처럼 情의 상징코드, 理의 상징코드식의 분열된 상태로 치닫는다. 그럼 여자들은 어떤가? 역지사지, 여자들도 情, 理의 존재라 할 때, 그리고 그 情, 理가 합일된 사랑의 발산대상을 찾지 못할 때 마찬가지로 情의 상징코도, 理의 상징코드식의 분열된 상태로 치달을 것이다. 그럼 여자들의 情, 理의 상징코드는 누구? 이도령과 변강쇠? 여자들한테 물어볼밖에.2006, 5.21
61    하드와 소프트 댓글:  조회:3881  추천:85  2006-05-06
하드와 소프트하드와 소프트란 말은 지난 세기 90년대부터 컴퓨터가 보편화되면서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락내리락 하였다. 그러다가 어느새 하드와 소프트란 말을 모르면 촌스럽고 머저리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요즘은 하드와 소프트란 말이 난무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사실 난무한다기보다는 적당하게 씌일 때 참 멋있는 말이 되기도 한다. 軟環境-연성환경, 소프트가 붙은 신조어로서 관념갱신을 유도하며 우리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한다. 사실 이 세상이 워낙 하드와 소프트로 이루어졌으니 하드와 소프트가 난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님. 우리 인간 하나만 놓고 보아도 머리, 몸덩어리, 사지, 뇌, 오장육부, 신경, 혈관 등은 하드를 이룬다. 그리고 하루에도 오만가지 생각을 굴리는 우리 머리 속 생각들은 소프트를 이룬다. 바로 이런 하드와 소프트의 온전한 결합 속에 우리는 인간으로 남는다. 이렇게 놓고 볼 때 하드와 소프트는 누가누구를 떨어질 수 없는 듯하다. 그러니 다 같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그런데 천치바보를 생각하거나 생각을 멈춘 식물인간을 생각할 때 인간에게 있어서 소프트가 훨씬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인간 뇌의 연장이라는 컴퓨터도 마찬가지다. 프로그램이 없거나 엉망일 때 데스크탑이 아무리 그럴듯하고 모니터가 아무리 멋지다 해도 그 컴퓨터는 무용지물에 다름 아니다. 대학교도 마찬가지다. 대문, 교실청사, 도서관, 실험청사, 기숙사동, 식당, 매점, 강당, 운동장... 그리고 이런 것을 한 품에 안고 있는 캠퍼스는 하드. 그리고 이 하드들에 들락날락하는 대학교 주체로서의 학생과 교수들의 생각, 그리고 학교 학사, 인사 등 운영은 소프트. 대학교 하드와 소프트로 우리 연변대학교를 보면 요 근간에 하드는 참 많이 변했다. 좋게 변했다. 벌어 써든 꿔서 써든 돈이 참 은을 냈다. 돈이 날개라는 말이 실감나기도 한다. 1980-90년대 졸업한 친구들이 학교를 찾으면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을 실감하며 학교의 하드 변화에 혀를 내두른다. 그런데 이제 또 5-6억을 투자하여 밖에 있는 의학원, 농학원을 대학본부가 있는 캠퍼스 쪽으로 끌어들이고 통합 캠퍼스건설에 박차를 가한다니 그럴 듯하다. 이제 통합 캠퍼스 건설에서 기존의 올밀졸밀한 공간배치와 답답한 공간거리에서 벗어나고 너무 촌스럽게 삐까삐까하는 것을 좀 죽이고, 그리고 학교 담벽을 없애고 바깥세계와 직접 통하는 오픈된 모습을 갖춘다면 내가 보기에는 하드는 그만하면 됐다. 문제는 소프트다. 보다 중요한 소프트가 문제다. 우리 학교에는 아직도 고루하고 평준화된 생각을 가진 교수들이 많다. 어느 교수 머리 박박 밀고 빤빤 대가리하고 강의에 들어갔다고 할 때 교수 헤어스타일 저래서는 안 되는데 하며 머리를 갸웃하고 뒤 공론하는 교수들이 많다. 별 보잘 것 없는 일에 신경을 많이 쓰며 정작 써야 될 곳은 안 쓰고. 그리고 누가 좀 튀는 생각을 하면 정신병자하고 쳐다보기. 怪才, 괴짜를 허용하고 제창하는 분위기가 없다. 尊重人才의 의미를 진정으로 되새길 줄 아는 교수가 적다는 말이다. 그리고 내일 지구가 폭파한다고 해도 오늘까지 책을 들고 좋아서 보는 진짜 책귀신, 책벌레들이 적다. 대학교의 가장 키포인트인 교수들의 관념갱신, 두뇌의 프로그램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도서관, 대학교의 두 번째 키포인트. 우리 학교 도서관운영시스템은 본말이 전도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교수나 학생들 중심으로 도서관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 직원들 중심으로 돌아간다. 예컨대 7층 도서실은 우리 학교의 도서관 특색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조문장서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아직까지 컴퓨터검색조차 할 수 없는 상황, 그리고 열심히 책을 보고 있는 교수나 학생들을 직원들이 점심시간이 되었다고 내쫓기, 그리고 퇴근시간이 되었다고 내쫓기, 그리고 토요일, 일요일은 아예 문도 열지 않음. 그리고 여기 책은 대출도 안 되는 법이니 실로 이 조문도서의 이용율은 얼마나 되는지 의문. 교수와 도서관의 소프트가 잘 되면 학생들의 소프트는 절로 따라 오게 되어 있고 잘 되게 되어 있다. 우리 학교 學事일정에도 본말이 전도된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다. 학교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학생이다. 학생들이 과목을 선택하고 교수를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학교는 아직 교수중심의 일방적인 과목배치, 권위적인 시험채점이 통하고 있다. 선진국의 대학교 학사시스템을 보면 교수들이 한 학기 강의할 수 있는 과목을 제시하고 학생들이 필수과목, 선택과목 등 기준에 따라 마음대로 수강신청을 한다. 그리고 교수강의 한번 들어보고 수강신청을 철회하거나 조절할 수 있는 수강신청 변경시간을 1주일 준다. 이래저래 필수과목이든 선택과목이든 규정된 수강신청수 미달일 때 그 과목은 폐강된다. 그 과목을 가르치는 교수가 강의를 못하게 된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기말시험을 치고 난 후 학생이 자기 시험성적을 체크하려면 컴퓨터상으로 담당과목 교수에 대해 제시된 레벨에 따라 평가를 해야 체크할 수 있도록 컴퓨터프로그램이 그렇게 되어 있다. 그리고 자기 성적이 잘 못 채점되었다 싶으면 성적이의 체출기간에 담당과목 교수에게 문의하면 교수는 반드시 해명과 답복을 주도록 되어 있다. 한마디로 전반 학사일정이 학생중심으로 돌아가며 ‘群衆的眼睛雪亮’ 식으로 교수에 대해 일종 감독을 하게 된다. 우리 학교 人事시스템도 문제가 있다. 선진국의 대학교처럼 학과장 같은 별 볼일 없는 보직은 학과교수들이 돌아가면서 윤번으로 하도록 하고 별 볼일 있는 보직은 반드시 선거에 의해 뽑되 보직에 앉은 교수는 임기가 차면 곧바로 물러나 평교수가 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인사가 이런 시스템으로 돌아갈 때 惰性이 생기지 않고 권위의식이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현재 우리 학교 인사는 일단 별 볼일 없는 보직까지도 조직분지 뭐인지 하는데서 임명하기. 그러니 그 보직은 신비하고 권위가 부여된다. 그러니 보직에 앉자면, 출세하자면 기를 쓰고 위에 잘 보이기, 조직에 잘 보이기. 가련할시구! 그런데 참 웃기는 것은 이른바 민주투표라는 것이다. 매번 조직분지 뭐인지서 보직에 적임자를 임명할 때 민주투표를 하기는 한다. 그런데 투표결과를 공개하지 않는다. 단지 조직분지 뭐인데서 참고용으로 본다는 것이다. 정말 눈 가리고 아웅하기 식. 앞으로 이런 투표는 다시는 하지 말기를! 우리 서민들을 놀린다. 나는 앞으로 절대 이런 투표에는 참가하지 않겠다-서민의 알 권리가 무시당하는 투표를! 그리고 우리 학교 보직은 대개 정책의 연속성 운운하며 한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한기 더 연임할 수 있도록 제도화되어 있다. 그러니 너도나도 연임. 여기에 연임이 끝나면 다른 보직으로 跳槽하기. 그리고 跳槽한 보직에서 또 연임하기... 교수란 사람들이 강의와 연구는 옳게 안하고 연임에 跳槽만 하다 보니 세월 다 가고 만다. 이것이야 말로 정말 교수 사기군의 한 행태. 그러니 한시바삐 교수보직의 신비성과 권위성, 타락성을 깨는 인사시스템을 가동해야 한다. 사실 대학교의 이런 소프트문제는 우리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고 대학개혁의 轉形期에 놓인 우리 중국 대학교의 통합적 병폐다. 하드는 뜨르르한데 소프트는 부실한 것...그래서 나는 세계 유수의 명문들을 떠올려 본다. 영국의 옥스퍼드대학교와 캠브리지대학교, 아직도 대학교가 서서 사용하기 시작한 15-16세기 문예부흥시기 건물을 그대로 쓴단다. 그래서 밖에서 보면 고풍스럽기는 하나 거무틱틱하고 좀 지저분하기도 하고 안에 들어가 보면 어두워 낮에도 전등불을 밝히지 않을 수 없으며 흑판이요, 책상이요, 걸상이며는 많이 닳아 있어 반들반들하다. 이 모든 하드들이 현대 최신식하고는 거리가 먼 것 같다. 그러나 여기에는 세계최신지식으로 무장하고 항상 발랄한 생각과 오픈된 마인드를 가진 일류 교수가 있고, 그리고 자동화온라인으로 사시장철 교수와 학생들을 위해 서비스하는 일류 도서관이 있고, 그리고 가장 효과적이고 합리적인 대학교 학사와 인사시스템을 갖춘 소프트가 작동하고 있다. 2006. 5. 4
60    我思故我在-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댓글:  조회:3691  추천:81  2006-04-28
我思故我在-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을산은 언제든지 벗는다못 벗는 것은 나다산은 벗어도 당당하고나는 입고 있어도 춥기만 하다-「가을산」전문(연변조선족문화발전추진회 엮음:『중국조선족명시』, 북경민족출판사 2004)언제든지 벗는 ‘가을산’이라는 자연이미지를 모멘트로 하고 여기로부터 튀어져 나오는,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구속스럽기만 하고 답답하기 그지없는 인간 본연의 실존을 길항적으로 극명하게 보여주면서 일탈의 욕망을 꼬드겨 붕 뜨게 하며 잠 못 들게 했던 허련화, 너는 이제는 우리 조선족의 현실적 실존을 아파하구나. 순수시에서 참여시에로의 변신이라 할까, 여하튼 너는 새로운 변신을 하고 있는 거지, 그렇쟈?너는 인간 본연의 실존을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으로 잘도 개괄했다. 형이상학-‘형이상학은 머리위의 것이다./끝없이 하늘로 비상하는 것들. /새처럼 가볍게 나는 것, 구름처럼, 성당의 종소리처럼/신비로운 것/그래서 아름다운 것.’ 형이하학-‘형이하학은 인간의 몸뚱어리다./땅위를 기어다니는 것, 먹고 배설하는 것, 구체적인 것,/어쩐지 부끄러워서 숨기고 싶은 것.’ 그렇다. 인간이 정신과 육체적 존재라 할 때 인간은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으로 되어 먹었다. 그런데 너는 이 형이적인 인간 실존을 제시하면서도 결론적으로 ‘그래서 아름다운 것’과 ‘어쩐지 부끄러워서 숨기고 싶은 것.’으로 분명 형이학적인 인생을 추구하구나. 그래서 스스로 ‘자칭 형이상학’이라 했다지. 그래 너는 도고한 맛이 있어. 그래서 너는 중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석사가 되고 현재는 한국의 최고 명문 서울대학교에서 박사별을 바라보고 있지. 그런데 ‘서울출입국사무소 중국 창구 앞’에 서는 순간, 너의 ‘자칭 형이상학’은 깨어지고 만다. 그것은 정말 빈 껍질의 허울 좋은 자아감각의 ‘자칭’으로만 남고 만다. ‘수많은 형이하학이 줄지어 앉아있다./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들은 날지 못한다. 그들은 배고프기에’. 너는 한국에서 살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우리 조선족을 보았쟈? 끝없이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3D일만 차례지는 가련한 우리의 실존이다. 그래도 우리는 기를 쓰고 한국에 가야 하고 한국에 눌러 붙으려 한다. 한국은 아직 우리에게 있어서 노다지판이다. 그런데 여기에 그치고 마는 너가 아니지. 너는 우리의 실존과 더불어 너 자신의 실존도 깨닫지. ‘자칭 형이상학인 나도 그들 사이에 끼어있’지 않은가? 서울대학교 박사를 한답시고 한국에 발을 들여놓은 너-형이상학. 그런데 먹고 살기가 바쁘다. 힘들다. 그래서 헐레벌떡 올리뛰고 내리뛰어야 하는 니 신세, 이 오빠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버젓한 박사별인지 뭐인지 딴다는 것도 결국 잘 먹고 잘 배설하자는 것하고 매치가 많이 되지? 그러니 허울 좋은 빛 좋은 개살구. 그러니 50보에 100보! 그렇쟈? 그 잘난 유학은 내가 니 선배가 아니냐? ‘가만히 들여다보니 나도 형이하학인 것 같다’. 임마, ‘같다’가 아니라 바로 그런 거다. 좀 솔직해라. ‘나는 형이상학과 형이하학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그렇지, 솔직해서 좋다. 니네, 우리 조선족의 실존, 아무리 형이상학을 하려고 해도 현 단계 될 수 없다. 우리는 형이하학일 수밖에 없다. ‘형이상학과 형이하학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것은 그래도 약과다. 니니깐 그래도 오락가락하쟈! 그래도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우리는 모두 형이하학으로 앉아 형이상학을 꿈꾼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니 같이 出汚泥而不染의 연꽃-蓮花. 我思故我在-‘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의 명제가 그대로 들어맞는 순간이다. 우리는 ‘끝없이 하늘로 비상하’기 위해, ‘새처럼 가볍게 나’기 위해 오늘 ‘땅위를 기어다닌’다. 그리고 ‘먹고 배설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들이 아무리 ‘형이상학을 꿈꾸어도’ 그 사람들, 한국 양반들이 ‘우리를 형이하학이라 부르’는데 문제가 있다. 한국 양반들은 우리를 초라하게 본다. 우리를 떨어버려야 할 짐으로 본다. 우리는 반갑지 않은 손님. 그래서 고국이요, 민족이요 하며 달려온 우리를 울리지 않느냐. 지난 세기 ‘90년대 내가 ‘서울출입국사무소 중국 창구’ 앞에 섰을 때 한국 양반들 이거, 북한의 형이하학이 아닌가 하고 이리 묻고 저리 묻고, 이리 뜯어보고 저리 뜯어보며 질질 끌었지. 똑 마치 범죄자를 심문하듯이. 그러니 형이상학을 꿈꿀 시간도 없었지. 그때 일본친구들하고 대만친구들 우리 같은 창구를 썼는데 그들은 5분도 안되어 OK 소리를 들으며 팔자걸음으로 돌아 나왔지. 나는 그때 내가 진짜 중국 사람인 것을 알았지.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중국 조선족의 형이상학을 꿈꾸기 시작했네. 한국 양반들 아무리 형이하학이라 불러도 관계없이. 그렇다. 우리는 꿈꾸는, 생각하는 것으로 우리의 존재-새로운 실존을 찾아야 한다. 허련화의《서울출입국사무소 중국 창구》(미발표. 나한테만 발표)를 횡설수설로 음미해보았다. 횡설수설을 요약하면 추상적인 철학명제인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을 살아 움직이게 형상적인, 의인적인 시적 메타포로 구사한 것이 돋보인다. 그리고 다양한 대조적인 수법으로 시적인 이미저리를 조직해나간 것이 특징이다. 시의 시작 두절은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보편적인 인간실존의 대조적인 양상을 전반 시적 경지의 전제로 극명하게 깔아둔다. 그리고 시적 화자의 눈에 비친 ‘수 많은 형이하학’과 ‘자칭 형이상학’인 내가 대조를 이룬다. 그런데 ‘자칭 형이상학인 나도 그들 사이에 끼어있다./가만히 들여다보니 나도 형이하학인 것 같다.’라는 두 구에서 ‘나도’라는 포함의 뜻을 내비침으로써 일종 落差의 대조를 가져와 보다 효과적이다. 그리고 ‘나는 형이상학과 형이하학 사이를 오락가락한다.’에서는 내 스스로의 마음의 대조 색으로 헷갈리는 복잡한 내심세계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어서 ‘우리는 모두 형이하학으로 앉아 형이상학을 꿈꾼다.’에서는 전반 시의 起承轉結(물론 시의 절의 차원이 아니라 내용적 차원에서)에서 일종 轉의 대조적 역할을 하면서 변증법적 인생경지를 제시하고 있다. ‘우리들이 형이상학을 꿈꾸어도/사람들은 우리를 형이하학이라 부른다.’에서는 마지막 절에서의 承轉의 대조적 역할을 하면서 結을 곁들이고 있다.한마디로《서울출입국사무소 중국 창구》는 별 볼일 없는 것 같은 소박함속에 거창한 인간실존, 우리의 실존이 녹아들어 있어 머리를 수굿하고 음미하게 한다. 너처럼 수수하면서도 음미할 것이 있어 좋았다. 시의 진수를 보여주는 듯하다. ‘이미지폭력조합’이나 ‘파격적인 이미지조합’으로 몽롱하고 또 몽롱한 나만의 잠꼬대세계를 추구했으되 사실 알고 보면 별 볼일 없는 그런 이미지시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나 혼자만 좋다구 찧고 빻으면 蓮花 짝사랑에 빠져 진짜 횡설수설하는 줄로 알 것이니 우리 같이 음미해보도록 빵빠래~ 형이상학은 머리위의 것이다.          끝없이 하늘로 비상하는 것들.           새처럼 가볍게 나는 것, 구름처럼, 성당의 종소리처럼           신비로운 것           그래서 아름다운 것.           형이하학은 인간의 몸뚱어리다.           땅위를 기어다니는 것, 먹고 배설하는 것, 구체적인 것,           어쩐지 부끄러워서 숨기고 싶은 것           서울출입국사무소 중국 창구 앞에는           수많은 형이하학이 줄지어 앉아있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들은 날지 못한다. 그들은 배고프기에           자칭 형이상학인 나도 그들 사이에 끼어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나도 형이하학인 것 같다           나는 형이상학과 형이하학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우리는 모두 형이하학으로 앉아 형이상학을 꿈꾼다.           우리들이 형이상학을 꿈꾸어도           사람들은 우리를 형이하학이라 부른다.                -《서울출입국사무소 중국 창구》전문
59    사랑의 변증법 댓글:  조회:4277  추천:76  2006-04-15
사랑의 변증법우리는 여보당신밖에 없소 하는 진솔한 고백 속에 사랑의 만리장성을 쌓는다. 그러다보면 이 만리장성을 도탑게 할 아이들도 생겨난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애물단지다. 이 아이들이 묘한 비교급부 하나를 형성한다. “아이는 내 아이 곱고 색시는 남의 색시 곱기”. 이로써 걷잡을 수 없이 발동되는 남자들의 바람기. 저 아이 다 낳은 여편네 볼 거 다 보고 할 거 다 했으니 이제 더 별 볼일 없다는 식상한 상-권태감. 이거 막 하는 얘기가 아니고 미국의 어느 권위 있는 조사기관에서 부부간의 이혼문제를 조사해봤더니 딱 정확히 결혼해서 아이를 가져서부터 2-3년 사이에 권태감이 온다는 것이다. 그럼 왜 이런 권태감이 오느냐가 문제다. 심리학자나 미학가들은 사랑의 심미거리상실로 풀이한다. 처녀총각 연애 때 참 좋다. 서로 수다 떨고 애교 부리고 줄가말가 하면서 주기도 하고 안 주기도 하기. 그래서 연애는 밀고 밀리고 끌고 끌리기. 연애는 대방을 알기 위한 정신적인 몸부림. 하나하나 정신적인 베일을 베끼는 가운데 신비의 전율을 느낀다. 그렇지만 그 베일이 다 베껴지는 것은 아니다. 연애는 충분한 사랑의 심미거리를 확보한다. 그래서 연애는 항상 아름답고 달콤하다. 그래서『詩經』에서 연인을 기다리는 마음을 一日如三秋라 했던가. 그래서 연애가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르면 결혼에 골인하기. 결혼은 대방을 알기 위한 육체적인 몸부림. 하나하나 육체적인 베일을 베끼는 가운데 신비의 전율을 느낀다. 그러다가 아이라도 생기고 산고의 고통을 같이 치르고 나면 육체적인 신비의 베일은 다 베껴진다. 그러면서 흥분중심은 그 아이한테로 간다. 오, 내 새끼, 티끌 하나 없이 고운 내 새끼,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새끼. 맞다. “아이는 내 아이가 곱다”. 내 생명의 대상화이고 연장이니깐. 그리고 그 세대차속에서 느껴지는 깜찍함, 귀여움은 영원한 심미거리를 형성한다. 그래서 자꾸만 낳고 싶은 것이 아이다. 이때 쯤 되면 찰떡궁합 같은 부부도 흥분중심은 언녕 아이들한테 가 있다. 재롱재롱, 섬바섬바, 아이들 구미에 맞춰주기에 여념이 없다. 특히 여자는 완전히 아이에 빠진다. 남편은 뒤 전에 한 채 헌신적인 모성이 발동된 것이다. 젖 먹이기에, 귀저기 갈아주기에, 자장가 불러주기에... 모성에 놀아나는 여자는 부끄러울 것이 없고 뻔뻔스럽기도 하다. 그러다보면 여자는 자기의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사랑의 심미거리가 영으로 되는 순간들이다. 이로부터 매력도 그만큼 떨어진다. 그래서 남자는 느낀다-戀愛是天堂, 結婚是地獄. 이로부터 喜新厭舊도 발동된다. “아이는 내 아이 곱고 색시는 남 색시 곱다”는 말이 몸에 와 닿는다. 중국어의 “家花不如野花香”도 같은 맥락이겠지. 그러면서 자기도 모르게 눈길은 슬그머니 다른 여자한테로 간다. 속된 말로 바람기의 발동이다. 그래서 천금 같은 우리 사랑의 만리장성도 금이 가기 시작한다. 여기서 역지사지로 여자도 마찬가지. “아이는 내 아이가 곱고 남자는 남의 남자가 더 멋있어 보인다”가 몸에 와 닿는다. 그런데 여자는 남자보다 좀 더 늦게 그리고 은폐적으로 이것이 드러날 뿐이다. 눈 먼 모성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가 다 크고 남편이 자기에게서 많이 멀어진 것을 느낄 때 여자는 외로워나고 우울증에 사로잡힌다. 여성들 중년의 바람기가 한 돌파구로 발동된다. 남자여자가 이쯤 들뜨게 되면 그 어느 소설가가 말했듯이 결혼이란 황금으로 된 숨 막히는 답답한 집이 되고 만다. 안의 사람들은 뛰어나오지 못해 안달을 하고 밖의 사람은 들어가지 못해 안달을 하는 그런 빛 좋은 개살구의 집.그럼 하루저녁만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부부간, 一日夫妻百日恩이라는 부부간, 그렇게 물 먹은 담처럼 쉽게 맹랑하게 무너져야만 하는가? 아니, 우리는 先結婚後戀愛의 삶의 지혜를 구사해볼 수 있다. 우리의 남녀칠세부동석의 부모세대들은 바로 연애가 생략된 결혼으로 골인했다. 그래서 우리는 허구픈 웃음을 웃기도 했다. 연애 없는 결혼을 어떻게 할 수 있으며 그 결혼은 또 어떻게 유지되는 가고? 그런데 그들은 결혼도 잘 했고 우리까지 낳지 않았는가? 그 비결은? 바로 우리의 사랑패턴을 뒤집는 先結婚後戀愛. 어젠가 중국에서 가장 히트 친 영화의 하나가『李雙雙』. 바로 우리 부모세대들의 先結婚後戀愛이야기다. 연애도 없이 어떻게 결혼을 하고 살아갈 수 있느냐는 젊은이들의 짓궂은 질문에 시무럭히 웃으며 대답하는 얼숙게 생긴 남주인공의 대답-先結婚後戀愛. 수더분하게 생기고 아이도 몇이 가졌건만 똑 마치 현대 젊은 처녀총각들이 연애하듯이 천진난만하게 살아가는 농촌부부간. 그래서 웃음이 연발하고 생활에 꽃이 피는 희극편. 낮의 요조숙녀와 정인군자가 밤의 요부와 늑대되기, 그리고 까꿍, 자기야 내 봐라, 그래 여보, 윙크에 사랑의 세라믹 날리기, 그리고 찧고빻고... 그런데 戀愛도 오래하면 지겹고 힘에 겨울수가 있다. 그러니 우리는 다른 사랑의 해구심을 복용해야 한다. “정 하나로 맺어진 사랑...”,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서로 그대를 통해 남자를 알고 여자를 알고 남자여자가 되었지? 고마운 정은 많이 남아 있다.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은 그대! 우리는 얼마든지 새로 시작할 수 있다. 바로 그 정 하나로. 그렇다. 우리는 情人이 되는 거야. 그 시시껄렁한 偷유鷄摸狗의 情人말고. 진짜 情人이 되는 거야. 情人眼里出西施가 아니냐? 정이 폭 배인 情人의 눈으로 서로 보기. 우리는 물 찬 제비 춘향, 늠름한 이도령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건질건질한 등 긁어주며 호물딱 입 빙그레 웃을 수 있는 꼬부랑 할머니, 백발 할아버지가 될 수 있다.그렇다. 바로 이 정, 끈끈한 이 정, 사랑의 애교풀로 딱 붙을 때 우리는 찰떡궁합을 이루고 잉꼬부부가 되고 검은 머리 흰 파뿌리 되도록 白頭偕老할 수 있다. 2006. 4. 15
58    点石成金-壽 石 댓글:  조회:4060  추천:83  2006-04-07
点石成金-壽 石나는 언젠가 우리 과의 신철호 선생을 참 우습게 보았었다. 사람이 참 별난 흥취도 다 있지, 하면서 말이다. 신선생은 워낙 돌덩어리를 좋아 했으니 말이다. 물론 내 눈에는 보잘 것 없는 돌덩어리겠지만 신선생의 눈에는 그것이 더 없이 귀중한 금덩어리였다. 같은 물건 하나 사이에 두고 나하고 신선생은 이렇게 천양지차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는 자기도 모르게 신선생의 그 별난 흥취에 빨려 들어갔다. 무엇에 빨려 들어가는 것을 죽어라 거부하는 나이지만 어쩔 수 없이. 그것은 아마도 우연히 신선생 집에 놀러가서부터였을 것이다. 신선생 집에는 워낙 별라별 돌덩어리들이 많았다. 이런 것들을 美其名曰壽石이라 한단다. 창턱이고 어디고 놓을만한 곳에는 전부 이런 壽石들이 놓여 있었다. 사실 그가 일보는 사무실에도 이런 壽石들은 놓여 있다. 이런 壽石들만 보면 눈이 반짝이며 흥분하는 신선생. 그래서 순간적으로 壽石 교수로 둔갑하는 신선생. 자, 그래서 그의 강의는 시작되고, 나는 빨려 들어가고...壽石은 뭐니 뭐니 해도 壽石이여야 한다. 오래 된 돌이여야 한다. 몇 억년의 풍상고초를 이기고 살아남은 돌. 그래서 장수할 壽의 壽石이란다. 그러니 그것은 일종 영원함의 상징-철학. 딱딱하고 차거운 돌이건만 자기도 모르게 우러러나는 숭배심. 백년도 못 사는 우리 인생, 정말 壽石이 되고 싶다. 壽石을 찾아 헤매고 줏는 순간 그것은 내 인생의 영원함을 끌어올리는 순간. 그래서 힘든 줄도 모르고 오늘도 이 산, 저 산, 이 강, 저 강을 探石으로 헤맨다는 신선생. 壽石은 뭐니 뭐니 해도 자연석 그대로여야 한다. 그것은 자연의 섭리가 빚은 人工이 전혀 가해지지 않은 조물주의 선물. 그것은 鬼斧神工이 만든 자연의 신비. 그것은 풍상고초의 세례 속에 허구 많은 자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면서 인간과 교감하는 壽石-원초자연의 생명의 신비를 말하는 듯한 남근석과 여근석, 그리고 새파란 처녀총각 모양에, 방금이라도 뛰어나올 듯한 아이들의 귀여운 모양에, 파파 늙은 호물딱 모양에, 그리고 날렵한 원숭이 모양에, 미련한 곰 모양에, 깜찍한 토끼 모양에, 그리고 삐죽삐죽 산 모양에, 굽이치는 강 모양에, 오곡백과 무르익는 들 모양에... 실로 一言難盡의 자연의 천태만상이 깃들어 있단다-예술. 그래서 빼어날 奇秀의 秀石으로만 이해한 나의 壽石觀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란다. 壽石은 빼어나도 뽐내지 않고 이 산 녘, 저 산 녘, 이 강 녘, 저 강 녘, 이 바다가, 저 바다가에 되어진 대로 조용히 누워있단다. 그는 知己를 기다린다. 일반사람들의 눈에 그것은 거저 돌일 뿐이다. 그런데 探石家들의 눈에 그것은 손으로 만지며 玩賞하기에 좋은 축소지향의 자연의 천태만상 그 자체. 묘한 느낌 그 자체. 그러나 壽石은 모든 探石家들을 자기의 知己로 하는 것은 아니란다. 자기만의 知己를 기다린다. 그래서 이 探石家에게는 시답지 않게 여겨지나 저 探石家에게는 如獲至寶로 여겨지는 괴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사실 壽石은 말이 없으니 壽石의 知己경지는 智者見智, 仁者見仁. 여기에 재미나는 일화가 있단다. 시인 김학송은 워낙 시적 감성이 풍부하고 상상력이 뛰어나 어지간한 돌은 모두 壽石으로 승화시킨단다. 다른 探石家들은 별론데 하다가도 김시인이 이것은 산이요, 이것은 강이요, 이것은 폭포요, 이것은 눈이요... 하며 한바탕 열변을 토하면 어지간한 探石家들은 그럴듯하다며 머리를 끄덕끄덕인단다. 그런데, 그래도 머리를 갸웃하는 探石家가 있으면 김시인은 그럼 좀 멀리서 봐봐- 아니, 그럼 몇 백배로 확대해서 봐봐- 눈을 지긋이 감고 아니, 눈을 반쯤 뜨고... 옳지, 옳지, 그렇지-하며 자기 나름의 壽石을 계속 밀어 붙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시인은 여하튼 가장 많은 壽石을 확보하고 있단다. 이렇게 놓고 볼 때 壽石과 그 探石家는 지극히 개성적인 관계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壽石은 어디까지나 자연석 그 자체다. 그러나 자연만의 그것으로 둘 때 그것은 거칠다. 그래서 探石家들의 손이 가 닿아야 한다. 자연과 인문이 어우러져야 한다. 죄진 사람들처럼 머리를 수걱하고 이 돌 저 돌 찾아 헤매다가 아, 하는 탄성과 더불어 壽石이 눈에 띄는 순간 探石家들은 산모가 갓난애기를 다루듯이 그 壽石을 다룬다. 털어내고 씻어내고 닦아낸다. 그리고 정중히 모신다. 무슨 座臺라는 것을 한다. 壽石을 돋보이게 하는 座臺. 이 座臺가 있고 없고가 천양지 차란다. 신교수가 지시해 보이는 개구리상壽石. 머리를 한껏 쳐들고 몸둥아리를 솟을가하는 개구리상, 정말 그럴듯하다. 발이 없는 것이 아쉽다면 좀 아쉬운 점.그런데 이 개구리상을 개구리 발모양을 한 座臺에 앉히니 당금 뛰어내릴 듯한 모습으로 변하지 않는가. 座臺의 중요성이 살아나는 순간이다. 壽石수집가들은 바로 이 座臺에 신경을 쓴다. 그렇다 해서 座臺를 요란하게 해서 壽石 본체인 자연석을 죽여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石爲本臺爲輔여야 한다는 것이다. 壽石은 살아 숨 쉬는 생명체란다. 探石家들은 이렇게 느낀단다. 까만 오석은 만지면 만질 수록 반질반질 해지고 기름기 반지르르 흐른다. 생명의 교감이란다. 壽石을 보고 있노라면 세속의 번뇌 다 있게 되고 무릉도원과 같은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기도 한단다. 壽石의 질, 모양, 선, 색...점점 흥분의 도가니 속에 빠져 들어가는 신교수. 点石成金, 별 볼일 없는 돌을 척 짚어서 금덩이로 만드는 듯한 연금술사와 같은 신교수의 壽石특강, 내 혼자 듣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나는 워낙 미학을 하는 교수다. 미학의 기본 범주의 하나인 자연미하면 그 속에는 뭐니 뭐니 해도 기암괴석이 으뜸. 사실 이 기암괴석 속에 壽石도 포함되리라. 그래서 나는 신교수를 미학 壽石특강으로 모셨다. 무거운 壽石 한 짐을 지고 땀을 철철 흘리며 계단을 올라간 신교수의 헌신적인 모습은 학생들을 감동시키기에 족했고 생전 처음 들어보는 돌덩어리의 신비한 내용과 신교수의 유모아가 넘치는 달변은 학생들을 감복시키기에 족했다. 학생들의 반응은 대단히 좋았다. 우리 연변대학에서는 이런 강의를 좀 많이 했으면. 한 학기 내내 그 잘난 문학사의 누구누구는 몇 년도 태어나서 몇 년도 죽었소하는 것을 억지로 외우게 하는 것보다는 한 시간의 이런 壽石특강이 학생들의 감수성을 키우고 풍부한 상상력을 키우는데 효과적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나는 신교수를 보고 전 학교 공동과로 壽石특강을 신청할 것을 건의했다. 2006. 4. 5
57    대학교 근친번식 댓글:  조회:4216  추천:92  2006-03-15
대학교 근친번식현재 생물학적으로 근친번식은 인간의 발전에 치명타임은 누구나 다 잘 아는 상식이다. 그러나 대학교 근친번식에 대해서는 그리 잘 모르는 것 같다. 아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묵인하는 것 같다.대학교 근친번식? 외연과 의미는 넓다. 그만큼 醜態百出! 대학교 근친번식 1.留校, 학생회 간부 남기기. 留校, 예나 지금이나 학생들이 선망하는 직업자리. 그러니 학교당국에서는 학생들 가운데 덕, 지, 체 모든 면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들을 남긴단다. 그래서 학생들 누구나 다 덕, 지, 체 뛰어나게 놀려고 한다. 그런데 교수들 눈에 덕, 지, 체 모두 뛰어난 학생들은 어느새 학생회 간부들로 둔갑해 버린다. 사회상의 관본위 및 관료주의가 신성한 대학교까지 오염시킨 한 징표. 그래서 내가 대학교 다닐 때는 너도나도 반주임(단임선생)이나 단서기한테 알랑거리거나 별수(공산주의신앙이고 무어고 떠나 黨票를 얻는 것도 크게 한 몫)를 써서 학생회간부되기. 그래서 학생회간부 되는 “놈”들을 보면 전부 말깨나 하고 붙침성이 좋아 알랑거리기에 안성맞춤하거나 공부하기에는 머리통이 커 보이는 나이 지긋한 “놈”들(한 살이라도 더 먹은 사람을 존중하는 “노인문화”의 혜택을 톡톡히 받는 “놈”들)뿐. 그러니 공부는 뒤전. 아무리 공부 잘 하는 “놈”을 留校시킨다 해도 믿기지 않는 법. 결과적으로 留校시킨 “놈”들을 보면 천편일률적으로 학생회간부했던 “놈”들이니 말이다. 사실 학생회간부 하는 “놈”들을 보면 정말 별 볼일 없는 “놈”들이 많다. 소학생처럼 어떻게 해서나 선생님 말씀 잘 들어 “출세”한 “놈”들이다. 이런 “출세”에 맞장구 친 선생“놈”들 생각은 이렇다. “자, 대학 4년간(우리 다닐 때는 대개 장기집권. 더 올리 “출세”하거나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무슨 무슨 장하느라고 수고했(사실은 내 말 잘 들었)는데 학교에 남기지.” 이런 식. 그러니 학습성적 같은 것은 그리 안중에 없다. 참, 자비로운 생각들을 잘 하셨다. 그래서 이렇게 留校한 “놈”들은 선생“놈”에게 충성맹세서약하며 충실한 노복이 된다. 그러면 선생“놈”은 留校한 “놈”에게 학부, 학교를 위해 몇 년 봉사(수고? 실제는 제 월급 타먹기)하는 쇼를 보이게 한 후 석사니 박사를 만들어준다. 留校한 “놈”이 박사까지 도금을 할 때는 어느새 그럴듯한 교수로 둔갑한다. 빛 좋은 개살구? 그래서 또 하나의 대학교 근친번식이 이루어져 그놈이 그놈이 되는 것이다. 내가 학교에 留校할 10여 년 전만 해도 정말 그놈이 그놈이 득실득실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여전. 어쩌면 민주선거(물밑에서는 선생“놈”을 동원한 시험성적조작까지 하면서)라는 허울 하에 더 기승을 부린다고 봐야겠다. 공부보다는 학생회간부요 뭐요 하는 덕택으로 추천을 받아 연구생에도 노시험으로 입학하는 학생회간부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눈물을 흘린다. 나는 한국 대학교에 이래저래 좀 오래 가 있어 봐서 알지만 적어도 학생회 간부“놈”들과 선생“놈”들 관계 면에서는 근친번식을 하지 않는다. 그들 학생회 간부“놈”들은 애초에 학교에 남고 싶어서가 아니라 대개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 정계에 진출하기 위한 “놈”들이 선택한다. 그들이 학생회 간부가 되고 안 되고는 애초에 선생“놈”들하고는 관계가 없다. 공부 성적하고도 그리 관계가 없다. 선거전에서 어떻게 해서나 표를 많이 얻는 것이 장땅이다. 그래서 유세를 하고 선거전을 치르는 것을 앞으로 사회에 나가 대통령출마라도 한번 해볼듯한 정치적 자질을 높이기 위한 일종 연습이나 시험장으로 보는 듯하다. 그들 학생회간부라는 것은 직업적인 선택색채가 진하다. 그리고 그들 학생회 간부“놈”들은 말 잘 듣는 “順民”이라기 보다는 학교당국을 향하여 무엇을 요구하고 쟁취하기 위한 농성을 벌리거나 투쟁을 하며 소란을 피우기가 일쑤다. 그래서 이래저래 밉상을 보이기가 십상이다. 한국 대학교 근친번식은 선생“놈”이 기를 쓰고 자기 제자를 자기학과의 교수채용에 채용되도록 밀어주고 다른 학교 출신들을 극력 막는데서 나타난다. 한국식으로 학연의 연에서 나타난다. 중국 대학교에서는 교수채용을 할 때 다른 대학교 출신을 그리 막지는 않되 그래도 자기 제자를 우선시하는 것은 한국의 경우와 비길 때 50보에 100보의 관계다. 그래서 한국이나 중국 대학교의 학문적 근친번식-그 선생에 그 제자의 찧고빻고가 그대로 유지되며 맴돌아간다. 대학교 근친번식 2애비애미 친인척 인맥 타기. 대학교수 자제들 대학붙기 쉽다. 부모들이 재직하고 있는 대학에 그 자녀들이 지원하면 가산점이 붙는 것은 물론, 여간하면 붙여주기. 이 정도는 그런대로 곱게 보아주자. 힘 없고 가련한 샌님들이니깐. 그런데 문제는 대학을 졸업시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留校시키기는 것이 문제다. 공부고 품성은 둘째 치고 단지 그 부모의 후광으로 留校한다. 학교당국에서는 이것을 일종 복지 비슷하게 생각하여 묵인하고 있는 듯하다. 요새는 갖은 방법을 다 해 석사에 박사까지 만들기. 그 다음 留校지 뭔지 한다. 이것은 정말 한국 대학교에서 볼 수 없는 중국 대학교의 독특한 혈연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어떤 과에 보면 부모자식에 형제자매에다 삼촌조카까지 한테 뒤엉켜 돌아가는 판인지라 사람관계는 실타래처럼 얽히고 섥혀 강의고 학문보다는 사람관계에 조심하게 되고 더 신경을 쓰게 된다. 대학교 근친번식 3줄 잘 서기. 차롓, 대학교에서 출세하자면 자기가 설 줄을 알아 잘 서야 한다는 것이다. 자고로 文人相輕이라 대학교도 끼리끼리 돌아감. 그러니 자기가 끼일 끼리를 잘 찾고 모실 상전을 잘 알고 모셔야 보직에도 쉽게 추천을 받고 교수도 쉽게 되고 무엇도 쉽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때는 왕따에 꼬이기만 하는 인생이 되고 만다. 이것은 사회가 훨씬 심하다고 하니 이만 하기로 한다. 대학교 근친번식 4에라, 됬다. 너무 더럽고 치사해서 말이 안 나온다....이제 우리 대학교도 스스로 자성할 때가 되었다. 나는 내 가슴에 손을 언고 떳떳하게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내가 위에서처럼 留校한 “놈”도 아니요, 애비애미 친인척 인맥을 타서도 아니라 멋모르고 공부만 하다 보니 어떻게 개빵으로 남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줄서기도 모르기 때문이다. 요 몇 년 전 우리 중국의 최고 명문 북경대학교가 박사학위논문심사를 외부 교수나 전문가들에게 위임하되 심사받는 박사생에게 심사위원들은 익명으로 처리되도록 했다. 그리고 북경대학교 출신 박사생들을 留校시키지 않는 원칙을 정했다고 한다. 학문적인 근친번식을 막기 위해서란다. 안티테제로 遠親번식을 추구한단다. 그래서 국내 타대학이나 외국 대학의 명교수나 박사들도 최고노임수준으로 초빙해 들어오고 모셔 들어온다고 한다. 최고의 명문다울시고!2006. 3.14
56    대학교수와 보직 댓글:  조회:4345  추천:56  2006-03-12
대학교수와 보직요새 우리 학교는 좀 시껄벅적하다. 행정인원 물갈이가 시작된 것이다. 학교 중급간부들인 처장자리 물갈이가 시작되었다. 교수들도 괜히 들떠 머리를 기웃 처장 자리를 넘보는 판국이다. 사실 교수들이 벼슬자리 감투 하나 바라보고 헤덤빈 것이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교수는 강의나 잘 하고 연구만 잘 하면 되었지 무슨 벼슬감투나 하겠지만 여기에는 그럴듯한 내막이 있다. 여기에는 중국 대학의 구조적 병폐가 도사리고 있다.대학의 주인은 교수와 학생이다. 선진국의 ‘敎授治校’라는 말도 이러한 의미에서 나온 듯 하다. 교수협의회의 파워가 막강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교수 전화 한 통화만 행정인원들이 척척 알아서 해주는 세상. 대학에서 행정업무는 敎學이라는 주체행위의 뒤치닥꺼리나 하는 정말 별 볼일 없는 말 그대로 補職에 불과하다. 그런데 우리는 ‘敎授治校’가 아니라 ‘行政治校’형국이다. 이른바 행정하는 사람, 한 자리하는 사람이 쥐락펴락하는 판국이다. 그들은 말로는 ‘爲敎學服務’의 머슴, 청지기라고 하지만 그들의 입김이나 파워는 막강하다. 우리 학교의 경우 인사처장 쯤 되어도 그 기고만장한 기세에 교수들 숨쉬기가 바쁘다. 더 한심한 것은 강의를 하다가 수준미달로 쫓겨나 행정으로 넘어갈 경우 오히려 더 빨리 승진하고 ‘출세가도’를 달리는 아이러니. 여기에 비서에 승용차까지 따라 붙으면 기분은 붕 뜨고 그 기세 또한 기고만장해진다. 그리고 행정은 돈을 주무른다. 월급은 쥐꼬리만 하지만 보이지 않는 돈은 적어도 노루꼬리쯤 된다. 사인에 결재에 다 돈을 주무르는 재미다. 이런 것들은 우리 중국의 관본위 관료주의형태의 대학가내에서의 전형적인 한 보기. 그러니 행정은 자연히 補職이 아니라 寶職으로 탈바꿈한다. 그러니 너도나도 행정寶職 바라보기. 교수노릇하기가 진짜 맥삭해난다. 그러나 진짜 교수들은 사실 행정직을 맡으라 해도 안한다. 교수노릇 하자면 책을 많이 보아야 함은 물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야 한다. 그런데 책을 많이 보면 볼수록 자기의 무지가 발견되면서 볼 책은 더 많아지고 연구를 많이 하면 할수록 꼬리에 잇닿는 문제점으로 하여 연구거리는 더 많아진다. 언제 다른 것에 신경 쓸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가 없다. 그러니 어떤 교수가 많은 寶職에 앉아 매일 회의나 하고 돌아다니기나 하며 술이나 퍼 마시면서도 학술을 한답시고 떠벌이는 것은 일종 學術騙子에 가깝다. 天下文章一大抄가 이들의 학술을 놓고 말한다. 이번 二會에서도 대학교수의 學術騙子문제가 거론되는 듯 하다. 그리고 진짜 교수는 돈 하고 거리가 멀다. 전통적인 의미의 청빈에서가 아니다. 입고 먹을 거만 있으면 되는 거지 돈이 그리 필요 없는 것이다. 대학교수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가르치고 연구하는 재미로 산다. 이것이 대학교수의 순수한 진면모다. 그런데 그것이 순수한 만큼 그것은 현실에서 쉽게 오염되고 많이 일그러진다. 요 몇 년간 우리 학교 교수들 참 많이 떠났다. 보다 더 나은 월급, 물질적 대우를 바라보고 떠났다. 딸린 식솔을 먹여 살려야 되니, 아니 잘 먹여 살려야 되니 십분 이해가 간다. 그런데 대학에서 정녕 행정보직이 寶職이 아니라 진짜 補職으로 남고 교수들이 그 보직에 미련을 느끼지 않으며 돈을 종이장처럼 우습게 보게 될 때 대학과 교수의 본연의 모습을 되찾게 됨은 더 말할 것도 없다.2006. 3. 11
55    퓨전 댓글:  조회:4344  추천:71  2006-03-12
퓨전한국에 난무하는 것의 하나가 신조어. 나는 이것을 한국의 역동성의 하나로 받아들인다. 퓨전이나 퓨전음식 하는 말이 요 근간에 식당 간판에 많이 눈에 띈다. 퓨전이 무엇이냐? 짧은 영어이나마 나름대로 풀이해본다. 음식 food에 미래전망 vision의 합성어로 이해된다. 음식비전이니 음식의 미래비전이라는 말로 이해해도 무방한 줄로 안다. 그런즉 누구도 못 먹어 본 새롭게 창출된 음식이라는 데서 사람들 구미를 동하게 하기에 족하다. 한국의 퓨전음식들을 좀 보자. 두루치기, 솥뚜껑구이, 맥반석구이, 불닭... 말만 들어도 한국의 독특한 퓨전음식들이다. 두루치기, 말 그대로 여러 가지 음식재료들을 두루 한데 짱뽕하여 요리한 것, 솥뚜껑구이도 말 그대로 솥뚜껑에다가 돼지고기든지 소고기를 굽기, 맥반석구이는 맥반석에 오징어나 조개 굽기, 매운 고춧가루 투성이의 핫 불닭... 이런 퓨전음식들은 서로 자기가 최신 이미지임을 뽐내며 파노라마처럼 번져간다. 그래서 長江後浪推前浪처럼 처음에는 퓨전음식으로 출범했다가 보편화되면서 다른 새롭게 출범한 퓨전음식에 밀리어 도태되기도 한다. 퓨전음식은 한국만의 얘기가 아니고 일종 세계적인 음식개발붐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라면의 신개발 경쟁을 분석해보면 바로 퓨전적 미스매치 감각의 상품화라고 할 수 있다. 우유와 라면을 매치시킨 것이 그렇고 짜장면과 스파케티를 합쳐놓은 짜빠케티의 탄생이 그렇다. 물론 이런 것들은 일본의 라면 광고에서 중국라면에 서양샐러드를 얹어 파는 일본사람들의 발상에서 나온 상술에 의한 것이다.사실 인간의 음식발전사는 이런 퓨전음식의 파노라마에 다름 아니다. 중국의 신화전설에 신농씨는 百草를 맛보았다고 한다. 그리고는 우리 인간에게 독성이 없는 可食의 草를 알려주었다고 한다. 채집단계에 있어서 可食의 草가 하나하나 알려지면서 우리 인간에게 먹혀질 때 그것은 하나하나의 새로운 퓨전음식으로 안겨왔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다가 개발된 可食의 草들 사이 조합이나 짱뽕을 해서 새로운 퓨전음식이 생겨났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영역을 넓혀 海, 陸, 空으로 나아가며 바다의 해산물, 육지의 짐승들, 하늘에 날아다니는 것들을 재료로 한 퓨전음식을 개발되고 또 이런 海, 陸, 空 사이 조합되고 짱뽕되면서 우리 인간은 미증유의 퓨전음식을 개발해낸 줄로 안다. 물론 이런 퓨전음식개발은 마구잡이로 막 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모험과 위험이 따른다. 중국말에 "第一個敢吃螃蟹게"란 말은 그것의 좋은 주석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온 말이 이른바 음식궁합이란 말이다. 퓨전음식을 개발하는 데는 과학성의 원칙이 기본 전제가 된다. 적어도 음에 속하는 찬 음식재료와 양에 속하는 더운 음식재료의 조화 같은 것을 따져야 하고 같이 먹으면 소모적이거나 해로운 것은 피하도록 해야 한다. 예컨대 시금치와 두부를 퓨전시킬 경우 시금치에 들어있는 옥살산과 두부에 들어있는 칼슘이 결합하여 불용성의 수산칼슘을 생성하므로 인체의 칼슘섭취가 줄어들어 결석증을 유발하는 것, 그리고 오이에 함유되어 있는 아르코르비나제라는 효소는 비타민 C를 파괴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무와 퓨전을 이루면 무의 비타민 C가 파괴됨으로 소위 상극음식의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퓨전음식은 어디까지나 과학성에 기초한 상생음식을 이루며 건강식으로 나아가는 것이 기본이다. 내가 있던 배재대학교 부근에 "세 발 낙지에 통닭 한 마리"라는 퓨전식당이 있다. 식당이 꽤 성황을 이루었다. 식당 사장의 말에 의하면 음에 속하는 찬 세 발 낙지와 양에 속하는 더운 닭의 조화로 감미로운 새로운 퓨전음식을 개발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른바 健康食이요, 다이어트食이요 하며 무공해녹색음식이나 저칼로리음식을 추구하면서 새로운 퓨전음식을 개발해내는 것도 그 초점은 어디까지나 건강을 챙기는데 있다. 퓨전음식개발에 있어서 향토음식개발은 매우 효과적인 방편으로 등장하고 있다. 해당 지역의 풍토지리 속에서 독특하게 생겨나는 음식재료로 요리한 것은 타 지역의 추종을 불허하며 돋보이는 존재로 될 수 있다. 중국의 8대요리계통은 바로 이런 향토적인 퓨전음식개발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퓨전음식개발에 있어서 향수음식개발도 톡톡히 한 몫 한다. 이른바 못 살 때 먹던 강낭떡이 오늘날 인기퓨전음식으로 개발된 것은 그 한 보기가 되겠다. 퓨전음식개발은 음식도 음식이겠지만 그 모양새나 그 음식을 먹을 때 주변 환경 및 무드 같은 것도 곁들인다. 너무 멋지고 아름다워 먹기가 아까운 음식들, 그리고 한국에서 근간에 나타난 더운 여름에 찬물에 발 담그고 식사하기 또는 자동마사지기계에 발마사지 받으면서 식사하기, 그리고 중국에서 근간에 뜨는 한국의 가든식당에 비근한 生太園式식당은 바로 음식만을 먹는 것이 아니고 동시다발적으로 건강을 챙기고 그 환경이나 무드를 즐기는 웰빙족들의 추구는 그 한 보기가 되겠다.이런 퓨전음식개발은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과 존재를 나타내기도 한다. 미국 TV의 한 코미디 프로에 나오는 주인공이 우유와 콜라를 섞어서 마시는 것이나 콜라에다 밥을 말아 먹는 일본 젊은이들의 기괴한 유행 등이 바로 그와 같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기이한 음식습관을 나타내기도 한다. 우리 연변의 유명한 의학가인 노박사가 술을 얼마나 좋아했든지 白酒에 밥을 말아먹었다는 에피소드는 퓨전이라는 말이 나오기 썩 전의 이야기지만 그만의 독특한 퓨전적 음식습관을 나타내주기에 족하다.2006. 3. 12
54    감 한 알 댓글:  조회:4049  추천:76  2006-03-10
감 한 알한국에서의 1년간의 교환교수노릇도 끝나고 이제는 돌아갈 때가 되었다. 떠나가는 이 시각에 한국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이 무엇인가 하면 나는 서슴치 않고 감 한 알이라고 하련다. 그래 감 하나가 뭐 그리 대단하기에 나의 뇌리에 똬리를 틀었뇨? 동장군이 맹위를 떨치는 추운 겨울 한국의 시골풍경에 가장 인상적인 것이 바로 이 감 한 알. 예전의 하늬바람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맵짠 찬바람이 쏴 불어대고 나무는 헐벗은 채 몸부림치고 대지는 얼어붙고 사람들 마음도 얼어붙은 삭막한 이 죽음의 계절, 바로 이 감 한 알이 있어 사람들 마음 훈훈해나고 살아난다. 한국에 지천에 널린 과일나무 하면 감나무와 밤나무가 아닌가 한다. 푸른 감이 노란 감으로 변하고 다시 빨간 감으로 변해가는 것이 한국 가을의 진풍경이다. 이 빨간 감을 따서 홍시를 만들고 꽂감을 만들게 되는데 이것이 전통적인 한국 겨울철의 주요 과일 먹을거리. 그래서 가을철 빨간 감을 따는 아낙네의 마음은 푸근하다. 그런데 그 먹을거리가 귀했던 전통사회에 있어서 이 감을 따는 데는 불문율이 있었다. 감을 다 따지 않고 몇 알 남겨두는 것이다. 이른바 까치밥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추운 겨울 먹을거리가 없어 헤매일 까치 같은 날 짐승을 먹을거리로 남겨두는 것이다. 한국의 인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추운 겨울 감 한 알 달리지 않은 앙상한 감나무를 보는 한국 사람의 마음은 어쩐지 부자연스럽고 불안하다. 이것이 한국인의 정서다. 한국에는 고시레 민속이 있다. 들이나 밭에서 일을 하다가 참을 먹을 때 사람이 먹기 전에 먼저 한 술 떠서 '고시레'하며 들이나 밭의 鬼나 神을 대접했다고 한다. 사실 한국 사람은 전통적으로 鬼神뿐만 아니라 길 가는 나그네도 눈에 띄면 막걸리나 식사를 대접했다. 나는 한국 고대 문학사를 배우면서 방랑시인 김삿갓이 방랑시인으로 남을 수 있는 비결을 생각해보았다. 나는 그 비결을 바로 한국 사람들의 감 한 알에서 보았다. 항상 남을 먼저 생각하고 베풀며 더불어 살기, 그래서 共生共存하고 共榮하기, 인간의 자아독존적인 파멸을 막을 수 있다. 한국은 근대화에 성공하면서도 이 감 한 알이 남아 있어 좋다. 산에 자생적으로 나고 떨어지는 밤이나 도토리, 다람쥐들의 밥이란다. 그래서 줏기조차도 저어하는 한국의 인심. 저 산의 짐승들을 위해 먹을거리를 달아주거나 들녘의 뭇 새들을 위해 먹을거리를 뿌려주는 거, 한국의 겨울철의 진풍경의 하나. 그리고 부처님 오신 날을 계기로 고착된 放生문화, 천주교에서 自省과 더불어 가난하고 불행한 자들을 위한 금식기도... 그리고 구정 같은 큰 명절 때마다 불우이웃돕기성금기부하거나 자연재해가 들었을 때 성금기부하기, 한국의 겨울은 이런 감 한 알이 있어 나기에 퍼그나 훈훈하다. 그 빨갛게 상기된 감 한 알은 시골 할아버지의 넉넉한 마음이런가, 우리 인간의 영원한 포근한 자궁이다.2006. 2. 23
53    정인갑 아저바이, "손님이 왔으"면 좀 쉽시다 댓글:  조회:4746  추천:44  2006-01-16
정인갑 아저바이, ‘손님이 왔으’면 좀 쉽시다정인갑 아저바이 전 상서:그간 안녕하십니까?아저바이 “심상치 않은 '손님' 화제”를 받아보고 이 먼 이국 땅에서 매우 반가웠습습니다. 언녕 답복을 드린다는 것이 한 해가 다 가고 이제야 필을 들게 되니 그래 이게 말이 됩니까? 후학으로 말입니다. 널리 양해해 주십시오. 아저바이 말씀은 천만지당한 줄로 압니다. 그리고 “우리민족의 지성인을 배양하는 최고 학부”-연변대학에 대한 우려와 관심 내지는 충정에 더 없이 감복하였습니다. 연변대학에 몸 담고 있는 가르치는 자로서 아저바이의 그 우려, 그 관심, 그 충정에 백분의 1도 못 미쳐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여기에 “ '생리휴강제도' 따위를 연변대학에 끌어들여” “오염시키”려 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아저바이는 너무 예민합니다. 과잉반응? 내가 “심상하”게 쓴 “손님”을 아저바이는 굳이 “심상치 않은 ‘손님’”으로 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너무 원색적인 언어구사를 했습니다. “'생리휴강제도' 따위”, “끌어들여”, “오염시키”기 “따위(나도 한번 써봅시다)” 같은 말은 정말 “따위” 같은 말입니다. 여기서 어쩌면 아저바이하고 저하고 세대차라 할가 아니면 시대차라 할가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손님”이 워 그리 심상치 않습니까? “손님”이 왔으니 쉬는 것이지요. 아저바이는 내 이 단순하고 홀가분한, 어쩌면 단세포적으로 단순하고 홀가분하다보니 너무도 명료하고 분명한 단순하고 홀가분함에 복잡하고 거창하게 풀이를 하니 정말 눈이 번쩍 뜨이기도 합니다. “한국 청년학생의 정신상태의 변화에 대한 우려”, “너무나 어처구니없다. 이는 한국 대학생들이 태만, 타락의 길로 가고 있다고 밖에 해석할 수 없다.”, 한마디로 “'손님' 현상은 한국 적지 않은 청년학생들의 타락을 나타내는 심상치 않은 현상”이라는 것이지요. 정말 그럴까요? 머리가 갸웃해집니다. “생리휴강제도”는 “생리휴강제도”대로 돌아가고 공부는 공부대로 잘 하는 한국 청년학생, 대학생들을 너무도 많이 보아온 저입니다. 적어도 요 1년간 배제대학교 강의체험만 놓고 보아도. 이것은 절대 “저자가 배재대학에 몸담고 있으면서 배재대학化하여 생긴 착각(當局者迷)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 아저바이는 저한테 그리 신경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거저 한국“놈”들 놀아나는데 잘 놀아나는 허수아비 같은 존재이니깐요. 아저바이 논리대로 하면 한국 교육인적자원부는 정말 정신 나간 “놈”들입니다. 자기네 청년학생, 대학생들을 “태만, 타락”시키고 있으니 말입니다. 2006년 1월 13일 금요일 한국『매일경제』사회면 윤지경 ․ 김명수 기자의 「생리통 결석도 “출석”인정」보도글을 한번 봅시다. 좀 길지만 그대로 인용합니다. “올해 새학기부터 여학생이 생리통으로 결석을 했을 때 출석으로 인정받게 된다./교육인적자원부는 12일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한 ‘여학생이 생리로 인해 학교에 안나왔을 때 건강권과 모성보호 차원에서 적절한 사회적 배려를 하도록 관련제도 등을 보완할 것’을 받아들여 이같이 결정했다./이에 따라 오는 3월부터는 생리통으로 결석했을 때 학교장에게 확인을 받으면 출석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 이전에는 생리로 결석했을 때 병결이나 병조퇴로 처리됐다. 교육부 관계자는 근로기준법 등에 근거해 ‘출석으로 인정되는 생리로 인한 결석’은 한 달에 하루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좀 지루하니 이만큼 합시다. 내가 아저바이한테 글 안 올리까 하다가 실은 한국 교육인적자원부의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결정”을 접하게 되어서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일부 대학 스스로의 자율권 차원에서, 그것도 주로 학생들 스스로 제 좋은 차원에서 “생리휴강제돈”지 뭔지 야단법석을 피우더니 이젠 정부 차원에서 같이 “놀아”나니 말입니다. 새해에 들어서더니 한국 정부도 새로운 출발을 하는 모양입니다. 한국은 그만하면 민주주의가 잘 된 나라입니다. 무슨 문제든지 공개하고 공론화하고 토론에 부침니다. 그래서 나라는 언제나 시끌벅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문제가 투명화되고 절대 다수의 의견이 결집될 때 그기에 따릅니다. 시끌벅적한 민주주의, 바로 여기에 한국의 역동성과 저력이 있습니다. 물론 절대 다수의 의견이 언제나 꼭 맞고 다 맞는 것은 아닙니다. 민주주의맹점이라는 것도 바로 여기서 드러나지요. 그러나 현재로는 절대 다수의 논리를 따르는 것, 이것이 민주주의인 것은 분명합니다. 한국 교육인적자원부도 아마 제멋대로의 독단으로 그런 결정을 내린 것 같지 않습니다. 이미 근로노동법에 의해 사회직장여성들 범위에서 “생리휴식제도”가 실시되고 있고 또한 대학 범위에서 공론화되고 일부 대학에서 “생리휴강제도”를 실시한 전제하에서 그 합리성, 적법성 같은 것을 충분히 검토하고 검증하는 민주주의절차를 거친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래서 “적절한 사회적 배려를 하도록 관련제도 등을 보완할 것’에 합의를 본 줄로 압니다. 현대는 대명천하 민주주의시대라 아저바이가 “심상치 않”게 보고 내가 “심상하”게 보는 “생리휴강제도”는 민주주의원칙 차원에서 볼 때 그 시시비비는 분명할 줄 압니다. 그러니 제가 “'생리휴강제도' 따위를 연변대학에 끌어들”이는 문제도 제 마음대로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점에서 아저바이께서는 백번 마음 놓으셔도 됩니다. 나는 적어도 우리 학생들, 특히 여학생들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생리휴강제도”옹호/반대? 그래서 한국의 경우처럼 100%는 아니라 하더라도 절대 다수가 “옹호”라 할 때는 “오염” 좀 시켜도 무방할 줄로 압니다. 그런데 저는 정말 개혁가, 행동가, 실천가가 아닙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실 저는 얼마나 나태하고 안일에만 빠져있는지 옹호/반대 같은 묻기조차도 하기 싫어하는 놈입니다. 그러니 아저바이, 정말 마음 놓으십시오. “오염”문제는 원천 봉쇄되고 애초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괜히 내가 “이제 중국에 돌아가 우리 연변대학교 강의 때는”운운, 실없는 소리를 해서 죄송합니다. “생리휴강제도”, 정말 “심상치 않”게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아저바이한테 한 수 배웁니다. 이것은 워낙 인권에 관한 문제이니깐요. 한국 교육인적자원부도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여학생의 ‘건강권과 모성보호 차원에서“ 결정한 것이군만요. 인권, 세상이 점점 개명해지고 문명해질수록 가장 잘 먹혀들어가는 말. 사형수들한테 안락산지 뭔지 한다는 세상이 아닙니까? 아저바이 말씀 지당합니다. ”밥을 짓다가 아기를 낳는다거나, 필자의 모친처럼 해산 후 며칠 쉬지도 못하고 가마니를 짜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먹고살기 바쁜 세월에 정말 인권의 사각지대에 살았습니다. ”손님“보다 더 신성하고 중요한 아기낳이도 대접을 못 받았으니 말입니다. 불쌍하지요? 그러나 시대는 변해 아저바이가 지적하다시피 ”중국에서 1950∼70년대까지 종업원에 한해 해산 후 56일의 휴가제도를 실시하다가 점점 시간을 늘여 지금은 반년, 조건이 허락되는 직장에서는 심지어 1년까지 허용한다.“ 이것이 발전이겠지요. 아저바이의 결론도 이런 거 같습니다. ”이렇듯 사회 발전에 따르는 여권의 伸張은 좋은 일이다.“ 아저바이는 멋지게도 ”생리휴가제도“를 ”여권의 伸張“으로 모 박았군만요. 사실 여권운운 떠나서 ”손님“은 우리 모두의 신성하고 중요한 ‘건강권과 모성보호“의 거창한 의미도 있습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여자한테서 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정말 세상은 많이 변했습니다. 아저바이, 제, 이마에 피도 안 마른 주제에도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정말 몸에 와 닿으니 말입니다. ”손님“, 하나만 놓고 보아도 그렇습니다. 아저바이가 ”처음 '생리'를 알게 된 것은 중3때였다.“고 했지요? 그러니 지금 아이들보다 얼마나 늦습니까? 그 ”총각 선생“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저는 아저바이보다 썩 후배지만 마찬가지입니다. 원색적인 ”월경“은 좀 알만한데 ”손님“은 아직 그리 몸에 잘 닿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순이들은 월경 온 것을 누구에게 알리기조차 부끄러워했지요. 아니, 누가 알가봐 겁나했지요. 아저바이의 그 ”너무 수줍어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진 순이와 ”진붉은 월경색 2호 글자로 '월경, 당당히 말하자'라는 제목을 달고 그 옆에 알락달락 예쁜 생리대 아이콘을 줄 세워 놓“은 배재대학교 3순이들하고 한번 나란히 세워놓으면 바로 세월의 자아풍자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니 아저바이가 ”'월경'에 대한 엄폐의식의 파멸이 아니라“고 운운하면서도 ”사회의 변화가 이렇듯 無常한데 대해 개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참, 인권, 아니, “손님”얘기를 하니 아저바이 말씀대로 여권이라 합시다. 지금 막말해서 세월이 좋다보니 여자들 말 잘 들어주고 있지요. 사회가 나서서 여자들 가려운 데를 긁어주고 잘 챙겨줍니다. “손님이 왔습니다”, 그러니 쉬십시오. 우리 사회의 아량이고 신사스타일. 識時務者가 俊傑이 아니겠습니까? 아저바이, 나보다 중국말 더 잘 하니 물론 잘 아시겠지요. 시대의 흐름에 따르는 것이 순리인줄로 압니다. 사실 중국어에 “來例假了”도 마찬가지. 의례히 오게 되는 휴가니 쉬어야 된다는 것. 그런데 그 동안 우리 사회가 각박하다 보니 그렇게 못해주었다. 그래 이제 얼마간 살만하고 여유가 있으니 쉴 때는 쉬라하는 식. 이쯤에는 아저바이도 공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저바이는 단서를 달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기의 '손님'은 별문제이다. 이 '손님'은 重體力勞動者에게 적당한 혜택을 주는 정도면 충분하다.” 아저바이는 重體力勞動者만 내세우면서 정신노동자는 더 말할 것도 없고 輕體力勞動者까지 그 혜택에서 제외시키니 학생에 한해서는 더 운운할 여지도 없이 만들고 있습니다. 아니, 사실 “학생에 한해서는 체육시간을 면제해 주면 그뿐이다. 일반 수업까지 빠져야 할 정도의 부담이 되는 '손님'이 절대 아니라고 한다.”고 학생의 “손님”에 대해서도 말하고 계시군만요. 그런데 아저바이의 이 “절대”는 좀 극단적인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생리휴강제도”가 법적인 효력을 발생하면서 정착한데 대해 한번 잘 음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輕體力勞動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정신노동도 대단히 소모적이고 피곤한 것입니다. 아저바이가 줄곧 정신노동을 해왔지 않습니까? 이 점 잘 아실겁니다. 학생들, 공부 마찬가지의 정신노동입니다. 그것이 기형화될 때는 “입시전쟁”으로까지 비화하지 않습니까? 학생들에게 “손님”은 육체적으로만 나른하고 피곤한 “손님”이 아닐 줄로 압니다. 그리고 그것이 모성과 연계되면서 그렇게 신성하고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학생들에게 “손님”은 찌부둥한 흐린 하늘과도 같은 흐린 기분이랍니다. 이 점을 느껴보자면 사실 아저바이나 나나 여자가 한번 되어 보는 것이 가장 확실한데. 그런데 그것이 일종 모성의 통과의례를 치르는 고역임은 아저바이나 저의 대학교수 지성으로는 얼마든지 공감이 갈 것입니다. 그러니 이 고역을 같이 치러주지는 못할망정 우리는 충분한 배려를 해야 합니다. 물론 이 배려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겠지요. 이런 차원에서 볼 때 “생리휴강제도”가 제도적인 가장 확실한 방식의 하나임은 더 말할 것도 없겠지요.그건 그렇기한테, 아저바이는 “여성에 대한 무제한의 '혜택”이 마음에 걸리지요? “마땅치 않”다 이거지요. 사실 “무제한의 ‘혜택’”문제가 아니라 여자를 보는 아저바이의 근본시각에 문제점이 있습니다. 무슨? 안 그렇다구요? 그럼 좋습니다. “시각을 바꾸어 본” 아저바이의 高見을 잠간 보도록 합시다. “여권의 신장이 아니라 오히려 여권에 대한 침해로 변할 수 있다. 여성을 弱者, 심지어 無能者로 취급하며 그 만큼 사회 활동의 領域에서 배제시키는, 하여 여성의 사회 지위가 낮아지는 결과를 빚어낼 수도 있다. 남성과 거의 같이 일하는 중국 여성이 집에서 놀며 남편이 벌어다 주는 밥을 받아먹는 한국 여성보다 사회지위가 훨씬 더 높은 것이 이 도리를 말해주고 있지 않는가!” 변증법이 흘러넘치고 논리적으로 완벽합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너무 비약이 심하고 인간을 너무 경제적 동물로 본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여성에 대한 배려가 어찌 손바닥 뒤집듯이 “침해”로 변할 수 있고 “弱者”, 심지어 “無能者”로 만들어 결과적으로 사회지위를 “낮아”지게 한단 말입니까? 하물며 여성들이 “생리휴가”를 한다고 해서 사회활동영역에서 배제되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사실은 그 배려 속에 여권은 보호받고 그 배려 속에 여성은 육체적, 정신적 충전을 하며 强者, 有能者가 되며 사회지위는 높아집니다. 그리고 그 배려는 남자가 여자에 대한 배려가 아닙니다. 전반 사회적인 협의 하에 우리 인간이 베푸는 배려입니다. 인간만이 베풀 수 있는 배려입니다. 바로 이런 배려와 베품 속에 여성의 인권은 더 돋보이는 존재로 각인됩니다. 아저바이가 여권 운운하니 저도 따라 갔습니다만 사실 여권이라는 말은 근본점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남녀이분법에 의한 남권 대 여권의 대립논리를 깔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남자는 여자를 떨어져 살 수 없고 여자는 남자를 떨어져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는 상호보완적인 전일체적인 인간존재입니다. 이렇게 놓고 볼 때 남권도 좋고 여권도 좋고 그것은 모두 하나 된 우리 인간의 권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굳이 우리가 여권을 말하는 것은 이때까지 우리가 가부장제 하에서 인간의 권리를 쪼개어 이른바 남권을 조장하고 남용한데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생리휴강제도”라는 것은 아무리 무제한으로 베풀도 마땅한 우리 인간의 성스러운 권리입니다. 그리고 아즈반이, 여성해방의 경제론풀이는 많이 듣던 얘긴데 합리적인 면도 있지만 적어도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부부 관계는 딱딱한 경제-돈만의 관계가 아닙니다. 보다 중요하고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관계는 정입니다. 아저바이, “정 하나로 맺어진 사랑...” 한국 트로트 못 들어보셨습니까? 정만 통하면 니가 돈 벌어오니 내가 돈 벌어오니, 니가 많이 벌어오니 내가 많이 벌어오니... 이런 문제는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자가 집에서 밥만 먹고 잠만 자고 노는 것이 아닙니다. 여자는 여자로서의 할 일이 있습니다. 집안 거두고 아이 낳아 키우고... 얼마 전 한국에서 여성들의 가사노동을 돈으로 환산해보았더니 월평균 적어마치 100만원어치라고 합니다. 사실 여성들은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너무도 대단한 일을 합니다. 남자들이 두 손 들고 마는 일을 합니다. 위대한 어머니가 아닙니까? 그래서 이른바 사나이 남자들이 집에 들어와서 큰소리 못 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 정만 통하면 베개머리송사라는 것도 잘만 통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세상에 이런 말이 생겨난 것도 같습니다. 남자는 이 세계를 지배하지만 여자는 남자를 지배한다고. 아저바이, 이렇게 놓고 볼 때 아저바이의 한국과 중국의 여성지위 운운은 좀 어불성설인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적어도 전통적인 문화풀이가 곁들어져야 될 줄로 압니다. 한국 같은 경우는 전통적으로 여성이 안방을 차지하고 창고열쇠를 쥐고 있은 줄로 압니다. 현재도 이런 패턴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편네한테 돈 좀 얻어 쓰기 위해 두 손 싹싹 비비는 한국의 나그네들, 그리고 비자금 챙기기에 바쁜 한국의 나그네들이 불쌍합니다. 아저바이, 한국에 왜 노숙자가 그렇게 많은지 압니까? 돈 못 벌어들어 가니깐 여편네 볼 면목이 없어 스스로 추방한 나그네들이 많이 합류했기 때문이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이른바 여권이 세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은 문화대혁명 같은 “혁명”을 거치면서 전통적인 유교문화를 싹쓸이하여 이른바 여권이 머리를 든 줄 압니다. 현재 중국의 많은 평범한 가정들을 보십시오. 사실 여성들이 남자들보다 돈을 적게 벌어들어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지는 돈을 못 벌어오면서도 돈을 적게 벌어들어 오거나 못 벌어들어 오는 남자에 대해서는 여성들이 피탈하며 우습게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저바이, 결론적으로 다시 한번 더 말씀 드리면 부부간, 가정의 문제는 경제, 돈만으로 풀이할 것이 아닙니다.그리고 참, 아저바이가 생리휴강제도를 주자니 공부 빼먹는 시간이 너무 많아 우려된다고 했지요? “'손님'이 머무는 시간을 평균 4일로 하면 남학생보다 15.4% 적게 수업 받는다. '손님'체류 기간과 일요일이 겹칠 수도 있겠지만 수업이 싫어 주장한 것이라고 할 때 일요일 외에 4일간 결근할 것은 당연하다. 1년 수업 기간을 9개월로 가정하면 대학 4년간에 남학생보다 4×9×4=144일 결근하게 된다.” 나는 “손님”이 머무는 시간을 잘 모르는데 아저바이는 너무도 잘 알고 계시군만요. 그리고 그 골치 아픈 산수계산도 너무 잘 해 준 줄로 압니다. “수업이 싫어 주장한 것이라고 할 때”라는 가정법을 곁들이면서 말입니다. 아저바이 계산법으로 볼 때 확실히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국 교육인적자원부의 관계자도 “‘생리로 인한 결석’은 한 달에 하루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고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국 대학에서 실제 실시되고 있는 상황을 보면 4일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아저바이, 한보 물러서 이 하루쯤은 어떻습니까? 이 하루쯤이면 “여성에 대한 무제한의 '혜택'” 아니겠지요? 아저바이, “생리휴강제도”는 “여간 복잡한 문제”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여자대학이라고 해도 저마다 손님이 오는 시간이 다르니 강의 진도를 어떻게 장악할 것인가.” 사실 이런 문제는 없습니다. 그저 정상적인 원래 강의진도에 따라 하면 됩니다. 하루 쉬고 곧 바로 따라 갈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여자들입니다. 물론 “여학생에게 이런 혜택(생리휴강제도)을 주자고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더 낙관적이고 적극적이며 주인공다운 인생도 있지 않을까."가 아니라 있습니다. ”시끄럽다! 우리는 한 달에 한번씩 붉은 '손님'이 찾아와 고무해주니 신바람 나는데 휴강은 무슨 놈의 휴강이야! 너네 남학생들 우리보다 작대기 하나에 계란 두 개 더 차고 다니니 몸이 무겁고 힘겹지? 휴강하고 싶으면 너희들이나 해봐라!"라며, 말입니다. 물론 여자들 가운데는 이런 半邊天하는 女强者도 있습니다. 우리 중국 여자들 가운데 많지요? 그런데 여자들 가운데 半邊天할 수 없는 弱女者도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손님” 때문에 골치아파하는 여자들도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현대의 다원화 내지 다원 가치성 원칙을 존중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니 “생리휴강제도”는 어디까지나 꼭 쉬라는 것이 아니고 쉴 수도 있고 쉬지 않을 수도 있는 여성들 자율에 맡기는 것입니다. 아저바이는 “생리휴강제도”실시의 구체적인 세부문제들을 고려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국 대학의 경우를 보면 학습성적과 장학금과의 긴밀한 연계 등등의 구체적 조치가 따라 가다보니 실제로 “생리휴강제도”를 남용하는 여학생들은 매우 적습니다. 쉬라도 안 쉬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저바이, 아저바이가 “생리휴강제도”에 찬성표를 던지자 하니 자꾸 “'皆勤生(개근생)' '整勤生(정근생)'”이 뒤를 잡아끈다 이거지요? “필자가 소학을 다닐 때 '皆勤生(개근생)' '整勤生(정근생)'이라는 상이 있었다. 1년에 결근 날자가 이틀 이하면 정근이고 하루도 없으면 개근이다(지각, 조퇴가 3번이면 하루 결석으로 인정한다). 30명 정도의 한 개 반에 해마다 정근생 2∼3명, 개근생 2∼3명의 수상자가 나온다. 심지어 졸업시 6년 정근생, 개근생 수상자도 간혹 나온다.” 맞습니다. 그때는 '皆勤生(개근생)' '整勤生(정근생)'들이여야 공부를 잘 하고 수상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았습니다. 거저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학교에 가야 공부가 되니 말입니다. 집에 책도 없고 TV도 없고, 볼거리가 없는 거지요. 무식쟁이 엄마, 아버지가 많은 지라 가르쳐 줄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집에 책도 있고 TV도 있고, 엄마, 아버지도 유식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굳이 학교에 안 가도 배울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요새 장비가 좋으니 선생님 강의 녹음, 녹화해온다든가, 인터넷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실제 강의 못지 않은 강의도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집의 따뜻한 구들에 앉아서도 공부할 수 있다는 얘기죠. 아저바이, 아저바이는 “중국의 웬만한 대학에서는 며칠 결근했다가는 남의 필기장을 빌어 베낀다, 밀린 숙제를 한다 하며 보충 공부로 둬 주일간 진땀을 흘려야 하는데 말이다.”를 들먹이고 있는데 이것이야 말로 정말 촌스런 시대착오적인 촌 아저바이의 얘기입니다. 지난 세기 80년대 초 우리도 이렇게 공부했습니다. 지긋지긋 신물이 나도록 말입니다. 시험공부라는 것이 교수님 마디마디 말을 최고지시로 간주하고 달달 외우기. 그래서 강의시간에는 교수님 방귀 뀐 소리 하나 놓칠새라 대구 베끼기. 그리고는 앵무새 노릇하기. 高分低能의 죽은 공부. 대학, 대학강의라는 것이 어디 이렇습니까? 적어도 베끼기가 아니라 같이 사고하고 토론하고 쟁론하기. 결론이 없어도 좋습니다.『성경』같은 경전공부가 아니니깐요. 사고의 깊이를 가져오고 폭을 넓히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공부할 줄 알기 배우기, 한 마디로 공부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스스로 할 줄 아는 공부,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습능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아저바이나 저에게 있어서 이런 상식적인 논의는 너무 소모적이니깐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가 봅시다. 사실 아저바이가 “'皆勤生(개근생)' '整勤生(정근생)”이라든가, “필기장을 빌어 베끼기”, “둬 주일간 진땀을 흘리기”든가는 제가 이해한 학습방법 차원의 천박한 얘기가 아니고 보다 심도 있는 고차원의 얘기인 듯 합니다. “옛날 한국도 상기의 상황과 비슷하였으리라 본다. 이런 정신이 있었기에 광복 후의 곤란, 6•25전쟁 후의 난관을 이겨냈으며 한강의 기적도 창조해 냈으리라. 좀 먹고 살만해 졌다고 안일만 추구할 수 있단 말인가! 또한 세상에 각고분투 없이 출세한 사람이 있는가!” 아저바이는 바로 “정신”을 얘기하고 있구만요. 물질, 방법보다는 정신, 정신적 힘, 그런 거 말이지요? 인간에게 정신이 정말 필요하지요. 정신없이 어찌 인간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것 또한 너무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논의입니다. 그리고 아저바이는 이 정신을 너무 흘러간 옛 노래에서 찾습니다. 지금이 어느 시대입니까? 무지막지하게 돌격, 앞으로의 “계속혁명” 시대가 아닙니다. 과학의 시대입니다. 합리적인 과학의 원칙에 따라 효율성을 따지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좀 먹고 살만해 졌다고” 슬슬 놀아가며 충전도 해가며 여유롭게 사는 시대입니다. 이른바 삶의 질을 따지는 시대입니다. 주 5일 근무제가 세계적인 추세로 확산일로를 걷지 않습니까? “각고분투”의 정신으로 더 열심히 일해 공산주의를 앞당겨 와야 할 우리 중국도 언녕 만만디 주5일근무제를 하지 않았습니까? 바꾸어 말하면, 현재는 많은 작업들이 컴퓨터자동화라인이 되어 있어서 주5일근무만 해도 이전에 하루도 안 쉬고 줄창 일만 하던 때보다도 효율이 높다는 것이지요. 먹고 살만하다는 것이겠지요. 아저바이, 아저바이는 위의 흘러간 옛 노래에서 보면 “한강의 기적”운운에 지난날의 한국을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한국, 아니 현재의 한국 청년학생, 대학생들에 대해서는 심기가 불편할 정도로 부정적으로 보고 있구만요. 그래서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이유도 결코 '생리휴강제도'의 합리여부만을 운운하자는 것이 아니다.”지요. 사실 아저바이는 시시껄렁한 “손님”에 “심상치 않”기 보다는 여기에 더 “심상치 않”은 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여간 우려를 표시할 일이 아니다.”가 아니겠습니까? “중국에 유학 온 한국 대학생 공부 안 한다고 너무 소문났다. 수업에 빠지는 현상은 아주 보편적이며 그 정도도 십분 엄중하다. 어학 연수생의 예로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50% 정도의 수업에 빠지는 학생이 1/4, 30∼50% 빠지는 학생이 1/4이나 되며 1주에 한번도 안 빠지는 학생은 거의 없다. 기숙사에 찾아가 보면 대낮에 쿨쿨 자는데 밤새 카라오케에 가 놀고 새벽에 돌아온 자도 비일비재하다.”, “유학생만 그런가 했는데 자국에서 공부하는 학생도 마찬가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저바이의 경험에다 필자의 경험을 놓고 볼 때 분명히 이런 현상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저바이의 이런 예리한 지적에는 너무 예리하다 못 해 극단적인 편견도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한국 대학생이 다 이렇지는 않겠지만”이라는 제한 어구가 붙었습니다만, 아저바이의 그 가르치는 사람의 정의감이 밑받침된 격앙된 감정이 흘러넘치는 질정은 이것을 커버하고도 훨씬 옷돌고 있습니다. 요즘 애들 공부 안 하는 것 같지만 할 “놈”은 다 합니다. 우리 눈에 안 하는 것 같이 보일뿐입니다. 아저바이는 꼭 선생의 강의를 들어야 하고 낮에 해야 공부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요즘 애들은 선생의 강의보다는 스스로 안겨오는 영상, 낮보다는 밤에 더 정신이 나 하며 공부에 열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먼 데 것은 그만 두고 북경대학만 놓고 보더라도, 썩 오랜 전 언젠가 필자가 북경대학에 놀러갔다가 박사생들을 보고 夜猫子라고 하는데 어안이 벙벙해 하다가 그 사연을 알고는 거저 웃음이 피식 나오고 말았습니다. 낮에는 쿨쿨 잠만 자다가 남 다 자는 밤이 되면 밤새도록 책을 보며 공부를 하니 야행성의 夜猫子라고 할 수밖에. 그래서 북경대학 博士生樓는 밤에도 대낮처럼 환히 밝아 있답디다. 한국 애들은 여기에 한 술 더 뜨는 것 같습니다. 밤에 공분지 무언지 했으면 낮에 잠이라도 자야 되겠는데 커피 둬 잔 마시고 정신을 차리고 낮에도 책을 끼고 돌아다니니 말입니다. 물론 낮과 밤을 뒤바꾸어 행하는 역자연성은 나쁘겠지요. 그러나 못 말리는 요즘 아이들은 바로 이렇게 공부합니다. 그리고 요즘 애들 동기부여가 잘 되고 필요성만 생기면 하지 말라 해도 열심히 공부합니다. 이른바 사회에 나가 쓸모 있는 공부, 취직에 필요하고 살기에 필요한 공부는 열심히 합니다. 아니, 이런 “거창함”보다는 코앞의 장학금을 타기 위해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애들입니다. 야들한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보다는 “필요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더 잘 통합니다. 그리고 요즘 애들 자기 적성에 맞고 흥취가 동하는, 이른바 개성에 맞는 공부는 열심히 합니다. 빌게이츠타입입니다. 좀 자사자리하고 용속하고 별 볼 일 없어 보입니다. 우리는 공산주의후계자가 되기 위한 거창한 전 인류적인 목표를 가지고 공부했는데 말입니다. 이 면에서 개인주의가 팽배한 한국 애들이 더 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아저바이의 “한국 대학의 사정을 잘 아는 자에게 이런 예기를 했더니 ‘한국 대학생들 PC방에 가 게임 놀고, 채팅하고, 술 마시고, 데이트하는데 미쳤지 공부하는 줄 알아? 나흘 더 배운 자나 덜 배운 자나 그거이 그거야"며 필자를 면박하는 것이 아닌가!’”에서 그 “한국 대학의 사정을 잘 아는 자”는 사실 잘 아는 자가 아닙니다. 그 자는 너무 피상적으로 심정적으로 말, 아니 내뱉었을 뿐입니다. 필자가 한 1년간 직접 강의를 해보니 이렇지 않습니다.아저바이, 요즘 아이들 정말 획일적으로, 천편일률적으로 보고 다루어서는 안 됩니다. 因材施敎가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때입니다. 그래서 가르치는 우리는 힘듬니다. 아저바이, 저도 중국에 있을 때 우리 학부에 유학 온 한국 연구생들한테 한어를 가르친적이 있습니다. 단 세 명을 놓고 가르치는데 다 제멋대로 놀아납니다. 한 “놈”은 꼬박꼬박 제 시간에 오고 강의도 열심히 듣습니다. 우리가 다닐 때 소학생 같았습니다. 다른 한 “놈”은 위의 그 夜猫子타입니다. 짜식은 자기는 정말 낮에는 정신이 흐리터분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해가 져야 자기는 정신이 난다는 거지요. 또 다른 한 “놈”은 자기는 아예 강의 자체를 싫어한답니다. 딱딱한 분위기보다 홀가분한 분위기속에서 공부를 해야 잘 된답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했겠습니까? 강의 잘 듣는 그 애만 좋다고 하고 나머지 두 애는 희망 없는 애라고 포기했겠습니까? 이렇게 할 때 가르치는 자로서는 너무도 무책임하지요. 학비까지 받아 챙기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좋다, 그럼 이렇게 하자. 첫 번째 “놈”은 오전 강의 그대로 하고 두 번째 “놈”은 자정 12시(나도 夜猫子니깐)에 하고 세 번째 “놈”은 점심에 밥 먹으면서, 때로는 술 한 잔 곁들이면서 하고, OK? OK! 師道尊嚴을 다 잃고 학생들의 장단에 놀아나는 것 같지만 우리의 교육이 因材施敎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데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소학교에 매개 반 인원을 적정수준으로 제한하고 교실도 가족적인 분위기로 만들며 강의도 아이들 적성에 맞는 영상멀티매체를 동원하든가, 오락이나 유희 속에서 진행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저바이, 因材施敎, 적성에 맞는 교육을 할 때는 ”또한 세상에 각고분투 없이 출세한 사람이 있는가!”가 아니라 그런 사람아 나옵니다. 세상은 萬花境이라 자기 적성만 잘 개발해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습니다. 획일적이고 천편일률적인 교육을 지양하고 적성개발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 현대교육의 특색의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적성개발을 잘 할 때 진짜 이 세상을 감짝 놀래우는 “괴짜”가 탄생하기도 합니다. 빌게이츠, 그렇게 因材施敎적이고 개성적이라는 선전국 미국식 대학교육도 자기의 적성개발에 맞지 않다고 판단되자 중도포기. 그래서 그는 스스로의 적성개발에 나서 현재 작지만 가장 강한 세계 최고의 컴퓨터회사를 일떠세웠지 않았습니까? 몇 년 전 중국의 교육계에 불기 시작한 이른바 創新교육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因材施敎를 전제로 한 학생 나름대로의 적성개발 및 창의성발휘에 모멘트가 놓여있다고 봅니다. 어떻습니까? 아저바이?아저바이,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손님”, 더 나아가서는 한국 청년학생, 대학생들에 대해 “한국의 지성인들은 마땅히 이를 심상치 않은 화제로 보아야 한다.”고 그 누구에게 “호소할” 것이 아니라 일단 아저바이의 시각교정이 필요하고 그 다음 “심상치 않”게 볼 문제인 줄로 압니다. 아저바이, 어쩌다 보니깐 말이 길이지고 많아졌습니다. 좀 격앙된가 봅니다. 그러니 논리적 비약을 떠나서 애초에 두서도 없고 논리도 없는 줄로 압니다. 아저바이의 그 하해 같은 마음으로 너그러이 기분 좋게 받아주고 읽어주십시오. 읽기가 거북스럽거나 싫으면 연길에 놀러 오십시오. 진짜 "손님"이 왔는데 어찌 반갑지 않겠습니까? 술 한 잔 기울이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마음껏 얘기합시다. 아저바이하고 할 얘기가 많습니다.항상 건강하시고 웃으며 삽시다.우상렬 배상2006. 1.14
52    韓流가 漢流라 댓글:  조회:4302  추천:100  2005-12-20
韓流가 漢流라한국사람들 韓流는 잘 알아도 漢流는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런데 여기, 한국에 와 있는 나는 중국조선족으로서 漢流가 폐부에 와 닿는다. 사실 나는 사람들이 韓流가 무엇인지도 모를 때, 정확히 말하여 韓流가 아직 생겨나지 않았을 때 나는 언녕 알고 있었다. 1993년 처음 조상의 뼈가 묻힌 고국의 땅을 밟는 나의 흥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고국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무료로 박사공부 시켜주겠단다. 그런데 전제조건으로 한국어시험에 합격되어야 한단다. 그래서 흔쾌히 자신만만한 한국어시험보기.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낙제. 내가 조선어시험을 치렀지 한국어시험은 아니란다. 무슨 두음법칙이니, 띄어쓰기니 하는 것들이 전부 조선어식이란다. 그러니 이불짐 싸지고 돌아갈 준비를 하란다. 나는 속으로 꿍지랑 거렸다. 조선어가 한국어고 한국어가 조선어지, 뭘 별개나. 그래 가지고 통일을 하겠다고. 좁쌀은 좁쌀이네. 그래 기분은 잡쳐 그해 추석도 찌부둥하게 보내고 나니 무슨 한국어는 한국어고 조선어는 조선이야 하는 한바탕 교육을 하고는 입학시켜주더라. 그기에 무슨 자매대학의 추천을 받아왔으니 하는 꼬리표를 달면서. 그래 그럭저럭 공부를 하고 있을라니 진짜 중국사람, 반쪽이 아닌 온쪽의 중국사람 漢族들이 유학을 한답시고 몰려왔다. 그런데 그들은 한국어가 영 말이 아니다. 한국에서 한 1년간 한국어를 배웠다는 친구들이 내 조선어 식 한국어보다는 형편없었다. 그래서 나는 은근히 걱정을 했다. 저래 가지고 입학시험에 합격되겠는가고. 그리고 상상은 내달려 저래 가지고 대학원공부는 또 어떻게 하지?하고. 그런데 참 다행한 것은 이들이 시험 치는 쪽쪽 합격이란다. 나의 걱정은 杞憂였다. 나는 한국 사람의 너그러움을 높게 평가했고 그들을 축하해주었다. 그런데 슬그머니 속에 캥기는 것이 있었다. 한국어 수준 내 발바닥 때도 못 따라오는 그들이 쉽게 합격하고 내가 어렵게 합격한데는 무엇이 잘못 되도 한참 잘 못된 것 같다. 그 잘되고 못됨을 캐느라고 몇날며칠을 머리 싸매고 끙끙거리며 보니깐 그 갈래판이 의외로 너무 간단하여 허탈감을 느끼다 못해 허무맹랑해지고 말았다. 원래 이 漢族 유학생들이 한국교수들한테 폐부에 와 닿는 韓流의 메신저 역할을 했던 것이다. 물론 그때 韓流란 말이 없었지만. 어, 大國 사람들이 이제 우리 것을 배우러 와. 감사하고 기특할시구. 쏴라쏴라 합격. 한국 사람들 기분파니깐. 한국 사람들 눈에 나 조선족은 大國 사람이 아니다. 너는 어디까지나 우리 小國 한국 사람이라는 것이다. 같은 종자라 한데 끼어주는 것도 그리 싫지는 않았다. 그럼 그렇다 하자. 그런데 공부하면서 열 받는 것은 아무래도 조선족 내 쪽이다. 漢族들은 과당시간에 거저 와서 자리만 지켜주고 형식적으로 레포터를 내고 시험을 건성건성 치도 곱게 보아주기. 레포터 발표에 꺽꺽거리고 뜨듬뜨듬 거리는 것이 애교성 있고 귀엽게 보였다. 조선족, 나는 연변억양을 좀 띠면 이상하게 여기고 북한 억양을 좀 띠면 눈살을 찌프린다. 그때 나하고 우리 조선족 젊은 여류 소설가 김영옥이가 같이 공부했다. 영옥이는 뚝 밸이 있고 개성이 있다. 작가로서의 기질이 있다. 영옥이는 그때 이미 한국에서 조선어인지 한국어인지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우리말로 소설집『미친녀』까지 출판했다. 촉망받는 젊은 소설가임에 틀림없다. 영옥이는 그때 석사과정을 다 끝마치고 논자시험만 남은 상태. 그런데 그가 논자시험-학위논문제출자격시험 한국어에 합격되지 못했다. 다른 꺽꺽거리고 뜨듬뜨듬 거리는 漢族들은 다 합격하면서 말이다. 영옥이는 울먹울먹하며 나를 찾아왔다. 나는 할말이 없었다. 나는 그저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그 여린 마음을 위로해줄 수밖에 없었다. 너, 왜 조선족인가고. 漢族이 아니고. 그리고 여기는 정신병원이라고. 내가 공부하는 곳은 그래도 공산주의적 무료혜택이 많아 조선족에 漢族에 여하튼 중국유학생들이 꾸역꾸역 많이 모여들었다. 그러면 나는 에헴, 에헴, 한국 식 선배 틀을 차리며 후배들에게 공부묘방을 알려주었다. 너네, 시험 잘 맞자면 중국사람 아니, 반드시 漢族티를 내야 한다. 조선족 너도. 공부는 대충대충해도 되. 거저 漢族으로서 열심히 하는 모습만 보이면 되. 알았쟈? 과연 내 말은 선배다운 가르침이었다. 중국 후배들 공부 좀 해보더니 그저 내 말이 딱 먹혀들어간단다. 그래서 이 친구들 내 말은 팥으로 미주를 쏜대도 잘 들었다. 사실 내가 있는 연구원뿐이 아니고 전반 한국사회가 그렇다. 여보세요, 중국에서 오셨지요? 얘. 중국에서 온 조선족입니다. 아, 그러니 우리말을 잘 하지/여보세요, 중국에서 오셨지요? 얘. 중국에~서 온 漢族입~니다. 아, 그래요. 속으로는 한국어를 잘 못한다하면서도 아, 그만하면 혹은 그래도 우리말을 잘 하시네요.하고 짜른 바지춰주기. 그리고는 착각에 빠진다. 우리말을 잘 하는 조선족은 중국말을 잘 못할 거고 우리말을 잘 못하는 漢族(그가 아무리 방언투성이의 남방말을 구사하더라도)은 중국말을 잘 할 것이다. 그러니 중국말은 그래도 漢族이야하며 漢族한테 일감을 준다. 사실 한국에서 중국 관계 일이야 중국어와 한국어를 다 구사할 줄 아는 조선족(표준적인 북경말을 구사하는)이 제격임은 두말할 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사람들 우리 중국조선들하고 교류를 놓고 보아도 그렇다. 한국사람들 처음에 그 四顧無親한 허허 넓은 중국 땅에 들어와 어리뻥뻥. 위압감도 느낀다. 그래서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으로 교포요, 동포요, 친척이요 뭐요 하며 잡은 것이 조선족. 연변에 사는 우리 한국 손님 맞이하기에 바쁘다 바뻐. 우리 연변대학도 민족의 대학이라고 무슨 교수고 학자고 엄청나게 몰려들었다. 형제결연이요, 자매결연이요 야단법석.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것은 꿩구워 먹은 자리. 조선족 별 볼일 없어. 산골짜기 촌놈들이라 말이야. 맥을 못 춰. 그러니 아무래도 맥을 추는 漢族들을 찾아가야지. 그래서 너도나도 북경으로. 북경이 포화상태니깐 상해로, 남방으로. 그래서 조선족이라도 북경에 사는 漢族 가까이 있거나 漢族 같은 조선족들이 텃세를 믿고 우쭐대기.그래서 나는 결론적으로 韓流가 아닌 漢流가 자꾸 뇌리에 흐른다. 사실 한국에는 漢流의 맥이 언녕 용용히 흐르고 있다. 도처에 일어서는 중국어학원, 중국식료품집, 중국요리점... 중국농산품, 공산품 넘쳐난다. 중국본토에서는 언녕 일본유학생을 제치고 일약 1위 자리를 차지한 한국유학생수. 그리고 줄을 이은 기업들의 중국행, 여기에 보따리 장사까지 합류. 중국이 어떤 나라냐? 2000여년이나 漢流의 물결을 일으켜 한반도를 휩쓸었다. 이 2000여년의 줄기찬 漢流, 한국사람들의 한 원형질을 이루어놓았다. 그래서 한국사람들 산이 많아 농사짓기에 불편하고 삼면이 바다인 반도에 살면서 해양문화로 나아가지 못하고 농경문화인 중국의 漢流에 이리저리 부대꼈다. 그래서 해양문화의 빛을 잠간 반짝인 장보고는 돋보이는 존재. 한반도와 비슷한 지정학적 위치에 처한 고대 그리스사람들이 농경문화로 나아가지 않고 해양문화로 나아간 것은 바로 그들 주변에 漢流와 같은 강대한 이민족의 문화가 없었기 때문. 한국사람들 아직도 漢流의 물결에 헤염치고 있다. 에헴, 에헴 하는 공자제자들 한국이 중국보다 더 많다. 그래서 옛날의 조공관계를 떠나 현재 한국사람들의 머릿속에 중국은 문화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나라. 漢流의 깊은 뿌리는 바로 여기에.중국은 무서운 나라. 디디해 보이고 어리숙해 보이는 중국이 하루아침에 거인의 활보로 다가오고 쫓아온다. 일종 ‘黃禍論’에 가까운 두려움. 앞으로 중국이 미국을 견제하고 세계를 지배한단다. 여기에 한국사람들 작은, 약자콤플렉스 발동된다. 큰데, 강한데 붙어야 산다. 그래서 중국한데 프로포즈하기. 수교. 북방외교 성공이란다. 그 어느 대통령의 공적으로 대서특필. 그런데 조선족은 정말 별 볼 일 없는 존재. 중국에서는 변두리 약자고 소수민족. 중국을 대변할 수 있는 주체민족이 아니다. 중국의 훌륭한 소수민족정책에 얹혀 살아가는 신세. 적어도 자본주의논리에 젖은 한국사람들의 눈에는 이렇게 보인다. 자본은 趨益避損의 趨益논리를 따라 움직인다. 그러니 조선족은 소외된 존재로밖에.그러니 韓流에 그렇게 흥분하는 한국사람들의 심리도 알만하다. 韓流가 漢流를 뒤엎는다? 착각. 大國 중국이 2000여년 래 최초로 韓流를 받아들이는 그 고마움 내지 감지덕지도 없지 않아 있으리라.2005.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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