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yun 블로그홈 | 로그인
견이의 집
<< 12월 2024 >>
1234567
891011121314
15161718192021
22232425262728
293031    

방문자

홈 > 전체

전체 [ 160 ]

20    시냇물 (동시) 댓글:  조회:2858  추천:2  2012-05-10
시냇물 시냇물은 왜 돌~돌~돌~ 흐르는 걸까? 돌~돌~ 돌밭 위를 흐르기 때문이지 돌밭 위를 흐르다 보면 발 아플 텐데 왜 하필 돌~돌~돌~ 노래하며 흐를까? 피해 갈 수 없는 길인 바에야  돌~돌~돌~ 노래하며 흐르는 게    낫겠지?
19    아버지의 유품 (견이의 횡설수설) 댓글:  조회:3058  추천:1  2012-05-09
아내를 잃고 혼자 살아가는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젊었을 때에는 마른 일, 궂은 일 못하는 일이 없었지만, 이제는 자기 몸조차 가누기가 힘든 노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장성한 두 아들은 아버지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는 목수를 찾아가 나무 궤짝 하나를 주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집에 가져와 그 안에 유리 조각을 가득 채우고 튼실한 자물쇠를 채웠습니다. 그로부터 두 아들에게는 한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아버지의 침상 밑에 못 보던 궤짝 하나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아들이 그것이 무어냐고 물으면 할아버지는 별게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궁금해진 두 아들은 아버지가 없는 틈을 타서 그것을 확인해보려고 했지만 자물쇠를 열 수가 없어서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궤짝 안에서 금속들이 부딪치는 것 같은 소리가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아들은 생각하였습니다. '그래! 이건 아버지가 평생 모아 놓은 금은보화일 거야.' 그로부터 두 아들은 번갈아가며 아버지를 정성껏 모시기 시작하였습니다. 얼마 뒤 할아버지는 죽었고, 두 아들은 드디어 그 궤짝을 열어 보았습니다. 깨진 유리 조각만이 가득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큰아들은 화를 내었습니다. "… 당했군!"  그리고 궤짝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동생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왜? 궤짝이 탐나냐? 그럼, 네가 가져라!" 막내아들은 형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못박힌 듯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습니다. 적막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1분, 2분, 3분…… 이윽고 막내아들의 눈에 맺힌 이슬이 주루룩 흘러내렸습니다. 막내아들은 그 궤짝을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나뭇가지가 조용하려 해도 바람이 쉬지 않고 자식이 효도하려 해도 어버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 격언을 떠올리며, 아버지가 남긴 유품 하나만이라도 간직하는 것이 그나마 마지막 효도라 생각한 것입니다. 아내는 구질구질한 물건을 왜 집에 들이느냐며 짜증을 냈습니다. 그는 아내와 타협을 했습니다. 유리 조각은 버리고 궤짝만 갖고 있기로... 그런데 궤짝을 비우고 나니, 밑바닥에 편지 한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편지를 읽던 막내아들은 꺼이꺼이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습니다. 나이 마흔을 넘긴 사나이의 통곡 소리에 깜짝 놀란 아내가 달려왔습니다. 아들딸도 달려왔습니다. 편지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습니다. 첫째 아들을 가졌을 때, 나는 기뻐서 울었다. 둘째 아들이 태어나던 날, 나는 좋아서 웃었다. 그 때부터 삼십여 년 동안, 수천 번, 아니, 수만 번 그들은 나를 울게 하였고, 또 웃게 하였다. 이제 나는 늙었다. 두 아들은 장성했고 달라졌다. 더 이상 나를 기뻐서 울게도, 좋아서 웃게도 하지 않는다. 내게 남은 것은 그들에 대한 기억뿐이다. 처음엔 진주 같았던 기억들, 중간엔 내 등뼈를 휘게 한 기억들, 그리고 지금은 사금파리, 유리조각 같은 기억들. 아아, 내 아들들만은... 나 같지 않기를…… 나 같은 늘그막을 맞지 않기를 아내와 아들딸도 그 편지를 읽었습니다. "아버지!" 하고 소리치며 아들딸이 그의 품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아내도 그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그렇게 네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뒤로 그들 집안에서는 즐거운 웃음소리가 떠날 줄 몰랐습니다. ********* 나는 과연 아버지를 얼마만큼이나 울고, 웃게 해드렸는지...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18    진달래꽃 (동시) 댓글:  조회:2528  추천:0  2012-04-30
진달래꽃/견이             진달래꽃 가지가 분홍빛 팝콘을 톡톡 터칩니다.   마실 나온 바람아줌마 솔~솔~ 들여다보고 있는데   지나가던 봄아이 엄마 심부름도  잊은 채 오도카니 서서 꼴깍~ 군침을 삼킵니다.  
17    진정한 나의 재산 (견이의 횡설수설) 댓글:  조회:3183  추천:0  2012-04-30
어떤 농군이 밭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는 밭에서 골라낸 돌들을 밭 옆의 길에 내다버렸습니다. 마을의 한 할아버지가 지나가다 그 광경을 목격하고 책망조로 말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아, 왜 자넨 자네 소유가 아닌 밭에 있는 돌들을 영원히 자네 소유인 공공도로에 내다버리는 건가?” 농군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 밭은 분명 자기 소유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늙은이가 노망 났나부다 하고 투덜거리며 계속 돌들을 밭 옆 길에 내다버렸습니다.   몇 년 후 농군은 외국에 돈벌이를 가느라고 그 밭을 처분했습니다. 그리고 몇해 후 고향에 돌아온 그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소유가 아닌 그 밭 옆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길을 가던 그는 예전에 자신이 길에 내다버렸던 돌에 걸려 넘어져 크게 다쳤습니다. 그 때서야 그는 전에 그 할아버지가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흔히 지금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들을 사유재산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위 이야기에서는 사유재산은 소유권이 이전될 수 있기 때문에 영원히 내것이라 할 수 없지만, 공공재산은 어느 한 개인에게 소유권이 이전되지 않으므로 그야말로 진정한 내 재산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책, 가방, 시계, 컴퓨터, 자동차, 집 등은 우리의 영원한 소유물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폐기처분될 것이 대부분이요, 누군가에게 팔리는 순간 더 이상 우리 소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도로, 공원, 학교, 하천, 철도, 문화재, 사적지, 명승지, 도서관, 극장 등등은 영원한 우리의 재산입니다. 공유 재산이라 아무도 팔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부터인가… 연길공원이 담장을 헐어버리고 문표도 취소했습니다. 한차원 승격된 공공성이 확보된 것입니다. 출퇴근 길에 산책 삼아 공원을 가로질러 다니는데, 이렇게 아름답고 큰 공원을 개인이 소유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웬만한 사람의 경제력으로는 어림없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 어마어마한 크기의 아름다운 공원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 정원을 소유하고 누린다니 얼마나 뿌듯한지 정말이지 옛날 임금님 부럽지 않습니다. 저 말고도 공원에서 산책하고 운동하는 많은 시민들이임금님 부럽지 않은 이런 행복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은 공원이 공유 재산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자치주 성립 60주년을 맞으면서 정부에서 많은 인력, 재력을 들여 공원에 유보도를 새로 깔고, 조각상 마을을 만드는 등 일련의 보수공사와 미화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호젓한 풍경 속을 거닐다가도 참으로 흉물스러운 풍경들에 쓴 입맛을 다실 때가 많습니다. 입구에는 분명히 “일체차량 출입금지”라는 패쪽을 세워놓았건만, 오토바이로부터 고급승용차, 화물트럭, 봉고차에 이르기까지 활개치고 다니는 무단출입차량들 성화에 새로 깐지 1년도 채 안 되는 유보도가 울퉁불퉁 변형되고, 바닥벽돌이 금이 가고 깨져서 볼품없이 되었는가 하면, 동물원우리와 유보도 사이에 산뜻하게 세워놓은 흰색 바자가 몇달 못 가서 군데군데 이가 빠지고 부러져 있고, “동시마을”에 가면 유리가 깨지고 시문(詩文)마저 찢겨 나간 헐망한 전시판들이 가을 끝난 논밭의 허수아비처럼 쓸쓸히 서있는 풍경이라니…   무단출입차량 차주(車主)든, 파괴를 일삼는 얼간이들이든 그것을 “내 재산”, “내 소유”라고 생각했더라면 이 같은 파괴행각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누군가 “내 집 정원”, “내 집 바자”를 파괴하면 정말이지, 한사하고 덤벼들 것입니다. 아름답고 문명한 도시가 되려면 공중시설이 많아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소질 내지 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꾸준히 돈을 들여 새로운 시설을 만들어도 한쪽에선 파괴행각이 그치지 않는데야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아까 이야기 중에서 “어리석은 사람아, 왜 자넨 자기 소유가 아닌 밭에 있는 돌들을 영원히 자네 소유인 공공도로에 내다버리는 건가?” 하고 책망하던 할아버지의 질문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유효한 것입니다. 우물에 침을 뱉는 자는 언젠가 반드시 그 물을 마시게 되는 법입니다.
16    명연설가 (견이의 횡설수설) 댓글:  조회:2294  추천:0  2012-04-23
연설을 잘하기로 소문난 전도사가 있었습니다. 그가 강단에 서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은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고, 기뻐서 환호하기도 했습니다. 전도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그의 손짓과 몸짓 하나하나에 청중들은 환호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하루, 전도사는 어느 섬마을 교회의 초청을 받고 설교를 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교회 강당에는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전도사가 흐뭇한 표정으로 좌중을 둘러보며 막 입을 열어 연설을 시작하려는 순간, 어린아이 하나가 시끄럽게 울어댔습니다. 어린애의 엄마는 겨우 젖을 물려 어린애를 울지 못하게 달랬습니다. 전도사는 찌프린 눈살로 그 어머니와 아이를 이윽고 내려다보다 말고 다시 설교를 시작하려 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고, 이어서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울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강당 안은 삽시에 아이들의 울음소리로 온통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당황한 몇 명의 엄마들은 우는 아이를 데리고 급히 밖으로 나가기도 했습니다. 화가 꼭뒤까지 치민 전도사는 일그러진 얼굴로고함을 질렀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들은 아이들을 모두 강당 밖으로 내보내시오!” 그 말에 엄마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허둥지둥 강당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이들을 밖에 내보낸 몇 명의 엄마들이 다시 강당으로 들어와 조용히 자리에 앉았고, 강당 내는 비로소 조용해졌습니다. 그제야 강단에 서 있던 전도사는 목청을 가다듬고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전도사가 한창 연설에 열을 올리고 있을라니, 이번에는 창밖으로부터 방금 나간 아이들이 뭐가 그리 즐거운지 마당에서 뛰노느라 히히낙락하는 소리가 강당 안까지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전도사는 열변을 토하며 설교에 열기를 더해갔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에 자꾸 신경이 쓰여서 연설을 계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전도사가 강단에서 내려오며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아이들과 노닥거리는 자가 누군지 내 오늘 혼쭐을 내줘야지!" 씩씩거리며 창문을 열고 마당을 내려다보던 전도사는 그만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굳어지고 말았습니다. 전도사의 명에 따라 강당 밖으로 내쫓긴 아이들, 그 아이들과 함께 소리치면서 어울려 놀고 있는 그 사람은 다름 아닌 그 교회의 목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 설교 이야기가 아닙니다.  종교 이야기는 더더욱 아닙니다. 진정 훌륭한 연설가나 예술가, 문인이란 자신의 달변이나 학식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동등하게, 차별 없이 대할 줄 아는 마음이 근본이 되어야지 않을까 싶어서 하는 얘깁니다. 아이들의 울음소리 하나 용인하지 못하는 사람의 연설, 그것은 저 창밖에서 들려오는 고물장수의 꽹과리 소리에 불과한 잡소리일 것입니다.  
15    아름다운 지도자(견이의 횡설수설) 댓글:  조회:2779  추천:0  2012-04-14
 1982년, 한국의 어느 건설회사에서 말레이시아 페낭대교 공사를 맡아 완성했는데, 당시 건설회사에서는 준공식 무대를 거창하게 준비했습니다. 건설회사 측에서는 한국 국내에서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장과 똑같은 무대를 연출하기 위해 한국에서 전문가를 불러 단상을 꾸몄습니다. 높은 위치에 수상 부부가 앉을 커다란 의자를 배치하고, 그 양 옆으로 정부요인 및 귀빈들이 앉을 의자를 놓았습니다. 수상 의자 앞에는 버튼을 누르면 폭죽과 연기가 치솟는 장치도 준비했고, 햇빛이 강해서 차양도 넉넉하게 치고 카펫도 깔았습니다. 준공식 하루 전, 말레이시아 수상의 비서실장이 현장을 둘러보러 왔는데 무척 놀라운 표정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건설회사 관계자들은 비서실장이 한국 건설회사 측의 준공식 준비에 감탄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흡족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비서실장이 회사 관계자에게 다가오더니 예상 밖의 질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수상이 앉는 데는 그늘이 있는데, 일반인 5천 명이 앉는 이 앞은 어떻게 할 겁니까?” 비서실장이 단상 앞쪽의 공터를 가리켰습니다. 어떻게 하다니? 한국 건설회사 관계자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비서실장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보통 대통령이나 관리들이 앉을 자리에만 신경을 써왔을 뿐, 일반 참석자들은 땡볕에 서 있는 게 관례였기 때문입니다. “오천 명 참석자들을 위해서도 차양을 치든지, 아니면 수상 자리의 차양을 없애든지 하세요. 수상만 그늘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비서실장의 단호한 지시였습니다. 단상을 둘러보던 그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 의자 두 개는 왜 이렇게 큽니까?” “수상 각하 내외께서 앉으실 의자입니다만….” 건설회사 책임자가 대답했습니다. “수상은 왜 다른 사람들보다 엉덩이가 크답니까?” 그러면서 비서실장은 수상이 앉을 자리에도 보통 의자를 가져다 놓도록 부탁했습니다. 다음날 수상이 와서 기념연설을 했습니다. 말레이시아어로 열변을 토하는 중간 중간, 사람들로부터 폭소가 터져나왔습니다.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 건설회사 관계자들은 그냥 좋은 얘기겠거니 생각하고 따라 웃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말레이시아 관료 한 사람이 한국 건설회사 대표자의 옆구리를 툭 치며 영어로 말했습니다. “지금 수상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고나 웃는 겁니까?” “글쎄요… 뭐라고 했기에......?” 한국 회사 대표자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습니다. “한국 회사는 알리바바 같은 도둑놈이라고 수상이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 회사가 도둑놈이니까 말레이시아 국민들이 빨리 선진 토목기술을 배워서 이 한국 도둑놈들을 쫓아내야 한다는 겁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한국 건설회사의 현지 책임자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합니다. 지도자는 정말 겸손하고 소박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물은 아래로 흐르고 사람은 겸허한 인품 쪽으로 몰리기 때문입니다. 스위스에서는 대통령이 전철을 타고 다녀도 아무 탈이 없고 대통령 부인도 제네바 거리로 꽃을 사러 나온다고 합니다. 전반 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국민의식도 발전하면서 최고권위 자리가 많이 낮아졌습니다. 그러나 아직 많은 국가의 대통령이나 지도자들이 친근한 이웃이 아닌 왕을 대하는 듯한 거리감을 주고 있습니다. 지도자는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 하지 말고 가장 좋은 모범이 되라고 했습니다. 또 훌륭한 지도자는 모든 사람의 심부름꾼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
14    두개와 세개의 문제 (견이의 횡설수설) 댓글:  조회:3043  추천:2  2012-04-08
두개와 세개의 문제 할아버지가 결혼잔치에 다녀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기 바쁘게 세살 터울의, 귀여운 두 손자 녀석이 쫑드르 달려나오며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할아버지, 무슨 맛있는 거 가져왔슴다?” “오호, 그래… 내 늬들 주자구 맛있는 사탕 가져왔지… 자… 재영이랑 둘이 나눠 먹거라이.” 할아버지가 호주머니에서 사탕 다섯알을 꺼내 작은 손자 재훈이 손에 쥐어주며 말했습니다. “고맙슴다, 할아버지! ” “잘 먹겠슴다, 할아버지!” “오냐, 그래, 그래…” 두 손자가 깍듯이 인사를 하고 물러갔습니다. 그런데… "얌마, 내가 형인데 왜 두개만 주고, 넌 동생인데 왜 세개나 가지니?!" 사탕을 받아든 동생 재훈이가 형 재영이에게 두알을 주고 자기는 세알을 가지려 했던 모양입니다. “흥, 내가 할아버지에게서 직접 받았으니까 두개 나눠준 것만으로도 형은 고맙게 생각해야 해!” 할아버지는 두 형제가 실랑이하는 모습을 그저 물끄러미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 그 때, 안방에서 나온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두 아이가 다투는 영문을 물었습니다. "쟤들은 왜 또 저렇게 도툰담둥?" 그에 빙그레 웃으며 대답하는 할아버지의 말씀이 걸작이었습니다. "흐음… 세 개 문제로 싸우고 있다네." "아니, 세 개 문제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람둥?" "왜~ 온 세상 사람들이 그 세 개 문제로 다투고 싸움질하고들 있지 않는가?  '나는 세개! 너는 두개' 하고 말이야… 모두들 공평하게 가지면 되는데 무슨 조건을 붙여서라도 세개가 자기 몫이라 주장하니까 세상이 어지러울 수밖에…" 그제야 할아버지의 말뜻을 짐작한 듯 할머니도 수긍조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 참으로 그런 것 같습니다. 인간의 본능 자체가 아마 공평을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모두들 자기가 세개를 차지하려고 양보할 줄 모르는 데서 분쟁이 일어나고, 불화가 생겨나고, 싸움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모두 다 너무나 똑똑하기 때문에, 서로가 세 개를 차지하려 하기 때문에 해답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가훈처럼 들려주시던 얘기가 있습니다. “너희 할아버지가 생전에 그러셨다.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거 별거 아니다. 내가 좀 밑진다 생각하고 처사하면 좋은 사람’이라고…” 그런데 정작 그 “내가 좀 밑진다 생각하고 처사”한다는 게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똑같이 일하고 누가 나보다 더 받아도 “밑지”는 것 같아 싫었고, 나는 하느라 무진 애썼는데, 누군가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불평이었습니다. 결국 저 역시 어쩔 수 없는, 그렇고 그런 속물임을 고백합니다. 옛날 어떤 선비가 맹자에게 “선비는 어떤 일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맹자는, “뜻을 높이는 일을 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선비는, “뜻을 높인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하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 질문에 맹자는, “(居仁由義)어진 마음으로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맹자는 또 어진 마음은 ‘측은지심’(惻隱之心)에서 비롯되고 옳음은 ‘수오지심’(羞惡之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측은지심은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요, 수오지심이란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을 말합니다. 우리가 두개에 만족하지 못하고 세개를 차지하려는 마음은 결국 이 측은지심과 수오지심이 결여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너무들 똑똑하여, 어질고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을  찾아볼 수 없는 게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소위 경제시대라고 하는 요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어짊을 어리석음이라고들 폄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름아닌 그 어리석음이야말로 탐욕과 시기로 병든 요즘 세상을 평화롭게 만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지요? 우리 모두가 지금 지나치게 똑똑해서, 그래서 사는 게 피곤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요?
13    클라라의 치마 이야기 (견이의 횡설수설) 댓글:  조회:3020  추천:0  2012-03-31
클라라의 치마 이야기 ……… “무솔리니는 최후에 애인인 클라라와 함께 총살을 당하고, 시체는 광장에 공개되었던 모양이야.” “어머나!” “군중이 그 시체를 향해 침을 뱉고 매질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시체를 거꾸로 매달았는데 그 바람에 클라라의 치마가 뒤집혔지.” “어머나!” “군중들은 굉장히 즐거워했대. 죽여준다. 속옷이 훤히 다 보인다, 하며 흥분했겠지. 어느 시대건 그러게 마련이지~ 남자들이란… 아니, 여자들도 그랬겠지. 그런데 그때 한 사람이 손가락질을 받아가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클라라의 치마를 올려주고 자신의 허리띠로 묶어서 치마가 뒤집히지 않도록 해줬대.” “어머나!” “대단하지?” 미츠요씨는 소중한 물건에 숨을 불어넣는 투로 말했다. “사실, 나는 늘, 최소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 “치마를 올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이에요?” “응… 사람들이 날뛰고 소란을 피우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겠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무섭기도 할 거고… 하지만 최소한 있지… 뒤집힌 치마 정도는 바로잡아줄 줄 아는… 그게 무리라면 뭐 치마를 바로잡아줄 수 있다고 생각이라도 할 줄 아는 사람은 되어야지 않겠나 싶어…” *********** 이사카 코타로의 저서 -《마왕》에서 나오는 대목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상황에 놓인다면,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시겠습니까? 아니, 지금 이 대목에서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요?   저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요즘 우리 사회와 일맥상통한 모습에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 또한 그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사실 때문에 몸에 꽉 끼는 옷을 입은 것처럼 마음이 갑갑해졌습니다.   사실, 저도 늘 '미츠요'씨처럼 최소한 그런 사람은 되어야지 하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최소한 뒤집힌 치마 정도는 바로잡아줄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하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무시무시한 군중심리가 발동하기 시작하면, 이리저리 휩쓸리다가 끝내는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곤 하죠.   그러던 중 이 글을 읽고는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이건 정말 아니다!' 라고 생각되는 상황과 맞닥뜨린다면, 아주 작은 행동이라도 실천해야겠다고…   우리는 누구나 잡다한 일상 속에서 “클라라의 치마”를 만나게 되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그때마다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지 말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걸 행동으로 옮겨봅시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날개짓이 모여 아주 가벼운 바람이라도 일으킬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12    이상한 바퀴벌레 댓글:  조회:2931  추천:0  2012-03-26
이상한 바퀴벌레 저기 저 바글거리는 바퀴벌레들…   근데 참 이상하다... 저것들은 왜 꼭 풀~풀~풀~  시커먼 방귀를 내뿜어야 기어가네  
11    개똥과의 전쟁 (견이의 횡설수설) 댓글:  조회:2847  추천:0  2012-03-24
개똥과의 전쟁   얼마 전, 어느 해묵은 잡지를 뒤적이다가 재미있는 신문기사를 보았습니다. 2002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똥과의 전쟁을 선포했다는 기사였습니다. 당시 프랑스시 시장 베르트랑 들라노에(Bertrand Delanoe)가 시내 곳곳에 널려 있는 개똥의 추방을 중점 사업으로 정하고, 2002년부터 개의 배설물을 개 주인이 현장에서 직접 수거하도록 강제규정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개똥을 즉각 처리하지 않는 개 주인에게는 1㎏당 인민폐 8천4백원에 해당하는 벌금 - 1200 프랑을 안기고 두 차례 위반한 주인에게는 3000프랑까지 벌금을 안긴다고 규정했습니다. 개똥이 금값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나올 만한 일이었습니다.   이를 시행하기 위해 개를 끌고 나온 시민들에게 비닐봉지를 나눠주면서 “나는 내 동네를 사랑한다,”, “나는 치운다!” 라는 구호로 시민 계몽 운동도 진행했다고 합니다.   사실, "런던이 안개가 명물이라면, 파리는 개똥이 명물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파리에서는 과거 개가 아무 곳에서나 ‘실례’를 해도 용서를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게 되었습니다. 20만 마리에 이르는 개들이 배설해내는 배설물이 하루 16톤에 달했으며, 개똥을 밟고 미끄러지는 인명사고가 매년 600건에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프랑스 파리의 “개똥 운동”은 멀리 떨어져 사는 우리들에게는 어쩌면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꺼리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도 우리 주변에서는 개똥보다 더 심각한 냄새들이 코를 찌르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그것은 우리와는 무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만은 아닐 것입니다.   전에는 좀 점잖은 동네에서 살았던 탓인지 별로 대수롭잖게 여겼지만, 새살림 차린답시고 셋방살이를 하고 있는 요즘, 출퇴근길에 아파트단지를 드나들면서 거의 날마다 목격하게 되는 방뇨의 흔적들, 지어 계단 한구석에서 “큰일” 본 흔적까지 눈에 띄었을 때… 말 그대로 눈이 뒤집혀지는 충격에 아찔해났습니다. 개똥이라면 차라리 웃고나 말지!   전국문명도시 건설을 위해 온 시민이 동원된 요즘입니다. 사실 하루가 다르게 변모해가는 연길의 모습과 공중시설들을 보면서, 그리고 공용버스에서 노약자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느라 빈자리가 있어도 앉을 염을 않고 꿋꿋이 서서 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연길의 희망과 밝은 미래를 보는 것 같아 적이 흐뭇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신변에서 이런 불가사의한 추행을 목격했을 때는 정말이지 …… 그러나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면, 다시 우리의 후각을 동원하여 구체적으로 어디서 이 같은 고약한 냄새가 나는가를 찾는다면, 우리는 어쩌면 그 냄새가 “나”에게서 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 진리의 거울에 나 자신을 비춰볼 때 우리의 모습은 부끄러움 밖에 없을 것입니다. 만물이 태동하는 이 희망의 계절에 우리는 지금 개똥과의 전쟁이 아닌, 나와의 전쟁을 시작할 때가 아닌가 회의하게 됩니다.
10    소원성취나무 (견이의 횡설수설) 댓글:  조회:3297  추천:0  2012-03-17
소원성취나무   한 나그네가 우연히 낙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낙원에는 소원성취나들이 있어서 나무 밑에 앉아 무언가를 원하면 즉각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선 뭐든지 원하기만 하면 성취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그네는 매우 지친 터라 나무 밑에서 스르르 잠들어버렸습니다. 얼마 후 잠에서 깨어나자 그는 무척 배가 고팠고, 그래서 중얼거렸습니다. “배가 고픈데, 어디 뭐 좀 먹을 게 없을까?...” 그러자 머리 위에서 뭐가 뚝 떨어졌는데, 보니까 글쎄 잘 구워진 소갈비와 빵덩어리였습니다. 무척 배가 고팠던 차, 그는 그게 어디서 어떻게 생겨난 건지는 신경 쓸 여유도 없이 얼른 집어서 실컷 배불리 먹은 후에야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하지만 주위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 배가 불렀다… ” 그러자 다른 생각이 퍼뜩 떠올랐습니다. “와인 한잔 있었으면 좋겠는데…”   낙원에는 금지하는 게 없었습니다. 그가 중얼거리기가 무섭게 어디선가 아주 고급스러워 보이는 술병이 뚝 하니 떨어졌습니다. 그는 나무그늘 아래에서 살랑이는 바람을 즐기며 유유자적 술병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 그러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뭘까? …… 내가 지금 꿈꾸고 있는 건가, 아니면 도깨비장난에 놀아나는 건가?!” …… 그러자 난데없이 도깨비가 세명이나 나타났는데, 저마다 소름 끼치도록 험상궂은 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화들짝 놀라 부르르 몸을 떨었습니다. 질겁을 하며 생각하길 ‘아이고, 이젠 꼼짝없이 죽었구나!’ 그러자 그는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습니다. ******************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가 낙원이고, 당신의 마음이 곧 소원성취나무입니다. 무언가를 원하면 조만간 이루어지는데, 우리는 종종 자신이 원하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근원과 통할 수 없을 때 마음이 흔들리고 결국엔 포기하기에 이릅니다. 좀 더 차분히, 깊이 들여다 보았더라면 자신의 생각 하나, 하나가 바로 자신과 자신의 삶을 형성하고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한번 즈음 곰곰이 생각해봅시다. 지금 나는 어떤 자리에 와있는가를… 그리고 돌이켜봅시다. 그 자리가 바로 내가 오래 전부터 원했던 자리가 아닌가를…… 참 신통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당신의 생각 하나, 하나가 천국과 지옥을 낳고, 슬픔과 기쁨을 낳고, 부정과 긍정을 낳습니다.
9    소가 더 중하지요 (견이의 횡설수설) 댓글:  조회:2917  추천:0  2012-03-13
소가 더 중하지요 어떤 시골 아낙네가 아들아이를 업고 헐레벌떡 병원으로 들어와서는 아이를 침대에 내려놓고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했습니다. 의사가 아픈 아이를 진찰한 결과 자기 병원에서는 치료하기 힘들 정도로 병세가 위급했습니다. 그래서 빨리 큰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아야 한다며, 늦으면 아이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으니 속히 도시에 있는 큰 병원으로 옮겨 치료받으라고 단단히 일러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있던 그 시골 여인이 "그럼 우리 집 소는 어떻게 하고 아이를 도시로 데려갑니까?" 하고 되묻는 것이었습니다. 의사 선생이 너무 한심하고 어이없어서 여인을 책망했습니다. "아니, 지금 아이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에 소가 뭐 그리 중하다고 소 걱정입니까? 소가 중합니까? 아이가 중합니까?" 그런데 그 어머니 대답이 너무나 뜻밖이었습니다. "그야 물론… 소가 더 중하지요… 아이는 2-3년이면 또 낳을 수도 있지만, 소는 한평생 일해서 돈을 모아도 한 마리 사기도 어려우니까요." ************ 인도에서 있은 이야기입니다. 지금 당신도 아마 이야기에 나오는 시골 여인의 어리석음에 허구픈 웃음을 물씬 떠올리고 있겠지요? 하지만 그 인도 여인을 나무라고, 힐난하기 전에 한번 즈음 우리들 자신을 돌이켜봅시다. 권력과 재부를 영위하기 위한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총탄, 포화보다도 파괴력이 강한 모해와 암투, 동족상잔의 비극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짓밟히고 무참히 죽어갔다는 사실을 상기해봅시다. 또 재물을 얻기 위해 사람을 속이고, 마음 상하게 하고, 살인도 서슴치 않는 일들이 당신 주위에서도 자주 일어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사람이 귀하다고, 말은 그렇게들 하고 있지만, 실제로 우리는 "소가 더 중하지요" 로 행동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즈음 반성해봅시다.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사람, 그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 가치가 높고, 우선시되어야 하는 귀한 존재라는 것을 입으로가 아닌 행동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오직 "사람의 목숨이 온 천하보다 귀한 존재"로 여겨지고 높이 평가 받을 때야만 우리도 진정 평화를 담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입으로만 부르짖는 평화가 아닌 진정한 평화가  이 땅에 깃들기를~ 영화 나레이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그 곳은 애초에 ‘평화’라는 낱말조차 없는 평화로운 곳이었다…”
8    곡마단 공연 (견이의 횡설수설) 댓글:  조회:2895  추천:1  2012-03-09
곡마단 공연   한 유명한 곡마단이 순회공연차 어느 시골마을에 들렀습니다. 학교 마당에 공연장으로 쓰일 큰 텐트와 좌석을 마련하는 등 일련의 준비공사를 위해 곡마단에서는 다음과 같이 인력 모집광고를 써붙였습니다.  “남녀로소 불문하고 공연장 마련을 위한 준비작업에 동참해주시는 분들께는 아래와 같이 혜택을 드립니다. 두 시간 동안 일해주신 분들께는 공연장 무료입장권 한 장씩 드립니다. 단 이 무료입장권은 좌석권이 아니므로 좌석 뒷자리 공터, 혹은 양측 통로에 서서 관람하셔야 합니다. 네 시간 동안 일해주신 분들께는 무료입장권과 일반좌석권을 드립니다. 이 입장권으로는 관람석 맨 앞줄 좌석을 제외한 임의의 자리에 착석하실 수 있습니다. 다음, 여섯 시간 이상, 즉 준비공사 마무리단계까지 일해주신 분들께는 특석권을 드립니다. 즉, 관람석 맨 앞줄 중앙 좌석에 앉아서 공연을 관람하는 특혜를 향수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광고가 나붙자 많은 마을사람들이 몰려와서 공연장 준비공사에 동참했습니다. 개중에는 두 시간만 일하고 무료입장권을 받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었고, 네 시간 동안 열심히 일해서 일반좌석권을 받아 들고 흐뭇해서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점심때 즈음 되자, 공사는 예상보다 빨리 마무리단계에 이르렀고, 공사에 동원된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 몫의 입장권을 받아들고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때껏 쉴 염도 하지 않고 공연장 구석구석 분주히 돌아다니면서 뒷마무리 일에 열심히 돌아치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다름 아닌, 마을에서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과수원집 형제였습니다. 오로지 관중석 맨 앞줄 중앙 관중석에 앉아서 멋진 공연을 구경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이들 과수원집 형제는 힘든 줄도 모르고, 배고픔도 잊은 채, 일에만 열중했습니다. 결과 공연장 마련 공정은 예상보다 훨씬 빠른 여섯 시간 내에 완료되었고, 특석권을 받아 든 과수원집 형제는 마을 사람들의 부러운 눈길을 한몸에 받아안으며 싱글벙글 입장했습니다. 공연은 참으로 다채롭고 스릴이 넘치는 절목들로 관객들 손에 땀을 쥐게 했습니다. 장내에서는 무시로 환호성과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 시끌벅적한 와중에 관중석 맨 앞줄 중앙 좌석에 자리하고 앉은 과수원집 형제만은 누가 들어가도 모를 만큼 혼곤히 잠들어 있었습니다. *********** 어쩌면 우리가 사는 삶도 저 과수원집 형제의 경우와 다름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목표를 정해놓고 앞만 바라보고 허겁지겁 뛰어서 끝내는 그 목적지에 이르렀을 때, 꿈에도 바라마지 않던 그 “특석”에 앉았지만, “특혜”를 향수할 여유조차 없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가슴 저변 (底邊)에서 몰려오는 그 헛헛함이란… 아마 이를 일컬어 옛 성현들은 “덧없는 인생”이요,  “허망한 삶”이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관중석 맨 뒷자리 공터나 양쪽 통로에 서서 공연을 관람하든, 혹은 일반관중석에 앉아서 관람을 하든, 또는 맨 앞줄 중앙 “특석”에 앉아서 관람하든 그것은 우리들 자신의 선택 내지 의지에 달렸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자리에서 어떻게, 무엇을 관람하든 공연은 때가 되면 막을 내리게 될 것이고, 따라서 우리도 “퇴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한 번뿐인 유한한 인생을 무에 그리 아등바등하고 살겠느냐며, 무슨 일이든 대충대충 얼버무리고 마는, “되는 대로”의 안일한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한번밖에 못 사는 삶을 뿌듯하고 보람 있게 살아야지 하는 일념으로 평생 쉼 없는 질주의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굳이 어떤 삶의 방식이 옳고, 어떤 방식이 그르다고 정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또 옳고 그르다 할 만한 자격도 없습니다. 인생이라는 과제 자체에 정답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정답은 아마 우리 각자가 인생이라는 공연장에서 퇴장할 때즈음에나 망연히 깨닫게 되겠지요……..
7    인생4부곡 (장난시) 댓글:  조회:3279  추천:0  2012-03-01
인생4부곡   보란 듯이 왔다가 (봄)   열병환자처럼 펄펄 끓다 (여름)   가는 길이 서러워서 (가을)   겻불에 서러움 녹이다 가는... (겨울)   그것이 우리네 인생 아니던가   
6    무시와 당연시 댓글:  조회:3704  추천:0  2012-01-14
               무시와 당연시 개는 짖어대기 마련이고 쥐는 갉아대야 산다. 굳이 무시하느라 말고 당연시하라.
5    내 안에 든 도둑 댓글:  조회:4894  추천:1  2011-12-24
내 안에 든 도둑   어느날, 덤벙덤벙한 딸아이의 실수로 잠기지 않은 집 문.   배시시 웃으며 들어서는 딸아이를 톡톡히 혼내주었다.   도둑이 들었으면 어떡할 뻔했냐고,   가장집물 다 털리면 어떡하냐고…   똘랑똘랑 눈물로 반성하는 딸아이를 이윽고 노려보다   무망간 내 안에 든 도둑을 알아보고 허구픈 웃음이 물씬~   맘만 먹으면 은행 금고도 거뜬히 털어버린다는데,   제아무리 두겹, 세겹 철통같이 잠가놓는다 한들 무슨 소용…   요즘도 가끔 잠기지 않은 집 문을 열 때면 나는 그 도둑을 마주보고  씩 웃고 만다.
4    탈속脫俗(단편소설) 댓글:  조회:4451  추천:2  2011-12-04
 탈속    그의 부음을 들은것은 어제 저녁이였다. 아침 일찍 서둘러 나오는데 나리가 전에 없이 칭칭 감돌며 묻어나오려고 설쳐대는것이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았다. 꼭 뭔가 낌새를 맡고 그러는것만 같았다.      우격다짐으로 겨우 집안에 가둬놓고 문을 잠그고 나오다가 석연찮은 느낌이 등짝에 몰려와 얼결에 목줄을 세우며 언뜻 뒤를 돌아보니 나리가 유리창에 두발을 턱 버티고 선채 고개를 한껏 젖히고 오갈이 든 괴성을 뽑아내고있었다.     정리실업바람에 휘말려 남편은 해외로무를 나가고 나는 아들애를 친정에 맡겨둔채 여기 저기 일자리를 찾아헤매다가 어디 식당일거리라도 찾아볼 요량으로 도시로 진출한것은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중순이였다. 한 동창생이 교외에서 두 남자식구가 사는 집의 식모 일자리를 주선해주어 나는 면접을 보러가게 되였다.      적혀진 주소대로 내가 찾아간 곳은 향마을에서 사오리가량 동떨어져있는 한적한 골안이였다. 조잘조잘 흐르는 시내물을 끼고 량켠에 오밀조밀 늘어서있는 이십호남짓 되는 마을 맨 끝자락에 소담한 마을풍경과는 전혀 격에 맞지 않는 새하얀 타일을 붙인 이층양옥이 우쭐 서있었는데 돈 꽤나 있는 시내부자들이 별장으로 지어놓은것인듯해보였다.      초인종소리에 이층 베란다로 귀가 당나귀 귀처럼 벌쭉하고 몸집이 늘씬한 세파트 한마리가 불쑥 나와서 나를 내려다보더니 좀 싱거운 모양 혀를 길게 빼물고 헐떡헐떡거렸다.     이윽고 런닝그샤쯔바람에 색바랜 청바지를 입은 마치도 중국사람들이 즐겨먹는 기름튀기처럼 아래위 끝을 쭉 잡아 늘여놓은것 같이 길쭉한 인상의 사내가 나오더니 나에게 고개를 끄덕해보이고는 대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 문을 잠그지 않았으니 그냥 밀고 들어오세요. 이쪽 층계로.》     내가 계단을 밟아올라가는 동안 그는 손가락마디를 딱딱 소리나게 엇누르며 찌푸린 눈살로 하늘을 쳐다보고 섰다가 내가 다 올라가서야 몸을 돌려왔다.    《저, 상호 엄마의 소개로…》     내가 주춤 란간을 짚고선채 자아소개를 하려는데 그는 진작 알고있었던듯 시무룩이 웃으며 안으로 들라는 시늉을 했다. 세파트는 별 볼일 없는듯 슬슬 앞장서 들어가버렸다.      이층 중간은 약 오십평방정도 되는 널직한 대청이고 좌우 량켠에 각각 방문이 한개씩 나있고 북쪽켠에 큰방이 하나 있었는데 활짝 열린 방문으로 언뜻 들여다보니 화구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는것을 보면 화실로 쓰이는 방인듯했다.     《저, 집은 어데 있습니까?》     그가 콜라 한병을 내앞에 따놓고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말을 건넸다.     《예, 룡정 지신에요.》     《지신이라 거 좋은 곳에 사시는군요. 근데 홀로 삽니까. 아니면…》     《예, 지금은 혼자서…》      《아, 알만합니다. 저 뭐 별로 크게 할 일은 없습니다. 보시다시피 식구가 단출하다 보니. 그저 하루 세끼만 굶지 않게 해주면 됩니다. 가끔 생각나시면 집안청소도 해주면 더 좋겠구요. 이거 홀애비 생활을 하자니 어디 때시걱 같은데 신경 쓸 형편이 돼야 말이죠, 허허허.》     《예, 근데 식구는 두분이라고 들었는데…》     《아, 그것 말입니까? 허허, 내가 미처… 얘 나리야, 와서 인사나 해야지.》     그는 능글맞게 웃으며 한쪽구석에 퍼더버리고앉은 세파트를 불렀다. 놈은 움쭐 일어나더니 스적스적 다가와 긴 혀를 빼문채 그를 쳐다보고 섰다.      《아니, 그럼?!…》     내가 입을 딱 벌린채 세파트와 그를 번갈아 쳐다보기만 하는데 그는 대수롭잖게 씩 웃으며 세파트의 목덜미를 툭툭 쳐서 앉히고는 아주 진지하게 소개를 했다.     《예, 그렇습니다. 얘는 나리라구 하는데요 역시 사내녀석입니다. 이제 한살밖에 안됐는데 자식이 철은 제법 들어가지고 아주 어른스레 군답니다. 야, 그리구 너두 건너가서 인사나 해야지. 앞으로 우리 둘의 때시걱을 걱정해줄 분이셔.》      그가 턱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하자 놈은 스적스적 다가와 나를 쳐다보고 앉아서 청승맞게 코구멍을 벌름거렸다.     《그놈이 악수를 청하는구먼요. 허허.》     《어멋, 그래요?》     내가 미타한 마음으로 한손을 슬쩍 내밀었더니 이놈도 냉큼 내 손에 자기 앞발을 척 얹어놓고는 긴 혀를 내뽑은채 능청스럽게 턱까지 주억거려 보였다.      내가 너무 신기하여 키드득 웃어주는데 그가 씩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에, 금시 익숙해질겁니다. 워낙 붙임성이 좋아나서요. 자, 그럼 집구경이나 시켜드리죠.》     자기를 두고 하는 말인지 아니면 세파트를 두고 하는 말인지 구별이 안가게 그렇게 얼버무리고나서 그는 나의 의사같은건 물을 필요도 없다는듯 앞장서서 주방이며 내가 있을 방 그리고 자기의 방과 화실 등을 두루 돌아보게 하였다.      나보다 세살 손아래라지만 독신사내와 한집을 쓰고 산다는게 아무래도 탐탁치가 않고 또 그의 독단적이다싶은 언행에 좀 당황하고 비위가 상하기도 했지만 한편은 그 가식 없고 소탈해 보이는 첫인상때문이였을가, 아니면 서른두살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앳되보이는 수척하고 창백한 얼굴에 비낀 측은함 같은것때문이였을가. 어쨌든 나는 좋다 궂다 내 의사 같은건 미처 내삐칠 경황도 없이 바보처럼 그가 안내하는대로 이곳저곳 돌아보며 가끔 머리도 까닥까닥해보이고 가끔은 어줍은 웃음까지 지어보이며 응수를 했다.        주방을 두루 거두면서 보니 쌀독은 한쪽 구석에 처박힌채, 밑굽이 훤히 들여다보였고 라면박스에는 라면 서너개가 간들간들 남아있었다. 그리고 랭장고에는 거의 다 말라붙은 고추장그릇과 콜라 서너병, 시들시들한 오이며 파 몇뿌리가 들어있었고 소고기가 좀 있었다.        아무리 사내가 홀로 하는 살림살이기로니 이렇게까지 때시걱에 등한시할수가 있느냐고 내가 책망조로 말하며 오후에 장부터 봐와야겠다고 하자 그는 시물시물 웃으며 내려가더니 아래층에서 오토바이를 끌고 나왔다. 장까지 갔다오려면 거리가 꽤 되니 태워다주겠다는것이였다.   저녁을 갖추느라 한창 주방에서 지지고 볶고 분주히 서두는데 어느결에 맥주 한상자를 들어다놓은 그가 주방에서 서성거렸다. 내가 뭘 찾는가고 묻는 말에 그는 뒤더수기를 긁적이며 난감하게 입을 열었다.        《저, 나리먹이를 좀.》     《예, 그거요, 근데 나리는 뭘 먹죠?》     《그놈은 저 고기만 먹는데 그저…》     나는 어이가 없어 피씩 웃으며 눈을 흘겼다. 자기는 고작  파뿌리에 라면이나 끓여먹으며 사는 신세에 나리한테는 매일 고기만 꼬박꼬박 대접해왔겠으니…        뭐라고 더 말하기가 거북했던지 그는 벌써 랭장고에서 고기덩이를 꺼내여 썩둑썩둑 썰고있었다. 내가 그의 손에서 식칼을 앗아내서야 그는 헤식은 웃음을 웃으며 한켠으로 물러섰다.     《저, 대강 요만큼 큰 토막으로 쳐서 한 절반쯤 익혀주면 잘 먹어요.》     《네, 알겠어요. 나가 있어요. 이젠 거의 다 됐어요.》     《예, 그럼...》        내가 시큰둥하니 내뱉는 말에 그는 씽긋 웃으며 맥주컵을 찾아들고 나갔다.     상을 차려놓고 고기를 반쯤 익혀서 나리앞에 갖다놓으니 놈은 먹을 념은 않고 코구멍을 벌름거리며 그의 눈치만 살폈다. 내가 의뭉스런 눈길로 그를 쳐다보니 그때까지 맥주만 부어놓고 깍지낀 두손으로 턱을 고인채 앉아있던 그가 시무룩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시름놓구 먹어라. 아줌마가 해주는건 먹어도 괜찮아.》     그의 분부가 있어서야 나리는 꼬리를 휘휘 저으며 나를 힐끔 쳐다보고는 그릇에 주둥이를 갖다대고 아직 뜨거워서 조심스러운 모양 홀짝거렸다. 놈이 하는 꼴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섰다가 나는 식탁으로 다가가 앉으며 한마디 슬쩍 춰주었다.        《아주 제격인데요.》     《예, 그놈이 종자가 좋아서 그런지 아주 영특한 놈입니다. 뭐나 한두번만 일러주면 다 안다니까요. 쟤 어미가 변방부대에서 2등공 세번 기입한 공신이라구요. 허허, 부대에 있는 친구가 처분 받을 위험을 무릅쓰고 젖도 떼기전에 앓아죽었다고 속임수를 써서 안아왔는데 어릴 때부터 내가 갓난아기 돌보듯 우유를 풀어먹이구 미음을 쑤어먹이면서 애지중지 키웠더니 아주 나를 자기 친어미로 아는지 정말 끔찍한 사이죠. 허허허.》        《예, 그랬군요.》     그 말에 나는 동감조로 머리를 끄덕여주었다. 첫인상부터 놈이 하는 꼴이 어딘가 범상치 않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던것이다. 이 집에 발을 들여놓아서부터 지금까지 놈은 함부로 짖어대거나 헤덤비는 법이 없이 언제 봐도 그저 아주 점잖고 고분고분하게 굴었다. 적어도 이름 값은 제법 하는상싶었다.         《자, 그럼 이후에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구 이후엔 그냥 누님이라고 불러도 괜찮겠죠. 그럼 그렇다는 의미에서.》     《예, 별로 재간은 없지만 있는 힘껏…》        나는 얼결에 맥주잔을 들어 댕강 맞부딪쳤다. 그의 말대로 과연 붙임성이 좋아서인지 우리는 얼마 안가 인츰 익숙해졌다. 나리는 내가 장보러 가거나 소풍하러 다닐 때면 제법 슬슬 앞장서서 경호원노릇을 했고 그도 말끝마다 누님을 붙여가며 허물없이 롱담도 해오고 가끔은 청승맞게 애들처럼 어리광도 부려볼가 했다. 나 또한 손아래 오라비 대하듯 그들 두 식구를 극진히 시발해주었다.        그는 매일 아침마다 나리를 데리고 뒤산 과수원까지 산책을 갔다오고 하루 세끼 밥 먹는 시간외에는 거의 전부 화실에만 붙박혀있다싶이했다. 가끔은 오토바이를 부르릉거리며 어딘가를 다녀오기도 했는데 보통 자정이 넘어서야 돌아왔고 혹간은 그냥 묵고 돌아올 때도 있었다.          내가 한번은 왜 여태 장가도 안가고 이렇게 쪽쪽하게 사느냐고 넌지시 묻는 말에 그는 시큰둥하니 말했다.     《전 결혼같은 거 그런 속스러운거 안합니다. 멋없게스리. 이렇게 혼자서 자유자재로 사는게 좀 좋아서요. 허허.》   9월중순에 접어들며 여름 내내 기승을 부리던 혹염이 차츰 수그러들면서부터 그는 진종일 화실에서 뚝딱거리며 캠퍼스를 메우고 풀을 먹이는 등 일로 분주하였다. 그리고는 매일 아침저녁 초조한 눈길로 먼 산을 바라보고 앞 내가의 해묵은 백양나무를 쳐다보기도 하며 한숨만 풀풀 내쉬곤 했다.        그날 그는 뭘 좀 사올것이 있다며 아침 먹고 나가더니 점심때가 다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점심을 하나 어쩌나 망설이다가 소풍이나 할 겸 앞내가에서 얼쩡거리는데 내물 건너 쑥대밭 속에서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얼가 하고 다가가 보니 나리가 누르스름한 털빛의 트기 한마리를 타고 서서 엉덩이를 들썩거리고있는것이 보였다. 나는 못볼것을 본듯 황황히 시선을 돌려버렸다. 요즘 들어 매일 어디를 쏘다니는가 했더니 그런 판국이였구나. 공연히 달아오르는 량볼에 손부채질하며 헛기침을 하고나서 짐짓 몸을 돌려 나리를 불렀다.        《나리야, 점심 먹어야지.》     한참만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나리가 숲속에서 나와 내물을 훌쩍 뛰여넘어 정겅정겅 뛰여왔다. 흥이 깨져 서운한 모양 자꾸 뒤를 흘끔거리며 입을 쩝쩝 다셨다.     금방 몸을 돌리려는데 홀연 고개길 쪽으로부터 웬 녀인의 부름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내가 미처 머리를 돌리기도 전에 나리는 이미 휘딱 몸을 돌쳐 그쪽으로 치닫고있었고 저쪽 고개길로 청바지에 체크무늬 간 와이셔츠 앞자락을 질끈 동인 긴 머리의 녀인이 나리에게 손을 저으며 달싹달싹 걸어오는것이 보였다.        흙먼지를 폴싹폴싹 일구며 부리나케 뛰여간 나리는 몸을 풍풍 솟구치기도 하고 껑충 앞발을 쳐들고 허우적거리기도 하며 갖은 친절을 베풀었다. 그녀도 호들갑스레 지껄이며 무릎을 꺾고 나리의 목을 끌어안고 볼을 비벼대기도 하고 나리가 길고 끈적끈적한 혀를 날름거리며 이리 핥고 저리 빨고 하는대로 들이대고있다가 간지러운듯 가끔 캐득캐득 간드러지게 웃어대기도 하였다.        한참이나 그렇게 수작질하고 나서야 멀찌감치 서있는 나의 존재를 의식한듯 몸을 일으킨 그녀는 긴 머리를 등뒤로 추슬려 넘기며 이쪽으로 걸어왔다. 가까이 온걸 보니 어림잡아 한 스물네댓 돼보이는 꽤 귀염성스럽게 생긴 처녀였다.     몇미터를 사이두고 어색하게 마주 서있는 우리 둘사이를 나리가 주인답게 말로써 인사시키지 못하는것이 무척 안타까운 모양 부지런히 오락가락 하였다.        《누구신지…》     그녀가 목례를 해오며 먼저 말을 건넸다.     《예, 나는 이 집에서 식모로 있는…》     《아, 그러세요? 그런걸 난 또… 후훗 참, 수고 많으시네요. 전 이 집 주인의 학생인데요 은희라고 합니다.》     그녀는 흰 이를 상긋 드러내며 깝삭 허리를 꺾었다.     《네… 어서 안으로 드시죠.》        나도 엉겁결에 머리를 숙여 보이고는 먼저 몸을 돌렸다.     《근데 선생님은 집에 안계시는 모양이죠?》     《예, 아까 아침나절에 시내로 갔는데 아직…》     그녀는 알겠다는듯 고개를 까닥 해보이고는 나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장난질 치며 앞장서 들어갔다.      뒤늦게 올라가 보니 그녀는  갈증이 무척난 모양 바가지 채로 랭수를 꼴깍꼴깍 들이켜고있었다. 입가에 묻은 물방울을 손등으로 훔치며 집안을 휘― 둘러보던 그녀가 나를 보고 생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히야! 아주머니 덕분에 우리 선생님 그동안 호강하셨겠다. 집안이 아주 기름기가 자르르 한데요. 우리 선생님 그동안 살두 많이 찌셨겠네. 그죠? 아주머니.》     《뭘 별로…》        새물새물 웃으며 말끝마다 아주머니를 들먹거리는것이 어지간히 기분이 잡쳤다. 그렇다고 내가 왜 아줌마냐고 따지고들 용기까지는 없었던터에 나는 마지못해 희미하게 웃어보이고는 주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한 내 심사를 골려주려고 작심이라도 한듯 그녀는 주방까지 따라오며 재잘거렸다.        《후후훗, 우리 선생님 있잖아요. 글쎄 일년 열두달 꼬박 라면만 끓여먹으면 먹었지 쌀밥이 아무리 먹구싶어두 밥같은건 죽어도 못한다는 위인이래요. 그래서 저렇게 라면만 끓여자시다보니 몸집도 국수오리처럼 호리호리하단 말입니다. 후훗, 량반이래도 웬만한 량반이 아니래요. 전에 제가 다닐 땐 그래도 한달에 서너번쯤은 색다른 음식도 해드리고 그랬었는데 요즘은 자기 일이 바쁘다보니 미처…》        그녀는 문설주를 짚고선채 그렇게 찧고 까불다가 아마 내쪽의 반응이 좀 애매했던지 나리를 데리고 앞내가에 나가서 물장구를 치며 놀아댔다.     그가 돌아온것은 오후의 농익은 해살이 서산마루로 기울어가며 앞내가의  해묵은 백양나무그림자를 훌쩍 길다랗게 땅우에 드리워놓았을 때였다.        느닷없이 나리가 컹컹 하고 흥분된 소리로 짖어대고 한참 후에 고개길너머로 부르릉거리는 오토바이소리가 들려오는듯했다. 베란다에 나가 보니 나리는 고개길쪽으로 냅다 뛰고있었고 그녀는 맨발바람에 날씬한 종아리를 드러낸채 빨래돌우에 상큼 올라서서 나리가 뛰여간 쪽을 갸웃거리다가 이쪽을 흘낏 돌아보았다. 무망간에 그녀와 시선이 마주친 나는 급기야 몸을 돌려 주방으로 들어가 행주치마를 찾아 둘렀다.        한참만에 그녀의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이따금 그의 두런두런하는 말소리도 들려오고 두사람이 계단 밟아오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왔어요. 누님.》    《……》     그는 주방을 피끗 들여다보고는 쉴새없이 재잘거리는 그녀를 앞세우고 화실로 건너갔다. 둘의 손에는 묵직한 구럭이 하나씩 들려있었는데 물감인듯해보였다.         《와! 그동안 이리 많이 그렸어요? 와, 멋있다. 이건 지난번 그리던거구나. 이건 또 언제… 야! 선생님, 이젠 완전히 새로운 풍격이 잡혀가는데요. 히야! 이젠 정말 속티를 말끔히 벗어버린 모양이네. 어쩜…》        뭐가 그리 좋다는건지 그녀의 호들갑스런 찬탄이 연방 터져나왔다. 그러나 아무래도 내 귀에는 그것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찬사라기보다는 그저 비위를 맞춰주느라 너무 떠들어대는것 같은 속빈 아첨으로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하긴 내가 보기로는 여느 실성한 놈이 남의 집 회벽에다 비자루로 아무렇게나 이러저리 아롱다롱한 색들의 페인트를 휘뿌려놓은것으로밖엔 보이지 않는 그림들을 두고 그토록 침이 마르도록 호들갑을 떨어댄다는것이 선뜻 납득이 안갈 법도 했을것이다.      그래도 명색이 화간데 하는 선입견때문에 여태 나의 그 천박한 견해같은건 섣불리 내색할 엄두는 못내고 딴에는 그래도 다문 얼마라도 해득해볼 요량으로 짬만 나면 문틈으로 그림 그리는 과정들을 내심히 지켜보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그 값비싼 물감들을 그저 낭비하는것 같아서 안쓰러울뿐 나의 어리석은 안광과 턱없이 좁은 식견으로 더 이상의 어떤 리해를 기대한다는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였다. 하긴 부룩송아지보고 모나리자 초상화를 감상하라면 납득이 갔을가.        《어허, 배가 촐촐한데 우리 저녁에 뭘 먹어요?》     둘이서 한참 찧고 빻고 하더니 그가 불쑥 주방에 머리를 들이밀고 물었다.     《글쎄, 랭면이나 하려던 참인데, 날씨도 더운지라…》     《아, 그거 좋지유, 시원하게. 그리구 술안주두 좀 있었으면 좋겠군요. 쟤가 어쩌다 놀러 왔는데.》     《네, 념려 마세요. 다 알아서 하고있어요.》    《허, 근데 맥주가 이젠 아마 다 바닥났을 걸요. 어디…》        랭장고를 열어보던 그는 역시 그랬구나 하는듯 씩 웃고 나가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야, 나 가서 맥주 좀 사올게 앉아있어 응.》     《저두 같이 갈가요?》     《아냐. 그냥 앉아있어. 심심하면 주방 일이나 돕구.》     《네, 근데 저 맥주는 조금만 사오세요. 선생님 마실만큼만.》     《왜 넌 안먹어?》     《네, 전 지금… 술 끊었어요.》        《뭐? 술 끊었어? 히야, 며칠 못 봤더니 너 요조숙녀가 싹 돼먹었구나. 해가 서쪽에서 뜨겠걸. 하, 그것 참, 정말이야?》     《네. 정말.》      그가 피씩 웃음소리를 남기고 나간 뒤 그녀가 흥얼거리며 주방으로 건너왔다.        《뭘 하세요? 어머, 랭면이네. 야, 시원하겠다. 어디 좀…》      반색을 하며 랭면국물을 종지에 약간 떠서 후르륵 맛보던 그녀는 눈살을 쪼프린채 맛을 음미해보는듯 하더니 얼굴이 활짝 펴지며 혀를 꼴꼴 차댔다.     《으음… 히야, 아줌마 음식솜씨 최고다. 복무대루 랭면국이 왔다가 울고 가겠는걸. 어쩜 히야, 꼴꼴, 그러길래 우리 선생님 그동안 얼굴에 개기름이 번지르하게 돌지. 히힛.》        그 깜찍한 수작질에 나는 새삼스레 정겨운 눈길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오기만 꼭 차있는줄 알았더니 역시 붙임성도 좋고 사랑스러운 녀자애구나 하는 생각에 시름없는 웃음이 물씬 떠올랐다.     어쩌다 세사람이 둘러앉은 식탁은 말 그대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어느덧  아줌마소리에도 적응돼버렸는지 나는 이미 호칭따위엔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가 사양사양 하다 거품까지 다해서 겨우 한컵이 되나마나한 맥주를 더운물 마시듯 홀짝홀짝 불어마시는 바람에 나도 그만 멋적어져 겨우 두컵만 마시는둥마는둥 하고말았다.        그들은 해후상봉한 다정한 오랍누이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주고받고 걸쭉한 롱담까지 스스럼없이 들춰대여 가끔은 나까지 곁들어 한바탕 눈물을 찔끔 짜내기도 하였다.     저녁상을 물린 후 그는 피곤하다며 먼저 방에 들어가고 그녀는 나를 거들어 설거지를 마치고 텔레비를 보네 마네 하다가 나리와 한참 장난질하고는 내방으로 들어왔다. 그냥 누워 자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라 모기성화에 불만 꺼놓고 둘은 침대머리에 가지런히 기대누워 이야기꽃을 피웠다. 주로는 그에 대한 이야기들이였는데 나는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에서 그의 신상에 대해 궁금했던것들을 적잖이 알게 되였다. 그녀의 아버지와 그의 아버지가 워낙 절친한 사이였던터에 그녀는 그의 신상에 대해 손금보듯 속속들이 알고있었다.        그는 삼형제중 막내로 국내와 국외에서 수차 개인전도 가진적 있는 젊은 화가들중 중견자로 꼽히는 축이라고 했다. 워낙 예술학원에서 교편을 잡고있었는데 그의 계몽선생이고 미술학부의 학부장인 그녀의 아버지가 자기의 후계자로 지목해두고있을만큼 말하자면 젊은 나이에 땡잡은 유망한 실력파였다.        그런데 그가 한창 잘 나가고있을 때, 그러니까 근 이태전에 환갑년세가 다된 그의 아버지가 개혁춘풍덕에 돈 좀 벌면서부터 외간녀자와 따로 살림을 차린 일이 들통나는 바람에 끝내는 부모가 리혼을 하기에 이르렀다. 화불단행이라고 당금 결혼을 앞두고 끔찍하게 지내던 가무단 무용수로 있던 그의 약혼녀가 무슨 허깨비한테 홀렸는지 단연 그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일본인인가 미국인가로 날아가버렸단다.    설상가상 타격에 타격을 련속 받은 그는 세상 볼 면목이 없다면서 교편이며 모든걸 팽개치고 타락의 변두리에서 방황하였다. 달빛이 밝으면 달빛에 취해서, 비가 내리면 비에 젖어서, 살구꽃이 흩날리면 꽃에 취해서 하루하루를 술에 절어보냈다.    안달이 난 그의 어머니가 혼사나 치러주면 좀 나아질가싶어 서둘러 색시감을 물색하여 혼사라고 치러줬더니 글쎄 신혼날밤에 몰래 빠져나간것이 사흘이 되도록 행방불명이여서 친척들이며 친구들이 총동원되여 온 시내를 발칵 뒤집었더니 웬 술집 녀자의 자취방에 어푸러져있더라나. 부득불 혼사는 파하고 그 가긍한 상을 보다못한 그녀의 아버지가 그를 끌고 나가 다짜고짜 귀쌈부터 둬대 올리부치고 정신 좀 차리라고 추상같이 을러멨더니 게슴츠레한 눈을 비벼뜨고 은사를 올리보고 내리훑고 하던 그가 한다는 말이         《이 징그러운 세상이 싫습니다. 이 번거로운 속세가 싫단 말입니다, 이 못난 놈을 제발 죽여주십시오, 제발.》     하고 닭똥같은 눈물을 뚤렁뚤렁 줴짜더란다.    《이 못난 놈, 속세가 싫다면서 왜 속세에 머물러는 있는거냐? 미련한 놈같으니. 싫으면 떠나버리면 그만 아닌가? 그게 싫다구 그래 앉은자리에서 제 손으루 자기 일생을 술에 말아먹을 셈인가. 이 드넓은 세상에서 그래 자기 몸 하나 담을 곳도 못 찾고 자빠져있단 말인가? 젊은 놈이 좀 꼴기 있게 놀란 말이야. 고만한 일에 무슨 대순가? 새파란 놈이 늙은이들보다 더 케케묵은 의식이 잔뜩 배겨가지구선.》        그 말에 눈을 슴벅슴벅하며 은사를 멀뚱멀뚱 쳐다보고 무슨 생각을 굴리는가싶던 그가 은사의 발치아래 넙죽 절하며     《선생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하고는 언제 그랬던가싶게 훌훌 털고 일어나더니 어디론가 훠이훠이 가버리더란다. 그렇게 떠나서 자리잡은 곳이 바로 여기였다.        《이 집을 갖추느라 굉장히 품이 먹었을텐데.》     내가 불쑥 묻는 말에 그녀는 까르르 웃기부터 하였다.     《이 집이 뭐 우리 선생님이 돈 내고 지은건줄로 아시는 모양이죠? 후후훗, 우리 선생님 저렇게 어리숙해보여도 아주 엉뚱한 분이래요. 이 집만 봐도 그렇죠. 글쎄 허망 교외에다 쓸만한 집을 갖추자니 돈이 적잖이 들테고 집짓는데 돈을 다 날려버리면 앞으로 먹고 살 일만도 아득하지. 그렇게 며칠동안 속구구를 하다가 하루는 불쑥 아버지를 찾아갔대요. 호호, 글쎄 마주앉자부터 한다는 소리가  하더래요. 글쎄. 꼴꼴, 후에 선생님 아버지 되시는 분이 우리 집에 와서 그 얘길 하는걸 듣고 어찌나 웃었던지 배꼽이 빠져나올번했잖아요. 후훗, 뒤늦게야 그 일을 안 형들이며 이붓엄마랑 그 처사에 의견이 굴뚝같아서 들고 일어나 야단들쳤지만 다 행차뒤에 나팔이지 뭐예요. 때는 이미 모든 번접수속을 끝마친 뒤였거든요. 꼴꼴, 그래서 우리 아버지가 허허,  하고 맞장구를 치지 뭐예요. 후훗, 우리 선생님 참 재미있는 분이시죠. 예?》        《예. 참 재밌네요.》     나는 호호 입을 막고 웃으며 고개를 돌려 그녀를 마주 보았다. 어둠속에서 새별같은 두눈만 초롱초롱 빛나고있었다.     《그분을 사랑하세요?》     《예, 사랑해요.》     《그분이랑 결혼할건가요?》     《음, 글쎄 때가 되면 결혼두 해야겠죠.》     《근데 들을라니 그 분은 결혼같은건 속스럽다고 안한다던데.》         무망간에 불쑥 랭수를 끼얹은것 같아서 그녀의 반응이 무척 불안해져있는중 의외로 그녀는 까르르 배꼽을 잡았다.     《후후훗, 우리 선생님이 아주머니하고도 그런 얘길 했어요? 정말? 히야! 우리 선생님 참말 웃긴다 웃겨. 아무하고나 그런 말을 다하시네. 꼴꼴… 그래요. 우리 선생님은 항상 그 말을 입에 달고있는 분이래요. 사랑같은거 결혼같은건 다 치사한 물건이라구요. 사랑이란 동물은 그저 가끔 가다 목마를 때마다 잠간잠간 머물렀다 가는 실없는 동물이라고 그래요. 영원한 사랑이요 불멸의 사랑 같은건 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구, 죄다 하릴없는 인간들이 조작해낸 한낱 황당무괴한 어리광대극에 불과한거라구요. 그래서 결혼같은건 스스로 자기 목에 올가미를거는 일이라구 죽어두 안한대요. 후훗, 재밌죠? 어쩜 그럴듯한 론리인것 같기두 하구요… 하지만… 언젠가는… 사랑의 단맛을 진정으로 터득할 때가 있을거예요. 언젠가는 꼭…》        말끝을 흐리며 그녀는 달콤한 래일을 동경하는 순정의 소녀마냥 아미를 들어 별이 총총한 창밖을 응시하고있었다.     귀뚤귀뚤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귀기울이다 말고 내가 침묵을 깨뜨렸다.     《두분 다 그림을 그리시니 스케치랑 함께 다니구 잘 어울리시겠군요.》     《네? 예…》         그녀는 어둠속에서 나를 흘낏 돌아보며 하얀 이를 살짝 드러내보였다. 그리고 아미를 다소곳이 숙이며 가느다란 한숨을 뿜어내고는 뜸을 들였다가 나지막히 속삭였다.     《저는요, 실은 저두 결혼같은건 속스럽고 어리석은 일이라구 생각해왔어요. 그런데 그것도 자기 나름대로 하고싶으면 하고 싫으면 안하고 그렇게 단순한 일은 아니였어요… 대신 저는 우리 선생님을 그렇게 속스럽게 굴진 않을거예요. 적어도 우리 선생님을 내곁에만 묶어두려고 욕심부리진 않을거예요. 그냥 뭐든지 언제든지 하고싶은 대로 하게끔 내버려둘거예요. 결혼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해야겠죠. 그저 곁에서 지켜볼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할거예요.》        《……》     까무룩히 잠들었다가 깨고보니 옆자리는 비여있고 그의 방으로부터 야릇한 신음소리가 가느다랗게 새여나왔다. 환희의 절정에로 치달리는 짜릿짜릿한 음성이였다. 공연히 마음이 싱숭생숭해나고 온갖 신경말초가 귀에만 집중되여 도저히 다시 잠을 청할수가 없어 머룩머룩 잡생각에 빠져있었다.     새날이 푸름푸름 밝아올 무렵에야 그녀는 살며시 내곁에 돌아와 누웠다. 오후 늦게까지 시름없이 놀다가 저녁녘에야 그녀는 그의 오토바이에 앉아 돌아갔다. 짧은 하루동안에 정이 들었던지 그녀의 뒤모습을 눈바램하는 내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 갈마드는 서운한 기분을 나는 미연히 느낄수 있었다.       그는 돌아오자부터 꾸역꾸역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어디 외출하실려구요?》     《예, 이젠 좀 움직여봐야죠.》     《어디 먼데 가세요? 얼마쯤 가있을는지…》      《글쎄, 저 숭선쪽으로 움직여볼가 하는데 빠르면 한 열흘, 늦어서 아마 한 보름쯤 걸릴겁니다.》     나의 좀 소침한 어눌때문이였던지 그는 잠시 일손을 멈추고 문가에 바재이고 섰는 나를 쳐다보더니 빙긋이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정말 누님 나 없는 동안 홀로 적적하시겠네요.》      《나야 뭘 나리도 있고 한데. 근데 나보담두 객지에 나가 있으면 때시걱이랑 불편할텐데…》     《아, 그거요. 그건 하나도 걱정할것 없습니다. 가면 다 마련돼있어요. 전에 다니던 민박집도 여럿 있고 어쨌든 가서 절대로 굶어죽을 근심 같은건 안해도 된답니다. 허허.》     저녁은 송별연이랍시고 있는대로 푸짐히 차려놓고 둘이서 맥주를 퍼그나 마셨다.      이튿날 떠나면서 그는 나리가 언제부턴가 뒤산 과수원에 트기와 좋아하는 모양이니 가급적이면 홀로 뒤산으로 가지 못하게 단속해두라는 부탁만 남기고는 부르릉 떠나갔다.     산과 들은 바야흐로 짙은 가을빛을 띠여가고있었다. 나는 진종일 집에 들어박혀 TV를 보지 않으면 음악을 듣고 가끔 그의 방에 아무렇게나 꿍쳐져있는 책들을 뒤적이는 등 일들로 소일하였다.      그가 떠난지 한 보름만인가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제법 오싹오싹 한기까지 느낄수 있을 무렵, 하루는 그녀가 불쑥 찾아왔다. 그런데 이전의 그 발랄하고 생기 넘치던 모습은 찾아볼수 없고 부은듯 부석부석한 얼굴에 우울한 눈빛은 나를 사뭇 불안하게 했다.      아무래도 무슨 심사가 있는것 같아 내가 걱정스레 어디 아프냐고 묻는 말에 그녀는 그저 머리만 살래살래 흔들며 나리의 목덜미를 어루쓸고 앉아있다가 내가 점심상을 갖추는걸 보더니 그대로 일어나면서 선생님이 돌아오시면 한번 자기 집에 들려가라고 전해달라는 부탁만 남기고는 조용히 떠나갔다.     나리가 그녀를 그냥 그렇게 떠나보내기가 서운한 모양 칭얼거리며 나대신 앞내가까지 바래다주었다.      그 기운 없는 뒷모습을 눈바램하며 나는 아직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어디선가 불어오는 한기같은것에 오싹해났다. 산비가 오려고 루각에 바람이 가득찬것 같은 그런 음산한 분위기였다. 녀자의 직감으로 그녀의 신상에 어떤 불행이 닥쳐올것 같은 불안한 예감이 머리를 쳐들었다.      이틀후 그가 돌아왔다. 그의 귀래에 나리가 좋아 날뛴건 더 말할것 없고 나도 오래동안 헤여져있던 친인을 맞는것 같은 기분에 퍼그나 들떠있었다.      몹시 허기가 진 모양 그는 씻을 념도 않고 그대로 식탁에 마주앉았다. 저녁상에 마주앉아서야 나는 그동안 몰라보게 초췌해진 그의 얼굴을 여겨볼수 있었다. 볕에 그을러 까맣게 타버린 얼굴에서는 눈 흰자위부분만 유표하게 판들거리는것이 꼭 마치 아프리카 흑인을 방불케 하였고 얼마를 감지 않았는지 희뿌옇게 먼지를 들쓴 머리칼은 전쟁을 갓 치르고난 말갈기처럼 텁숙했다.      그 초라한 몰골을 지켜보다 말고 내가 입을 싸쥐고 쿡 웃어주자 그도 시무룩이 따라웃으며 묻지도 않은 말을 변명처럼 했다.     《예상 밖으로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바람에…》     《그래도 굶어죽지 않고 왔으니 다행이군요.》      《아하, 그런게 아니라 실은 두만강을 따라서 쭉 내리훑는다는게 예상밖으로 좀 애로들이 생겨서… 허허, 근데 쟤는 지금두 그냥 그 트기를 찾아다닙니까?》     그냥 변명하기가 멋적어졌던지 그는 나리에게 눈길을 주며 은근슬쩍 화제를 바꾸었다. 그 말에 나리가 잠시 입놀림을 멈추고 나의 눈치를 흘끔흘끔 살폈다.       《글쎄 어디 말려내는 재간이 있어야 말이죠. 그런다고 목을 매여둘수는 없는 일이구. 그리구 저들끼리 좋아서 어울려 노는것도 다 저들의 본성이구 자유일텐데 그런것까지 너무 속박한다는것도 좀 주책없는 일 같기도 하구 해서 한두번 말리는척 하다가 그냥 내버려뒀어요.》     《본성? 자유? 허허, 하긴…》        그는 시죽이 웃어버리고는 한술 가득 밥을 떠넣고 우물거렸다.     설거지를 마치고 내가 TV를 보고앉아있는데 그가 샤워를 마치고 머리의 물기를 툭툭 털어내면서 내곁에 와앉았다.            《그동안 많이 적적하셨죠, 누님?》     《뭘, 별로.》          《참, 그동안 누구 왔다간 사람 없었어유?》        《참, 전날에 그 은희 학생이 찾아왔었는데 한번 들려가라고 그러던데요.》                      《그래요? 쳇, 그놈이 또 무슨 장난치려고, 심심했던 모양이군.》     《장난칠 기분인것 같질 않던데요, 아주 의기소침해있는것이.》     《소침해서요? 헛, 녀자애들 기분이란게 워낙 그런거 아니겠어요. 어제까지는 말짱하게 아지랑이를 모락모락 피우다가도 오늘은 찌쁘둥하니 눈송이를 펑펑 날리는 그런거 있잖아요. 어, 래일은 우선 쟤부터 처치하구 와야겠어요.》        《처치하다니 무슨 말씀이세요?》     《예, 사냥하는 친구가 하나 있는데유. 전부터 나리를 욕심내서 한번이라도 데리구 사냥 좀 해보는게 소원이라구 비위를 쓰는걸 그냥 밀막아버렸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 친구한테 보내서 단련 좀 시키는것도 좋을것 같아요. 저대로 그냥 놔두었다간 자식이 색에 빠져서 몸을 싹 망가먹는다구요. 고이고이 호강시켰더니 야성이란것도 싹 사라지고… 그래도 산발을 타고 넘나들며 자유자재로 뛰여다니는 게 저놈에겐 아주 적격일겁니다.》        이튿날, 아침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려 그는 서둘러 나리를 데리고 길을 떠났다. 내가 가는 길에 먹이라고 삶은 소고기를 비닐주머니에 넣어주며 나리의 머리를 다독여주자 나리는 꼭 가야 되느냐는듯 그를 할끔할끔 쳐다보며 떼를 부릴가 하더니 안되겠던지 나에게 턱을 주억거려보이고는 내키지 않는 걸음을 떼였다.        나리가 없는 집안은 괴괴하고 스산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점심을 얼추 에때우고 한가로이 베란다에 서있는데 앞내가의 해묵은 백양나무아래에 뒤산 과수원의 트기가 어슬렁거리며 이쪽을 흘끔거리고있는것이 보였다. 그런데 트기의 배가 전보다 이상하게 불룩해져있는듯했다. 아마도 새끼를 밴 모양이였다. 순간 나는 유무의식간에 이틀전 그녀의 그 생기없고 주눅든 얼굴을 선히 떠올리며 그때 느꼈던 그 불안한 예감의 원인을 어렴풋이 깨달을  있을것만 같았다.          그날 오후 막차로 돌아온 그는 매우 피곤한듯 돌아오자부터 방에 들어가 눕더니 저녁을 갖춰놓고 불러서야 뜨적뜨적 나와 밥 몇술 뜨는척 하고는 베란다에 나가 풀썩풀썩 애꿎은 담배만 빨아댔다. 그도 나리 없는 집안이 무척 적적한 모양이였다.     이튿날 그는 시내에 좀 다녀오겠다며 아침해를 바라고 나가더니 밤늦게야 별을 이고 돌아왔다.        술을 좀 걸친듯 코김을 씩씩 거칠게 내쉬며 쏘파에 퍼더버린 그는 한참 고개를 젖히고 물끄러미 천장만 쳐다보고있다가 내가 저녁 갖춰올릴가고 묻는 말에 도리질하면서 말했다.     《밥은 됐구요, 우리 술이나 좀 마셔요. 오늘.》     《술은 이미 마시고 온것 같은데…》        《아, 글쎄 좀 더 마시자구요. 나 오늘 좀 취하구싶어요.》     내가 맥주 몇병과 마른 안주를 날라오자 그는 안주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련거퍼 맥주 서너컵을 비우고 나서 땅이 꺼지게 긴한숨을 토해내며 입을 열었다.     《누님, 세상사는 게 왜 이리 힘들지요? 왜서 좀 제멋대루  활개치며 살아볼라니까 이리두 못살게 구는가 말입니다.》        《세상사는 게 다 그렇지요 뭘. 사노라면 이럴 때도 있구 저럴 때도 있구. 경우에 따라 자기가 하고싶은 일도 마지못해 팽개치는수도 있고 또 하고싶지 않은 일도 피눈물 삼키며 억지로 해야 할 때도 있구. 뭐나 다 자기 뜻대로만  된다면야…》     딴에는 떡국이나 좀 더 먹었노라고 타이름조로 어느 책에서 읽었던 구절을 떠듬떠듬 주워대는데 그는 실고추빛피발 몇올이 선연한 눈빛으로 나를 한참이나 노려보다가 입귀를 실룩하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누님두 다 알고있었군요.》     《네? 내가 뭘…》     내가 말뜻을 가늠할수 없어 눈만 올롱하게 뜨고있을라니 그는 내 눈길을 피해 어두운 창밖에 시선을 두고 중얼거렸다.     《걔가 임신했다는거 누님 알고있은거죠?》        《?! 그럼 은희학생이… 정말…》     나의 그 불안한 예감이 적중했음이 확인됨과 아울러 나는 야릇한 긴장감에 몸을 흠칫 떨며 그의 옆얼굴을 할끗 훔쳐보았다. 그는맥주컵을 탁자위에서 빙빙 돌리며 입술을 움쭐거리고있다가 눈길을 떨어뜨린채 맥없이 입을 열었다.        《난 이제 어떡해야죠 누님?》     《이젠 나이두 적잖은데 마음 정하구 결혼하시지 그래요?》     내가 조심조심 권유조로 하는 말에 그의 입귀로는 실망 비슷한 랭소가 일순 스치고 지났다.     《은희학생두 아직 나이가 어려 그렇지 아주 참하구…》     《전 결혼같은걸 하고는 하루도 못살 놈입니다!》        내가 변명처럼 보태려는 말을 뭉청 가로채고 나오며 그는 신경질적으로 맥주컵을 들어 입안에 털어넣었다. 여태껏 어리숙하고 유순하게만 보이던 사람이 어쩌면 일순간에 그토록 생소하고 거칠어질 수가 있을가 하고 나는 신기하게 그 옆얼굴을 말끄러미 쳐다보았다.      나의 따끔한 시선을 느껴서인지 아니면 자기 생각에도 좀 과격했다고 느껴졌던지 그는 수굿하고 손가락마디를 엇누르다가 한참만에 입을 열었다.        《그래요. 누님 말씀대로 그 앤 좋은 애예요. 인정 있고 착하고 어데 가서나 사랑받을만큼 예쁘게도 생겼고… 솔직히 저도 그 애를 사랑한다는 점 부정하지 않습니다. 허지만 사랑한다고 해서 꼭 결혼을 해야만 하는건 아니잖습니까. 서로 사랑한다고 꼭 그런 방식으로 서로를 묶어둬야만 그것이 진실한 사랑이 되는겁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오로지 인간의 근성인 점유욕의 변상적인 표현형식일 따름이지 결코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길 가다 화사한 꽃이라도 눈에 띄면 꼭 꺾어들고야 시름 놓고 또 그보다 더 예쁜 꽃을 보면 그걸 꺾지 못해 바둥대고 하는 그런 치사한 인간들의 의욕을 두고 뭐 결혼은 사랑의 결실이라느니 보금자리라느니 하며 흥청거리고있는 인간들이야말로 얼마나 어리석고 리기적입니까.    제멋대로 그냥 내버려뒀더라면 더 아름답게 더 흐드러지게 피여날것을 하필이면 자기 손으로 분질러놓고 또 싫증나면 휙 날려버리는 그 야비한 심태를 어찌 사랑이라 말할수가 있습니까. 사랑은 그렇게 하는게 아닙니다. 진정 소중히 여기고 오래도록 간직하고픈 사랑이라면 그냥 그만한 거리에서 서로의 그 순수하고 뜨거운 정감을 마음속으로 감지하고 눈으로 보고 느끼는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입니다. 더 이상의 어떤 형식적인 결합같은 건 그 순수함을 얼룩지게 하고 서서히 서로의 추악한 일면만 들춰내게 되고 종당에는 파멸에로 이르는 그런 불행밖엔 초래할수가 없어요.    워낙에 만족이란 걸 모르고 허욕만 부리다가 망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 아닙니까. 옛날엔 좀 보수적이긴 해도 그래도 그 보수적인 륜리도덕의 엄한 단속이 있었기에 우리네 조상들은 한번 정해진 인연은 귀신될 때까지 지켜야 한다는 숙명적인 도덕규범 밑에 무조건 순종하며 살아왔고 억지로나마 그것을 영위해왔던것입니다. 적어도 혼인으로 인한 가정파멸같은 추태극은 없었단 말입니다.    헌데 지금은 뭡니까? 현대문명을 떠벌리며 걸핏하면 리혼이요 성해방이요 하며 흥청거리고있는 인간들, 소위 현대문명을 부르짖는 인간들이 고작 한다는 짓이 고작 륜리도덕도 모르고 자기 일신의 안락밖에 모르는 이따위 해괴망칙한 문명입니까. 그런 옹졸하고 비렬한것들을 그래 사랑이라고 할수 있는겁니까.》        그는 열변을 잠시 멈추고 맥주로 목을 축이고 충혈된 눈길로 나를 흘끗 일별하고 나서 긴 한숨을 토해내며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남들이야 어떻든 난 그렇게 허위적이고 비렬한 사랑은 못합니다. 단 한번 살다가는 인생을 그렇게 허무한 일들에 소모하고싶진 않습니다. 사내로 태여나서 좀 떳떳하고 자유롭게 온 세상을 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고싶었습니다… 하긴 이러는 내가 너무 어리석고 부질없는 놈일지도 모르지유. 쳇 내가 뭔데. 나 혼자서 뻐겨봤자 정신질 환자 취급이나 받고 말겠지…푸-―내가 뭔데…》     그는 자조 비슷한 쓸쓸한 웃음을 입귀로 흘려버리며 초점 없는 눈길로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고있었다.        《일찍 쉬세요. 그럼.》     그 황당무계한 역설에 어지간히 현혹돼버렸던지 내가 제정신으로 돌아왔을 때는 그의 휘청거리는 뒤모습이 방안으로 사라진 뒤였다.     곁들어 맥주를 조금 마신 나는 가벼운 취기를 느끼며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좀체로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그의 그 엉터리 같으면서도 어쩌면 일리가 있을 법도 한 기막힌 사랑철학에 어지간히 매료된것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같은 녀자로서 그녀의 처지가 남의 일 같지를 않게 안타까웠던것이다.        술기운 탓인지 이튿날 해가 엉덩이를 내리쬘 때까지 곯어떨어졌다가 비몽사몽간에 뭔가 끈적끈적한것이 얼굴에 와닿는 바람에 어슴푸레 눈을 뜬 나는 화들짝 몸을 일으켰다. 백리밖에 가있어야 할 나리가 눈앞에 와있었던것이다. 잠기가 채가시지 않은 눈을 두번 세번 비벼뜨며 아무리 뜯어봐도 영낙없는 나리였다.     《나리야, 네가 어떻게…》     나는 반가운 김에 나리의 목덜미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러나 이내 몸에서 물씬 풍기는 역겨운 악취때문에 훌쩍 떠밀어내며 코를 싸쥐였다. 흙먼지와 아침이슬이 반죽되여 돼지털처럼 거칠고 희뿌옇게 돼버린 온몸 어데랄것 없이 가시열매들이 엉성하게 달라붙어있는 것을 보아 먼 산길을 뛰여온 것임이 분명했다. 몇끼를 굶었는지 배는 훌쭉하게 꺼져있었고 돌부리에 긁힌듯 발가락사이로  검붉은 액체가 배여나와 누른 털에 엉켜붙어있었다.        나의 랭담한 태도에 실망했는듯 나리는 끼이잉 하고 원망 비슷한 소리를 뽑아내고는 절름절름 내 방에서 빠져나갔다.     따라나가 보니 그의 방과 화실 문은 나리가 그랬는지 활짝 열려져있고 그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리는 내가 둬근 남짓이 익혀준 고기를 게눈 감추듯 말끔히 먹어버리고는 만족스레 입을 쩝쩝 다시며 꼬리를 휘휘 저어댔다.  목욕이나 시켜줄려고 전에 그가 하던대로 고무호스를 찾아 들고 나가니 나리는 기다렸던듯 냉큼 화장실에서 샴프를 물고 따라나섰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손놀림이 무척 서툴렀지만 나리는 가히 리해한다는듯 곱드라니 내가 하는대로 가만히 들이대고있었다.        고무호스끝을 압축해가지고 비누물을 헹구어내고있는데 홀연 나리가 두귀를 쫑긋 세우며 휙 돌아섰다. 언제 왔는지 과수원의 트기가 백양나무아래 오도카니 앉아서 이쪽을 기웃거리고있었다. 나리는 나를 흘끔 쳐다보더니 목의 물기를 부르르 떨어내고는 정겅정겅 그리로 뛰어갔다. 둘은 코를 맞대고 씩씩거리다가 서로 핥아주기도 하고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아치기도 하며 살갑게 굴어댔다. 나의 존재같은건 안중에도 없는지 이쪽엔 곁눈 한번 팔지 않았다.        나는 물이 철철 흐르는 고무호스를 손에 쥔채 멍하니 놈들이 하는 꼴을 지켜보고있다가 까닭모를 배신감같은것을 느끼며 고무호스를 걷어들고 층계를 밟아올라갔다. 계단을 거의 다 올라갈 무렵 귀에 익은 발동음이 들려오는것 같아 머리를 돌려보니 나리도 언녕 그 소리를 가려들었는지 집적거림을 멈추고 귀를 쫑긋거리며 고갯길 쪽을 지켜보고있었다. 이윽고 고개길로 그의 모습이 나타나자 나리는 트기를 한번 돌아보고는 고개길로 줄달음쳐갔다. 나리가 마주오는것을 알아본 그는 오토바이를 멈추고 한참이나 나리를 지켜보다가 또 입을 하 벌리고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기도 하더니 이윽고 혼자말로 뭐라고 구실렁거리며 부르릉 이쪽으로 왔다. 스스로도 뭔가 켕기우는 모양 그때껏 주저주저 그에게로 선뜻 다가가지도 못하고 먼발치에서 꼬리만 휘휘 젓고있던 나리는 멀찌감치 뒤떨어져 터덜터덜 따라오고있었다.      《어떻게 된겁니까?》     오토바이 시동을 끄고나서 그는 뜨아한 눈빛으로 베란다에 서있는 나를 쳐다보고 물었다.     《글쎄… 아까 아침나절에 불쑥 들어왔던데요.》     《헛 참, 자식이 밤새 도주해온 모양이군.》        그는 기가 폭 죽어 걸어오는 나리를 흘끗 돌아보고 어이없는 웃음을 피씩 웃고는 층계를 올라왔다.     들어오자부터 방문을 꾹 닫아건채 그는 내가 점심 먹으란 소리에도 근근해있었고 나리는 한쪽구석에 축 늘어진채 머룩머룩 눈치만 살피고있었다.     하루해도 어느덧 다 저물어가고 저녁상을 갖추고 불러서야 그는 기지개를 켜며 뜨적이 방에서 나왔다. 내가 나리먹이를 들고 나오는데 그가 움찔 일어나서 내 손에 들린 그릇을 넘겨받으며 퉁명스레 내뱉었다.        《저런 도주병 같은 놈은 몇끼쯤 굶겨야 해유.》     그리고는 나리더러 어디보라는듯 씽하니 주방으로 들어가 랭장고에 되넣어버렸다.     나는 어정쩡하게 서서 그가 하는 꼴을 지켜보다가 측은한 눈길로 나리를 돌아보았다. 나리도 그의 행세가 좀 의외인지 말끄러미 그를 쳐다보기만하다가 체념한듯 선 자리에서 한바퀴 빙 돌더니 퍼더버리고 앉아 목을 축 늘어뜨린채 한숨을 푸 하고 내쉬였다.        《어떡할려구요? 나리를.》     《래일 또 걸음 한번 해야죠. 뭘.》     《그 사냥군한테 도루 돌려보낼려구요?》     《그럭해야죠. 그 친구 지금쯤 아마 쟤가 없어졌다구 눈에 쌍심지를 켜구 찾아헤맬겁니다.》        《금방 돌아왔을 때 보니까 불쌍해서 눈뜨고 못보겠더라구요. 배가 홀쭉하구 발가락이 싹 갈라터져가지구… 고생이 막심했는가봐요. 오죽했으면 그 먼데서 밤새 도망왔겠어요?》     《고만한 고생두 못견디구 어데다 써먹겠어요. 고작 집이나 지키구 밥이나 축낼거면 차라리 똥개를 기르기만 못하지. 그래두 명색이 1등공신의 후옌데 그냥 헛살만 찌게 내버려뒀다간 기능이 싹 퇴화되구 페물이 돼버린다니깐요.》        더 이상 말해봤자 괜히 그의 야기된 심기나 잘못 건드릴것 같았다. 내가 할수 있는 일이라면 그저 측은한 눈길로 나리에게 미안함과 동정을 표하는것뿐이였다.     이튿날아침, 그들이 길을 떠나야 했으므로 평소보다 좀 일찍이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가던 나는 문옆에 늘어져있는 나리를 보고 무망간 새된 소리를 지르고말았다. 나리의 발목에서 피가 즐벅하게 흘러나와 마루바닥을 즐펀히 적셔놓았던것이다.        나의 비명소리에 그가 팬티만 입은채 황황히 뛰쳐나왔다.     《뭡니까?》     《저걸 보세요.》     나의 손길을 따라 나리를 돌아보던 그도 눈이 휘둥그래지고 얼나간듯 입을 딱 벌리고있더니 급기야 다가가서 조심조심 피가 즐벅한 나리의 앞발을 들고 살펴보았다. 나리는 목을 축 늘어뜨린채 두눈만 살아서 슴벅거릴뿐이였다.     한참 그렇게 들여다보던 그는 어이없는 웃음을 입귀로 흘려버리며 화실에서 천쪼박을 가져다 상처를 대충 동여주고는 옷을 껴입고 나오다가 나를 보고 말했다.        《저 병원에 갔다 올테니까 누님은 걔 먹을거나 좀 덥혀줘유.》     그때까지 뭐가 뭔지 갈피를 잡을수 없어 한켠에 멍하니 서서 구경만 하고있던 나는 그제야 제정신으로 돌아올수 있었다. 먹이를 끓여서 나리앞에 갖다놨으나 놈은 입 한번 뻥긋 않고 근근해있었다.        내가 어르고 닥치고 하며 한창 애를 먹는데 그가 의사와 함께 들어섰다. 그 의사는 환자가 나리인것을 알자 큰 모욕이라도 당한듯 붉으락푸르락 해서 그냥 돌따져 나가려 하였다. 아마도 그가 사정이 긴박한김에 향위생소에서 당직서는 의사를 구슬려 데려온 모양인데 그 의사도 아마 접때 내가 이리로 오던 때처럼 그 집식구라는 말을 믿고 그냥 어리숙하게 따라나섰던 모양이였다.      그가 비난사정을 하며 의사의 팔을 잡고 늘어지고 나까지 곁들어 간곡히 만류한 덕에 의사는 툴툴거리며 비로소 왕진가방을 내려놓았다.     처치를 마치고 또 그의 간곡한 청구에 의해 단백질주사까지 한병 사다맞힌 후에야 나도 겨우 한숨 돌리며 대체 어찌된 일인가고 물을수 있었다. 얼빠진 사람처럼 나리를 지켜보며 피씩피씩 웃기만하던 그는 손바닥으로 자기 이마를 탁 소리나게 치며 이죽거렸다.      《헛, 글쎄 이놈이 자살을 시도했답니다.》     《자살?! 어머나 그럼...》     나도 그 말엔 입이 딱 벌어지고말았다. 그렇다면 나리는 분명 엊저녁 우리 둘의 대화를 알아들었던것이다. 목숨까지 내걸고 안갈려고 버티는 그 리유는 과연 무엇일가… 정말 그의 말대로 야성이 없어지고 기능이 퇴화된 것일가… 종잡을수 없는 의혹들이 머리를 어지럽혀왔다.      《그래, 니가 이겼다. 자식아, 이젠 속이 좀 후련하냐? 이젠 그리로 다시 안 보낼테니까 시름놓구 이거나 어서 먹어. 자식.》     그가 쭈크리고앉아 그릇을 코밑에 들이밀어서야 나리는 청승맞게 눈을 꺼벅꺼벅 하더니 먹이그릇에 코를 갖다대고 벌름거렸다. 승리자의 느긋하고 여유만만한 모습이였다.      그는 아침을 대충 먹고는 피곤하다며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아침부터 찌쁘둥하던 하늘은 점심때가 좀 지나서부터 이슬비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점심을 먹으라고 몇번 불러도 아무 응대 없던 그가 방에서 나온것은 점심때가 훨씬 지나 물안개처럼 잔잔하던 비발이 제법 추적추적 거칠어지고있을 무렵이였다.      《저 시내 좀 다녀올게요.》     《……》     그는 찌프린 눈살로 바깥을 흘끔 내다보더니 옷깃을 치켜세우고 휑하니 뛰쳐나갔다. 잠시후 오토바이 발동음소리가 부르릉 하고 멀리 사라져갔다.      이불보 같은 어둠이 서서히 내려앉을 무렵에야 그는 한구럭 가득 술안주와 양주 두병을 들고 돌아왔다. 또 무슨 속상한 일이 생겼나보다고 내가 술잔을 갖춰놓고 그의 기색만 살피고 앉았는데 그는 그저 시무룩히 웃으며 두잔에 골고루 술을 따라서 나에게 한잔 건네주었다.      《저 결혼해요. 누님.》     《?!….》     《왜요, 축하 안해줘요? 믿어 안져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너무 갑작스러워서…》     《예, 허허, 물론 그러실테죠. 나두 좀 급작스러워서 아직까지 어지간히 당황한걸요. 허허.》      《어떻게 그런…》      《예, 글쎄 실은 나리가 나더러 이런 결심을 내리게 한거라구 해야겠죠. 그렇지? 나리야.》     그는 나리를 힐끗 돌아보며 씽긋 웃고는 다시 나에게 잔을 들어보였다.     아무래도 뭐가 뭔지 감이 잡히지 않아 내가 아리숭한 표정을 하고있을려니 술잔을 기울이던 그는 씩 하고 웃으며 뚬뻑 물어왔다.      《나리가 왜 돌아왔는지 압니까?》     《그거야 산의 생활에 적응하기 바쁘니까 그런것 아니예요?》      《천만에요, 나두 첨엔 그렇게 생각했었죠. 근데 그게 아니였어유. 아까 아침에 의사 청하러 가는 길에 저 뒤산 과수원의 트기가 저앞에서 어른거리는것을 우연히 봤거든요. 근데 그놈의 배가 더부룩한게 새끼를 밴 게 분명했어유. 그러구 보니까 다 알만하더라구요.    쟤가 그 백리길을 탈탈거리며 뛰여온것두 또 자기 발목을 물어뜯은것두 결국엔 그놈의 트기때문에 그러니까 그 트기 배속의 자기 피줄때문에 그런거였지유. 쳇, 그래서 결국엔 오늘 내가 쟤한테 훈시를 받은꼴이 된 거쥬. 쟤는 자기의 책임을 다하려고 자살까지도 서슴치 않는데 나는 뭡니까. 비겁하고 졸렬하게…나야말로 자기 일신의 안락밖에 모르는 자사자리한 놈 아닙니까. 허허, 정말 면목없게 됐습니다. 허허허.》      그는 고개를 젖히고 한동안 껄껄 웃어대였다. 그러나 그 웃음소리는 그처럼 허탈하고 처량하게 들려올수가 없었다. 환희의 극치에는 눈물이 있다는데 어쩌면 그 웃음은 절규와 체념끝의 무가내와 같은 그런 처절함의 발설이였을는지도 모른다.     측은한 눈길로 그 옆모습을 한동안 지켜보다 말고 내가 나지막이 물었다.      《그럼 오직 그 책임을 지기 위해서 결혼한단 얘긴가요?》     《예? 책임? 허허, 물론 책임이야 질건 져야겠죠. 허허허.》     《누가 책임지라고 강요하던가요? 그 은사님이?》      《천만에요. 그 분은, 우리 선생님은 강직하고 또 배짱도 두둑한 분이시지만 절대 남한테 책임같은걸 강요할 그런 분은 아닙니다. 어떤 어르신이라구요. 걔가 그러는데 이번 일두 나에게는 일언반구도 내삐치지 말구 혼자서 뒤일을 깨끗이 수습하라더래요 글쎄. 열살나서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만 믿고 고이고이 자라온 앤데 그 말을 듣고는 어찌나 실망했는지 자기 아버지가 옳은가 하고 다시 쳐다봤다나요. 허허, 오늘 내가 마침 내려갔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애매한… 허허, 그리구 누님 말씀대루 걔 나이 좀 어려 그렇지 착하구 알뜰한 애 아닙니까? 허허.》      《하기는 그렇게 순진하구 참한 애들이 지금 세월엔 별로 흔치야 않지요. 하지만…》     《하지만 너무 갑작스러워서 어쩐지 찜찜하다. 그거죠?》     《……》      《허허, 저란 놈은 워낙 천성이 그래요. 헛, 글쎄 좀 덤벙덤벙해 보일진 몰라도 저로 놓고 말하면 특유의 자본이라고나 할가요. 뭐나 일단 내 생각이 맞다고 생각되면 곧바로 밀어붙이는것입니다. 아무때건 무시로 언뜰언뜰 뇌리를 스치는 그러한 순간적이고 우연한 감각들을 포착해서 그대로 화면에 옮겨담을수 있는 능력 그게 바로 제가 그림을 그릴수 있는 밑천이 돼주거든요. 그리구 저의 세계관이란것두 그래요. 한마디로 순간적이고 우연한게 우리 인생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다 이겁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모체에 잉태되고 이 세상에 태여난다는 자체부터가 우연이고 순간적인것 아닙니까. 그렇게 우연하게 태여난 우리는 또 언제 어디서 우연하게 순간적으로 꺼뻑하고 없어지고만다는것도 망각한채 딴에는 그 미지의 래일을 동경하며 아둥바둥 악을 쓰는것입니다. 허허허. 이거 뭐 쓸데없는 소리가 많아졌네. 잡담 이만 집어치우고 술이나 기껏 마시구 그래요. 앞으로 언제 또 이렇게 마주앉을 날이 있겠는지.》      《결혼은 언제쯤 할려구요?》     《그거야 뭐 아무때나 래일이라두 하구싶으면 하면 되는거 아닙니까. 허허, 근데 누님은 우리 결혼식에 오시는거죠?》     《그럼요, 청하지 않아두 가봐야죠.》     《하하, 그렇지. 역시 우리 누님 최고다. 참, 그리구 부탁할것 하나 있는데요.》      《무슨…?》     《다름 아니라 저 나리 땜에요. 쟤를 시내로 데리고 간다는건 말도 안될 일이구 또 어디 맡겨놓을 곳도 마땅한 데가 없으니 될수 있으면 누님이 어떻게 한동안 보살펴줄수 없겠는지 해서요.》     《전 아무래도 괜찮은데 나리가 말 들을가요?》      《아, 그건 걱정 마세요. 제 말 잘 들으니까. 야, 나리야, 너두 좋겠다. 이렇게 무던한 누님 만나서. 자식, 말 잘 들어야 해. 응? 이후에 종종 널 보러두 다닐테니까.》             나리는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엉거주춤 일어나서 꼬리를 살살 흔들었다.     《그렇다면 념려 마시구 제게 맡기세요. 정성껏 보살펴 줄테니까. 저 근데 언제 내려가실려구요?》      《예, 이왕 마음 정한바 하고는 래일 그냥 정리하고 내려갈렵니다. 제가 먼저 내려가서 택시를 한대 잡아 올려보낼테니까 누님은 그냥 문만 잠궈놓고…》     《예…》     나는 서운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나지막이 응수했다. 방안에는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깃들고 둘은 말없이 술잔만 기울였다.      《미안해요, 사전에 아무 말도 없이 이렇게 급작스레 굴어서… 그동안 너무 잘해주셨는데 그냥 이대로 있는것이 좋았는데…》     말끝이 조금씩 떨리는가싶더니 그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목젖을 들먹거렸다. 물기 그득한 두눈이 등불아래 유난히 번들거렸다.      《차츰 뭐나 조금씩 적응해가노라면 다 좋아질거예요. 적자생존이란 말처럼…》     그는 흐릿해진 시선으로 나를 마주보다가 무겁게 고개를 둬번 끄덕끄덕해보였다.    《자, 그럼 두분의 행복을 미리 축원해서 깐베이!》     내가 활짝 웃는 얼굴로 잔을 들어 보이자 그도 씽긋 따라 웃으며 잔을 맞들었다.      멋모르고 권하는대로 양주를 받아 마셨더니 얼마 못가 사맥이 나른해지고 의식마저 가물가물해져갔다.     이튿날아침, 눈을 뜨고 보니 그가 들어다놨는지 나는 내 침대에 말짱하게 누워있었다. 흐리터분한 정신을 수습하며 방에서 나와보니 그는 이미 간소한 행장을 꾸려놓고 나리와 뭐라고 지껄이고있었다.     《왜요? 지금 떠나실려구요? 아침두 안먹구?》     《아침 생각 없어유. 어차피 가야 할 길인데 일찌감치 가버리는게 좋지유.》      《그래두…》     내가 미처 뭐라고 덧붙일 사이 없이 그는 이미 멜가방을 걸머지고 출입문을 향하고있었다.     나는 흐트러진 머리를 얼추 손빗질 하며 그뒤를 따라나섰다. 나리도 그 불편한 다리를 가둬붙이고 따라나섰다. 하늘은 여전히 찌쁘둥하니 흐려있었고 간밤에 서리가 내렸는지 내가의 해묵은 백양나무가 노오란 단풍잎들을 수북히 떨어뜨려 놓았다.      묵묵히 오토바이를 밀고 백양나무아래까지 가서야 그는 오토바이에 올라타며 말했다.     《이제 그만 들어가요. 이거 순서가 좀 엇바뀐것 같아서 이상한데요. 허허… 나리야, 너 말 잘 들을거지 응? 그래, 잘해. 임마.》      《그럼 살펴가세요. 잔치때는 제가 떡을 마련해갈테니까 어머님께 그렇게 여쭈세요.》     부르릉… 오토바이에 시동이 걸렸다. 나리가 성한 앞발을 껑충 들어 그의 다리를 짚고 선채 눈물이 핑그르르해서 끼잉 끄응, 애처로운 신음소리를 냈다. 역시 아쉬운듯 나리의 목덜미며 머리를 어루쓸어주던 그는 눈을 들어 아직 메마른 가지에 매달려 애처롭게 파르르 몸을 떠는 나무잎사귀들을 쳐다보고있었다.     《누님…》     《……》      불러놓고는 할 말을 잊은듯 머뭇거리다가 한참만에 말을 이었다.     《누님, 참 편한 분이셨어요. 그동안 저…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는 버릇처럼 씩 웃어보였다. 쓸쓸함의 한자락이 입귀에 머물다 사라졌다. 부르릉 오토바이는 잠간새에 저만치 굴러가고있었다. 오늘따라 유달리 처량해보이는 그 기름하고 야윈 뒤모습은 드디여 꿈결만 같이 아리숭한 운무속으로 사라져갔다. 나리가 불편한 다리때문에 몇걸음 쫓아가다 말고 멈춰 서서 목을 길게 빼들고 애처로운 소리로 울어댔다. 승냥이의 포효와 같이 몸서리치도록 처절한 울음소리였다.       내가 은근히 걱정해왔던 바와는 달리 우리 집 식구가 된 나리는 아무 말썽 부리지 않고 잘 지냈다. 근데 내 머리속에서 시종 떨쳐버릴수 없었던 의혹은 나리가 여직껏 단 한번도 과수원  지키던 트기를 되찾아갈 그 어떤 조짐이나 반상적인 행위같은것이 없는 점이였다. 접때 사생결단을 하고 그 의리를 지키느라 물고 늘어지던 때를 생각하면 아무래도 난해한 일일수밖에 없었다. 거리가 너무 멀어서 체념해버린거겠지 아니면 그 의리란것도 이젠 시간의 흐름속에 색바래졌을 테고. 하는 막연한 추측으로 공연히 부질없는 일에 허황한 생각을 하는 자신을 눅잦혀 보려고도 했지만 그럴수록 과연 그때 나리가 일으킨 소동이 정말로 그 트기와 직접적인 련관이 있었던걸가 하는 의심의 농도는 점점 짙어만갔다.         《에그, 지금 젊은이들 일은 정말 모른다니까 글쎄. 새파란 나이에 결혼한지두 석달배께 안된다더구마. 어쩌문 쯧쯧.》     《그래 어째 그렇게 됐담둥? 술 취해서 그런게 아이람둥?》    앞좌석에서 보따리장사꾼인듯한 년세 지긋한 두 안로인네가 주고받는 말소리에 나는 깊은 상념에서 깨여났다.      《그게 글쎄 아무리 봐두 그저 술취해서 그랜건 같재터라꾸마, 술은 좀 마셨더라만 취할 정도까지는 아이더라꾸마. 글쎄 그날에 우리 조카가 차를 몰구 나갔다가 딱 바루 곁에서 목격했다는데 그 있잼둥, 철길량켠에 기차가 올때문 올렸다 내렸다 하는 가름대 있재쿠 뭐임둥, 빨간 신호등이 케지구 그게 다 내레올 때까지 멀쩡하게 오토바이를 탄채 두다리르 내리우구 서있던게 글쎄 기차가 뿡― 하구 거의 다가올 임박에 불시루 그저 부르릉 하데만 그 가름대밑으루 쑥 빠저들어가더라잼둥.    그래이깐 그저 낙재없이 기차대가리에 툭 치워서 몇십메터를 뿌려나가서 즉사했다지 뭐임둥. 에그, 그 참상이야 그저 생각만 해두 끔찍합지. 어쩌문 그리두 모질은지 각시랑 금방 학교를 졸업한게 인간 착하구 또 인물체격도 츨츨하다던데. 임신했다던게 어떻게 돼서 뭐 애가 떨어졌다던지 어쨌다던지… 마 그 일땜에 그랬는두. 아무리 그러기로 글쎄 산 사램이 중하지. 그런 일루 죽기까지야 하겠음둥. 쯧쯔쯔…》      《에그, 쯔쯔 그래게 말이오. 혼자 가믄 각시랑은 어쩌고… 모질기두 해라. 그러게 요즘 젊으이들은 그저 제 생각배께 할줄 모른다재오. 우리 그때마 해두… 그래 무슨거 하던 사램이라오?》     《그림쟁이라 합더구마. 이름이 김아무개라 하던데 어쨌든 예 지금 그 나또래서는 꽤 한다하는 그림쟁이라꾸마.》      《에그에그, 그러게 지금 젊은 사람들 일이야 어찌 알겠슴둥, 그저 하루 새로운게 요즘 세월입지비. 쯔쯔.》     뻐스는 이미 모아산 굽이를 내리달리고있었다.     하얀 눈송이들을 소복소복 떠인 검푸른 소나무들을 근경으로 하고 멀리 보기에만도 매캐하고 숨막힐듯한 연무가 낮게 드리운 시가지의 풍경이 펼쳐져있었다. 선뜻 정이 가닿질 않는 혼탁한 풍경이였다.      저 세상에서 좀 살아 버티기가 그토록 힘겨웠을가.     그토록 총망히 떠나버려야 했던 그는 과연 소원대로 이 침침하고 매캐한 속세에서 해탈된것일가…     한편 그렇게 시름없이 속세를 떠나간것도 그에게는 행복일거라는 생각을 문뜩 했다.     그의 기름하고 초췌한 뒤모습이 저 몽롱한 연무속 어디에선가 어른거리고있는것만 같다.   
3    车钱('영호의 죽음' 편역) 댓글:  조회:3900  추천:0  2011-12-04
短篇小说     车     钱                金  坚    永浩静静地躺在那儿,吐出了最后一口气。就这样,他今天早晨穿上的那身唯一的西装成了他的葬服。晚霞静静地抚摸着他的身躯。    ……    一大早,永浩穿着一身黑色西装, 忍着饥饿来到长途客车站,正好赶上一辆开往县城的车。他赶紧跳上车,刚找个座位坐下,后座一个颇面熟的年轻人好奇地问他:    “嗨, 这不是书记大人吗?一大清早,西装革履的,您这是去哪儿啊?”    永浩低头看了看自己的穿着。那身西装虽然因常年放在衣柜里而变得皱巴巴,且显得有些过时,可那是他唯一的、是他在结婚那一天只穿过一回的西装。永浩挠了挠后脑勺尴尬地说:    “啊,我有点事去县城……”    “哦,看样子又是要去喝酒吧?”    “不,是我表弟结婚。我说有事去不了,可他们非要我去不可…… 实在是没办法呀。”    “表弟结婚当然要去。可是,书记大人红包里准备了多少钱呢?”    “?!”    永浩一时答不上话来,大家都偷笑不止。他不由得埋怨起自己来,哎呀,我怎么就没想到这事呢?再怎么说我也是他表哥,总不能空着手去呀…… 正当他愁眉苦脸时有位老者替他解了围。    “我说年轻人,别再刁难人家了。要怪还不得怪这稀奇古怪的世道吗? 过去哪有那么多规矩呀。村子里谁家有了喜事,大家大不了拿个3块、5块的过去凑凑热闹,再就是大老爷们帮人家劈柴、打打糕,女人们则下厨帮人家做饭、做菜什么的。哎,那才叫喜气洋洋啊!现在倒好。你一百,我五百的,都快成比红包大赛了。咱们这生活宽裕起来才有几个年头啊? 个个像个大款似的。嗨,依我看啊,这种风气早晚是要败坏咱们民族的名声哟。”    老者这番话不仅使那些取笑永浩的年轻人哑口无言,还为永浩鼓足了勇气。永浩心想:对呀!我兜里这十块钱除去车钱还能剩下6块多。我就拿5块来表表心意嘛!我这么大老远的跑去庆贺,就是不拿什么红包舅舅他们也会高兴的。回来时就用剩下的钱买二两酒喝。可是…… 回来时车钱怎么办?…… 不,这可不用担心,我这么老远赶过去,舅舅家难道连几个车钱都不给? 不用担心,到时候肯定会有办法的。嗨,想当年我崔某哪能为这点小事犯愁啊。正如那老爷子所说,不就是因为这稀奇古怪的世道才弄到现在这个地步的吗……    永浩脑海里不由得浮现出了那虽短暂却美好的过去。    永浩本是军人出身。他参军不到一年就入了党,复原后被分配到老家担任乡共青团委书记。当时,能在乡里工作等于有了个铁饭碗,加上他还是一表人才,因此,刚分配到乡里不久,就有许多媒婆纷纷找上门来为他保媒,还有许多妙龄女孩也纷纷向他表示爱意。    经过精挑细选,永浩选中了在乡税务所工作的粉女。那是一个清纯漂亮的姑娘。两人结婚不久,就生下了白白胖胖的儿子今锡。就在小今锡刚满5岁那年,随着改革春风的到来,大家纷纷走上了致富之路。有进城做小本生意的,有去大城市打工的,还有探亲去韩国打工,或者干脆嫁到韩国的。眼看着周围那么多的人个个都富裕起来,粉女再也按捺不住了。于是她不顾永浩的劝阻辞掉了税务所的工作。说要去韩国打工挣钱。为了办出国手续三天两头往县城跑。可是,这出国手续可不是说办就能办得到的。它不仅需要一系列繁琐的手续,而且还需要巨额的手续费。有时候弄不好还会被骗得两手空空。就因为这手续费,原来那么和睦可亲的小两口开始不和了。粉女整天埋怨永浩,连几万块钱都弄不到,当那芝麻官还有什么用?    天性温顺的永浩也无言以对。他只是避而远之,喝闷酒,尽量避免与之争吵。可随着粉女无理取闹的次数越来越频繁,永浩的酒量也随之增加,酗酒后经常出丑、犯错误。    有一次,粉女去县城呆了3天才回家。永浩疲惫地回到了家。门一打开,便有一股香喷喷的味扑面而来。一看,饭桌上摆满了各种美味佳肴。    “今天这是怎么了?”    永浩还没醒过闷来呢,粉女便笑容满面地迎了过来。说:    “回来啦?愣着干什么? 快过来坐呀。”    粉女这异常亲切的态度使得永浩摸不着头脑,无地自容了。永浩接过斟得满满的酒杯,一饮而尽,放下酒杯便问:    “到底是什么好事?”    “哎呀,急什么吗? 不忙,不忙。来,先喝酒。咱们一起干一杯,好不好?来,干!”    永浩不由自主地拿起酒杯碰了一下。就这样,两口子你来我往,和和气气的差不多喝完了一瓶酒。小今锡在旁边看着爸爸妈妈难得这么有说有笑的,也高兴地撒娇逗乐儿。这会儿,永浩已经差不多把粉女今天反常的态度抛掷脑后了。就在这时粉女冷不丁说道:    “今锡他爸,咱们离婚吧。”    永浩先是身子一震,接着用微微颤抖的手拿起酒杯慢慢地拿到嘴边,喝了一口。然后慢慢放下酒杯,正眼看着粉女说:    “刚才你说什么? 离婚? 是不是我听错啦?”    “你没听错。可我说的是假离婚。不是真离。”    永浩扑哧一笑,摇了摇头:    “呵,假离? 离婚还有什么假离、真离?离就离了,还分什么真假?真荒谬。”    “哎呀,你先听人家说完嘛。是这样,经人介绍我在县城认识了一个韩国老板。他丧偶多年,这回专程是来找配偶的。他说只要我愿意,他就不让我花一分钱,带我去韩国。到那儿落户,挣了钱以后,如果我不愿意跟他过了,那也可以。只要给他一点索赔金就行。也就是说我可以分文不花就可以拿到韩国国籍了。你说哪有这么好的机会呀?其实我也不想通过这种不正当的途径。可是你说我们现在连手续费都拿不出来,还顾得了那么多吗?就靠你那点工资,这日子还怎么过呀?别的不说,总该为孩子想想吧。要供今锡念到大学日子还长着呢。”    粉女这番话说的永浩有口难辩,无言以对了。他只是长吁短叹,自斟自饮,不停地摇头。过了半天,他似乎下定了决心,把空酒瓶往那儿一放,长长的叹了口气:    “既然你迫切地要走,那我就成全你。不过要离就离,别什么真的、假的。你也应该知道一旦在离婚协议书上签了字,你我就是外人了。”    “哎呀,你就放心好了。等我挣了钱,一定会回来跟你复的。我才不愿跟一个比我大二十来岁的老男人过一辈子呢。”    永浩无奈地咧嘴笑了笑,叹了口气。    就这样,第二天他们去乡里办理了离婚手续。没过一个月,粉女的签证下来了。临走时,粉女千叮万嘱说,一定要照顾好今锡,要是实在不行,就把孩子托付给丈母娘。还说了一些等她到了那边会随时打电话过来等安慰他的话。那难舍难分的表情弄得永浩心里酸溜溜的。    一开始,粉女还隔三差五打电话来,问候他和小今锡的近况。而突然有一天,小舅子来找他说:    “姐夫,我姐说你一个人带着今锡一定很吃力。让我把今锡带过去,让我妈来照顾。这样对孩子还是姐夫都好。”    永浩想,粉女说的也对。于是也没多想便把小今锡送走了。    可是从那以后,粉女的电话渐渐地少了。而有一天他还听人说,有人在韩国见到过粉女。她看起来过得很不错,像个阔太太。根本不像是出来打工的样子。永浩实在按捺不住了。便立刻打电话过去。不料,电话根本就打不通。    从那以后,永浩的生活变得一塌糊涂。整天浸泡在酒缸里,过着酒池肉林的日子。结果影响到了工作,失去上级的信任,又赶上乡里裁员,最终被辞退了。    大家都觉得他挺可惜的。都来帮他,规劝他,可怎么说他都听不进去。他的父母三番五次哄他,劝他,也无济于事。不管是一毛还是两毛的,只要有钱他就去买酒喝,实在没钱就去赊账。    短短两年时间里,曾经对生活充满信心,刚毅不屈的汉子永浩已经不复存在,堕落成了一个一天到晚醉眼朦胧、邋里邋遢的酒鬼。无论是谁家结婚,过花甲,或者过生日,甚至哪家的狗生了狗崽,他都要跑去说一番恭喜之类的话,然后一屁股坐下,厚着脸皮等人家给酒喝。    昨天,他为了弄点酒喝,冒着严寒去了父母那里。不料酒没有喝着,反而被父亲骂了一通,灰溜溜地被撵了出来。当他快走到村口时,母亲赶上来把他叫住,把一个包袱递给他。包袱里有半瓶酒和10元钱,还有一件棉衣。母亲心疼地对他说:    “唉,妈伺候你喝酒还要伺候到什么时候啊? 你是不是也该打起精神好好做人了?我跟你爸明天去县城参加你舅舅家小儿子的婚礼,你饿了就回家自己弄点儿吃的吧。我还给你留了点儿酒。”    母亲说完,抹着眼泪转身离去。永浩看着母亲的背影,脑子里突然冒出了一个主意。对了,我就用这10块钱做车费,明天也去趟县城。让我想想,舅舅家的小儿子是谁呢?…… 哦,是永宇那小子吧!他是该到结婚的时候了。时间过得真快,那小子屁颠屁颠地跟在我后面吵着要吃香瓜的情景就像发生在昨天,没想到一眨眼功夫就要结婚了。    “到终点了。”    乘务员刺耳的声音将沉浸在回忆之中的永浩唤回到了现实当中。    “哦,这么快就到了?”    下了车,永浩还真分不清东南西北了。这几年县城变化实在是太大了。也难怪,他最后一次来县城是为了给至今杳无音信的妻子送行而来的。想到粉女,一丝悲哀涌上心头,鼻子酸溜溜的,永浩不知不觉长叹了口气。    他凭着朦胧的记忆,结结巴巴地向人打听了舅舅家以前的住址,终于找到了舅舅家。他拼命敲打着厚重的铁大门。    “你找谁啊?”    敲了半天门,里面什么动静也没有。他快要绝望时,邻家一个女人探出头来问道。    “大嫂,这里是林业局李学洙局长的家吗?”    “是的。你是他什么人?”    “我是他外甥。听说他家小儿子今天结婚,所以我……”    “他们一家人应该都去饭店了吧。”    “饭店? 婚礼不是在家里举行吗?”    “怎么? 你连在哪儿举行婚礼都不知道?”    永浩不好意思地摇了摇头。    “我听说好像是在新罗饭店吧。”    “新罗饭店?”    “看来你是从乡下来的吧? 你沿着这条路朝前走,那儿有个公交车站。你坐2路公交汽车就能到新罗饭店了。”    永浩向那女人道谢后便匆匆奔向公交车站。他坐上2路车花4毛钱买了车票,衣兜里还剩下6块钱。永浩生怕错过了站,不断地询问售票员,问得售票员都有些不耐烦了。    到了新罗饭店后,永浩不知该从哪儿进去。突然,他远远地看到舅舅和舅妈正在饭店门口迎接客人,便一口气跑了过去。    “嗯? 这不是永浩吗? 你小子怎么来了?”    永浩的出现让舅舅和舅妈有些不知所措。也难怪,他的确是个不速之客。    “舅舅,舅妈,你们好吗?”    看着不知所措的舅舅和舅妈,永浩还以为他们是因为看到自己而喜出望外呢。    “你赶紧走开,别在这儿丢人现眼了。唉,真是的,我千叮咛万嘱咐了的,怎么还……”    舅舅不耐烦地把永浩推向一边,然后整整衣襟,满面笑容地迎接别的来宾。舅妈也向永浩翻了个白眼,没好气地嘀咕了几句。无缘无故被推到一边的永浩感到有些失落。 这时,随着一声“新娘来了!”的吆喝声,一辆黑色轿车缓缓驶过来停在饭店门口,人们争先恐后地一拥而上。车门打开,穿着燕尾服的新郎永宇走下车来。几年没见,他已长成了一个人高马大、帅气十足的大男人。穿着雪白婚纱的新娘羞涩地低着头,小心翼翼地从车里出来,永宇立刻抱起新娘走进饭店。    永浩鼓掌叫好,从围观的人群中站了出来。新郎瞥了一眼,看到这位不速之客,不由得皱起了眉头。    永浩有些失望地抿了抿嘴。这小子,几年不见连我这个表哥都不认识了? 连个招呼都不打,真是的…… 很快,他又笑呵呵地背着手懒洋洋地跟在人群后边。    来到礼堂的入口处,永浩看见舅舅和舅妈像站岗似地站在那里,接过每个来宾恭恭敬敬递过来的信封,旁边还有一个年轻人坐在桌前一一做着记录。    永浩停下步子,打算再观察一会儿。这时,一个看上去只有20多岁的年轻人走过来,掏出钱包随手抽出几张一百元递给舅舅。舅舅大声表示感谢,转身把钱交给做记录的年轻人后,继续等待下一个来宾。    永浩惊讶得合不拢嘴。哇,城里人出手真够大方的!他后退几步, 摸了摸自己的口袋。他知道自己全身上下翻个遍,也只有6块钱。他想,算了,像我这样的近亲,就算不给红包舅舅他们也不会说什么的, 就给5块钱表表心意吧。    永浩鼓足勇气走过去,将皱巴巴的5块钱捋平后,用双手郑重地递给舅舅,不好意思地说:    “舅舅,这……钱是少了点,但也是我的一点心意,请……”    舅舅气得连话都说不出来,干瞪着眼睛直喘粗气,过了好一会儿才厉声喝道:    “臭小子,你以为这是什么地方,竟然跑到这儿来气人!”    永浩不解地看了看舅舅和舅妈,又看了看手里的5块钱,不清楚他们为什么生这么大的气。过了一会儿,舅舅也许觉得自己有点过分,但还是略带怒气地说:    “我们家再穷也不用你出钱。好了,别在这里丢人现眼了,赶紧进去吃完后回去吧。”    舅舅叫来一个女人低声吩咐了几句。永浩还是硬把5块钱交给了坐在桌前的那个年轻人,说了一些祝贺之类的话,然后笑嘻嘻地跟着那个女人走去。他被带到礼堂对面一个黑乎乎的小单间里。那个女人瞥了永浩一眼,用下巴颏指了指桌子旁边的椅子,示意他坐下等着,然后转身出去拿来半瓶酒和几碟菜,还有一小盘打糕。 永浩迫不及待地打开瓶盖,拿起筷子。虽然下酒菜有些寒酸,可是一杯酒下肚后,他略微不快的心情便立即烟消云散了。他感到世间万物都是那么的美好。他甚至还在寒酸的菜肴里翻出了几片肉,更是喜出望外。    不一会儿,酒喝光了。永浩觉得自己喝得太急了,怪可惜的,想再弄点酒来喝。便悄悄地走出小单间,看见大厅里正在举行婚礼。正当他左顾右盼寻找熟人时,正好跟父亲目光碰了个正着。父亲瞪着他,脸色铁青。他尴尬地朝父亲笑了笑,避开父亲的视线,随便找个地方坐了下来。人们见一身散发着酒味的永浩像是见到了怪物似地纷纷离去,躲得远远的。    永浩还以为人们是给自己让座,笑着点点头,还跟坐在旁边的中年男人搭起话来:    “永宇那小子小的时候,我偷几个香瓜给他吃,他就又蹦又跳的,别提有多高兴了。没想到这么快就结婚了,时间过得可真快啊。”    他见中年男人好像不太愿意理会他,就更加亲热地问道:    “您是永宇的……”    “哦,我是新娘的舅舅。”    “啊,原来我们是亲家呀!认识您真高兴,幸会,幸会!”    永浩的过分热情使得中年男人有些不自在。    “永浩!你怎么跑到这儿来瞎掺和,快别在亲家面前丢人现眼了。"    永浩扭头一看,见父亲盯着自己,旁边还站着比他大1岁的表哥永哲,也正绷着脸注视着他。    永浩不敢正视父亲,猫着腰站起来。父亲怒气冲冲地拉着他往外走。就是这样,他也没忘记跟亲家道别:    “我先告辞了,咱们后会有期。”    “你怎么找到这儿的? 嗯?!”    父亲拽着永浩一直走到门口,用力把他推到一边,气呼呼地责问道。永哲在一旁也毫不客气地插了一句:    “喝了酒你就乖乖地回家嘛,跑到亲家那儿献什么丑啊!”    永浩虽然不明白父亲和永哲为什么那么生气,可是不敢顶撞,只是像一头摔倒在冰面上的牛一样,孤立无援地转动着眼珠。    “你过来,赶紧送他出去。”    永哲向刚才带永浩进来的那个女人吩咐道。    那个女人很不情愿地走了过来,父亲没好气地训斥永浩:    “你还愣着干什么?还不赶紧离开!真是的……”    永浩跟着那个女人走出饭店。那个女人拦下一辆出租车,嚼着口香糖斜视着永浩。    “哈,我今天还能坐上出租车了!太棒了!”    永浩嬉皮笑脸地走过去,那个女人拉开车门,慌得他连连弯腰致谢后上了车。    “送他去客运站。”    那个女人对出租车司机说了一句,重重地关上车门,转身走开了。永浩朝她背后摆了摆手,刚说了声谢谢,车就平稳地开动了。    坐在松软的车座上,永浩兴奋得不得了,一会儿扭动着身子,一会儿望着窗外的市景连声赞叹。过了10来分钟,出租车开到了客运站。永浩好不容易才找到门把开了门,迈开脚刚想下车,冷不丁身后传来一声呼叫:    “哎,给钱呀!”    “什么钱?”    永浩莫名其妙地反问了一句。司机哭笑不得地说:    “你坐车不给钱吗?”    “怎么,刚才那个女人没给钱吗?”    “没有哇。”    永浩傻了,怎么会有这种事?请人坐车,怎么连车钱都不给呢?    见永浩愣了半天不说话,司机不耐烦地催他快点儿给钱。    “好,好吧……”    永浩从衣兜里掏出一张皱巴巴的面值1元的钞票递给司机。司机一看,脸色突变,破口就骂:    “你他妈的耍人啊?”    永浩听了,眨巴着眼睛不解地问道:    “又怎么啦?”    “你看这儿!”    司机指了指计价器上显示的数字。    “这是什么意思?”    “6块2啊!”    永浩张大嘴巴半天合不拢,脑子里嗡嗡作响。有没有搞错? 从乡下坐车到城里来才花了3块多一点,这不到十分钟的路程就要6块多? 城里人难道都吃错了药,当街明抢还是怎么着? 那个倒霉的臭娘们儿也真够损的,明知我身无分文还…… 司机不耐烦了,一个劲儿地催。永浩也火了,大声喊叫起来:    “我没钱怎么办?!”    司机扑哧一笑,又张口骂了几句。永浩已经顾不得人家怎么骂了,只是懊恼地揪着自己的头发。哦,有了!我干脆搭这辆出租车直接回乡里不就得了?想当年我不是乡里响当当的团书记吗?回到乡里难道连几个车钱都弄不来? 对,就这么办!    永浩咧嘴一笑, 一屁股坐回车里, 对司机说:    “走吧!”    “上哪儿?”    “回乡下。”    司机又大又圆的眼睛差点儿没从眼眶里蹦出来。连6块钱都拿不出来的家伙,竟然要坐出租车回乡下?他又想搞什么鬼名堂? 永浩明白司机在顾虑什么,于是拍着胸膛讲起了他以前在乡里是怎样的人物, 曾经怎样的风光等等。    司机听了还是有些半信半疑, 上下打量了他半天, 还提醒他到乡下的车钱会很贵。永浩满不在乎地摆着手让司机尽管放心, 到了乡里保证会分文不少地付钱。司机见他信心十足的样子,就开车上了路。    永浩生平头一次坐出租车, 又是一个人包车从县城回乡里,心里别提有多兴奋了。虽然刚才在饭店没有受到欢迎,还被赶了出来,一直令他十分费解,那个女人的所作所为和与出租车司机之间的龃龉,都曾让他很不开心,可这会儿,那些不快的事情早已被他抛在了脑后。    “喂,师傅,有没有音乐呀?”    司机瞥了一眼后视镜,打开了收音机。收音机里正播放着一段听不懂的地方戏,可永浩还是非常满意地点着头,甚至还跟着一起哼哼起来……    “哎, 醒醒。”    不知何时进入梦乡的永浩被司机叫醒了,睁开惺忪的眼睛一看,哦,这不到乡里了吗? 他伸了伸懒腰, 打了个哈欠,脑子里突然闪过一个念头:该上哪儿借钱呢?他让司机把出租车停在车老头开的小商店门口,问司机一共多少钱。司机说:    “不多, 65元。”    永浩吓得差点儿没从座位上蹦起来。我今天真是昏了头!在城里才走了不到10分钟路就要6块多,从城里到乡下跑了这么远的路,还不得要这么多钱吗?我上哪儿去开口借这么多钱呢……    永浩下车让司机稍等片刻,然后鼓足勇气拉开了小商店的门。车老头听到动静,从里屋探出闪闪发亮的光头,一看是永浩,以为又是来赊账喝酒的,便漫不经心地望着窗外,并不想搭理他。    “嗨嗨,车大爷,您好吗?我今天来是想求您件事……”    “不好意思,我今天还没开张,不能让你赊账喝酒。你还是去别的地方看看吧。”    车老头用手摸着光头,转身要回里屋。    “等一等,车大爷。我今天来不是赊账喝酒,真的有点儿急事想求您帮忙。”    永浩用近乎哀求的眼神望着车老头。车老头好奇地问道:    “急事?你还能有什么急事?莫非是找回今锡他妈了?”    “不,不是。其……其实我今天去了趟县城……因……因为没钱回家,所以我就坐出租车直接回来了,可是……可是……”    “什么?你说什么?从县城坐出租车回来?哎哟,老天爷呀,我说你今天是不是吃错药了?嗯?你马上给我出去!”    不管永浩怎么解释,怎么哀求,车老头压根儿就不想听,硬是把他推出门外。永浩无可奈何地愣在那儿,眼巴巴地看着小商店的牌匾。直到身后传来汽车喇叭声,才让他回过神来回到车上。    “事情怎么样了?”    司机显得很不耐烦。永浩不好意思地笑了笑,搓着双手低声下气地说:    “唉,不好意思……”    “你他妈的!到底是行还是不行?”    听到司机又开口骂人,永浩也来了一股气,不甘示弱地大声说道:    “谁说不行了?走!我就不信没钱给你。”    尽管司机嘴里还骂骂咧咧的,可还是按照永浩指引的方向开着车。    车老头冷酷无情的态度,让永浩越想越气。这个吝啬的老头把我当成什么人了?真是狗眼看人低!哼……有了,去乡政府旁边张寡妇开的小饭店看看。小饭店里不仅有憨厚体贴的张寡妇,还有曾经那么喜欢我的香玉呢。    出租车刚在张寡妇开的小饭店前面停下,满脸涂粉、肥胖的张寡妇就迎了出来。香玉也颇为好奇地探出头来观望来了什么大人物。    一见下车的是永浩,张寡妇先是惊讶得合不拢嘴,接着就装出一副漫不经心的样子。    “哎哟,今天是什么风把团书记大人给吹来了?哟,还坐着轿车呢。”    “嗨嗨,张婶,啊,不不,张老板,我有件事情想请你帮忙。咱们进去说好吗?”    永浩毫无顾忌地推门而入,顺便向站在门口的香玉打了个招呼。小饭店里有几个人围坐在桌子旁喝酒。永浩一看都是些熟人,而且都是以前跟自己称兄道弟的朋友。不料,他们一看到永浩,不约而同地背过脸去,一副视而不见的样子。    要在以往,永浩早就厚着脸皮挤到其中开怀畅饮了。今天则不同,他有更重要的事情要办。    永浩把张寡妇叫到一边低声说:    “张老板,我今天有点急事儿,你能不能通融一下借给我70块钱?我明天就还,明天一定还。”    “什么?70块钱?哎哟,我还以为你又是来赊账喝酒的呢。不过,我哪儿来那么多钱借给你呀?我说你这人脸皮也太厚了,你平时赊的酒钱已经有好几百了,不但欠钱不还,还有脸找我借钱?你赶紧给我出去,别扫了大家的酒兴。”    永浩还没说上几句,就被张寡妇一把推到了门口。他本来还想找酒桌上那些人试试,可是还没等转过身来就被张寡妇挤出了门外。他在门口看到了香玉,便抱着最后一线希望,拼命抓住门框不放,扭过头来对香玉说:    “香玉,你能不能……”    谁知香玉冷冷地瞥了他一眼,不屑地说:    “哟,这是谁呀?从哪儿冒出来的?女人家的名字是你随便叫的吗?瞧你那傻样!”    还没等永浩回过神来,张寡妇在后面用力一推。他被门槛绊了一下,摔了个狗吃屎。 正当永浩坐在地上揉着摔疼的胳膊唉声叹气时,司机走过来瞪眼俯视着他。他不敢抬头正视司机。司机突然用手拍了拍自己脑门,骂骂咧咧地走进了小饭店。    小饭店里传出张寡妇和司机的对话声,接着爆发出一阵哄堂大笑。司机怒气冲冲地冲出小饭店,一把抓住永浩的领口,气呼呼地将拳头对准了他的脑门。永浩像只瘟鸡似的,垂头丧气地任人摆布,心想干脆挨一顿打免去车钱就好了。    不知为什么,司机突然把他放开,并叫他上了车。    出租车刚要离开,忽然有一群孩子跑过来跟在车后面喊道:    “酒鬼永浩!丢了老婆的酒鬼!”    丢了老婆的酒鬼?对了!我怎么就没想到去老丈人家呢?我好歹也曾经是他们家女婿呀!就算看在外孙子的份上,他们也不能不帮我这点忙呀。对,就去老丈人家!想到这儿,永浩就像已经弄到了钱似地拍了拍大腿,让司机调头开往河对面的村子。他告诉司机,老丈人家在乡里是数一数二的富户人家,去那儿肯定没问题。不过,司机已经知道他的话总是很不靠谱,就警告他要是这回又是白跑的话,就会对他不客气。 永浩听了哈哈大笑着说,你只管放心好了,这回肯定行。    车顺着坑坑洼洼的土路走了一会儿,过了一座桥,接着又是高低不平的沙土路。永浩突然看到前面不远的河边,有一群人在围观着什么,又不知为什么纷纷跑开了。仔细一看,老丈人和小舅子也在人群中。    永浩叫司机把车停在跑到路边的小舅子身旁,问他发生了什么事情。小舅子从小近视,戴着一副厚厚的眼镜。他好不容易才认出了永浩,气喘吁吁地说:    “别提了,我家正杀牛呢。可是用斧子第一下打偏了,牛受到惊吓,正在拼命挣扎。要是一旦缰绳被挣开了,后果不堪设想。哦,可是你到这儿来干什么?”    小舅子透过连旁人看上去也会觉得头晕的厚镜片,好奇地看着永浩和出租车。    “啊,我想来借点儿钱。我说,看在咱俩以前的情分上,你能不能借我70块钱?就70块,啊?”    “你说什么?70 块?我说你这人脸皮也真够厚的。现在乱糟糟的时候你还好意思……”    小舅子推了一下眼镜,转身就要走开。永浩连忙抓住小舅子的衣襟说:    “你叫我干什么都行。只要你能借钱给我,叫我干什么我就干什么。你就帮我这一回好不好?”    小舅子用嘲讽的眼神上下打量了永浩一番,用激将的口吻说道:    “哼,叫你干什么就干什么?对了,你要是有能耐就去把那头牛杀了。”    “杀牛?你是说我要是杀了那头牛,就借给我70块钱?你说话算数?”    “嘿嘿,别说是70块,100块都不成问题。”     “那好,你赶紧把斧子给我拿来。”    永浩往手掌心上吐了吐唾沫。小舅子见永浩一本正经的样子,笑着说:    “算了吧,别逞能啦。我都不行,就凭你那身子骨能行吗?还是算了吧,免得出了什么事让我受罪。”    “你可别小看我这身子骨。想当年我在部队还受到过特训呢。你赶紧把斧子拿来,再给我带二两酒来,然后你就放心等着吃牛肉好了。”    “算了吧,在这节骨眼上你还有闲情喝酒?瞧,斧子就扔在那边,你自己去找吧。哎,我告诉你,出了什么事我可不管啊。”    “哎呀,你放心。别婆婆妈妈的,你就准备好钱等着我好了。”    永浩慢悠悠地向河边走过去。那头拴在大柳树上的大公牛为了摆脱缰绳还在拼命挣扎,眼看那缰绳快要被挣断了。    “哎呀,那不是永浩吗?喂,永浩,你找死啊?别过去,快回来,你这个糊涂虫……”    尽管身后传来老丈人还有其他村民们的叫喊声,可是永浩头也不回,走过去弯下腰拿起斧子。面对眼前的庞然大物,他虽然两腿发软,但是又不想错过好不容易遇到的能弄到钱的机会。    看到永浩一步一步走近,公牛警惕地停止挣扎,低下头喷着粗气,采取了攻击的姿势。永浩心里越发害怕,甚至还打起了寒噤。他心想,这时候要是能喝上二两酒就好了。尽管如此,他并没有退却。70 块钱对他的诱惑太大了。有了那70块钱,他就能够找回自己最后一丝的尊严。    他沉住气,将汗水淋淋的手掌在大腿上擦了擦,捏紧了斧子柄。永浩走到离公牛只有一米远的地方,双手举起斧子正要砸向公牛头部的一刹那,公牛似乎是在取笑他似的,鼻子响亮地哼了一声,双角猛地顶向永浩。事情发生得太突然,公牛采取的几乎是瞬息间的攻击。还没等永浩反应过来,他已经像一段木头似地腾空而起,又重重地坠落在地上。    “哎呀,这下可真出人命了!这可怎么办啊?!”    村民们束手无策,只是站在远处惊慌地大呼小叫。被惹恼的公牛并没就此罢休,猛一甩头把缰绳挣断,然后疯狂地向趴在那里无法动弹的永浩冲过去,又用双角把他顶出10几米开外,还用蹄子在他身上胡乱践踏。    就在这时,突然传来一声震耳欲聋的枪响,公牛随即发出一阵短暂的呻吟,重重地倒在永浩旁边。原来是闻讯赶来的猎人老宋开枪贯通了牛的眼睛。这时候,躲在远处的人们才纷纷围了过来。    永浩浑身血肉模糊,吃力地睁开眼睛看了看倒在身边的公牛,用孱弱的声音说道:    “车钱……”    永浩嘴角上挂着安详的微笑,静静地吐出了最后一口气。  
2    영호의 죽음(단편소설) 댓글:  조회:4118  추천:1  2011-12-04
영호의 죽음 김 견 영호는 군인출신이였다. 그는 참군해서2년만에 영광스럽게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고 제대한후에는 고향인 룡정시 모 향정부에서 공청단 지부서기직을 력임했었다. 그때까지만해도 향정부 행정일군이라 하면 철밥통을 갖춘거나 다름없었고 또 누구 못지 않은 남자다운 인물체격을 갖추고있어 향정부에 들어간지 얼마 안되여 중매군들이 문턱이 닳게 드나들었고 용모가 이쁜 꽃나이의 처녀들이 무시로 추파를 던져오군 하였다. 하여 얼마후 영호는 그중 가장 아련하게 생기고 중등전문학교를 나와 향 세무소에서 출납원사업을 하는 분녀라는 처녀와 결혼하여 이듬해에 귀여운 아들까지 보았는데 부부간의 금슬은 말그대로 깨가 쏟아지게 자르르했다. 그러던 얼마후 아들이 다섯살나던 해부터 분녀가 사업상 일로 연길로 자주 드나들면서부터 끔찍하기만하던 그들 부부간의 사이에 차츰 실금이 가기 시작했다. 분녀가 외박하는 날이 많아짐에 따라 영호의 술주량도 날로 늘어나 술마시고 주정부리는 일들이 많아졌다. 분녀가 세무소 일을 핑게로 연길에 분주히 드나들면서 한국상인인가 뭔가 하는 웬 중년사내와 배가 맞아 돌아간다는 어지러운 소문이 떠돌았던것이다. 분녀가 외박해서 사흘만에 집에 돌어오는걸 기다려 그가 단단히 따지고들었더니 분녀는 이거 생사람 잡는다고 동네방네가 떠나가게 울고불고 하더니 그날 저녁으로 짐을 싸들고 눈물코물 줴짜는 어린 금석이까지 매정하게 떼버려둔채 본가집에 가있는다며 떠난후론 이태가 지나도록 종무소식이였다.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한국상인이라는 작가와 언녕부터 약속을 해놓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중 영호가 그날 저녁 슬마시고 행패를 부렸다는것을 핑게로 얼씨구나 하고 몸을 빼여 한국으로 건너갔다는 말도 있고 또는 위해에서 미장원인지 뭔지 차리고있다는 말도 돌았다. 입에서 입으로 번져지는 말들이라 어느것이라고 딱히 짚기는 어렵지만 처가편에서도 행방을 모른다고 딱 잡아떼는데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로부터 영호의 평온한 생활은 엉망이 되여버렸다. 어린 아들이 자기와 함께 자주 굶게 할수가 없어 부모님들한테 맡겨놓고 영호는 하루하루를 술에 절어보냈다. 그러다보니 자연 사업에도 영향이 많아 차츰 상급의 신임을 잃게 되였고 또 감원이다 뭐다 해서 얼마 못가서 정리실업당하였다. 옆에서 그의 처지를 불쌍히 여겨 여러 모로 보탬도 해주고 조언도 주었지만 그러한 조언들이 먹어들리 만무했다. 영호의 부모님들도 몇번이고 찾아와서 얼리고 닥치고 했어도 막무가내였다. 십전짜리던 이십전짜리던 돈이라는 명색을 띤것이 눈에만 보이기만하면 무작정 집어들고 소매점으로 달려가 술을 사먹었으며 돈이 정 없으면 비위를 무릅쓰고 외상을 달라고 소매점주인을 닥달하군 하였다. 하여 짧디짧은2년사이에 전에 그렇게 듬직하고 삶에 충실하던 영호의 원모습은 오간데 없고 아침나절부터 게슴츠레한 두눈에 희뿌연 머리가 들쑹날쑹하고 때국이 흐르는 누더기같은 옷을 걸치고 술좌석이란 술좌석은 결혼, 환갑, 생일은 물론이요, 강건너 송포수네 집 사냥개가 새끼를 낳았다 해도 어김없이 찾아가 축하의 말을 해주고는 술 한잔이라도 얻어먹고야마는 술귀신으로 타락해버렸다. 하루는 초겨울의 맵짠 추위도 무릅쓰고 어린 아들을 보러 왔다는 핑게를 대고 시골집에 술 얻어먹으러 갔다가 뒤가 부옇게 아버님한테 혼쌀만 얻어먹고 돌아져나오는데 그래도 자식이라고 측은히 생각했던지 로모가 따라나오며 겨울솜옷을 싼 보따리속에 돈10원과 꼬량주 반병을 몰래 감춰가지고 나와 영호 손에 쥐여주며 장탄식을 하였다. 《에그, 에미가 언제까지 네 술시중을 들어줘야 하겠느냐? 이젠 제발 좀 정신을 차리구 살도리를 해야 할게 아니겠냐? 래일은 네 아버지랑 금석이두 데리구 연길에 있는 오라비네 막내 결혼잔치에 다녀올것이니 너 배가 고프거들랑 집에 와서 절로 챙겨먹거라. 찬장에 술두 좀 찌워두구 가겠으니.》 눈굽을 찍으며 돌아서는 로모를 멀건 눈길로 바라보던 영호의 뇌리에는 기발한 생각이 획 떠올랐다. (그렇지, 차비두10원 있겠다. 래일은 연길로 쳐들어가는거다. 오래간만에 연길구경두 할겸 말이야. 꿩먹구 알먹기지, 히히. 가만 있자. 근데 연길에 있는 엄마 오라비네 막내라면 오! 그렇지 용우란 놈이겠구나. 히야, 그 녀석이 벌써 장가를 들다니. 세월 빠르긴 빠르다. 엊그네까지 코물 지지 흘리며 형님, 나 참외 먹구싶다 하던 녀석이 벌써 장가를 들게 됐으니. 그래, 오래 살다보니 네 잔치술두 얻어먹게 되는구나.) 코노래를 흥얼거리며 로모가 찔러준 꼬량주를 입에 털어넣으며 걷노라니 세상이 오늘처럼 평화로울수가 었다. 길 지나다가 한쪽 다리를 힌둥 쳐들고 오줌을 찍 싸대는 동네 똥개도 귀염성스럽게만 보였고 달구지를 끌고 올리막을 톺아오르느라 코김을 킁킁 뿜어내는 둥굴이도 친근하게만 느껴졌고 수탉 한마리가 암탉을 타고앉아 교미하는 모양도 그처럼 재미있을수가 없었다. 이튿날아침, 주린 창자를 달래며 뻐스역에 도착해보니 마침 연길가는 뻐스가 막 시동을 걸고있었다. 냉큼 뻐스에 뛰여올라 자리를 잡고앉으니 뒤좌석에 앉은 안면이 있어보이는 한 청년이 무슨 심심풀이라도 생긴 모양, 장난끼 어린 말투로 물어온다. 《허, 이거 지부서기나리 아니유? 어쩐 일루 이렇게 신새벽에 길을 떠나슈?》 《연길에 좀 볼 일이 있어서…》 《보나마나 또 술 얻어먹을 일이 생긴 모양이구먼.》 《사촌동생이 결혼하다는데 갈 사정이 좀 그렇다는데두 기어코 오라길래…》 《사촌동생이 결혼잔치라. 그럼 가봐야지, 가봐야구말구. 그런데 서기나리는 부조를 얼마나 준비하구 가시는게유?》 《?!》 말문이 막혀 뒤더수기를 긁적이는 영호를 보고 여기저기서 킬킬거렸다. (아참, 그걸 미처 생각못했구나. 아무리 그래도 체면이 사촌형인데 부조야 다문 얼마라도 해야 할게 아닌가. 부조란 워낙 성의를 표시하는거니만큼 단돈5원이라두 성의로 내놓으면 외삼촌두 좋아하실거야. 나머지로는 오는길에 배갈 두냥만 쪽 하면 될게구. 근데 가만 있자. 돌아올 때는 어떻게 한다? 한쪽 차비가3원 넘어하는데 올 때는 무슨 돈으루? 에라, 모르겠다. 사촌네 집에서 어련히 차비를 대주지 않을라구? 이미 표까지 끊었는데 도루 물릴순 없는 일이구, 때가 되면 어떻게 풀리겠지. 이왕 내친 걸음에 연길구경 한번 하는 셈치구. 가만 있자, 이번 연길행이 몇해만이던가. 아마 사오년은 될걸. 히야, 그동안에 연길두 많이 변했겠구나…) 인간의 도리를 한다는게 영호에게는 이미 낯선 일이지만 이날만은 어쩐 일로 사촌이라는 명분을 지킬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연길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린 영호는 그동안 너무나 변모한 도시의 모습에 어디가 어딘지를 분간할수가 없었다. 얼마동안 못봤던가? 영호가 아들 첫돌사진을 찍는다며 안해와 함께 왔던가? 그때는 둥둥 뜬 기분에 아기자기 서로 자기가 아이를 안겠다고 달콤한 싱갱이질 하면서 왔던 기억이 났다. 순간 영호의 가슴에 짜릿한 아픔이 일었다. 이젠 다시 기억하고프지 않는 옛일이다. 지금까지 그냥 자신을 기억하지 않고 몸과 마음을 마비시키며 하루하루를 보낼뿐인데 왜 갑자기 기억의 보따리가 풀어질가! 길손 하나 붙들고 옛날 외삼촌에가 살던 동네 이름을 기억하는대로 떠듬떠듬 들려주며 길을 물어 겨우 찾아간 외삼촌네 집에 커다란 자물쇠가 걸려있었다. 영호는 정신없이 양철판을 씌운 대문을 두들겨댔다. 혹시 안에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루의 희망을 품고. 《누구세요?》 거의 절망적으로 하늘을 퀭하니 쳐다보고 섰는데 옆집에서 요란하게 문두드리는 소리에 놀랐는지 늙수그레한 아낙네가 문을 빠끔히 열고 내다보며 조심히 물어온다. 《아주머니, 이 집이 리학수라구 하는, 거 림업국에 다니던 그 분에 집 맞지유?》 영호는 두손을 맞잡고 공손히 모든 희망을 그 아낙네의 대답 한마디에 건채 마음을 조이고있었다. 《맞는데유. 근데 어떻게 되는 분인지?》 《그분 조카되는 사람인데요. 저기 막내아들이 오늘 결혼한다 하길래…》 《그 집에서 다 결혼식장에 나갔겠는걸유.》 《아니, 결혼식장이라니. 그럼 집에서 결혼식하는게 아니구 다른데 가서…》 《그럼 손님은 결혼식장이 어딘지 모르고 오셨단 말씀이슈?》 영호는 게면쩍게 웃으며 뒤더수기를 긁적이였다. 《결혼식장을 아마 저 신라호텔인가 어디에다 잡았다는가 하던데유.》 《예? 신라호텔?》 《시골서 오신 분 같구먼유. 저 이 길루 쭉 나가서 큰길에 가면 뻐스정류소가 있는데유. 거기서2선 뻐스를 타면 신라호텔에 갈거유.》 영호는 머리가 땅에 닿도록 연신 허리를 굽석이며 물러섰다. 영호는 신이 잔뜩 나서 막 날것만 같은 기분이였다. 이제 조금만 지나면 영화에서나 보아오던 어마어마한 결혼식장에 자기가 척 귀빈대접을 받으며 들어설걸 생각하니 온몸이 붕 뜬 기분이였다. 2선 뻐스를 잡아타고 차비40전을 물고나니 이젠 부조돈밖에 남지 않았다. 승무원처녀가 귀찮아할 지경으로 거듭거듭 신라호텔을 지나치지 않았나 하고 묻고 또 물으며 네댓정거장 지나니 과연 신라호텔에 이르렀다. 어데로 들어가면 좋을지 몰라 두리번두리번거리는데 길 저편에 외삼촌과 숙모가 손님들을 맞아들이느라 바삐 돌아치는 모습이 멀찌감치 보였다. 영호는 단숨에 큰길을 뛰여건너 다짜고짜로 외삼촌을 얼싸안고 돌아갔다. 《어엉?! 이게 누구야, 이 눔 영호 아니냐? 네눔이 어떻게 여기까지? 이거 좀 내려놔! 망신스럽게 이게 뭐야?》 영호의 당돌한 출현에 기겁초풍할듯이 놀란 외삼촌 내외는 당황하여 어쩔바를 몰라했다. 귀빈들이 한창 막 들이닥치는 판국에 중뿔나게 청하지도 않은 불청객이 불쑥 나타났으니 그럴만도 했을것이다. 《삼촌, 그동안 잘들 보내셨수? 외숙 모두 그냥 깨깟하시구유?》 멍해서 어쩔바를 모르는 외삼촌내외를 번갈아보며 영호는 자기가 너무 반가와 그러는줄 알고 입도 못다물고 흐물거리고있었다. 《어서 저리 비켜섰거라. 사돈들이 들이닥치는가보다. 나 원, 지지 부탁했는데 쯧쯧…》 외삼촌이 신경질적으로 영호를 한켠으로 밀쳐내고는 옷깃을 여미며 만면에 웃음을 짓고 손님들을 맞아나갔다. 외숙모도 흰자위만 잔뜩 남은 눈으로 영호를 흘기며 뭐라고 통통 부은 소리를 하더니 인차 만면에 웃음을 떠올리며 사돈들을 맞았다. 어정쩡하게 한켠으로 떠밀려난 영호는 좀 머쓱해지긴 했지만 외삼촌내외가 바삐 돌아치는 모습들을 보고있노라니 너무 분주하다보면 나같은 가까운 친척들도 미처 돌볼 사이가 없어서 그러겠지 하고 마음을 너그럽게 먹고 한켠에 비켜선채 문켠으로 몰려오는 손님들을 보고 누구라없이 굽석거리며 반가운양 제법 주인행세를 했다. 새각시 온다. 오구작작 떠들어대는 쪽을 바라보니 까마반지르한 승용차가 스르륵 다가와 서는데 차체앞에 달린 금빛 동그라미안에 사람 인자가 박힌 멋진 상표가 눈을 끌었다. 이윽고 차문이 열리고 멋진 례복차림을 한 신랑 용우가 성큼 내려섰다. 몇해 못본 동안 키도 훤칠하게 컸고 인물도 희멀끔하게 잘 번져있었다. 눈처럼 하얀 드레스를 입은 새색시가 수태를 머금은채 머리를 잔뜩 수그리고 조심조심 차에서 내리자 신랑 용우가 새색시를 번쩍 안아들고 이쪽으로 걸어온다. 영호가 구경군들 틈을 비집고 나오며 손벽까지 쩍쩍 쳐대자 이쪽을 힐끗 건너보던 신랑이 못볼것을 본것처럼 대번에 눈살이 꼿꼿해가지고 휭하니 들어가버린다. (허허, 이젠 제 형두 몰라보는 모양이군, 허참.) 영호는 맹랑하듯 입맛을 쩝쩝 다시더니 그것도 잠시뿐 이내 벌씬벌씬 웃으며 래빈들 뒤를 늘쩡늘쩡 따라갔다. 여유만만하게 출입문께로 다가가니 이건 또 뭐냐? 들어가는 사람마다 입구 량켠에 보초병처럼 갈라서서 허리를 갑삭거리며 반갑게 맞아주는 외삼촌과 외숙모에게 하얀 봉투들을 하나씩 쥐여주는것이 아닌가. 또 그옆에는 테블 하나를 놓고 젊은 사람이 앉아서 손님들이 내놓는 돈을 받아넣고 종이에 이름을 적고있었다. (가만 있자. 보아하니 여기서는 부조란걸 저렇게 봉투에 넣어서 주는가부다>) 나름대로 짐작하며 영호는 앞사람들이 하는 거동을 좀 더 지켜보기로 하고 일단 걸음을 멈췄다. 그런데 영호앞에서 걸어가던 이마에 피도 안말라보이는 새파랗게 젊은 놈이 백원짜리 석장을 두툼한 지갑에서 쑥 뽑아내여 외삼촌에게 준다. 외삼촌이 침방울까지 튕기며 연신 차사를 하더니 돈을 넙적 받아서 미리 들고있던 가방안에 쓱 밀어넣고는 다음 손님을 기다린다. (히야! 시내놈들이 어벌두 크긴 크구나.) 눈이 뒤집혀질 지경으로 놀란 영호는 혀를 홰홰 내두르며 저도 모르게 엉거주춤 물러서서 부시럭부시럭 호주머니들을 뒤졌다. 온몸을 다 뒤져봤자 단돈6원밖에 없다는걸 모른는바가 아니지만 그래도 열심히 뒤지고 또 뒤져 웃옷호주머니부터 양말목까지 샅샅이 뒤져봤으나 나오는건 먼지뿐이라 체념하는수밖에 없었다. (에라,나같은 가까운 친척들이야 뭐 부조를 안한단들 탓할라구, 뭐 단돈5원이라두 성의만 표시하면 그만이지.) 영호는 마음을 다잡고나서 성큼성큼 출입문께로 걸어가서 걸어가서 꼬깃꼬깃한5원짜리 지페를 쪽 펴서 두손으로 정중하게 외삼촌한테 내밀며 말했다. 차비야 외삼촌네 어련히 주지 않으랴만 혹시나 해서1원은 남겨두기로 했다. 《에헤, 이거 약소하지만 성의루 받아주시우.》 기가 막혔는지 입을 딱 벌린채 서로들 쳐다보고만 있더니 한참만에 외삼촌의 추상같은 불호령이 떨어졌다. 《에끼, 이 놈. 예가 어디라구 이따위루 장난을 치는게냐? 얼른 썩 물러나지 못할고.》 그통에 영호도 그만 어리벙벙한 눈을 머룩거리며 외삼촌네 내외와 손에 든5원짜리를 번갈아보기만할뿐이다. 아무래도 외삼촌이 성내는 까닭을 모르겠다는것이다. 한참만에 외삼촌이 좀 과분했다싶었던지 뒤에 대고 누군가를 부르더니 아직 노기가 덜 가신 어조로 말한다. 《이놈아, 우리가 아무리 구차하기루 너같은 놈의 부조는 안받구두 넉넉히 산다. 덜돼먹은 수작을 하지 말고 얼른 애를 따라 들어가서 아무거나 얻어먹구 얼른 떠나거라.》 그리고는 부름을 받고 나온 한복차림의 젊은 각시에게 여차여차하라고 나지막이 분부한다. 하지만 영호는 그래도 호주머니에 돈이 있는 한 인사치례를 하는 사람이다. 이 몇해는 호주머니사정이 안좋아서 술비렁뱅이가 돼버렸지만서도 그 한오리의 량심은 있엇다. 그래서 기어이 그 돈5원을 테블앞에 앉아있는 청년한테 쑥 내밀어주고는 의아해하는 청년의 표정은 관계하지 않고 입이 함박만해져서 한복차림을 곱게 한 외삼촌네 둘째며느리일듯싶은 젊은 각시의 뒤를 따라들어가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외삼촌네 내외에 대한 치사를 해댔다. 영호가 안내된 곳은 례식장 맞은편에 있는 어둑시그레한 숙직실 비슷한 단간방이였다. 젊은 각시는 례식장쪽을 흘끔거리는 영호에게 눈을 샐쭉 흘기고는 어디론가 갔다가 한참만에 꼬량주 서너량 담긴 술병에 큼직한 사발 두개에 뭐가 뭔지 모르게 마구 엇섞여진 안주들과 증편 서너개를 얹어왔다. 술상을 갖춰왔다고 반색하던 영호의 얼굴에도 다소 그늘이 비꼈다. 젊은 각시는 영호에게 입을 삐죽거리고는 치마폭에 바람을 일구며 사라졌다. 너저분한 술상에 좀 고까운 생각은 없지 않았지만 그런대로 술 몇냥이 오른것만도 다행이였다. 넙죽 다가앉아 술마개를 열었다. 알콜이 식도를 타고 쭉 내리꿰니 세상 살 때를 만난것 같았다. 안주도 이것저것 뒤집어보니 고사리와 콩나물인줄로만 알았던 그속에 그래도 고기 몇점은 들어있어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 잠간새에 술병을 다 비우고나니 너무 급히 마셨구나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어 술을 좀 더 얻어올 요량으로 엉금엉금 나와보니 례식장에선 한창 결혼의식이 진행되고있었다. 두리번두리번 안면있는 사람들을 찾아보다가 에크, 눈살을 잔뜩 찌프린 아버지의 눈길과 마주쳤다. 어물쩍 찡긋 웃어보이고는 그 눈길을 피해 한쪽 구석으로 숨어들어 사람들 틈새에 비집고 들어앉았다. 초라한 행색에 술내를 풍기는 영호의 출현에 사람들이 열병환자를 피하듯 상을 찡그리며 멀지감치 피해섰다. 영호는 그 사람들이 자기한테 자리를 양보하느라고 그러는줄 알았던지 갖은 친절을 다 베푸며 누구라없이 벌쭉벌쭉 웃어주고는 상 맞은편에 앉은 중년사나이를 보고 너스레를 떤다. 《용우, 저 녀석이 조꼬만할 때 손목을 끌구다니면서 참외도둑질이랑 해서 줴주문 그저 좋아서 팔짝팔짝 뛰더니만 어이구 이젠 다 커서 장가를 다 가잼둥. 히야, 빠른게 세월이꾸마.》 점잖아보이는 그 사나이는 체면상 영호를 전혀 무시해버리기는 좀 안됐던지 인사치례로 응대한다. 《그럼 용우하고는…》 《저는 용우 색시 삼촌되는 사람이올시다.》 《그럼 사돈이 되겠구먼, 이거 정말 반갑습꾸마.》 영호의 과분한 친절에 그 사나이는 다소 면구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영호야, 여기가 어디라구 예까지 와서 추물거리는게냐? 사돈어른들 앞에서 무례하게스리.》 노기엄엄한 소리에 머리를 뒤틀고 쳐다보니 아버지가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노려보고있었고 그옆에는 영호보다 한살 손아래인 용우의 맏형 용철이가 찌그러진 얼굴을 하고있었다. 영호는 아버지의 노한 얼굴을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일어섰다. 영호 아버지는 다시금 피발선 눈길로 영호를 쏘아보더니 다짜고짜로 영호 어깨죽지를 잡아채고 손님들 틈에서 끌어내였다. 영호는 질질 끌리다싶이 하면서도 사돈어른께 히죽 웃으며 작별인사를 하는걸 잊지 않았다. 《그럼, 이만 실례. 후에 다시 보깁소.》 《이 놈이 어떻게 알구 여기까지 따라와서는 애를 먹이누? 에익.》 영호를 문어귀까지 끌고나온 아버지가 영호를 밀쳐버리며 분이 상투끝까지 올라 씩씩거리고있었다. 곁에서 량볼을 고무풍선처럼 잔뜩 불궈갖고 영호를 노려보던 용철이도 한마디 뚱겨준다. 《술이랑 얻어먹었으문 곱도록 돌아갈것이지, 이게 무슨 망신꼴이란 말이요?》 아버지와 용철이가 그토록 성내는 리유를 딱히 알순 없었지만 영호는 그만 주눅이 들어 얼음강판에 자빠진 소처럼 눈만 뒤룩뒤룩 굴리고 섰다. 《제수, 그러구있지 말구 얼른 이 사람을 보내주구 오우.》 영철이가 저편에 서있는 아까 영호를 안내하던 그 젊은 각시를 보고 하는 말이다. 젊은 각시는 입이 한발이나 나와가지고는 홱 돌아져 저만치 앞서나간다. 《자식아, 멀쩡하게 서있지 말구 얼른 따라나가. 에이구, 세상에 쯧쯧…》 아버지가 영호의 등을 떠밀어보내고는 이마살을 찌프린채 백발이 성성한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선다. 자기가 꼭 이 자리를 떠야만하는 리유를 잘은 모르겠으나 아버지가 저렇게 노하시는데는 필유곡절이리라 짐작하며 영호는 아쉬운대로 문을 밀고나왔다. 밖에서는 이미 젊은 각시가 빨간 승용차를 대기시켜놓고 껌을 쩝쩝 소리나게 씹으며 있었다. 《이거 덕분에 오늘은 승용차까지 타게 되는가보다. 헤헤…》 영호가 입이 헤벌쭉해서 다가가니 젊은 각시가 차문까지 열어준다. 너무 황송하여 굽신거리며 연신 치사를 해주며 차에 올라탔다. 《쑹타 또 커원짠.(려객운수역까지 태워주세요)》 말과 함께 차문이 쾅 닫히고 각시가 휭하니 돌아져 들어간다. 영호는 돌아져가는 젊은 각시한테 보지도 않는 손짓인사를 하며 고마운 마음을 금하지 못했다. 차가 소리도 고르롭게 스스륵 하고 미끌어져나갔다. 영호는 입을 헤벌린채 폭신폭신한 의자에서 엉뎅이를 들썩여도 보고 차창밖으로 언뜻언뜻 스쳐지나는 도시의 풍경에 감탄을 련발했다. 십분남짓이 달리니 차가 아까 연길에 도착할 때의 그 운수역에 닿았다. 요행 문고리를 찾아 열고 영화에서 본대로 폼까지 잡으며 척 내려서는데 뒤여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온다. 《게이챈나(돈을 줘야지)!》 《썬머 챈(무슨 돈)?》 영호의 뻔뻔스런 질문에 기사는 어이가 없다는듯 뻥긋 웃더니 거칠게 나온다. 《니 쭤처 뿌게이챈나(당신은 차타구 돈 안줄 작정이요)?》 《쩐머, 챈 타 메이게이마(그 녀자가 돈 안줬어요)?》 《쎄이 게이라(누가 줬게)?》 (하, 이런 기막힌 일이라구야, 아니 그럼 그 각시가 차만 불러놓구 차비두 안줬단 말인가? 이거 참 미쳐버릴 일이군.) 상고머리를 긁적거리며 입만 하―벌리고있는 영호를 보고 기사가 시간이 급하다고 독촉했다. 《호우바(네, 좋아요).》 영호는 그제야 서둘러 호주머니를 뒤졌다. 요행 아까 부조하고 나머지1원짜리가 손에 잡혔다. 한시름 활 놓으며 불쑥 들이밀었다. 꼬깃꼿한1원짜리를 받아펴보던 기사의 얼굴이 험상궂게 일그러지더니 침방울과 함께 욕설이 터져나온다. 《니타마디 쏴 런나(제길, 사람 놀리구있는거야)?》 돈을 주고도 오히려 욕만 얻어먹은 영호도 눈이 떼꾼해졌다. 《칸, 쩌이거(여길 봐?!》 기사가 가리키는 네모번듯한 전자시계같은것을 들여다보니 빨간 글자로6:20이라는 수자가 적혀있었다. 《쩌쓰 썬머(이건 뭐요)?》 《류콰이 얼아(륙원 이십전이란 말이야)》 영호는 입을 딱 벌린채 하늘만 펀들펀들 쳐다보고있었다. (아니, 집에서 연길까지 그 먼 길을 와두3원60전밖에 안하는데 고작 십분이나 되나마나하게 온 거리를6원 넘어 내란 말인가? 시내놈들은 다 도적놈이야 뭐야, 근데 그 각시두 그렇지, 돈두 없는 사람을 무작정 태워보내고는 나더러 어떻게 하란 말이야. 근데 가만 있자, 내가 여기는 왜 왔노? 뻐스표 살 돈두 없어가지구 여기 와서는 뭘 한단 말이야? 이거 정말 환장할 일이지.) 기사가 또 투박한 소리로 재촉하자 영호도 버럭 성내며 소리질렀다. 《워 메이챈 쩐머빤(돈 없는걸 어덕하란 말이요)?》 기사가 너무 어이가 없어 웃고잇다가 뭐라고 욕설을 퍼부어댔으나 영호는 머리만 쥐여뜯고있었다. (가만 있자, 이 차를 타구 그냥 집까지 앉아가면 될것 아닌가? 손바닥만한 향내에서 까짓 차비 몇푼 못얻어낼려구, 내가 누군데. 과거에 그래도 단지부서기로 있으며 우쭐하던 최영호가 아니냐? 바로 그거다. 이 차를 타고 돌아가는거다. 요렇게 간단한 일을 가지구 골치를 앓구 쳇.) 영호는 벙긋 웃으며 차문을 도로 열고 들어가앉으며 가사에게 말했다. 《쩌우바(갑시다)!》 《쌍 나(어디루)?》 《룽징××쌍(룡정 모향).》 잔뜩이나 큰 기사의 눈이 하마 눈처럼 툭 불거져나왔다. 단돈 6원도 없는 주제에 거기까지 가선 뭘 어쩌자고 하는건가 하는 눈치다. 영호는 가슴을 탕탕 치며 돈을1전도 곯지 않게 준다며 향내에서 자기 이름만 대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둥 하고 자기 자랑도 실컷 늘여놓았다. 기사는 그래도 미타한지 영호를 가늠해보며 거기까지 가면 돈 액수가 많이 나올 텐데 하고 말하니 영호는 손을 홰홰 내저으며 아무 걱정 말구 가자고 졸랐다. 영호의 그 자신만만한 태도에 어느 정도 믿음이 갔는지 기사는 마침내 차에 시동을 걸었다. 난생처음 택시라는걸 타보는 영호인데다가 그것도 혼자서 연길에서 집까지 쭉 타고 가는 판이라 세상 오래 살다보니 이런 호강을 할 때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히물히물 웃음만 떠올렸다. 비록 술이나 기껏 얻어먹을 요량으로 왔다가 푸대접 받고 쫓겨가는 신세가 되여 섭섭한 생각도 들고 또 그 젊은 각시의 실수로 예상밖으로 택시기사와 불쾌한 일도 있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그렇게 좋을수가 없었다. (쳇, 전 향내에 이렇게 택시를 타구 연길로 들락날락하는 놈 있으면 나와보라 하라. 그래도 이 최영호 내놓고는 아마 없을걸. 흐흐. 휘파람을 불며 가자 어서야 가자, 송아지가 엄마 찾는 언덕을 넘어―) 《워이, 유메이유 인웨야(여보, 노래같은거 없어요)?》 기사는 반사경으로 영호를 흘끔 들여다보더니 피씩 웃어주며 음악을 틀어놓는다. 흘러나오는 노래가 비록 앵앵거리는 한족노래였지만 영호는 그런대로 듣기가 좋았다. 《워이, 씽이씽(어이, 일어나게).》 요람속처럼 따스하고 차체의 흔들림이 고르로운김에 코를 골던 영호는 기사가 어깨를 잡아흔드는 바람에 단잠에서 깨였다. 두눈을 비비며 부시시 일어나보니 어? 이거 벌써 다 왔잖은가. (하품을 짝―하고 먼저 부모들이 사는 동네로 차를 몰게 해놓고 영호는 다시 머리를 쥐여뜯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거 집에 오면 문제없다고 큰소리를 탕탕 쳐놓긴 했는데 아버지가 알면 또 무슨 큰일 날라구? 안돼, 안돼. 거긴 갈수 없어.) 기사가 짜증스레 뭐라고 중얼거리며 차머리를 돌려 향소재지로 몰아갔다. (먼저 차령감네 소매점에나 들려볼가? 그 령감이 좀 좀스러운데는 있지만 그래두 인정은 있는 령감이라서 비난사정을 하면 아마 도와줄지도 몰라.) 영호는 차를 차령감네 소매점 문앞에 세우게 하고는 얼만가 물었다. 《뿌둬, 류쓰우(많잖아요. 륙십오원이요).》 영호는 불에 덴 노루처럼 펄쩍 두디다가 이내 속구구를 하며 탄식을 내뿜었다. (이거야 정말 큰일 났네. 내가 오늘 어쩌자구 이렇게 어벌이 크게 놀았나? 시내안에서 겨우10분동안 타구두6원 넘어 나오는데 거기서부터 쭉 타고 왔으니 어림짐작 그만큼 되구말구. 그나저나 그 많은 돈을 어떻게? 좌우간…) 영호는 기사에게 잠시만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는 용기를 내여 소매점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딸랑, 하는 문방울소리에 키가 작달막하고 머리를 빡빡 깎아버린 중머리 차령감이 안방에서 나오다가 영호가 이죽거리며 서있는걸 보고는 또 외상술 마시러 온줄로 알았는지 에험 하고 헛기침을 하고는 매대우에 손을 얹은채 손가락으로 매대유리를 토닥거리며 먼 산만 바라보고 섰다. 《헤헤, 무고함둥? 저 무탁할 일이 좀 있어서…》 《오늘은 마수거리도 못해서 외상줄 술이 없수. 다른데나 가보슈, 에험.》 차령감은 빤질빤질한 중머리를 어루쓸며 등을 돌려 안방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아바이, 오늘 술이 문제가 아니구 지금 막 급한 사정이 있어서…》 차령감이 급한 사정이란 말에 다시 뜨아한 눈길로 영호를 돌아보며 뜨직이 묻는다. 《급한 사정이란게 뭐유? 어데 가서 금석이 에미라두 찾아왔나?》 차령감의 조롱섞인 말투에는 신경도 안쓰이는듯 영호는 다시 변명한다. 《그게 아니구. 사실은 연길에 갔다가 차비가 없어서 그만 택시를 그대루 잡아타구 왔는데…》 《뭐? 뭐라구? 택시를 타구 연길에서부터 왔단 얘긴가? 나 참기가 막혀, 이 치가 지금 온전한 정신으루 여기 와있는게야?》 영호가 두손을 모아쥐고 사정얘기를 하건말건 들을념도 않고 차령감은 매몰차게 영호를 문밖까지 떠밀어내보냈다. 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거칠게 닫히고 안에서 찰칵, 하고 문고리 거는 소리가 들려왔다. 말 몇마디 못해보고 욕만 얻어먹고 쫓겨난 영호는 입을 헤벌리고 소매점이라고 쓴 간판만 쳐다보고있었다. 뛰―하는 경적소리가 등뒤에서 울려서야 영호는 흠칫 몸을 돌려 차안에 들어가앉았다. 《쩐머양라(어떻게 됐수?)》 짜증어린 물음소리에 영호는 어물어물하닥 어줍게 웃으며 버릇처럼 두손을 마주 비비며 말한다. 《뚜이부치(저, 미안한테)…》 《또디 싱부싱아? 타마디(도대체 되는거요, 안되는거요? 제길).》 다짜고짜 욕설부터 튀여나오는 기사를 우두커니 마주보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밸이 벌컥 났다. (자식이 까짓 돈6원때문에 내가 오늘 이 지경이 된게 아니야?) 《씽, 쪼우(돼요, 갑시다)!》 영호가 맞다드는 기세에 좀 누그러든 기사는 그래도 뭐라고 씨부렁거리며 영호의 지시대로 차를 몰아갔다. (옛날 당당했던 단지부서기가 그래 돈 몇십원을 못얻어낼라구? 자식이 사람을 보기로는 어디로 보나. 그렇지, 저 향정부옆에 달래식당에나 가보자. 저기 가면 그래두 무던한 장과부두 있구, 또 전에 나를 그렇게 따르던 상옥이두 있을게구. 틀림없을거야. 쳇, 언녕부터 저기나 갔어야 할걸 괜히 재수없이 번대머리 차령감한테 욕사발이나 잔뜩 얻어먹구. 그 령감 사람을 무시해두 분수있지. 두구봐라, 다시는 소매점으로 술 먹으러 안간다. 안가. 외상준다면 몰라도.) 달래식당문앞에 난데없는 택시가 스르륵 멈춰서자 무슨 귀한 손님이나 온줄 알았는지 식당문이 펄럭 열리더니 분을 뽀얗게 쳐바른 장과부가 비만한 몸집을 뒤뚱거리며 마주나온다. 그뒤로 복무원인 상옥이가 호기심 어린 눈길로 내다보고있었다. 영호가 차문을 열고 내려서며 벙글써 웃어보이자 나오던 정과부가 처름엔 입을 딱 벌리고 멍하니 바라보더니 이내 쓴외 보듯 외면하며 빈정거린다. 《아이구, 오늘은 어쩐 일루 이렇게 단서기량반이 하아야까지 척타구 이렇게…》 《헤헤, 그런 사정이 있어서. 저기 안에 들어가서 좀 얘기하깁소.》 영호는 자기 집 나들듯 문을 밀고 들어서며 문가에 서있는 상옥이와도 히쭉 웃어보이며 알은체를 했다. 식당안에는 술상이 두상 벌려놓았는데 얼핏 보니 모두가 얼마전까지만해도 영호와 부어라 마셔라 하며 극진하게 보내던 같은 또래들이였건만 영호의 출현에는 시치미를 딱 뗀채 곁눈 한번 팔지 않고 잔들을 기울인다. 이왕 같으면 비위를 무릅쓰고 언녕 술상에 끼여앉아 한잔이라도 얻어먹고야말 영호건만 오늘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는 장과부를 한쪽 구석으로 끌고가 두손을 마주 비비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주마이, 오늘 좀 급한 사정이 있어서 그러는데 돈 칠십원만 딱 꿔줄수 없겠습둥? 내 래일이면 꼭 갚아드릴게.》 《뭐? 뭐야? 돈 칠십원? 어이구, 난 또 뭐 외상술이나 얻어먹을려구 온줄 알았더니 참 기가 막혀. 글쎄 내게 무슨 돈이 흔해빠졌다구 거기를 다 꿔주겠수? 어이구 이봐요, 무슨 렴치에 나보구 그런 소릴 하는거유? 응? 술을 외상으로 준것만도 얼만데 갚을 생각은 안하구 오히려 나더러 돈달라는거유? 별꼴 다 보겠네. 어서 나가유. 손님들 술맛 다 떨어지겠어유.》 영호는 말 몇마디 할 겨를도 없이 장과부에게 퉁을 맡자 행여 술좌석에라도 가서 좀 빌붙어볼가 하고 그쪽으로 발길을 옮기려는데 무작정 등을 떠미는 장과부의 등살에 못이겨 문켠까지 밀려났다. 상옥이가 저만치서 술병을 나르는것이 보이자 영호는 문설주를 붙잡고 기를 쓰고 버티며 머리를 뒤틀어 상옥이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로 애원하였다. 《상옥이, 나 좀…》 《별 부실한 사람 다 보겠다. 남의 녀편네 이름이 뭐 아무나 함부로 부르는 이름인줄 아는 모양이지 흥!》 상옥이의 너무나 쌀쌀한 태도에 잠시 추줌해버리는 사이에 장과부가 콱 밀치는 바람에 영호는 문턱에 발이 걸려 힌둥 나동그라지고말았다. 다쳐서 얼얼한 팔굽을 문지르며 퍼더버리고앉아 한숨만 풀풀 내쉬는데 기사가 다가오더니 눈을 부라리며 떡 버티고 선다. 영호도 이젠 완전히 주눅이 들어가지고 상대를 쳐다볼념도 못하고 어물거리자 기사는 손바닥으로 자기 이마를 소리나게 탁 치더니 뭐라고 욕설을 퍼부으며 식당문을 밀고 들어간다. 식당안에서 장과부와 기사간에 한창 싱갱이질이 벌어지는것 같더니 장과부의 서툰 한어말소리가 들려나온다. 잇따라 식당안에서 와그르르 웃음소리가 터져나오고 택시기사가 씽하니 달려나오더니 다짜고짜로 그때까지 땅바닥에 멍하니 퍼더버리고 앉아있는 영호의 멱살을 잡아일으켜 불끈 쥔 주먹을 영호의 면상에 들이대며 씩씩거린다. 영호는 돌림병 걸린 닭처럼 목을 잔뜩 늘여뜨린채 나 죽여줍시사 하고 가만히 들이대고만 있을뿐이다. (차라리 터지게 얻어맞아서 택시값이라도 면할수 있었으면 오죽 좋겠냐.) 기사가 무슨 생각에선지 영호를 놓아주며 차에 타라고 한다. 차가 움직이니 동네조무래기들이 우르르 차뒤를 따라 뛰여오며 소리를 질러댄다. 《주정뱅이 영호! 각시 떼운 주정배!》 (각시 떼운 주정배? 맞아. 그렇지 이제 생각난다. 처가편에 가볼걸 그랬구나. 그래도 한때 사위고 손자를 봐서라두 까짓 돈 몇십원 안꿔줄라구.) 영호는 금방 돈을 다 얻기라도 한듯 무릎까지 철썩 갈기며 기사에게 여차여차하게 가라고 길을 일러주었다. 거기 가면 향내에서는 둘찌가라면 섭섭할만큼 뜨르르하게 사는 장인네 집이 있다고 거기 가면 문제없다고 설명을 거듭하였다. 그 말에 오만상을 찌프리고 씩씩거리던 기사의 안색이 조금 풀리는가싶더니 그래도 시름이 덜 놓이는지 재차 다짐을 둔다. 이번까지 헛걸음하면 아예 연길까지 도로 끌고가서 한바탕 패주고 감옥밥을 먹게 하겠다고. 영호는 여우있게 너털웃음까지 쳐가며 호언장담을 하고는 제법 휘파람까지 불어댔다. 울퉁불퉁한 모래길을 따라 한참 기다가 검푸른 강물이 사품치는 다리를 건너 처가마을로 향한 달구지길에 막 들어서려는 때였다. 저쪽 버들방천에서 사람들이 한무리 웅기중기 모여있다가 웬 일인지 우야 하고 뿔뿔이 흩어져달아나는것이 보였는데 눈여겨보니 거기에는 장인과 처남도 끼여있는듯했다. 길옆까지 뛰여나와 헐떡거리며 서있는 처남곁에 차를 세우고 내려서 무슨 일인가 하고 물으니 어릴 때 눈병을 앓아 술병밑굽만큼 두터운 안경을 건 처남이 간신히 영호를 알아보고는 볼부은 소리로 말했다. 《소를 잡는다는게 그만 헛매를 치는 바람에 소가 놀라서 아주 미쳐날뛴단 말이요. 게다가 고삐두 대강 매놔서 고삐가 풀리는 날이면 무슨 난판이 벌어지겠는지. 근데 여기는 어쩐 일루?》 처남이 곁사람 보기에도 어지름증이 나게 도수가 높은 안경알을 희번뜩거리며 택시와 영호를 번갈아보며 건성으로 물었다. 《실은 돈을 좀 꿀가 해서 왔는데. 처남 한70원만 어떻게, 헤헤…》 《뭐유? 70원? 거 참, 비위두 좋수다. 이 복새판에…》 깜짝 놀라 미끌어져내려오는 안경을 추슬려올리며 처남은 멀찌감치 피해가려 한다. 《무슨 일이든 좋으니까 시키기만하면 다할테니, 제발…》 옷소매를 부여잡고 간절하게 애원하는 영호를 처남이 두꺼운 안경알너머로 가늠해보더니 랭소를 머금으며 비아냥거린다. 《무슨 일이든 시키기만하라구? 거 어디 재간있으문 저 소나 한번 잡아보시지.》 《그 말 정말이유? 저 소만 잡으면 내게 돈70원을 꿔주겠다 그 말이지?》 《70원이 아니라100원이라두 문제없소.》 《처남, 그냥 해본 소린 아니겠지?》 《그럼.》 《좋아, 도끼를 가져오라구.》 영호는 웃옷을 벗어내치고는 손바닥에 침을 퉤퉤 뱉으며 도끼를 어서 달라고 성화다. 처남이 영호가 하는 꼴을 쳐다보고있다가 시무룩이 웃으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되지두 않을거 덤벼들지나 마슈. 나도 안되는데 괜히 사고를 쳤다가 우리만 욕먹이지 말구.》 《내 이래봐두 깡단이 있다구. 요만한 일은 히쭉 웃고 해버린다니까. 자, 도끼하구 술이나 두냥 있으면 가져와. 그리구 잠자코 구경만하고있으라구.》 《아니, 이 복새판에 무슨 놈의 술이요? 한시가 급한데. 도끼는 저앞에다 팽개치고 왔으니까 절루 찾아보슈. 그리구 무슨 사고가 생겨두 절대 나하군 상관없으니까 그리 아슈.》 《그래 알았어, 좀스럽긴 까짓거, 거 약속이나 잊지 말라구.》 영호는 어정어정 버들방천으로 다가갔다. 거기에는 거뭇거뭇한 털빛의 둥굴소가 버드나무에 매인채 고삐에서 벗어날려고 용을 쓰고있었는데 어찌나 날쳐대는지 버드나무에 대강 얽어매놓은 고삐매듭이 거의다 풀리고있었다. 《저 놈이 죽구싶어 환장했나? 야! 영호, 그러다 큰일 칠라. 이 미련한 놈같으니…》 멀찌감치서 장인과 동네 어른들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영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슬금슬금 도끼를 주으러 다가갔다. 요행 돈 얻어낼 구멍수가 생겼는데 이대로 물러설수는 없는 일이다. 이 기회마저 놓친다면 정말 감옥밥 먹게 될지도 모른다. 영호가 접근해오는것을 알아차린 둥굴소가 버둥질을 잠시 멈추고 앞발을 떡 버티고 서서 두뿔을 곤두세운 대가리를 잔뜩 수그린채 공격태세를 취했다. 그 기세에 영호는 두다리가 후들후들 떨려나고 등골이 오싹해났다. 이때 술 몇모금이라도 마신다면 할것 같은데 고놈의 술이 정말 원쑤다. 그러나 영호는 물러설수 없었다. 그 돈이 대단한 유혹을 주었다. 그 돈이면 그래도 영호라는 이 인간은 지금까지 구겨지고 구겨진 최후의 자존심을 세울수 있다. 영호는 마음을 다잡고 진땀이 흥건히 배인 두손바닥을 바지무릎에 쓱쓱 문지르고는 도끼를 거머쥐였다. 둥굴소와의 거리가1메터 정도 남았을 때다. 영호가 에익 소리를 지르며 도끼를 번쩍 들어 도끼등으로 둥굴소의 이마빡을 내리치려는 순간 둥굴소가 영호를 비웃듯 킁―하고 코김을 내뿜더니 두뿔로 영호를 떠버렸다. 눈깜짝 새에 벌어진 일이라 영호는 미처 어쩔 새없이 붕 떠올랐다가 거꾸로 내리꼰졌다. 《에그, 끝내 일쳤구나. 저걸 어쩌나…) 멀찌감치 서서 마음을 조이던 구경군들이 연신 혀를 차면서도 누구도 감히 접근해오지 못했다. 성난 둥굴소가 다시한번 킁 하고 코김을 내뿜더니 몸체를 뒤로 뻗치며 대가리를 힘껏 뒤로 뻗치니 고삐가 툭―하고 풀려나갔다. 둥굴소는 더욱 미칠듯이 날뛰며 미처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고있는 영호를 사정없이 마구 떠박아10여메터 정도 굴려버렸다. 그러고도 성차지 않는지 하늘이 낮다고 껑충껑충 날뛰며 뒷발질로 마구 걷어차고 짓밟고 했다. 탕―하는 귀청이 째질듯한 소리와 함께 둥굴소가 어흥―하고 짧은 신음소리를 내뱉더니 영호 몸에 피를 쏟으며 너부러진다. 뒤늦게 소문을 듣고 온 송포수가 쏜 총알이 소눈통을 관통했던것이다. 소고삐가 풀린 바람에 더 멀리 뿔뿔이 흩어졌던 사람들이 그제야 우르르 몰려든다. 온몸에 뜨거운 쇠피를 뒤집어쓴 영호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있었다. 그는 눈을 간신히 뜨고 자기옆에 너부러진 둥굴소를 희뿌연 눈으로 돌아보고있다가 스르륵 눈을 감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택시…) 입가에는 안온한 웃음을 머금고있었다. 
1    그리다 만 그림 (처녀작 중편소설) 댓글:  조회:4848  추천:0  2011-12-04
 그리다 만 그림 김견 승현이는 어릴 때 소아마비에 걸렸던탓으로 겨우 쌍엽장신세를 면한 장애인이다. 왼쪽 다리가 오른쪽 다리보다 거의7cm 정도 짧았고 바지를 입은 겉모습은 그런대로 괜찮았으나 알몸상태에서 보면 건실한 오르쪽 다리에 비해 왼쪽 다리는 마치 말리운 개구리 다리처럼 바짝 말라붙어 아주 흉상이였다. 하여 그는 아무리 무더운 여름날에도 종래로 반바지같은걸 입는법이 없었다. 그러나 승현이는 강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신체가 정상인 사람들보다도 더 떳떳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려는 삶의 의욕에 자신을 불태우고있었다. 승현이는 고독한 인간이 아니였다. 그의 남아다운 호방한 성격과 듬직한 사람됨됨이에 끌려 많은 친구들이 진심으로 도와나섰고 항상 그의 주위에 뭉쳐있었다. 승현이가 친구를 다방면으로 사귀였기에 별의별 친구들이 다 있었다. 북경대학에서 석사연구생 공부를 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양고기산적점을 경영하는 친구도 있었다. 삼형제중 둘째로 태여난 그가 불행하게 어릴 때부터 불구가 되여 마음고생을 한다고 자연히 집에서는 외자식 맞잡이로 부모님들의 사랑을 독차지하여왔다. 부모님들은 승현이를 위해 악착스레 돈을 벌었다. 그들은 한국에 가서3∼4년간 고생한 덕에 그 당시로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을 벌어가지고 돌아왔다. 다행스러운 일이라면 승현이가 부모님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것이다. 워낙 타고난 락천적인 성격과도 관계되겠지만 승현이는 자기의 불행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련 승현이에게 고충이 하나 있다면 나이 스물여덟이 되도록 녀자친구 없는것이다. 물론 여기저기에서 중매가 들어오기도 하였다. 그가운데 승현이의 마음에 드는 녀자애들이 없은건 아니였다. 승현이가 첫눈에 홀딱 반해버려 부지런히 쫓아다닌 녀자애들도 두세명 있긴 하였는데 하나는 처음에는 승현이를 그처럼 살갑게 대하던것이 어느날엔가 승현이네 집에 문득 왔다가 미처 바지를 주어입지 못한, 의학원 해부실에서나 볼수 있는 해괴한 왼쪽 다리를 보고는 기겁하여 달아나버렸다. 또 하나는 무척 승현이를 따르던 녀자애였는데 그녀 어머니가 쥐약을 먹는다고 야단치며 결사적으로 반대하는바람에 또 실패했다. 하여 승현이도 그 녀자때문에 철이 들어서 처음 병신된 다리를 쥐여뜯으며 눈물을 흘려봤고 또 술을 잔뜩 마시고 광기를 부려 파출소놀음까지 한적이 있었다. 그뒤로 승현이는 중매란 말만 나오면 아예 개 벼룩 씹듯 낯을 찡그리며 도리질했다. 그런데 친구들중에 소학교때부터 중학교까지 쭉 한반에 다니다가 후에 한국인가 싸이판인가에 가서 벌어온 돈으로 양고기산적점을 경영하는 경호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승현이의 중매를 서느라고 자기일도 다 제쳐놓고 뛰여다녔다. 승현이는 친구의 호의를 너무 무시할수는 없어 마지못해 몇몇을 만나보았다. 경호가 소개해준 녀자애들은 거개가 다 미끈하고 아련하게 생긴처녀애들이였다. 그런데 말을 두어마디 해보면 머리가 텅빈 애들이였다. 그러나 경호는 짜증 한번 내지 않고 녀자애들을 부지런히 소개했다. 승현이는 이러한 경호의 열정에 정말 감지덕지했다. 마음같아서는 웬간하면 하나 골라잡고 경호의 시름을 덜어주고싶었지만 마음대로 안되는게 사람일인가부다. 경호는 어릴 때부터 싸움질을 잘했다. 같은 또래 두셋은 히죽 웃으며 재껴버린다. 하여 애들이 승현이를 《삐꾸(절음발이)》라고 놀려주면 경호는 그때마다 자기 일처럼 격분해하며 승현이앞에서 그 애들을 보기 좋게 때려주군 하였다. 그 보상으로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한 승현이는 성적이 차한 경호를 진심으로 차근차근 가르쳐주어 중학교까지 무난히 졸업하게 하였다. 중학교를 졸업한후 서로의 지향이 달라 헤여진후7∼8년후에야 우연한 상봉을 하였지만 승현이에 대한 경호이 그 지극한 관심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승현이는 이런 친구가 있음으로 하여 가슴 뿌듯한 자부심을 가졌고 언젠가는 꼭 친구의 우정에 보답하리라 마음먹었다. 때는8월중순이였다. 승현이가 집부근에30평방쯤 되는 집을 얻어놓고 화실을 꾸리느라고 바삐 돌아치는데 경호한테서 오랜만에 술이나 마시자는 전화가 왔다. 약속한 장소에 가니 경호가 한 쳐녀를 자기 녀자친구라고 인사시켰다. 최옥련이라 부르는 그녀는 보기 드문 미인이였다. 날씬한 키에 어울리는 긴 목, 생기있는 두눈에 버들잎처럼 휘여진 눈섭이며 얼굴가운데 곧은 선을 긋고 내려오다 상큼하게 일어선 깜직한 코날이며 작고 도톰한 입술, 말하거나 웃을 때면 량볼에 쏙쏙 패이는 보조개… (자식, 또 하나 가로챘구나.) 경호는 흘끔 건너보며 인사수작 마치고 식탁에 마주앉은 승현이는 자기 눈길이 자꾸 옥련이한테 쏠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자식, 이런 미인이 있으면 나한테 먼저 소개할거지.》 승현이는 롱담이 지나친것 같아 옥련이를 훔쳐보았다. 그녀는 그저 새물새물 웃으며 쥬스를 마시고있었다. 보면 볼수록 미칠것만 같았다. 그런 마음을 읽었는지 경호가 실눈을 하며 말했다. 《야, 정 소원이라면 내가 자리를 피해줄까?》 경호는 고추라루 묻은 이발을 드러내놓고 낄낄 웃었다. 그 말에 옥련이도 곱게 눈을 흘키며 경호의 어깨를 콕 쥐여박았다. 《자식, 롱담두 분수 있어야지…》 승현이는 제법 성난척 맥주고뿌를 탁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경호는 씨물씨물 웃더니 한참만에 정색하여 말했다. 《아― 그건 그렇구, 정말 옥련이네 유치원에 친구 한분이 있는데 정말 미인이란다. 키는1메터60, 사범학교 졸업하고 호구는 연길시야, 어때? 근사하지? 옥련이가 한번 자리를 마련할테니 시간내서 한번 좀 만나보렴.》 경호는 턱짓으로 자기옆에 앉은 옥련이를 가리켰다. 옥련이도 승현이의 의사가 궁금한듯 쳐다봤다. 《시간이야 뭐. 하여튼 말만 들어도 감사하다.》 승현이는 맥주고뿌 만지락거리며 뜨직하게 대꾸했다. 《야 임마, 네 나이 래일모레면 서른이야! 서른! 너 자신만 생각말구 부모님두 생각하란말이다. 우리 친구들가운데서도 녀자친구 없는 놈이 너밖에 없어. 정신차려. 눈이 잔뜩 높아가지구!》 경호는 성난듯 울대뼈까지 들먹이며 격하게 나왔다. 승현이도 경호의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사실 승현이가 눈이 높은건 아니였다. 그저 서로 호흡이 통하고 용모는 그저 밉상이 아니면 되고 제일 중요한건 자기같은 병신을 한평생 떠받들어 섬길수 있겠는가 하는것이였다. 《글쎄 나야 뭐, 만나봐서 손해될거야 없지. 그런데 그렇게 훌륭한 조건이라면 총각들 이마를 톡톡 튕기며 실컷 고를수 있겠는데 하물며 나같은 병신을 왼눈으로나 쳐다볼가?》 《아 글쎄,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구. 그럼 만나보는거지 응? 시간은 너희들이 알아서 정하구 장소는 〈만남다방〉으로 해라. 난 거기 커피맛이 최고더라.》 《자식, 알았다.》 그들은 목요일오후 한시에 《만남다방》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그날은 시름없이 술을 마시였다. 헤여질 때 경호가 승현이를 한쪽 구석으로 끌고가서 시무룩이 웃으며 지껼이였다. 《야, 너 오늘 보니까 옥련이한테 자꾸 눈길이 가는것 같은데 어때? 내가 밑지는셈치구 양보해줄까? 낄낄…》 승현이는 대답대신 경호의 가슴을 콱 쥐여박고는 돌아섰다. 승현이는 몇발자국 걷다가 다시 되돌아서서 다정하게 걸어가는 두 련인을 점도록이 눈바램했다. 맞춤하게 짜른 스카트에 연두색 브라우스를 입은 옥련이가 사뿐사뿐 걸어가는 모습은 그처럼 황홀할수가 없었다. (후― 또 아까운 녀자 하나 망치겠군.) 승현이는 저도 모르게 마비된 왼쪽다리를 꼬집었다. 전혀 감각이 없었다. 목요일날 승현이는 열심히 그림을 그리다가 약속시간이 되자 부랴부랴 《만남다방》으로 향했다. 다행히 약속시간은 아직1∼2분 남아있었다. 점심시간이여서 다방에는 손님이 없었다. 복무원이 안내해주는대로 자리를 잡고 앉아 커피 한잔 정해놓고 기다렸다. 커피 한잔 다 마실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어떻게 된걸까? 약속을 잊었나? 아니 그럴리는 없구,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한참 속궁리하고있는데 출입문이 삐꺽 열리더니 눈에 익은 모습이 나타났다. 옥련이였다. 거의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선 승현이는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녀도 승현이를 알아보곤 머리를 까딱하며 성큼성큼 걸어왔다. 급히 뛰여왔는지 얼굴은 발가우리하게 상기되여있었고 엷은 연두색 브라우스에 가리워진 높이 솟은 젖가슴은 당금 뛰여나올듯 가쁘게 드놀고있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친구가 불시로 일이 좀 있어서…》 그녀는 선생님에게 야단맞는 학생처럼 고개를 푹 떨군채 송구스러워 어쩔바를 몰라했다. 그 거동에 오히려 난처해진건 승현이쪽이였다. 자기일때문에 걱정해주는것만도 감사한 일인데 약속시간이 좀 늦었다고 이렇게 죄스러워할것까지 있나. 《천만에 말씀. 공연히 내가 심려를 끼쳐서 미안한데 자, 어서 앉소.》 그녀는 그냥 죄송한 마음이 드는지 감히 승현이를 정시하지 못하고 어줍게 권하는대로 앉았다. 커피와 쥬스를 더 청해놓고나서 승현이는 말없이 입가에 느슨한 웃음을 머금은채 담배 붙여물고 눈앞의 살아있는 초상화를 마음놓고 감상했다. 직업적인 습관에서인지 스스럼없이 남의 얼굴을 말없이 점도록 쳐다보고있는 승현이의 눈길엔 주저심같은건 꼬물만치도 찾아볼수가 없었다. 깜찍한 손으로 빨대를 만지작거리며 쥬스고뿌안을 휘젓던 그녀가 얼굴을 들어 승현이를 힐끔 훔쳐보았다. 무슨 말을 하려는듯 입술을 옴쫄거리였다. 이윽고 승현이가 어색한 침묵을 깼다. 《그런데 같이 온다던 친구는?》 《사실은 그 친구가 오늘 좀 일이 생겨서 늦게 온다하길래 지금까지 기다리다가 늦어졌습니다.》 대답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어딘가 조금씩 떨리고있었다. 《음― 그랬구만.》 승현은 대수롭지 않은듯 아니, 오히려 잘되였다는듯 눈웃음을 지었다. 《정말 안됐습니다. 약속 지켜드리지 못해서…》 《워낙 인연이라는게 억지로는 맞춰지지 않는법이요. 허허, 사실 나도 만나볼 생각은 별로 없었고…》 승현이는 여유있게 빙그레 웃어보였다. 《그건 그렇구, 식사는 했소? 난 지금 점심두 못먹었는데 여기서 의견이 굴뚝같구만 허허…》 승현이는 식지로 자기 배를 가리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세요? 그럼 마침 잘됐습니다. 저두 아직 점심전인데 사과도 할겸 제가 점심 사겠습니다.》 《누가 점심을 사든지 우선 일어나 볼가?》 승현이는 카운터에 가서 경호한테 전화를 걸었다. 《응, 경호니? 나 지금 너 애인하구 밥먹으로 가는 길인데 어때? 괜찮겠냐? 시간이 되면 너두 나오라.》 《나 지금 바빠. 친구들이 불시에 한무리 들이닥쳤단말이야. 근데 걱정마. 앞으로 기회는 많으니까. 그리구 밥먹구 나서 다시 전화해. 우리 저녁에 따로 앉자. 그럼 둘이서 재미있게 먹어. 혹시 반해버리면 휘딱낚아버리고말야. 야, 아직 못다쳤다. 새거야 새거 응? 하하하― 그럼 있다 다시 봐, 끊는다.》 승현이가 뭐라 할 사이도 없이 전화는 일방적으로 뚝 끊겨버렸다. 승현이는 수화기를 멍하니 내려다보다가 피씩 웃어버리고는 출입문을 나섰다. 옥련이는 문밖에 오도커니 서서 기다리고있었다. 《자 이젠 갑시다. 근데 옥련이는 뭘 좋아하오?》 《전 뭐 아무거나 다 괜찮습니다.》 옥련이는 승현이를 따라서며 나지막하게 대꾸했다. 《아무거나 다? 그거 좋구만. 자 그럼 오늘은 불고기추렴이나 해볼까?》 옥련이는 말없이 고개를 까딱해보였다. 아릿다운 처녀와 함께 길을 걷는다는게 얼마나 가슴뿌듯한 일인가? 모든 행인들의 눈길이 모두 자기한테 쏠리고있는것 같았다. 그녀를 힐깃 돌아보았다. 그녀는 항상 그러하듯이 한점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로 고개를 다소곳하고 걷기만하였다. 음식점에 도착한 그들은 아담하게 꾸며진 단간방으로 안내되였다. 이더운 날씨에 다행히 에어콘이 장치되여있어 제격이였다. 음식을 주문한후 그들은 음식이 다 차려지고 또 불고기를 구우면서까지 아무 말도 없었다. (허, 이렇게 할 말이 없을까?) 승현이는 벙어리가 되여버린 자신을 탓하며 맥주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무슨 말을 할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유치원선생이라고 했지? 오후에 출근 안해도 괜찮소?》 《오늘은 말미를 말았습니다.》 그녀의 말소리는 시내물처럼 도란도란 귀맛좋게 들려왔다. 승현이를 마주보는 두눈은 고요한 호수처럼 잔잔하고 티없이 맑았다. 《오 그랬구만. 거 하는 일이 참 재미있겠는데? 온종일 어린애들과 어울려 놀다보면…》 《글쎄 재미라구 생각하면 하는 일이 훨씬 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만 직업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단조롭고 유치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좀 지겨워날 때도 있고…》 《유치한 직업이라니, 나라의 꽃봉오리들을 양성한다는게 얼마나 보람차고 또 중요한 일이라구. 나두 지금 유치원선생이 되여 옥련이네 유치원에 다니구싶은걸 하하하…》 승현이의 익살에 옥련이도 호호― 시름없이 웃었다. 《저, 그림을 몇해나 그리셨습니까?》 《그러니까 한8년정도 되겠는걸.》 《어머, 8년이나요? 그럼 상당한 수준이겠습니다.》 《허, 재준지 뭔지 그것도 늘어야 재주라겠는데 이거라구야 머리가 뻐꾸기같아서 될수만 있다면 나두 아예 직업을 바꿔서 유치원선생질이나 했으면 좋겠구만.》 《호호, 참. 롱담도 잘하시네. 그럼 직업을 바꿔보지 않겠습니까? 저도 어릴 때 그림그리기를 무척 좋아했댔습니다. 운이 닿지 않아서 그런지 더 배우지 못하고.》 말끝을 흐리는 그녀의 얼굴엔 천진한 미소가 배여있었다. 턱을 고인체 그녀를 빤히 쳐다보던 승현이는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녀와 자리를 같이 할 구실이 하나 생겼던것이다. 승현이는 저도 모르게 왼쪽 무릎을 탁 찼다. 감각이 있는것 같았다. 《참. 그림을 좋아한다니 마침 잘됐군. 별로 볼건 없지만 오후에 다른 일 없으면 내 화실에 가보지 않겠소? 구경도 할겸. 내가 얼마전부터 구상해놓은 주제가 하나 있는데 옥련이를 보는 순간 나는 이미 그 그림을 다 완성해놓은것 같은 기분이 드오. 옥련이가 싫지 않으면 내 작품의 주인공으로 정하고싶은데 될수 있겠소? 모델비는 섭섭하지 않게 줄테니까.》 승현이는 거의 구걸에 가까운 눈길로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저더러 모델 서달라는 얘깁니까?》 승현이를 힐끗 쳐다보며 묻던 그녀는 잠간 생각에 잠기는듯 눈을 살풋이 내리깔고있더니 인츰 흥미있게 물었다. 《모델비는 별문제구요. 그런데 시간은 얼마 걸립니까?》 《한 열흘, 빠르면 한 닷새정도 걸리겠는걸.》 그 말에 그녀는 기겁한듯 입을 딱 벌리고말았다. 《열흘씩이나요? 아니 그림 한장 그리는게 그리두 품이 든단 얘깁니까?》 《그건 모르고 하는 소리요. 외국의 대가들은 그림 한점 완성하는데 몇달 지어는 몇년씩 걸리는게 다반사지.》 《정말 그렇게 오래 걸립니까? 그렇다면 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시간도 그렇고, 그런데 오후에 할 일도 없고한데 화실구경은 가보고싶습니다.》 《옥련선생이 저의 화실에 왕림하는건 더없는 영광입니다. 모나리자가 저의 화실에 왕림한들 어찌 아보다 더 기쁘겠습니까? 어서 가시지요.》 승현이는 깍듯이 존대말을 개여올랐다. 화실까지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승현이는 나오자마자 택시를 불러세웠다. 《화실이 여기서 멉니까?》 옥련이가 차에 오르며 묻는 말에 승현이는 변명처럼 얼버무렸다. 《엎디면 코닿을 거린데 옥련선생을 모시는데야…》 불과 이삼분만에 차는 화실밑층에 닿았다. 화실은5층에 있었다. 승현이는 의식적으로 뒤에 떨어져 계단을 올라갔다. 비청거리며 계단을 올라가는 흉한 꼴을 그녀에게 보이고싶지 않았다. 화실문을 열고 들어선 승현이는 아차 하고 뒤통수를 쳤다. 바삐 나가다보니 미처 청소를 못했던것이다. 창문까지 활짝 열어놓아 바람에 휴지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었고 아무렇게나 내버린 붓대들이 땅바닥에 덕지덕지 어지러운 색들을 게발라놓았다. 말그대로 수라장이였다. 다행히도 그녀는 이마살을 찡그리지 않았다. 아마 화실이라는게 워낙 아니 당연히 이래야 되는줄로 알고있는 모양이였다. 《아하, 우리 그림쟁이들이라는게 워낙 좀 이렇게 성미가 거칠어서 청소같은걸 별로하지 않다보니. 허허…》 그녀는 그저 말없이 화실안을 흥미있는 눈길로 살피고있었다. 승현이는 담배를 피워물고 취한듯이 옥련이를 점도록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후닥닥 자리에서 일어나 부지런히 종이를 찾는다 이젤에 화판을 고정한다 하며 분주히 돌아쳤다. 옥련이는 어리둥절한 눈길로 승현이가 하는 꼴을 지켜보았다. 준비가 다 끝난 다음에야 승현이는 옥련이에게 말했다. 《지금 앉아있는 그 모습이 참 멋지단말이요. 엎딘김에 절이라구 좀 수고해주오.》 《네? 지금 절 그리겠다는 말씀입니까?》 《괜찮소. 연필속사니까 한시간 반정도만 수고해주오. 해가 넘어가면 못그린다니까.》 승현이는 제쪽에서 재촉하며 연필까지 쥐고 제법 그릴 태세를 갖추었다. 《그럼, 이대로 이렇게 앉아있으랍니까?》 《음, 몸은 약간 왼쪽으로 틀고 얼굴은 나를 향하고 두손은 이렇게 맞잡고 자연스럽게, 옳지! 자 그럼 시작하겠소.》 승현이는 손짓발짓해가며 포즈를 취하게 하고는 남이야 편하든말든 물어볼념도 않고 화폭에 좍좍 긴 선들을 그어댔다. 옥련이는 그러는 승현이가 그저 당돌하고 우습게만 느껴졌던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샐쭉 웃고는 다시 원자세로 돌아가 얌전히 앉아있었다. 실내는 스걱스걱 연필 긋는 소리만 들렸다. 평소에는 온갖 우스개와 잡담을 누구보다도 잘하다가도 그림앞에서만은 자못 엄숙한 승현이였다. 일단 그림만 그리기 시작하면 온갖 세상과 절교라도 한듯 시종 말 한마디 없이 그림에마나 열중하는 성미였다. 시작한지 꼬박 한시간이 넘도록 승현이는 말한마디 없었다. 상례대로 하면 한 이삼십분에 한번씩 모델에게 휴식시간을 주는게 도리였다. 그러나 승현이는 그리기에 너무 열중해서인지 아니면 시간을 아끼려고 지나치게 욕심을 부려서인지 휴식시같은건 전혀 념두에도 없는것 같았다. 상대가 산 모델이 아니라 석고상으로 착각하였던 모양이다. 한편 옥련이는 허리가 시큰시큰해나고 뒤덜미가 뻣뻣해나서 뒤잔등에 땀까지 흠뻑 배였지만 모델서는것이 워낙 그런법인줄로 알았는지 조용히 앉아있었다. 그러는 동안 선을 위주로 한 그림화면에는 인물모색과 큰 층차들이 거의 나와있었다. 습관처럼 몇걸음 물러서서 담배를 붙여물고 미간을 찌프린채 화판을 들여다보던 승현이는 무심결에 팔뚝시계를 흘깃 들여다보더니 눈이 떼꾼해졌다. 시간이 생각보다 너무 많이 흘렀기때문이였다. 《시간이 너무 갔구만. 일어나 좀 활동하오.》 옥련이는 기다렸다는듯 고개를 까딱해보이고는 홀짝 일어나 경직되였던 허리와 뒤덜미를 살살 주무르며 승현이의 곁으로 다가와 화판을 들여다보았다. 《어머! 어쩌면 이리도 신통할가…》 겨우 반성품이나 된 그림을 들여다보던 옥련이가 손벽까지 짝짝 치며 조금은 과장된듯싶게 깡충깡충 뛰기까지 하는 모습에는 티없이 맑은 어린애같은 천진함이 다분히 드러나있었다. 승현이는 느슨한 웃응을 입가에 머금은채 물끄러미 옥련이를 지켜보고있다가 제법 겸허한 투로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생각처럼 잘 안되는구만. 훌륭한 모델을 모셔놓구 추태를 보인것 같은데…》 《참 선생님두 너무 겸손하십니다. 전 이 그림이 꼭 사진같아보이는데요.》 《허, 옥련이가 면바루 봤소. 이 그림이 부족한 점이 바로 그거요. 사진같기때문이란말이요. 그림이란건 대상의 미묘하고 섬세한 개성과 특징을 면바로 파악하고 그것을 잡아내야 하는건데 지금 이 그림은 그런게 전혀 없이 모호하단말이요. 말하자면 입가에 어린 미소같은건 내 재간으로는 아직 그 미묘한 모습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겠단말이요. 그래서 이 그림은 지금 생기가 없이 그저 사진처럼 뻣뻣한 감이 들지 않소. 옥련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알겠지? 그 그림이 왜 그렇게 이름났는지 아오? 그건 뭐 모나리자가 특별한 미인이 되여서가 아니오. 사실 뜯어보면 모나리자는 아주 평범하게 생긴 녀인이란말이요. 그럼에도 그 그림이 그렇게 이름난것은 그 그림의 가치가 바로 그 입가에 어린 미묘한 미소에 있기때문이란말이요. 후, 난 언제 가서나 그만한 그림을 그려낼수 있을는지…》 승현이는 제 말도 도취된듯 허구프게 웃어버렸다. 옥련이의 두눈엔 어느새 경모의 빛이 잔잔히 흘러넘쳤다. 《저두 모나리자에 대해서 얼마간 들어서 알고있습니다. 그런데 그림에도 그렇게 미묘하고 깊은 경지가 있는줄은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구 그런 경지를 열심히 도전해나가는 선생님이 한결 돋보이는데요. 뭔가 선생님을 도와드리고싶습니다. 제가 할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이 말에 승현이의 두눈은 화등잔만큼이나 커졌다. 승현이는 옥련이의 눈을 정시하며 뚜걱뚜걱 다가갔다. 두사람이 거리가 사람 하나 겨우 나들만큼 좁아졌다. 《옥련이 난…》 그러나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이 더 나가주질 않았다. 엄연한 다른한 존재― 경호가 떠올랐던것이다. 《고맙소, 옥련이의 말만 들어도 고맙소.》 승현이는 머리를 숙이며 김빠진 소리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승현이를 바라보는 옥련이의 눈망울은 당금 눈물을 떨어뜨릴듯 촉촉한 물기를 머금고있었다. 숨막히는 침묵이 한동안 흘렀다. 이윽고 승현이가 어줍은 웃음을 입귀에 실으며 말했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 옥련이는 기다란 눈초리를 살짝 내리깔고 아래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말없이 쏘파에 가 앉았다. 원자세를 취하고는 맞느냐고 묻듯 승현이에게 눈길을 보낸다. 승현이도 말없이 머리를 끄덕해보이고는 화필을 집어들었다. 약 반시간가량 애를 써봤으나 그림은 생각대로 되여주질 않고 기분만 잡쳤다. 승현이는 마음에 썩 들지 않는 그 속사를 그녀에게 선물했다. 그녀는 그 무슨 보배라도 얻은듯 기뻐하며 그림을 돌돌 말아서 신문지로 정히 감쌌다. 그리고는 선물의 대가로 이후 휴식일마다 와서 모델을 서주겠다고 했다. 승현이는 입이 함박만해졌다. 그들은 후날 다시 전화로 련락하기로 하고 헤여졌다. 시계를 보니 다섯시가 넘어있었다. 승현이는 약속대로 경호한테 전화하고 곧장 그리로 갔다. 경호가 사람좋게 웃으며 맞아주었다. 《야, 어때? 오늘 기분이 몹시 잡쳤지?》 《뭘, 괜찮아.》 승현이는 대수롭지 않다는듯 히죽 웃어보였다. 《어쨌든 내가 미안하구나. 공연히 숫총각의 가슴에 불을 질러놓구선 하하… 그런데 그 계집애가 전번까지 뭐 제법 만나볼 소릴하더니만 어저께 뭐 중매가 따로 들어왔다나. 그래서 약속을 못지켜 미안하다고 전화가 왔더라.》 《언녕 그럴줄 알았어.》 《참, 지금 계집애들은 저마다 눈이 이마에 붙었단말이야. 그런 애들은 아예 만나보지 않는것도 좋아. 그건 그렇구. 어쨌든 내 불찰도 있으니 내가 대신 사과하는셈치구 술이나 마시자.》 경호는 승현이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복무원을 시켜 맥주와 안주를 가져오게 하였다. 경호가 새로 온 복무원이라며 덜밉게 생긴 어려보이는 녀자애를 불러 술을 붓게 하고는 승현이옆에 눌러앉히는바람에 술상은 그런대로 기분이 제법 무르익어갔다. 술이 거나해지자 경호는 또 음담해설에 열을 오렸다. 내용이라면 어느 녀자히프는 어떻구 가슴은 어떻구 하는 추잡한 소리들뿐이였다. 승현이는 옆에 앉아 얼굴을 붉히며 마지못해 술시중을 드는 아가씨를 물러가게 하고 문득 한마디 던졌다. 《야, 너 이번에 그 옥련이와는 정식이야? 장난은 아니겠지.》 경호는 처음에는 그저 어리둥절해서 무슨 말인가 음미해보는것 같더니 마침내 핫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승현이는 이마살을 찌프리며 정색하여 또박또박 다시 물었다. 《너 솔직히 말해봐. 옥련일 진짜 사랑하는거야?》 《뭐? 사랑이 어쩌구 어째? 자식이 벌써 취했냐? 사랑 좋아하네. 야, 나 좀 물어보자 사랑이란게 도대체 뭐야? 히프냐? 아니면 젖가슴이냐? 응? 아니면 이런게야? 어 허허허…》 경호는 승현이의 찌르는듯한 눈길을 아랑곳하지도 않고 어이없다는듯 웃기만하였다. 《솔직한 물음엔 진지하게 대답하는법이야.》 승현이는 맥주고뿌를 탁 소리나게 놓으며 경호를 노려보았다. 그제야 경호도 어지간히 정신이 들었는지 멀뚱한 눈으로 승현이를 마주보며 웃음을 거두고 다음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거 있잖아. 내 볼바엔 옥련인 아주 순진하구 착해보이더라. 전에 네가 데리구 다니던 애들은 발뒤축에두 못가. 지금 세월에 그만한 애들보기 힘들단말이야. 너 이번에 그애하구 장난치지 마 응? 네가 아무리 녀자후리는 재간이 비상하다지만 이후에는 그만큼 훌륭한 애는 못만나. 이번만은 좀 진지하게 나와.》 승현이는 퍼그나 차분한 어조로 말을 맺으며 경호에게 눈길을 주었다. 승현이의 말을 잠자코 듣고있는 경호의 입가에 묘한 웃음이 스쳐지나갔다. 그는 한참 승현이를 가늠해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제 보니 너 옥련일 무척 좋아하는 모양이구나.》 《응, 그래 좋아하구있어. 그러길래 빨리 서둘러 결혼하란말이야. 장난으로 대했다간 후회막급이니 정신차려 자식.》 승현이는 짐짓 느물느물 웃으며 경호를 약올렸다. 그러나 경호는 약이 오르기는커녕 고개를 젖히고 한참 낄낄 웃어대더니 이윽고 두손으로 턱을 받치며 실눈을 해가지고 입가에 야유비슷한 웃음을 띠웠다. 《어허, 재미있는걸, 너 그 말 정말이지? 내가 전번에 뭐라 하던? 자리를 피해주겠다니까 제쪽에서 화를 내가지구는 능청스럽게 쳇, 이제 와서 후회되냐?》 승현이는 대답대신 어금이를 지그시 물며 경호를 노려보았다. 《뭐, 그렇게 골났니? 분명히 말해줄게. 그 앤 나하구 아무 관계도 없어. 전에도 그랬구 지금도 마찬가지야. 딴 애들 경우같으면 언녕 해버릴수 있었지만 고아라서 그런지 좀 측은해지기두 하구… 그러니까 너 나 때문에 부담가질것 하나도 없어. 자신있으면 한번 멋지게 해봐. 성공여부는 너한테 달렸지…》 경호의 표정은 아까와는 달리 진지해보였다. 크지 않지만 서글서글한 두눈이 그것을 말해주고있었다. 승현이는 마음속 깊이로부터 도전심같은것이 욱 올리밀며 묘한 흥분에 몸을 떨었다. 그는 경호한테 눈길을 떼지않은채 또박또박 내뱉았다. 《너 지금 그 말 네 입으로 했어?》 경호는 피씩 웃더니 이번에는 승현이를 눈박아보며 목젖에 힘주어 말했다. 《그래 절대 후회 안한다. 그런데… 난 아무래도 미심하단말이야.》 《뭐가?》 승현이가 공연히 눈섭을 치켜올리며 경호의 말에 그루를 박았다. 《글쎄 해내리라구는 믿는다만은…》 《그럼 좋다. 우리 한번 내기 하는게 어때? 내가 한달사이에 아니 열흘사이에 옥련일 내 사람으로 만들테니까. 너 그때 가서 후회하지 마.》 《어허, 그렇게 자신 있어? 오늘 너 완전히 딴사람이 돼보이는데. 그럼 어디 한번 열심히 해봐. 자, 너의 성공을 위하여 건배!》 경호가 맥주고뿌를 들어 승현이앞에 내밀었다. 승현이는 고뿌를 맞부딪치고는 벌컥벌컥 다 마신 다음 고뿌를 거꾸로 들어보였다. 경호도 인츰 빈 고뿌를 거꾸로 들어보였다. 그로부터 며칠후, 아침8시좌우. 종전처럼 승현이가 화실로 나갈 준비를 하고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은 어머니의 부름소리가 들려왔다. 《승현아, 전화 받아라.》 《예. 누굽니까?》 《글쎄 처음 듣는 녀자 목소린데.》 승현이의 어머니는 수화기를 넘겨주며 궁금한 표정으로 살펴본다. 승현이의 목소리를 대번에 알아차린듯 상대방은 《선생님이시죠?》하고 확인해왔다. 《김승현입니다. 누구신지…》 엉겁결에 대답하여놓고는 귀에 익은 목소리를 바로 알수 있었다. 《아! 옥련이구만. 어쩌다 이렇게 전화까지…》 승현이는 어느덧 흥분이되여있었다. 그러자 저쪽에서 까르르 웃어대는 소리가 귀맛좋게 울려왔다. 《호호, 제 목소리를 기억하시나보죠?》 《암, 날 선생님이라고 부를 사람이 옥련이를 내놓구는 또 누가 있다구 허허… 나 이 김승현이 머리에 털나서 선생님소리를 들어보기는 옥련이한테서 처음이라니까. 근사한 직업도 없는 놈이 그런 존칭을 들을 자격이 없지만 옥련이가 그렇게 부르니까 어물쩍 수염 싹 씻고 들어주는거지 허허…》 《롱담 잘하시네요. 저 그런데 오늘도 그림 그리러 나갑니까?》 《당연히. 지금 바로 나가려던참인데…》 《오늘 휴식인데요. 제가 약속대로 그리로 갈가 해서 전화드렸습니다.》 《마침 잘됐구만. 그러찮아도 요즘 한번 찾아보려던참이였는데 그럼 지금 인츰 올수 있겠소? 내가 마중 나갈게.》 《아니요. 어린애두 아닌데 마중은 무슨 마중. 제가 바로 갈게요. 그럼 잠시후 만나요.》 송수화기를 내려놓고 기분이 좋아 입도 못다무는 승현이를 어머니가 지켜보시다가 끝내는 궁금한듯 묻는다. 《뉘집 색시길래 그렇게 입도 못다무냐? 누구니 응? 너 혹시…》 승현이는 어머니에게 익살스레 한쪽 눈을 찔끔 감아보이고는 신발을 꿰신고 허둥지둥 문을 밀고나갔다. 어머니는 시무룩이 웃으면서도 어딘가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말없이 승현이를 눈바램했다. 화실에 도착하자 승현이는 소매를 걷어부치고 청소부터 하기 시작하였다. 쓸고 밀고 닦고 한참 분주히 뛰여다니다보니 얼굴에서는 콩알같은 땀방울이 흘러떨어졌다. 승현이는 옷자락으로 땀을 훔치며 열려진 창문으로 옥련이가 나타날 곳을 유심히 살폈다. 이윽고 길 저편에 눈익은 모습이 나타났다. 옥련이가 어지럽게 지나다니는 차량들을 요리조리 피하며 이쪽으로 오고있었다. 승현이는 소리쳐 부르려다말고 돌아서서 땀배인 손바닥을 바지에다 문지르며 화실안을 휘― 둘러보았다. 별로 탐탁치 않은데가 없었다. 그는 다시 들뜨는 가슴을 가까스로 눅잦히며 의자에 앉아서 화구들을 챙기였다. (이젠2층까진 올라왔겠지. 하나, 둘, 셋, 넷…) 어림짐작으로 거의 다 올라왔겠다고 생각하는데 때마침 가벼운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승현이는 점잖게 목소리를 뽑았다. 《예, 들어오십시오.》 의식적으로 문쪽에 등을 돌리고 앉은 승현이는 청각으로 문이 조심스레 열리는 소리에 잇달아 가벼운 인기척소리를 느꼈다. 그제야 승현이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누구?) 하다가 깜짝 놀란듯 몸을 일으켰다. 《어, 이거 벌써…》 《안녕하세요?》 옥련이가 허리를 갑삭해보였다. 승현이는 자리를 권한다 콜라병마개를 따준다 하며 한참 법석을 떨고나서야 제자리에 가앉아서 담배 한대를 피워물며 말을 건늬였다. 《휴식일에 편히 쉬게도 못하구…》 《뭘요…》 옥련이는 담담히 웃으며 화실벽에 란잡하게 걸려있는 그림들을 흥미있게 들러보았다. 승현이가 무슨 말을 할까 궁리하는데 옥련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정식 그리겠습니까?》 《암. 이것 보우. 난 지금 만단의 준비가 다돼있잖소.》 승현이는 전날에 반듯하게 메워놓은 인물15호 캠퍼스를 손가락으로 탱탱 튀기며 말했다. 《이 옷맵시대로 괜찮습니까?》 옥련이가 옷매무시를 바로잡으며 조심히 물어왔다. 그녀는 오늘 새하얀 투피스에 깜장스커트를 받쳐입고있었다. 《미안하지만 덥기두 하거니와 또 그리기에두 그렇구 되도록 그 겉옷은 벗었으면 좋겠는걸.》 《예? 이걸요?》 그녀는 올롱한 눈길로 승현이를 쳐다보다말고 인츰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어서 쏘파에 걸쳐놓았다. 겉옷을 벗어서 로출된건 기껏해야 시원하게 드러난 목부위와 살짝 패운 앞가슴 그리고 희고 날씬한 두팔뿐이였다. 《그 옷 이리 주오. 내가 걸어놓을게.》 승현이는 다가가서 그녀가 넘겨주는 옷을 받았다. 물씬 풍겨오는 야릇한 체취에 승현이는 취한듯 주춤하다가 인차 옷을 옷걸이에 조심스레 걸어놓았다. 말없이 앉아서 콜라를 홀짝홀짝 마시는 그녀의 모습은 수줍음을 타는 첫날 색시 같았고 또 어찌 보면 철모르는 애된 소녀 같기도 하였다. (어떡하나 이번엔 좀 그럴듯한 작품이 나와야겠는데.) 승현이는 숨을 한번 들이쉬고는 붓쥔 손을 화폭에로 가져갔다. 밖에서 들려오는 자동차소음과 드문드문 빨각빨각하는 봇이 닿는 소리외에 화실안은 말그대로 물뿌린듯 조용했다. 반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승현이는 시계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참, 시간이 너무 갔구만 좀 휴식하오.》 겨우 자유를 얻은 옥련이는 한숨을 가볍게 내쉬며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승현이곁으로 다가왔다. 《어떻소. 앉아있기가, 쉽지 않지?》 《다른건 괜찮은데 어쩐지 자꾸 졸립니다. 호호…》 《아하, 이거 벌써부터 졸리면 곤난한데. 미소짓는 미인을 그리려다 잠자는 미인을 그리겠는걸》 승현이의 익살에 옥련이는 시름없이 웃었다. 말그대로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나는 녀인이였다. 승현이의 지꿎은 눈길에 쑥스러웠던지 옥련이는 여린 손으로 가볍게 얼굴에 부채질하며 창가로 다가가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 지겨운 여름이 언제면 끝날가요?》탄식같은 말이였다. 승현이도 할 말이 궁했던지라 한마디 끼여들었다. 《글쎄, 옥련이도 여름을 싫어하는 모양이군.》 《저요? 예, 저는 무더운 여름보다는 차라리 차디찬 겨울이 더 좋습니다. 김선생은?》 《나? 난 어쩐지 가을이 제일 좋소. 황금의 계절이라서 그런지… 그런데 듣자니 나이 지긋한 분들은 보통 가을을 좋아한다더구만. 나두 이젠 반환갑을 맞아 그런지도 모르지.》 《아이, 또 웃기시네. 호호…》 옥련이는 허리를 잡고 까르르 웃어댔다. 승현이는 시무룩이 웃으며 한술 더 떴다. 《보통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뜨겁다던데 옥련이는 보나마나 마음도 인물처럼 고운 모양이군.》 《어머, 그렇게 보입니까? 헌데 전 그러지 못한걸요. 어떤 사람들은 절 보고 지독한 녀자라 한답니다. 호호…》 《뭐요? 아니 그건 어느 덜돼먹은 놈이 줴친 소리요? 양? 사람보는 안광이 그렇게 무디고서야 내 그 놈을 보면 그냥 콱…》 승현이는 자기가 모욕당한것마냥 격분해하며 주먹을 불끈 쥐였다. 그런데 옥련이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또 배를 잡고 까르르 웃었다. 눈에는 눈물까지 핑 돌고있었다. 한참만에야 겨우 한마디 주었다. 《호호호, 저의 아버지가 그랬답니다.》 《뭐? 아버지가?》 승현이는 그만 머쓱해져서 뒤더수기를 긁적이며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드디여 옥련이가 웃기를 그만두고 손등으로 눈굽을 찍으며 말했다. 《이젠 그만 시작해보자요.》 《좋소. 시작하기오.》 밑색을 한번 올리고나니 어느덧 점심때가 다되였다. 점심은 옥련이의 고집으로 그녀가 손수 라면을 끓여 에때웠다. 난생처음 예쁜 처녀가 끓여주는 음식을 먹어보는 승현이는 하나에 겨우1원정도 하는 라면이지만 그 어떤 진수성찬보다도 맛갈스러웠다. 국물한방울 남기지 않고 게걸스레 말끔히 먹어버렸다. 오후 작업은5시가 훨씬 지나서야 끝났다. 승현이는 너무 빨리 흐르는 시간을 새삼스레 한탄하며 아쉬운대로 바레트를 정리하였다. 옥련이는 승현이의 뒤에 서서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색을 게발라놓은것 같은 화면은 들여다보며 아무래도 모를 일이라는듯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승현이는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서 옥련이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온 하루 까딱 않구 앉아있느라니 감옥살이하는 느낌이지? 허허, 자 배도 촐촐하겠는데 어데 가 저녁식사나 함께 하지.》 《아니, 전 집에 가서…》 《아하, 그러지 말구. 자 어서.》 승현이는 잡아끌고서라도 꼭 데리고 갈 잡도리였다. 옥련이는 못이기는척 따라나서면서도 나직이 말했다. 《자꾸 돈팔게 해서…》 승현이는 의식적으로 장소를 큰길에서 많이 떨어진 장사가 잘 안되는 음식점으로 잡았다. 저녁먹는것보다 조용한 자리에서 속심말이나 실컷하려는 심산이였다. 자리잡고 마주앉긴 했으나 할 말이 궁한지라 승현이는 그저 한숨만 풀풀 내쉬며 부지런히 담배만 피워댔다. 오도카니 앉아있던 옥련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담배를 너무 피우시네요. 담배가 건강에 제일 해롭다는데.》 그제야 승현이는 거의 다 피운 담배를 재털이에 비벼끄며 헤식은 웃음을 떠올렸다. 《글쎄 나쁘다는걸 알고는 있지만 그래두 내게는 이 담배가 제일 훌륭한 친구란말이요. 속상할 때는 같이 속태워주구 또 그림이 잘 안될 때면 기발한 생각두 떠오르게 하구 어쨌든 이 놈이 없이는 이제 아무 일도 못할것 같단말이요. 그리고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하고싶은 일도 못하고 살겠소. 살아서 지랄 빼놓고 하고싶은 일이야 다해보구 죽어야지, 안그렇소?》 승현이의 한탄섞인 말에 옥련이는 아미를 숙인채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듯하였다. 맥주와 안주 몇가지도 올랐다. 맥주를 두어잔 마시고난 승현이가 다시 침묵을 깨뜨렸다. 《저, 좀 궁금한게 있는데 아무렇게나 물어봐두 괜찮겠소?》 옥련이는 쥬스잔을 내려놓으며 승현이를 바라보았다. 《별게 아니구 경호를 어떻게 알게 되였소?》 《네, 그거요. 지난번에 제 친구의 결혼식에 갔다가 남자생빈으로 온 그 분을 알게 됐습니다. 그날 저녁에 신랑집에서 오락을 놀 때 함께 춤을 추면서 통성명도 하고 그후부터…》 《아, 그랬구먼. 그래 지내보니까 경호 그 친구 어떻소? 괜찮은 친구지?》 《예? 글쎄요. 아직은 뭐 어떻다고 말하기는…》 그녀는 수줍은듯 얼굴을 살짝 붉히며 입귀를 샐쭉거렸다. 《허허, 글쎄 이제 안지 얼마 안된다니까 그럴법두 하지. 그런데 그 친구 확실히 괜찮은 사람이요. 그저 좀 배운게 없어서 드문드문 울뚝불뚝 하는 성질을 참지 못해서 그렇지, 사람은 좋은 사람이요.》 승현이는 별 목적없이 경호에 대해 한바탕 자랑을 늘여놓았다. 경호와 한반에 다닐 때 재미있었던 일들이며 후에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갈라진 일 지어는 둘이서 술먹구 취해서 무고한 행인을 붙들고 행패부리다 파출소에 같혔던 일까지 낱낱이 말해주었다. 옥련이는 그저 조용히 승현이를 마주보며 겨우 입가에 알릭락말락한 웃음을 지어내기도 하고 가끔은 고개를 까딱까딱해보일뿐 승현이의 말에 별로 흥미를 갖고있는것 같지를 않았다. 장황하게 말을 늘여놓은 승현이는 그만 멋적어졌다. 괜한 말을 하지 않았나싶었다. 방안에는 다시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드디여 옥련이가 담담한 어조로 침묵을 깨뜨렸다. 《저, 오해하고있을지 모르겠는데 사실 전 경호씨에 대해서 뭐 별로 달리 생각해본적은 없습니다. 그저 알고 지내는 친구로 례사롭게 편하게 생각할뿐입니다.》 《오, 그랬구만. 그런걸 난 또 괜히…》 승현이는 환성에 가까운 소리를 질러대다가 그만 아래말을 까먹고말았다. 또 한동안의 침묵이 흘렀다. 《저, 아줌마, 여기 맥주 한병 더 줘요.》 이미 맥주 두병을 혼자서 다 비웠건만 승현이는 분위기가 어색하던차에 주방켠에 대고 소리쳤다. 알콜의 힘을 빌어 한번 용기내여 뭔가 말해보려는 심산이였다. 옥련이가 괜찮겠느냐는듯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고있었다. 승현이는 히쭉 웃어보이고는 부질없는 걱정을 하지 말라는듯 지껄이였다. 《괜찮소. 이래 보여두 서너병쯤은 간단하게 재낀다니까.》 옥련이가 눈치빠르게 날라온 맥주병을 두손으로 곱게 받들어 고뿌에 그득이 부어주었다. 승현이는 아닌보살을 하고 맥주고뿌를 덥석 받아쥐고 들이켰다. 술맛이 과연 달랐다. 꿀맛같았다. 카― 이젠 용기가 날듯하였다. 《저, 옥련이 나한테 시집와주오…》 이야말로 중세기 구라파문학소설에서나 볼수 있는 기상천외의 청혼이였다. 옥련이는 그 말에 저으기 놀랐던지 두눈을 동그라니 뜨고 승현이를 빤히 쳐다보다가 타는듯한 눈빛에 질려서 그만 시선을 떨구며 아래입술을 잘근잘근 씹고있었다. 승현이는 그렇게 한참 지켜보다가 긴 한숨을 내뱉았다. 《나두 주책없는 소린줄 알고있소. 하지만 나 이 김승현이 이렇게 보여두 무골충은 아니오. 다리 하나 못쓰는 병신이라도 아직 기가 죽지 않았단말이요. 기가 죽기는커녕 오히려 이렇게 기고만장에서 펄펄 뛰는 놈이란말이요. 철없을 땐 애들이 나를 병신이라고 멀리하거나 손가락질하며 놀려대면 난 서러워서 눈물도 흘리구 또 죄없는 부모님들에게 나를 왜 병신으로 만들었냐고 행패를 부리기도 했소. 그러나 이젠 다 지나간 일이요. 이젠 난 남들이 병신이라고 코끝에 삿대질을 해도 그저 피씩 웃어버리고마오. 그들의 손가락질을 받을 때마다 나는 거기서 힘을 얻소. 그들은 날 채찍질해주었소. 나로 하여금 더더욱 이를 악물고 분발하게 하였소. 그래서 난 종종 그 사람들에게 고마운 생각도 가져보오. 어느날엔가 그 사람들의 은혜에 보답하고야말리라 결심하였소.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고 나에게 이 세상을 이악스레 살아가려는 욕망을 심어주었기때문에 난 꼭 성공해내고야말거요. 아니 성공 못한다 해도 좋소. 실패도 달갑게 받아들일거요. 어느 성인이 한 말도 있소. 누구나 다 성공하는건 아니다. 그리고 성공했다 해서 꼭 행복한것도 아니다. 성공을 향해 걸어가는 그 과정이 바로 행복이고 참된 인생인것이다. 난 이 말을 믿고 있소. 하여 난 성공여부는 어떻든간에 내 인생의 종점까지 이악스레 걸어가고말거요. 그리고 그때에 가서 난 내가 걸어온 외다리인생을 돌아보며 행복을 느끼리라 믿소. 무엇보다도 나는 그 누구 못지 않게 일생을 떳떳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에 회심의 미소를 지을거요. 어떻소? 옥련이, 내 인생의 길동무가 되여주지 않겠소?》 마침내 말을 마친 승현이는 퍼그나 흥분되여있었다. 그는 다시 불처럼 이글거리는 두눈으로 옥련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옥련이는 물기 그득한 두눈으로 승현이를 마주보며 듣고있다가 눈을 살풋이 내리깔았다. 작은 입술을 옴쫄거리기만할뿐 쉽게 열지 않았다. 승현이는 너무 서두른것 같은 생각이 들어 게면쩍은 웃음을 띠우며 변명하듯 말했다. 《허, 이거 워낙 급한 성미라서, 이 자리에서 대답 안해도 괜찮소. 그저 편한대루…》 옥련이는 그제야 가벼운 한숨과 함께 눈길을 들어 승현이를 마주보았다. 얼굴은 어느새 능금알처럼 빨갛게 물들어있었다. 꽤나 곤욕을 치른모양이였다. 한편 승현이는 이번에도 영낙없는 실패구나 하며 한숨을 내쉬고는 말없이 맥주 한컵을 단숨에 들이켰다. 완전한 패잔병 꼴이였다. 방금까지도 의기양양하던 그 모습은 오간데 없고 어깨를 축 늘어뜨린채 애꿎은 담배만 뻑뻑 빨아대며 발끝을 내려다보고있었다. 《저, 그럼 이만 일어나봐야겠습니다.》 어색한 분위기가 싫었던지 옥련이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일어섰다. 《어? 그래, 일어나야지.》 승현이는 불에 덴 사람처럼 엉거주춤 따라 일어나며 반사적으로 시계를 본다. 《집에 가 좀 생각해보고 다음 수요일쯤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이 말에 승현이의 두눈은 반짝 빛났다. 승현이는 집이 시교에 있다는 옥련이를 기어이 택시에 앉힌 다음 택시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눈바램하고나서 자리를 떴다. 요즘 승현이는 마음이 착잡하여 무슨 일을 하여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야말로 일일여삼추같은 시간이 너무 지겨웠다. 드디여 바라던 수요일이 왔다. 승현이는 아침밥술을 놓기 바쁘게 객실에 가서 전화기만 지켰다. 그러나 점심때가 지나고 저녁해가 빠알간 노울을 지피며 서산으로 기울도록 싱거운 전화 몇통 내놓고는 고대하던 전화는 걸려오지 않았다. 승현이는 끝내 맥을 버리고 맹랑한듯 자기 방에 들어가 벌렁 드러누웠다. (쳇, 두꺼비가 고니고기를 먹겠다고 날뛰였으니…) 승현이는 중얼거리며 입을 쩝쩝 다셨다. 이때 전화벨소리가 울려왔다. 승현이는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듯 귀를 틀어막고 몸을 돌려누웠다. 한참만에 방문이 빠끔히 열리더니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얘, 승현아. 전화 받어라.》 《제 전화요? 누굽니까?》 승현이는 속이 떨리면서도 별로 시답지 않은듯 고개를 들어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글쎄다. 녀자목소리인데. 전번에 전화 왔던…》 어머니의 말이 끝나기바쁘게 승현이는 화들짝 일어났다. 그리고는 허겁지겁 객실로 뛰쳐나갔다. 그러는 아들을 보고 어머니도 놀랐는지 혀를 끌끌 차며 타이르는 소리가 등뒤에서 들려왔다. 《애두, 웬 성미가 저렇게 급한지. 다칠라 조심하잖구 쯧쯧…》 《여보세요?》 승현이는 수화기를 잡기 바쁘게 목청이 높아짐을 인식하고는 진정을 하려는듯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저쪽에서 주춤하는것 같더니 한참만에 귀에 익은 목소리가 또랑또랑 울려왔다. 《아이참. 목청도 높네요. 고막이 터지겠습니다. 호호…》 《그래, 지금 거기가 어디오?》 《여기요? 공중전환데, 한신아빠트 압니까? 그 부근…》 《그래? 좋소. 까딱말구 거기 있소. 곧 갈테니까.》 《네? 지금 오시겠다구요? 저, 시간도 늦었는데 그러지 말구 래일 만나는게…》 《아, 글쎄 꼼짝말구 그 자리에 있으라니까. 내 지금 바로 갈게.》 승현이는 상대방의 대답은 기다릴념도 않고 일방적으로 송수화기를 내려놓고는 주섬주섬 옷들을 챙겨입었다. 택시를 잡아탄 승현이는 공연히 마음이 들떠있었다. 어쩐지 직감적으로 좋은 소식이 기다리고있는것 같았다. 옥련이가 꼭 대답하리라고 믿어졌다. 그래서 승현이는 몇번이고 택시기사를 독촉하며 한신아빠트에 도착하였다. 낮게 드리운 밤장막속에 옥련이가 공용전화박스옆에 몸을 기대고 서있있다. 승현이가 도착한줄도 모르고 오가는 차량들을 살피고있었다. 승현이는 장난기가 피끗 들어 공용전화박스뒤로 에돌아가서 슬그머니 옥련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깜짝 놀란 옥련이는 반사적으로 몸을 홱 돌려 곱절이나 커진 두눈으로 승현임을 확인하자 가슴을 내리쓸며 눈을 곱게 흘킨다. 《어머나, 사람 놀래워 죽이겠습니다. 아이, 심장이야.》 그리고는 봉창이라도 하려는듯 종주먹을 쥐고 승현이의 어깨를 콕콕 쥐여박아주었다. 승현이는 피할념도 하지 않고 능그러운 웃음을 띤채 가만히 들이대고있었다. 둘은 약속이라도 한듯 나란히 발길을 옮겼다. 딱히 어디로 간다는것도 없었다. 말없이 무작정 걷기만하였다. 어느덧 슬며시 기여든 땅거미가 두사람의 그림자를 삼켜버렸다. 한참 걷다보니 강뚝으로 뻗은 오솔길에 접어들고있었다. 《허, 달이 밝구만.》 허두를 떼며 하늘을 쳐다보니 하늘에는 달은커녕 별빛 하나 찾아볼수 없었다. 빛이라면 저앞 강뚝길에서 가물거리는 가로등이 희미한 빛이나마 은근히 뿌려주고있을뿐이였다. 승현이는 머쓱하여 옥련이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승현이가 난처해할가봐서인지 가볍게 웃는듯하더니 잠자코 걸었다. 《어험, 저 전번에 내가 묻던가 생각이 정리되였소?》 승현이는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며 가까스로 물음을 내뱉았다. 옥련이는 멈칫하는듯싶더니 머리를 다소곳한채 걷기만하였다. 승현이는 그 자리에 떡 버티고섰다. 확실한 대답을 들어야 했다. 《옥련이, 속시원히 말 좀 해주오.》 마침내 옥련이가 살며시 돌아섰다. 두사람의 거리가2―3메터정도. 어둠이 깃들었어도 대방의 표정을 어림짐작으로나마 느끼기에는 충분하였다. 옥련이의 눈길이 승현이를 응시하고있었다. 두눈에서는 작은 불꽃 한쌍이 밤하늘의 별찌마냥 반짝 빛나고있었다. 승현이에게는 이 짧디짧은 순간이 정말 숨막히게 답답한 순간이였다. 담배를 찾아물었다. 《호호호…》 갑자기 옥련이가 웃어댔다. (참, 남은 속이 타서 재가 되는데 웃기만하다니.) 승현이는 옥련이를 마주보다말고 라이타를 담배문 입가에 갖다댔다. 《어쩌면 그렇게도 눈치 무딥니까?》 《뭐, 뭐라고?》 승현이의 입에 문 담배가 떨어졌다. 《방금 뭐라고 했소? 눈치 무뎌? 아니, 그럼…》 승현이는 눈을 스르르 감았다. (꿈이 아니지, 꿈이면 제발 깨지 말아다오.) 두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는 엎어질듯 두팔을 쩍 벌리고 옥련이를 향해 덮쳤다. 추호의 주저도 없이 용맹하게 덮쳤다. 그리고는 꼭 끌어안았다. 으스러지게― 《어머나! 누가 보면…》 옥련이는 속삭이듯 말하며 승현이의 품안에서 바둥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뿐 나중에는 아예 고스란히 받아주었다. 《이게 정말이요? 응, 옥련이가 나한테 시집오겠단말이지?》 승현이는 옥련이의 얼굴을 꿰뚫어보며 확인하려는듯 다시 물었다. 그녀는 수줍은듯 머리만 살짝 끄덕이였다. 맑은 물줄기가 승현이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절절한 환희의 눈물이였다. 옥련이도 어느새 돌아서며 손수건으로 눈굽을 찍고있었다. 그날 승현이는 처음으로 옥련이의 집안래력과 그의 현상황을 다소 알게 되였다. 그녀의 집은 워낙 화룡의 어느 진에 있었는데 한때는 그 지방에서도 뜨르르하게 잘산다고 소문난 집안이였다. 그런데 한번은 오빠가 무슨 큰 장사를 한답시고 헤덤비다가 크게 사기당하여 졸지에 망해버렸다고 한다. 아버지는 뇌익혈로 병원에서 돌아가시고 시름시름 앓던 어머니도 한달만에 아버지를 따라 북망산으로 떠나셨다 한다. 오빠는 그뒤로 행방이 묘연하고 그때 사범학교를 갓 졸업한 그녀는 연변대학에서 공부하는 남동생을 뒤바라지 해주느라 연길에 남아 어느 개인이 꾸리는 유치원에서 림시로 밥벌이를 했단다. 며칠후 승현이는 옥련이를 집으로 데려가 부모님에게 정식으로 인사시켰다. 이번에는 정말 며느리 될 사람이라고 호언장담하면서… 승현이의 부모들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해하더니만 옥련이의 가정상황을 들어보고는 혀까지 끌끌 차며 동정하였고 그녀를 반갑게 대해주었다. 고생하며 자란 사람이 먼저 셈이 든다고 하시며 승현이의 어머니는 그녀를 친딸처럼 극진하게 대하였다. 그날 저녁 시간도 늦었고 또 승현이의 지꿎은 청구와 부모님들의 만류에 옥련이는 승현이의 집에 하루밤 묵게 되였다. 승현이의 방에 들어간 그녀는 수줍은듯 침대 한모퉁이에 오도카니 앉아서 옷깃만 만지작거렸다. 승현이는 침대머리에 있는 탁상등빛을 약간 어둡게 조절하여놓고는 그녀의 옆에 걸터앉았다. 이윽고 그녀가 살며시 눈길을 들어올렸다. 두사람의 눈길이 허공에서 불꽃이 튕겼다. 승현이는 그녀의 여린 어깨를 두손으로 잡으며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자, 이젠 쉬지…》 옥련이는 머리를 숙인채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뭔가 생각하는듯 하더니 이윽고 결심한듯 상큼 일어서서 웃옷만 달랑 벗어놓고는 도로 앉아버렸다. 승현이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허, 이대로 잘거요? 걱정마오. 나 옥련이가 허락하기전에는 손끝하나 다치지 않을거요.》 그제야 그녀는 좀 안심된듯한 표정을 지으며 오돌차게 말하는것이였다. 《그럼 좀 뒤로 돌아서시겠습니까?》 승현이는 어이가 없다는듯 팔짱을 낀채 돌아섰다. 돌아선 순간 승현이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아야 했다. 그가 돌아선 곳은 바로 옷장문에 달려있는 커다란 거울앞이였던것이다. 뒤에서 들려오는 사르락사르락하는 옷벗는 소리와 함께 거울속에 그녀의 일거일동이 낱낱이 비껴있었던것이다. 마침내 브래지어와 팬티만 달랑 남은 몸이 쫓기우듯 이불안으로 숨어버리자 승현이는 끝내 참았던 웃음을 터쳐버리고말았다. 침대에 벌렁 나자빠지며 박장대소하는 승현이를 보며 그녀는 어리둥절해하였다. 승현이는 키득거리며 손가락으로 거울을 가리켰다. 그제야 영문을 알아차린 그녀는 발끈하고 상체를 일으키며 승현이의 뒤잔등에 종주먹질을 해댔다. 《아이, 나쁜 사람. 음특하기도 하여라. 미워요.》 승현이는 재미있다는듯 껄껄 웃으며 고스란히 맞아주다가 몸을 홱 돌려 그녀의 두손을 잡고 마주보았다. 손을 빼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녀의 엷은 브래지어속에서 투명한 두 봉오리가 관능적으로 흔들리고있었다. 승현이의 눈빛에서 뒤늦게야 로출된 상체를 의식한 그녀는 당황한 얼굴빛이였다. 드디여 승현이가 그녀의 두눈을 마주보며 말했다. 《옥련이, 뭐 이럴게 있소. 우린 이제 어차피 같이 살 사람이요. 날 믿지 못하겠소. 내 눈을 똑바로 보오. 그래도 믿지 못하겠으면 난 객실에 나가 자겠소.》 그녀는 마침내 아래입술을 꼭 깨문채 승현이의 눈을 바라본다. 그녀의 눈은 승현이를 빨아들이고있었다. 《옥련이. 사랑하오. 이 목숨 다하는 날까지.》 그녀는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윽하여 기다린 눈초리를 파르르 떨더니 눈귀로 맑은 구슬이 주르륵 흘러내리며 야들야들한 뺨을 적시며 입귀로 스며들었다. 빼내려던 두손의 힘이 스르르 풀린다. 승현이는 그녀를 덥석 끌어안았다. 난생처음 녀자의 몸을 다루어보는 승현이의 행위는 거칠고 서툴기만하였다. 그러나 그 순간은 폭풍이 휩쓰는 순간, 뢰성이 울부짖는 순간이였다. 삶의 희열이라는게 아마도 이런 느낌이리라. 생사를 뛰여넘는 순간이 바로 이런것이리라. 몸부림을 치며 생과 사를 넘나드는 용사마냥 승현이는 그대로 함몰하여 들어갔다. 자신의 온몸이 그녀의 몸속으로 녹아드는 느낌이였다. 가벼운 흐느낌소리에 함몰했던 승현이는 다시 자신을 찾았다. 옥련이가 고개를 외로 젖힌채 어깨를 가볍게 들먹이고있었다. 《왜 그래? 내가 너무 괴롭혔어?》 승현이는 걱정스레 물었다. 그녀는 고개만 흔들어보였다. 더 물을 필요가 없었다. 이날 이때까지 고스란히 지켜오던 녀자의 제일 소중한것을 잠간새에 몽땅 빼앗겼으니 충분히 리해가 갔다. 《바보같이 울긴, 다 알아. 그리고 고마워. 나같은 병신도 인간으로 대해줘서. 그러나 너무 슬퍼하진 마. 나 이 김승현이가 이래봐두 한번 맘먹으면 끝까지 해내고마는 성미야. 내 이제 전업을 더 악착스레 해서 돈 많이 벌어가지구 옥련이를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녀자로 만들어줄게 응? 내 말 믿지?》 승현이는 그녀의 두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어린애 얼리듯 익살까지 부렸다. 이슬이 가랑가랑 맺힌 두눈으로 승현이를 이윽히 바라보던 옥련이는 울먹이는 소리로 《행복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라고 간신히 말하고는 승현이의 가슴에 파고들며 더 세차게 흐느껴 울었다. 《어허, 아직두 선생님이라니 참, 옥련이 이제부터 우린 한몸이요. 그러니 이젠 선생님이요 뭐요 하는 소린 싹 집어치우고 차라리 여보라든가 아니면 당신이라든가 하는게 좋지 않을가? 더 친절해보이게 응? 자, 어디 한번 불러보지 응? 어서.》 승현이는 옥련이의 등을 다독여주며 말했다. 한참만에 울음을 겨우 그친 그녀는 승현이의 성화에 못이겨 마지못해 나지막하게 《여보》하고는 쑥스러운듯 다시 승현이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승현이는 만족한 웃음을 띠고 옥련이를 꼭 껴안은채 행복에 취하여 꿈나락으로 빠져들어갔다… 이튿날아침 뒤늦게 승현이가 객실에 나가보니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시다말고 승현이를를 보고 말없이 시무룩이 웃어주었다. 그리고 주방에서는 어느새 그렇게 끔찍해졌는지 옥련이가 어머니의 일손을 도우며 뭐라고 쉴새없이 도란도란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승현이는 히죽 웃으며 아버지와 의미있는 눈길을 마주치고는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청신한 아침공기가 확― 하고 다가왔다. (아! 나에게도 이런 날이 있었구나.) 그날부터 옥련이는 승현이의 집에서 아예 함께 살다싶이하였다. 집이라고 돌아가봤자 텅 비여있고 또 동생은 학교기숙사에 있었기때문에 집에가도 별로 할 일이 없었던것이다. 게다가 승현이와 그의 부모님들의 청구도 그렇고 해서 옥련이는 그냥 못이기는척 눌러있게 되였던것이다. 그리고 며칠 지나서 그녀는 다니던 유치원의 경기가 그닥 좋지 않아 무기한 방학을 했다면서 출근도 하지 않았다. 그에 더없이 좋아한건 물론 승현이였다. 그것은 매일 옥련이와 같이 있는것도 있지만 또 그녀가 아예 자기의 직업모델이 되여줄수 있다는 기쁨에서였다. 옥련이와 동거하는 사이 승현이의 신체에는 미묘한 변화들이 모름지기 일어났다. 그녀가 온 사나흘부터인가 승현이는 공연히 가슴이 답답해나고 몸이 자꾸 가라앉는것 같은 느낌이 자주 들었다. 이상했다. 잠자리에 너무 관심이 지나쳐서 그런가보다― 좀 적응되면 괜찮겠지 하고 자신을 위안하면서 증상이 나타날 때면 랭동한 콜라를 벌컥벌컥 마시곤 하였다. 그러고나면 좀 괜찮아진듯싶었다. 아닌게아니라 한 일주일후부터는 그 증상이 가뭇없이 사라져버렸다. 역시 그랬구나 하며 승현이는 더한층 무한한 행복에 도취되였다. 온 세상을 다 얻은것 같은 느낌이였다. 그리고 그는 옥련이를 데리고 외할머니네 집으로부터 시작하여 고모집까지 친구들한테도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보라는듯이 자랑하고싶어서였다. 그녀의 유일한 친척이란곤 고모네 집에도 갔었다. 그날, 한쪽 다리를 삐걱거리며 들어서는 승현이를 보고 옥련이의 고모와 고모부는 그저 멍하니 그녀만 쳐다보고있었다. 맹랑한 모습들이였다. 승현이는 별로 개의치 않고 그들이 자리에 앉기를 기다려 꾸벅 절하며 자기 소개를 했다. 《인사 늦었습니다. 옥련이의 일생을 책임질 사람입니다.》 그 거동에 옥련이의 고모와 고모부는 더구나 당황해서 서로를 마주보며 어쩔바를 몰라했다. 마침내 간소한 술상이 차려졌다. 차려온것이란 거의 전부가 옥련이와 승현이가 사들고 온것들이였다. 《자, 한잔 받으십시오. 그냥 고모부라 부르겠습니다.》 고모부란 사람도 성품은 어진 모양 그저 사람좋게 빙긋 웃더니 잔을 받아 단숨에 굽냈다. 《감사합니다. 고모부.》 승현이는 진심으로 사례하고는 술병과 빈잔을 들고 부엌으로 걸어갔다. 고모가 술을 못한다고 마구 손을 내저었다. 《고모님, 이 술을 꼭 받아야 합니다. 못난 놈이지만 곱게 봐주십시오.》 옥련이의 고모는 마지못해 술잔을 입에 댔다 떼였다. 그리고 잔을 도로 넘겨주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 《생원두 성격 하나 통쾌해 좋구만.》 《예, 그저 다리 하나 병신일뿐이지 다른건 나무랄게 없습니다.》 승현이는 옥련이의 고모에게 벙긋 웃어보이고는 웃방으로 올라가앉았다. 고모부도 그의 소탈한 성격이 마음드는지 벙글벙글 웃으며 승현이에게 맥주를 그들먹이 부어주며 말했다. 《몸이 좀 그러면 뭐라우. 서로 떠받들구 잘살면 되지. 자― 우리 한잔 할가?》 《예, 말씀 고맙습니다. 저― 우리 한잔 합시다.》 《허허, 그래그래. 우리야 뭐 별게 있소. 어쨌든 둘이서 맘맞춰 잘살길 바라오.》 그리고는 부엌쪽에 대고 소리쳤다. 《여보, 조카사위될 사람이 왔는데 거 닭이라도 하나 잡아야지.》 《예― 그러찮아도 지금 나가려던참인데요.》 옥련이의 고모부 내외의 간곡한 만류에 못이겨 승현이는 시골의 정취를 한껏 즐기며 이틀간 묵고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날 저녁무렵 경호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경호의 목소리임을 알아채는 순간 승현이는 아차하는 생각에 미처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경호와는 보름이 넘도록 련락을 못했던것이다. 《야, 너 듣자니 요즘 재미 좋다면서 자식. 아무리 녀자에게 미쳤기로 전화 한통 없어?》 경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엔 노기가 어지간히 배여있었다. 《어, 경호구나. 그게 아니구 사실은…》 《아니긴 뭐가 아니야. 긴 말 할것 없구 지금 바로 이리와. 기다릴게.》 승현이가 뭐라고 주어댈 사이도 없이 수화기에서는 뚜―뚜 하는 신호소리만 우려나왔다. 승현이는 서둘러 나갈 차비를 했다. 옥련이가 누군가고 묻는 말에 경호라고 말하자 그녀는 흠칫하는것 같더니 불안한 표정으로 승현이를 바라보다가 인차 안방으로 들어갔다. 부랴부랴 경호네 뀀점에 도착해보니 경호는 이미 술상을 차려놓고 혼자서 맥주를 마시고있었다. 승현이가 들어서는걸 보고 경호는 그저 입귀를 실쭉하며 턱짓으로 맞은켠자리를 가리켰다. 승현이는 자리에 앉으며 경호의 기색만 살폈다. 기색이 썩 좋지 않았다. 《어때? 녀자 재미 괜찮지? 이젠 너두 숫총각의 때를 다 벗었겠구나. 응? 흐흠. 어쨌든 난 이번에 너한테 두손 바짝 들고말았어. 정말이야. 그저 장난칠려니 하고 우습게 생각했더니 너 수단 한번 대단하더라 응? 하하하…》 《!》 승현이는 한대 얻어맞은것처럼 뗑해났다. 《뭐? 장난칠려니 했다구? 아니, 이건…》 승현이는 혀끝까지 나온 말을 도로 삼키며 잠자코 경호를 노려보았다. 둘은 소리없이 대방을 노려보기만하다가 드디어 경호쪽에서 피씩 웃으며 승현이에게 맥주를 부어주었다. 《자식, 됐어. 정색하긴. 롱담 좀 해봤다. 허, 어쨌든 잘됐다. 축하한다. 그리구 이 술은 내가 내는거야. 너의 용기 한번 봐주는 의미에서. 첫잔은 깐베이!》 그제야 승현이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고뿌를 맞들었다. 경호가 시물시물 웃으며 지껄여댔다. 《야, 근데 너 참 보기하구 다르더라. 녀자하군 아예 담쌓구 사는줄알았더니 언제 그런 수단을 배웠니? 응? 궁금한데. 그래 그 애보구 도대체 뭐라구 하니까 네 품에 착 안기던? 재미 있었겠는데. 허허, 어디 한수 가르쳐주지 않을래?》 승현이는 시무룩이 웃고나서 어물어물 말했다. 《뭐, 수라는게 따로 있나. 그저 각자의 마음에 맡겼을뿐이지.》 《핫하하, 자식. 거짓말 해두 눈 한번 깜박하지 않네. 임마 지금이 어느때라구 그런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릴 하니? 마음 흥, 량심도 개떠주는 세상에…》 술이 꽤나 잘된듯 경호는 이미 어지간히 취한듯했다. 경호를 보고있노라니 어쩐지 마음이 개운치 못했다. 마음 한구석에서 머리를 쳐드는 죄의식을 끝내는 떨쳐버릴수가 없었다. 자정이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와보니 옥련이는 그때까지 자지 않고 승현이를 기다리고있었다. 《왜 여직 안자구있었소?》 《예, 저 잠이 안와서요.》 《왜 내가 보구싶어서? 허허…》 승현이가 지껄이는 소리에 옥련이는 말없이 얼굴을 살짝 붉히고는 걱정스레 물어본다. 《저, 식사는 제대로 하셨습니까? 제가 뭘 갖춰올가요?》 《아 됐어, 늦었는데 그럴것 없구 자, 이리 와 앉소.》 승현이는 침대에 벌렁 드러누우며 그녀에게 손짓했다. 그녀는 말없이 다가와 앉아서 승현이의 취기오른 얼굴을 내려다본다. 승현이는 마주보다말고 그녀의 어깨를 한팔로 감싸서 끌어당겼다. 그녀의 몸이 스르르 무너지며 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왔다. 배냇머리같이 보드라운 머리칼이 향긋한 내음을 풍기며 코끝을 간지럽혔다. 승현이는 한껏 숨을 들이그었다 내뿜으며 속삭이였다. 《옥련이, 우리 이번 국경절에 결혼해.》 옥련이가 흠칫하며 머리를 든다. 두눈은 놀란 사슴마냥 말똥해졌다. 이윽고 옥련이가 고개를 외로 틀었다. 한참만에는 어깨를 들먹이였다. 울고있었다. 그바람에 승현이는 당황해났다. 《갑자기 왜 이래?》 옥련이는 몸을 돌려누우며 승현이의 품안을 파고들었다. 그리고는 울먹이며 간신히 말했다. 《흑― 흑. 미안합니다. 전 너무 행복해서 그럽니다.》 승현이는 그제야 한시름 놓았는지 그녀의 뒤잔등을 다독여주며 달랬다. 《바보같이 울긴. 행복하다면 웃어야지. 옥련이 지금 마음 나두 알아. 후, 글쎄 뭐가 모자라서 나같은 병신에게 시집오겠느냐만은 걱정하지마. 난 앞으로 꼭 옥련이에게 그 손해를 보상해주고야말거야. 부실한 다리대신 뭔가를 꼭 보상해주고야말겠어.》 《아니, 그게 아닙니다. 그저…》 옥련이가 변명하듯 인차 울음을 그치고 이슬이 가랑가랑 맺힌 두눈으로 승현이를 쳐다보았다. 《그래. 아니면 됐어. 이제 우린 행복할거야. 음, 노래 하나 해줄까?》 승현이는 목청을 가다듬고나서 눈을 지그시 감으며 낮게 곡을 떼였다. 《내 가슴에 묻혀 꿈을 꾸는 그대여 야위여진 그댈 바라보니 눈물이 솟네 고왔던…》 승현이는 노래를 못다 부르고 꿈나락으로 빠져들어갔다. 이튿날오전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난 옥련이는 시골 고모네 집에 가서 며칠간 일손을 돕고 오겠다며 떠났다. 그렇게 떠난지 일주일후에야 돌아왔다. 그동안 그녀의 몸은 퍽 축해져있었다. 어머니는 옥련이의 축간 몸을 이리저리 살피며 연신 《괜찮냐? 어디 아픈데는 없니?》하며 걱정스레 물었고 아버지는 말은 하지 않았으나 옥련이를 바라보는 눈길에는 걱정스러움이 력력히 찍혀있었다. 저녁상은 어머니가 무척 신경써서 갖춘 모양. 여느 설날 못지 않게 푸짐히 차려졌다. 어느결에 사왔는지 찰떡도 있었고 큼직한 잉어도 올라있었다. 어머니는 연신 색다른 음식들을 부지런히 옥련이의 접시에 집어주며 많이 먹으라고 성화를 부린다. 옥련이는 마지못해 몇술 뜨는척하더니 좀 일찍이 쉬고싶다며 곱게 인사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승현이도 뒤미처 밥술 놓고 일어나 방으로 따라들어갔다. 방문을 떼고 들어서던 승현이는 흠칫했다. 그녀가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채 가볍게 어깨를 들먹이고있었던것이다. 승현이는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었다. 《옥련이, 어떻게 된거야?》 옥련이는 더 세차게 흐느끼기만할뿐. 승현이는 그저 잠시 지켜보고만있었다. 한식경이 지나 옥련이의 오열이 멈춰졌다. 이윽고 옥련이는 엎드린채 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나서 몸을 돌려왔다. 그녀의 속눈섭에 눈물이 가랑가랑 맺혀있고 눈은 충혈되여 빨개져있었다. 흐느낌이 꼬리를 끌고있는 입술은 옴쭐옴쭐 움직이고있었다. 《이젠 다 울었어? 대체 무슨 일이야?》 승현이가 그녀의 어깨를 잡고 걱정스레 물었다. 《죄송합니다. 눈물 보여드려서…》 그녀의 말에는 울음끝의 여운인지 또다시 흐느끼는것 같았다. 《죄송하긴 뭐가 죄송해. 옥련이가 뭘 잘못했길래 그냥 죄진놈처럼 맨날 죄송해요 감사해요 따위의 말을 입에 달구있는가말이야 엉? 옥련이는 이제 내 녀자야. 그리구 난 옥련이의 남자구. 우린 서로를 돌봐주구 보살펴줄 의무가 있어. 식을 안올렸을뿐이지 우리 이제 엄연한 부부야, 부부. 알겠어? 이제부터 내앞에서 미안하다거나 죄송하다 따위의 말은 다시 입밖에 내지 마 알겠어?》 승현이는 어지간히 화가 나있었다. 처음 한두번은 의례 그렇겠지 하고 스쳐지났지만 차수가 늘어감에 따라 공연히 이상한 기분이 머리를 어지럽히군 했다. 그것도 평소에는 깔깔거리며 시름없이 뛰놀다가도 승현이가 조용히 가슴에 닿는 속심말을 해주거나 정성스레 애무해주거나 할 때면 꼭꼭 한번씩 눈물을 보였고 심하면 오열을 터치며 통곡까지 해대군 했다. 그래서 번마다 왜 그러냐고 물으면 《행복해서요》 혹은 《감사해요》, 《미안해요》따위의 대답뿐이였다. 아무리 눈물 흔한 녀자라지만 옥련이의 경우는 아무래도 좀 이상했다. 옥련이는 겨우 모기소리만하게 《예, 다시는 안그럴게요.》하고 대답하고는 승현이한테로 몸을 돌렸다. 가느다란 손길로 승현이이 마비된 다리를 어루쓸며 다시 속삭이듯 말했다. 《만일 제가 언젠가 당신을 떠난다면 어떡할렵니까?》 《뭐? 롱담이라도 그런 소린 하지마. 떠나긴 어딜 떠난다구 그래? 내가 이렇게 꼭 붙잡고 놓지 않는데. 우린 영원히 이렇게 꼭 붙어서 함께 살거야. 그 누구도 내옆에서 옥련일 앗아가지 못해. 알겠어?》 창문밖 검푸른 하늘에서 낫날같은 쪼각달이 미약한 빛이나마 은근히 뿌려주고있었다. 이튿날 옥련이는 동생보러 갔다오겠다며 아침 일찍 나갔다. 그런데 저녁때가 다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튿날도 그 이튿날도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였다. 원래 있던 세집에도 가보고 다니던 유치원에도 가보았으나 아무데도 없었다. 온 집식구가 한창 애를 바질바질 태우고 있을 무렵 승현이의 화실이 있는 그 건물접수실에서 편지가 왔다는 전화가 왔다. (웬 편지가 그리로 올까?) 부랴부랴 달려가보니 접수실령감이 겉봉에 그저 《김승현》이라고 이름만 달랑 쓰인 편지를 건네주면서 어제점심쯤에 한 처녀가 놓고 갔다는것이였다. 두툼한 속지를 뽑아보니 정성들여 박아쓴 글씨체가 두눈을 파고들었다. 《그날 밤, 제가 한 약속을 어기고 또다시 죄송하단말부터 합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이렇게 말없이 조용히 떠나가는 저를 용서해주세요. 저로서는 어쩔수 없는 선택이였습니다. 우리는 시작부터가 전부 거짓이였습니다. 처음부터가 경호라고 하는 그 짐승보다 더 추악한 인간이 조작해낸 음험한 연극이였습니다. 선생님이 외국에 가서 돈을 벌고 돌아왔다는 그자와 우연히 만난 그때부터 일은 꾸며진것 같습니다. 그들은 선생님네 부모님들이 한국에서 돈 많이 벌어왔다는걸 넘겨보고 그때부터 계획적으로 선생님께 접근했던것입니다. 경호란 자가 어릴 때부터 선생님과 각별한 사이로 지냈다는게 그들에겐 더없이 좋은 계기가 되였겠지요. 그래서 경호는 더 한층 선생님과 친근해진겁니다. 그리고 녀자애들을 부지런히 소개해댄것도 또 저를 우연히 만나게 한것도 다 그들이 꾸며낸 일장 악몽같은 연극이였습니다. 저의 집안래력은 전에 말씀드린것과 거의 같습니다. 전 확실히 동생을 데리고 있는 고아입니다. 다만 우리 집안이 몰락하게 된 리유는 단순히 오빠가 장사를 하다가 망해버려서 그렇게 된게 아닐따름입니다. 저의 오빠도 워낙은 그들과 친구사이였습니다. 그런데 오빠는 당초에 그들이 한개 무시무시한 마약밀수집단이란걸 몰랐습니다. 오빠는 그들의 유혹에 못이겨 차츰 마약에 손을 대더니 얼마 안지나 인이 배이고말았습니다. 그때 집에서는 전혀 그런줄 모르고있었습니다. 차츰 집에서 돈달라는 성화가 늘어가고 그 액수도 점점 많아졌습니다. 약 일년간 지나니까 오빠는 어느새 집안의 저금통장 같은건 몽땅 털어내고 그것도 모자라서 집문서까지 훔쳐다 놈들에게 전당잡히고 마약을 피웠습니다. 드디여 우리 집은 오빠손에 꼼짝 못하고 망해버렸고 아버지는 화병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저에게 여린 동새을 떠맡긴채… 제 동생도 연변대학 다니는게 아니고 금방 열살난 철부지로서 지금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저도 모르고있습니다. 그저 이따금 전화로 살아있다는 소식만 듣고있을뿐입니다. 집안이 몰락하자 저는 이를 악물고 어린 동생을 이끌고 이곳으로 오게된겁니다. 그때 금방 사범학교를 나온 저는 낮에는 유치원에 나가고 저녁에는 노래방에 다니며 손님의 술시중을 드는 아가씨노릇을 했습니다. 모든 굴욕을 무릅쓰고 악착스레 돈을 벌었습니다. 오직 집안 유일한 희망으로 남은 남동생을 공부시켜 출세시키려구요. 그러나 악마의 손길은 끝내 저희 오누이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8월중순의 어느날, 자정이 넘어 경호란 자가 패거리 셋을 데리고 저희 세집에 뛰여들었습니다. 언제 빚졌는지 오빠의 손도장이 박힌3만원 되는 빚문서를 내놓으며 빚을 갚으라고 을러메였습니다. 제가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우리 집을 그렇게 망하게 하고도 무엇이 성차지 않아서 이러는가고 악을 쓰고 발악했으나 그들은 듣는척도 않고 집안을 두루 살펴보더니 잠에서 놀라깬 제 동생을 보더니 동생을 살리고싶으면 시키는대로 하고 그렇지 않으면 마음대로 하라고 하면서 다짜고짜 동생을 끌고나갔습니다. 저느 그만 무릎꿇고 빌수밖에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남은 동생을 잃는다는건 제가 죽어서도 황천에 계시는 아버지 어머님께 용서받지 못할 일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키는대로 뭐든지 다할테니 제발 동생만을 살려달라고 애걸했습니다. 경호란 자는 저를 이리저리 뜯어보더니 〈고거 인물 한번 써먹게 생겼구나〉하면서 다짜고짜 덮쳐들어… 저는 그렇게20여년간 고이 지켜오던것을 그런 짐승같은 놈에게 빼앗기고말았습니다. 놈은 수욕을 채우고나서 래일 어디로 나오면 사람 하나 알게 하겠으니 모든 방법을 다해서 접근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수시로 자기와 련락을 취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이 성사되면 빚을 면해주고 동생도 돌려보내겠지만 저때문에 잘못되면 동생은 자취도 없이 이 세상에서 사라질거라고 위협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요구에 응하는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이튿날 만난 사람이 바로 선생님이였습니다. 물론 처음에 저의 친구를 소개해주겠다고 한건 선생님과 후에 자연스럽게 다시 만날수있는 장소를 마련하기 위한 핑게였구요. 선생님의 불구라는것때문에 좀 측은한 생각도 들고 주저심도 들었지만 오직 동생을 살리려는 의욕에서 저는 갖은 방법을 다해 선생님을 접근했습니다. 선생님은 너무 쉽게 저를 믿고 받아주었습니다. 제가 선생님 집에 머물게 되자 경호는 저에게 마약을 주었습니다. 매일 정량으로 선생님 마시는 물에 타넣으라고 했습니다. 처음 며칠 속이 떨렸지만 시키는대로 하고말았습니다. 며칠후에 선생님이 약반응을 보이자 저는 스스로 심한 갈등을 겪어야 했습니다. 선생님의 진지한 사랑과 지극한 관심, 그리고 부모님들의 극진한 보살핌에 저는 주저했습니다. 저는 그때 이미 동정으로부터 선생님을 사랑하게 되였습니다. 저는 나머지 마약을 몽땅 하수도에 처넣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품에 안겨 행복한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너무나 짧디짧은 나날이였지만 저의 일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소중한 나날들이였습니다. 저는 그런대로 그 시간과 공간에 머물러 있지 못하는것이 한스러웠습니다. 드디여 제일 무서워하던 시각이 닥쳐왔습니다. 경호가 전화온 날이였지요. 그 전화는 오래동안 련락없는 저보고 련락을 취하라는 암시였습니다. 그리고 또 선생님이 마약인이 배였는지 알아보려는 심산도 있었겠구요. 제가 그날 밤 잠못이루고 고민하고있을 때 선생님이 돌아와서 결혼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내심으로 크나큰 갈등과 그리고 동생을 잃을 고통에 모대기며 장밤 소리 못내고 눈물로 지세웠습니다. 선생님을 너무나도 깊이 사랑했기때문입니다. 이튿날 경호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경호는 추잡한 말로 지껄여대더니 〈너 그냥 그러구있다간 네 동생도 오라지 않으면 마약중독자가 되고말것이다〉고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전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경호한테로 달려갔습니다. 저는 경호앞에 무릎꿇고 빌었습니다. 제발 불쌍한 승현씨만은 놓아달라고, 그가 당신하고 무슨 원쑤를 졌길래 그렇게 해야만 하느냐고. 다른 상대로 바꾼다면 서슴없이 할수 있다고. 승현씨만은 내 손으로 그런 구렁텅이에 밀어넣지 못하겠다고. 손이 발이 되게 빌었습니다. 경호는 말없이 듣고있다가 발길로 저를 걷어차며 말했습니다. 〈그래, 승현이는 내 친구야. 네 말대로 걔한테 죄가 없다. 그러나 죄라면 그 애네 집에 돈많은것이 죄가 되겠지. 너 볼라니까 동생을 살릴생각이 없는것 같은데 좋다. 너 마음대로 해봐. 그 병신하구 살겠으면 마음대루 살아봐.〉 저는 정신이 퍼뜩 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잠시나마 감정에 집착하는 자신을 저주했습니다. 그래서 동생이 무사하다는것만 알게 해달라. 그러면 시키는대로 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경호는 차거운 웃음을 지으며 어디론가 전화했습니다. 삐삐를 호출하는것 같았습니다. 잠시후 걸려온 전화에서 저는 동생의 목소리를 들을수 있었습니다. 동생은 전화에서〈누나, 나 무서워. 빨리 날 데려가줘. 빨리〉하고 울먹이였습니다. 동생전화를 받고나서 경호는 저에게 특제한 담배를 몇갑 주면서 그걸 선생이 피우는 담배와 바꿔놓으라고 했습니다. 쉽게 인이 배일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걸 받아들고 곧추 시골고모네 집으로 내려갔습니다. 선생님네 집에서 나올 때 시골로 간다고 한 말도 있고 또 혼자서 조용히 생각할 시간을 갖고싶어서였습니다. 시골에 내려가 있는 일주일동안 저는 실성한 사람처럼 매일 강가에 쭈크리고앉아 흘러가는 강물만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느님은 왜 이리 불공평한지? 동생과 선생님 둘중에 저는 한가지밖에 선택할수가 없는 처지였습니다. 동생을 구하자면 선생님은 물론이고 선생님네 온 집안까지 몰락할것이고 선생님을 택하자니 저희 가족의 유일한 기둥인 동생을 잃어야 했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때문인지 저는 끝내 마음을 모질게 먹었습니다. 동생을 구하는 길을 택한것입니다. 그래서 일주일만에 선생님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저녁상에 마주앉는 순간 저는 또 약해지는 마음을 어쩔수 없었습니다. 저를 친딸보다 더 지극히 대해주시는 부모님들의 은혜에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크나큰 사랑에 저는 끝내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을 저에게 모조리 터득케 해준 선생님과 부모님들의 은혜에 보답하지는 못할망정 한 인간으로서 어찌 배은망덕하게 그들을 해칠수가 있겠습니까? 하여 오랜 생각끝에 선생님과 동생 둘중에서 어느 하나도 놓쳐서는 안될 저의 립장으로서는 이 길을 선택할수밖에 없었던것입니다. 이 험악하고 불공평한 세상을 떠나는것이 제가 할수 있는 유일한 선택인것입니다. 선생님과 부모님들의 크나큰 사랑을 가슴가득이 간직한채 떠나갑니다. 선생님이 크나큰 사랑을 가슴가득이 간직한채 떠나갑니다. 선생님의 크나큰 사랑에 미처 보답도 못한채 이렇게 총망히 떠나가야만하는 저의 처지를 리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선생님은 불구가 아니였습니다. 이 세상 어느 건전한 사람보다 더 건강한 삶의 강자였습니다. 선생님은 꼭 성공하실겁니다. 선생님이 성공을 빌고빕니다. 만일 래세가 있다면 꼭 다시 선생님과 부모님들을 찾아뵙겠습니다. 그때 가서 못다한 정성 끝까지 다하겠습니다. 그럼 기약없는 래세를 기대하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부디 행복하세요. 아버님 어머님께 삼가 큰절 올립니다. 사랑했어요. 여보… 옥련 절필.》 온통 눈물로 얼룩진 편지가 승현이의 손에서 맥없이 스르르 빠져나갔다. 초점잃은 두눈길은 멍하니 하늘로 향한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드디여 몸중심이 휘청하더니 털썩 꿇어앉았다. 두손으로 머리를 감싸안은채 《으으윽》하는 신음소리를 뿜어내더니 이윽고 머릴 젖히고 피터지는 괴성을 내지르고말았다. 《안돼! 아니야! 옥련아 이 바보야, 그럴수가 없어! 흑, 거기가 어떤 길이라구. 나같은 병신때문에 죄없는 네가 그런 길을 가다니 안돼! 어허헉― 나같은 병신이나 일찌감치 죽을 일이지 아무 죄없는 네가 어찌 그런 길을 간단말이냐? 으― 흐흐흑…》 그의 히스테리적인 거동에 행인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호기심어린 눈길로, 측은하고 동정어린 눈길로 지켜보고있었다. 주위의 시선과 수군대는 소리를 의식해서인지 한참만에 승현이는 팔소매로 얼룩진 얼굴을 쓱 문지르며 우뚝 일어섰다. 굳어진 얼굴은 험상스레 일그러져있었다. 두주먹은 불끈 쥐여져있었고 두눈은 보기에도 섬찍할만큼 차디찬 섬광을 내뿜고있었다. 그것은 마치도 이리의 번뜩이는 살기찬 눈빛과도 같은것이였다. 뿌드득하고 소리나게 이를 악물며 승현이는 비틀거렸다. 무거운 걸음걸음마다에는 그 어떤 비아한 결의가 찍혀있었다. 그뒤로 얼마후 승현이는 도시에서 종적을 감추었다. 경호도 사라져버렸다. 승현이가 어디서 무얼 하고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일년에 한두번정도 그의 부모님앞으로 주소도 없이 《김승현》이란 이름만 달랑 쓰인 엽서가 가끔 보내진다고 한다. 99년11월 북경에서   
‹처음  이전 3 4 5 6 7 8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